[스크랩] `새벽의 저주`에 담긴 보수적 가치와 신념
많은 호러 영화는 두 가지 문화적 욕구에 따라 크게 두 가지 범주로 나눌 수 있는데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영화와 10대 살인 영화가 그것이다. 영화에서 10대들이 벌을 받게 되는 것(살인마에게 살해되는 것)은 난잡한 성행위 때문이지만 여성이 벌을 받는 것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이런 요소를 이 영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데 먼저 여성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등장하는 안나가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라는 점에서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영화적 특성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시작부분에 안나가 병원에서 늦게까지 일을 하고 남편이 먼저 퇴근해서 기다리고 있는 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안나는 야근을 하느라고 늦어서 미안하고 이제부터 며칠간은 그럴 일이 없을 거라며 미안해한다. 이것은 여성 스스로 가정과 남편에 소홀한 것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런 여성에 대해 보수적인 사회(앞에서 언급했듯이 여성의 역할을 사회구성원의 재생산에 국한시키고, 남성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존재로 귀속시키려는 가치관으로 이루어진)는 처벌을 내린다. 이런 처벌이 영화에서는 안나의 눈앞에서 그녀의 남편을 좀비로 만들고 그에게 쫓기는 형태로 표출되었다고 생각한다.
여성에 대한 이런 처벌은 다른 희생자인 노마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데 노마가 아내를 지키려는 안드레의 손에 살해되기 전에 그녀의 손에 들려져 있는 담배꽁초와 담배연기가 클로즈업된다. 여기서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한 보수적인 사회의 부정적인 시선과 그에 대한 처벌이 표현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이렇게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영화는 대개 60년대와 70년대의 페미니즘에 대한 신경질적인 반응으로 설명되어 왔는데, 가부장적으로 미리 결정되어 있는 시각에 따르면 마땅히 그래야 할 것임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다소곳하게 따르기를 거부하기 시작한 여성에 대해 남성관객들이 가학적인 복수를 즐긴다는 것이다. 즉 남성 관객은 자신을 백인 가부장제의 남성에 동일화시킴으로써 여성이 영화에서 처벌되는 것(살해되거나 살인마에게 쫓기는 것)을 즐기거나 자신을 여성을 쫓는 괴물(살인마나 좀비)가 동일화시킴으로써, 현실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여성상과 반대로 움직이는 여성에 대한 처벌을 대신한다.
여성에 대한 처벌뿐만 아니라 10대에 대한 처벌 역시 영화에서 표현되는데 바트라는 젊은 경비 아르바이트생이 자신의 가족과 평소 알고 지내던 소녀가 좀비들에게 희생됐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인 농담을 일삼는 장면이 있는데 이 장면 후에 그는 시찰을 나갔던 여러 남성들 중 첫 번째 희생자가 된다. 또한 자신이 게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던 남성 역시 끝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이에 반해 보수적 사회의 가치관에 맞서지 않은 사람들은 선착장까지 가는 과정에서 살아남거나 좀비에게 물리더라도 영웅적 면모를 과시하며(좀비와 함께 자폭을 함으로써 다른 사람을 구하거나 스스로 죽음을 택함으로써 좀비로 변하지 않고 사람의 모습으로 죽는다) 추하지 않은 죽음을 맞게 된다.
또한 영화에서 좀비와 관련된 속보가 쇼핑몰의 티비를 통해 나오는데 진행자는 이런 일련의 사건들(좀비들이 거리를 활보하고 도시 전체가 그들에게 잠식된 상황)이 성의 문란함과 낙태, 동성애, 동성결혼에 대한 신의 심판으로 이루어진 일이라고 직접적으로 이야기한다.
영화를 보고난 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좀비로 변한 부인을 묶어놓고 아이를 낳을 때까지 보살피는 안드레의 모습이었는데 노마가 그의 부인을 죽이려고 할 때 그는 ‘내 가족을 위협하고 죽이려고?’라는 대사를 하며 오히려 노마에게 총을 겨눈다. 좀비의 모습을 하고 태어난 자신의 아이까지도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 넣고 보호하려는 그의 모습에서 모든 걸 감싸 안으려는 가족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느꼈지만, 한 편으로는 아내와 아이에 대한 소유욕 역시 가부장적 사회(보수적 사회가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