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세계/과학철학

[스크랩] (11) 기술과 전쟁 : 갈릴레오도 무기판매상이었다 - 이상욱

ddolappa 2008. 8. 20. 02:56

군사 기술과 민간 기술 다를까 같을까
르네상스 이래 전쟁사 되짚어보면 담은 명백
절대군주들 군비경쟁 위해 신무기 기술자 환대
19세기 ‘과학 애국주의’로 끔찍한 살인기계 발명
원자력·인터넷도 전쟁 기술을 일상화한 것
한겨레
» 기술발전은 전쟁의 파괴력을 가속도로 증대시켰고 전쟁은 기술발전을 가속화했다. 근대 이후 군사기술과 민간기술의 경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들은 최첨단 기술과 불가분의 관계로 결합돼 있다. 발사 직후 표적을 향해 날아가는 미사일. <한겨레> 자료사진

기술 속 사상/⑪ 기술과 전쟁
 

기술과 전쟁을 묶어 생각해보면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전투기나 최근 쟁점이 되고 있는 대포동 미사일 정도가 쉽게 떠오를 것이다. 조금 더 역사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이라면 버섯구름으로 상징되는 원자폭탄의 가공할 위력과 히로시마·나카사키의 참상을 기억할 것이다. 실제로 원폭은 2차대전 이후 과학기술자들이 자신의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평화적 목적을 위한 과학기술 연구활동에 나서게 된 중요한 계기가 됐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에만 주목하다보면 기술과 전쟁의 연관이 20세기 이후의 현대 기술문명 사회의 독특한 특징인 것처럼 생각하기 쉽다. 기술발전이 상상을 초월하는 신무기의 개발로 이어질 수 있는 조건이 마련된 현대에서야 기술과 전쟁이 복합적으로 관련을 맺게 되었을 것이라는 짐작도 해 볼 수 있다. 또한 최신예 전투기나 원폭을 전형적인 전쟁기술로 생각하다 보면 전쟁과 관련된 기술과 그렇지 않은 기술이 분명하게 구별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무도 F15 전투기를 해외여행 가는 데 사용하지는 않을 것이며 (전투기를 타본 경험은 없지만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 것이기에), 원폭을 건축현장에서 땅을 파내는 데 이용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소위 군사기술과 민간기술은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생각 모두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다. 유사 이래로 기술적 발전과정과 전쟁의 수행은 매우 밀접한 관련을 맺어왔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오히려 그러지 않았다면 이상했을 것이다. 전쟁터에서 무의미하게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전쟁을 일으킨 군주나 지휘관들은 모든 방법과 자원을 동원해서라도 꼭 이겨야 할 충분한 동기가 있었다. 전쟁에서 꼭 이기겠다는 집념에 불타는 사람들에게 상대방을 압도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의 가능성은 늘 매력적인 것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신무기가 적군을 효과적으로 죽이고 전쟁에서 이길 수 있게 도와주는 일 말고 인류복지에 보탬이 될 가능성은 낮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자들은 신무기에 비싼 대가를 지불할 준비가 늘 되어 있었다.

 

권력자들 이기려고 얼마든지 지불


그런데 일반적으로 기술을 발전시키는 과정에는 엄청난 자원의 투자와 집중이 필수적이다. 우리에게 기술은 ‘발명가 신화’와 너무 깊게 연관되어 있다. 강력접착제를 개발하던 한 연구원이 실패한 실험재료를 버리려다가 우연히 몇 번이고 붙였다 떼었다 할 수 있는 편리한 메모지를 발명했다는 이야기 따위가 그런 생각을 부추긴다. 그러나 접착력과 여러 번 사용할 수 있는 특징을 겸비한 접착제의 우연적 발견이 실제로 광범위한 환경에서 사용될 수 있는 제품으로 실용화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의 시행착오와 집중적인 연구가 필요했다는 점은 종종 간과된다. 마찬가지로 전쟁기술의 핵심적인 아이디어는 우연한 발견의 결과일 수는 있지만, 그것이 실용화되고 전장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기간에 걸친 집중적인 자원 투여와 집단적인 기술연구가 필요했다.

 

예를 들어, 보통 활보다 훨씬 큰 활을 사용하면 아주 먼 곳의 사냥감도 정확하게 쏘아 잡을 수 있다는 12세기 웨일즈 농민의 깨달음이 1415년 10월25일 아쟁꾸르 전투에서 헨리 5세 원정군의 압도적인 숫적 열세를 극복한 승리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웨일즈 침공 중에 배운 장궁의 위력을 여러 재료를 동원한 시험으로 배가시키고 장궁부대의 형태로 집중화시킨 에드워드 1세 휘하 기술자들의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 1차대전 당시 한 잡지에 실린 풍자화. 기관총 발명자가 전쟁희생자들을 내려다보며 가소로운듯 웃고 있다.

르네상스 시기 이후 절대왕권이 강화되면서 대부분의 유럽 군주들은 이런 이유 때문에 유럽 각지에서 뛰어난 능력을 가진 기술자들을 높은 연봉을 주고 모셔와 일종의 군사기술 연구팀을 꾸몄다. 그 결과 투석기와 대포처럼 효과적으로 성을 공략할 수 있는 신무기와 그 신무기를 무력화할 수 있는 진흙 축성법, 화승총과 같은 대항 신무기가 놀라운 속도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신무기를 독자적으로 가졌다고 해서 안심할 수 없었고 지속적으로 새로운 무기를 개발해야만 적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소모적인 군비경쟁은 냉전 시기 이전에도 이미 상당한 속도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권력자들은 환상적인 군사기술을 자신에게만 알려줄 기술자들을 수소문했고, 기술자 역시 자신이 지닌 독창적 축성법이나 적의 보병을 순식간에 전멸시킬 수 있는 비법을 암시하는 편지를 자신의 후원자가 될 잠재적 군주에게 끊임없이 쓰곤 했다. 이런 과학기술자 중에는 기술지식이 전쟁이라는 끔찍한 죄악에 사용되는 것을 증오하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베네치아의 안녕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포탄의 정확도를 높이는 군사연구를 수행한 타르탈리아 같은 사람도 있었고, 네덜란드에서 망원경이 발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재빨리 이 새로운 장치의 군사적 장점을 간파한 뒤 베네치아 총독에게 자신이 직접 제작한 망원경을 비싼 값에 판 갈릴레오 같은 이도 있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의 시대를 앞서간 전쟁용 철갑마차(탱크)에 대한 구상도 밀라노의 군주 스포르차 공작의 후원을 얻기 위해 쓴 편지에서 처음 제시되었다. 요약하자면 전쟁과 관련 기술의 발전은 인류 역사에서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기술발전에서 전쟁관련 기술이 차지하는 부분은 대부분의 경우 주변적이기보다는 중심적이었다.

 

다소 서글픈 이러한 사실과 더불어 생각해 볼 점은 전쟁 관련 기술과 과학지식의 본격적인 결합이다.

 

망원경 발명해 군사용으로 한몫

 

19세기 이전까지 기술발전은 대체적으로 과학과 오직 부분적으로만 영향을 주고받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므로 항해술에서 천문학이 이용되거나 탄도학에서 수학이 응용되는 정도를 제외한다면 전쟁기술의 변화는 과학이론의 변화와는 비교적 독자적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과학과 기술은 19세기에 들어 화학공업과 전기공업의 발전을 계기로 긴밀하게 연관되기 시작하였고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은 서로 협력하며 좀더 적극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1차대전 초에 모즐리라는 당시 전도 유망하던 젊은 영국 과학자가 일반 보병으로 전투에 참가했다가 숨진 일을 계기로 영국 과학계는 자신들이 (일반인과는 달리) 과학과 연계된 군사기술 연구를 통해 훨씬 더 효과적으로 조국에 봉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게 된다. 이때까지도 반전주의는 소수 의견이었으며 과학자들도 다른 사람 못지않게 매우 애국적이었다. 이러한 추세는 영국만이 아니라 유럽 전체에 퍼졌으며 이 과정에서 전쟁의 양 당사자는 끔찍한 신무기를 경쟁적으로 전장에 도입한다.

 

전쟁기술이 얼마나 끔찍해질 수 있는지 1차대전의 경험은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준다. 1차대전중 개발된 탄환 중에는 적군 병사를 즉시 죽이지 않고 엄청난 고통을 느끼되 오래 살아남아 처절한 몸부림과 비명으로 동료병사들의 사기를 떨어뜨릴 수 있도록 특수제작된 것도 있었다. 독가스의 주된 목적도 직접적으로 적군을 순식간에 죽이기보다는 병사들의 공황상태를 유발하여 전투력을 떨어뜨리는 것이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사람을 죽이지 않고 발목만 선택적으로 날려버리는 지뢰, 파괴력보다는 폭발시 굉음에 초점을 맞춘 포탄 등이 개발되어 사용되었다. 이중에서도 기관총은 용감하게 적진으로 돌격하는 전통적인 전투자세를 ‘비겁하게’ 기어가는 자세로 순식간에 바꾸게 만든 공포의 신무기였다. 1차대전에서 사용된 전쟁기술이 얼마나 끔찍했는지를 우리는 그 후 등장한 ‘인도적인 무기’라는 다소 역설적인 개념을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인도적인 무기’ 등장의 역설

 

» 이상욱/한양대 교수·철학
일상생활에서 이런 끔찍한 무기들이 사용되지는 않지만 군사기술과 민간기술의 차이는 점점 희미해져가고 있다. 최근 사회적 논란의 중심에 있던 원자력 발전소의 핵심기술은 군사용으로 개발된 원자력 잠수함의 동력기술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고,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인터넷 기술은 핵전쟁에 대비한 미군의 대응전략 개발에서 큰 영향을 받았다. 또한 각종 감시기술과 제어기술처럼 기술의 속성상 군사적으로 개발된 내용이 약간의 변형을 거쳐 사회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높은 기술도 많다. 이처럼 전쟁과 관련된 기술발전은 부지불식간에 우리 생활 곳곳에 침투할 수 있다. 과학기술자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전쟁기술의 내용과 활용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처 : Freiheit in mir
글쓴이 : 김문정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