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그로 인해 손해보는 사람들 위해
먼저 복지제도부터 강화해야 '친기업' '사회통합' 이룰 수 있어
이명박 정부가 출범했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고, 추진력 있게 일을 해 나갈 수 있는 정부라는 기대도 크지만, 지난 석 달 동안 집권 준비과정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앞날에 대해 많은 우려를 자아내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우선 걱정되는 것은 대운하, 영어 몰입교육, 한미 FTA 등 굵직한 정책들을 추진하면서 제대로 된 토론과 의견수렴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이 세 가지 정책에 모두 반대하지만, 필자의 개인적인 찬반의 여부를 떠나서, 이런 정책들은 현정부 임기 5년뿐이 아니라 앞으로 50년, 100년 동안 우리나라의 운명에 영향을 줄 정책들이다. 그런 정책들을 추진하려면 3년, 4년을 써가면서라도 국민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집권자의 입장에서는 '일단 한 번 뽑아주었으면 믿고 맡겨야지'라고 서운해할지 모르지만, 민주주의가 진정한 의미를 지니려면 제대로 된 토론과 의견수렴이 있어야 한다. 선거라는 것은 그 성질상 몇 년에 한 번밖에 있을 수 없고, 또 정당들이 여러 가지 정책을 복합적으로 가지고 나오기 때문에, 어떤 정당이 다수당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특정한 사안에 있어서는 그 당의 입장이 소수파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 때문에 선거에서의 승리가 임기 동안 모든 일을 국민합의 없이 '밀어붙일' 권리를 주는 것으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따라서 통화정책 등 단기적인 정책의 경우는 일일이 국민의 의견을 물을 필요가 없지만,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그 여파가 수십 년, 수백 년을 갈 정책들을 추진할 경우에는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 추진 때 했던 것과 같은 '토론을 가장한 홍보'가 아니라) 진지한 토론을 통한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물론 토론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고, 따라서 그들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없이 그 정책을 집행한다면 그는 소수에 대한 다수의 탄압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회갈등이 심화되면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그 정책으로 이익을 보는 사람들에게도 좋지 않다. 반대로 피해자에 대한 보상이 잘 이루어지면 그 정책의 집행이 쉬워질 뿐만 아니라 사회가 안정되어 모두가 더 득을 볼 수 있다.
스웨덴, 핀란드 같은 나라들이 세금도 많이 걷고 규제도 많지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세계 5위 안에 드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 나라들은 고도의 개방경제다. 따라서 기업의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단기적 실직이 많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 나라들은 복지제도를 통해 교육, 의료를 포함해 기본 생활을 보장하고 제대로 된 실업보험과 재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실업에 대해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실직에 대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낮기 때문에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하기가 쉽고, 그래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가 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이명박 정부가 복지제도를 강화할 수 있다면 자신들이 내세웠던 '친기업'과 '사회통합'이라는 일견 상충되는 두 가지 목표를 이룰 수 있다. 단기적으로는 복지국가를 발전시키는 것이 기업들에 해로운 것 같이 보이지만, 그를 통해 기업의 구조조정을 쉽게 하고 노사갈등을 줄이면 기업의 투자의욕도 북돋울 수 있다.
억지소리 같이 들린다면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생각해보라. 비스마르크는 이름난 보수주의자였지만, 신생 통일국가인 독일을 통합하고 사회주의를 저지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복지국가를 세웠다. 만일 독일 사민당이 복지제도를 도입했다면 반대했을 사람들도, '비스마르크가 한다면 우리의 이익을 위해 하는 것이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기에 그에 동조했고, 따라서 역설적으로 당시 독일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이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제일 진보적인 복지국가 정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이다. 비스마르크가 이런 일을 하였기에 당시 세계에서 제일 강한 사회주의 세력을 가지고 있던 독일에서 자본주의 체제가 유지되었던 것이다. 무조건 기득권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이 진정한 '보수'다.
이명박 대통령이 비스마르크와 같은 안목을 가지고, '보수'를 위해서라도 '진보'를 하기를 바란다면 너무 지나친 기대일까?
조선 - 아침논단(08,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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