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세계/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시 모음)

[스크랩] 봄 - 이성부

ddolappa 2008. 7. 9. 06:08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 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봄>  -

 

 

 

*** 나비물 생각 ***


경칩인 줄 어찌 아는 걸까, 지구는? 태양은?

 

거짓말처럼 갑자기 따듯해졌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봄이 오고 있다.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를 다시 찾아 돌아오는 봄.


그렇게 돌아오는 봄처럼 돌아오는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출처 : 책 읽는 나비물
글쓴이 : 나비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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