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에도 너는 온다.
어디 뻘 밭 구석이거나
썩은 물웅덩이 같은 데를 기웃거리다가
한눈 좀 팔고, 싸움도 한 판 하고,
지쳐 나자빠져 있다가
다급한 사연 들고 달려간 바람이
흔들어 깨우면
눈부비며 너는 더디게 온다.
더디게 더디게 마침내 올 것이 온다.
너를 보면 눈부셔
일어나 맞이할 수가 없다.
입을 열어 외치지만 소리는 굳어
나는 아무것도 미리 알릴 수가 없다.
가까스로 두 팔을 벌려 껴안아 보는
너,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아.
- 이성부 <봄> -
*** 나비물 생각 ***
경칩인 줄 어찌 아는 걸까, 지구는? 태양은?
거짓말처럼 갑자기 따듯해졌다.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고, 시키지도 않았는데 봄이 오고 있다.
먼 데서 이기고 돌아오는 사람처럼
그렇게 나를 다시 찾아 돌아오는 봄.
그렇게 돌아오는 봄처럼 돌아오는 누군가를
기다려야 할 것 같은 시간들이 다가오고 있다.
출처 : 책 읽는 나비물
글쓴이 : 나비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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