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석제라는 이름을 알게 된 것은 1997년이던가, 98년이던가 제30회 한국일
보 문학상을 윤영수의 『착한 사람 문성현』과 공동 수상을 했다는 신문 기
사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정작 내 관심을 끈 것은 성석제가 아니라 늦은 나
이에 문단에 데뷔해서 상까지 받은 여류 소설가 윤영수였다. 그녀를 늘 마
음에 담고 있다가 새 소설집 『자린고비의 죽음을 애도함』이 나오자마자
바로 사서 읽었다. 그 뒤 윤영수의 작품은 나오지 않고 있다.
윤영수와 달리 성석제는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그 기사 이후로도
그의 이름은 퍽 자주 신문지상에 오르내렸고, 그의 글 솜씨를 칭찬하는 소
리를 많이 들었지만 그의 작품을 얼른 읽지 못했다. 이유는 나도 모르겠다.
아마도 남자 소설가를 그다지 믿지 않는 내 편견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봐야지, 언젠가 한 번은 읽어봐야 할 텐데, 마음만 먹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신문 서평에서 새 소설이라며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소개하는 글
을 읽고는 큰 맘 먹고 이 책을 샀다. 사고도 바로 읽지 않았다. 몇 달 동안
먼지를 뒤집어쓰게 두고 묵혔다. 왜였을까, 이 또한 제대로 설명할 재간은
없다.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자 쭉쭉 읽혔다. 어려운 문장이나 수사법 따
위는 몰라, 식으로 시원시원하게 뻗어 가는 그의 문장에 푹 빠져버렸다. 나
중에 가서는 이 재미있는 것을 왜 그렇게 망설이고 묵혔지, 생각하게 됐다.
<흥겨운 입심과 날렵한 필치, 정교한 구성으로 ‘성석제식 문체’를 일궈 가
는 중견소설가 성석제의 새 소설집>이라는 홍보 문구에 적극 동의하는 바
이다. 책 말미에 붙은 해설 글을 조금 옮겨 적는 것으로 내 감상을 대신하고
자 한다.
<성석제의 문체는 빠르다. 접속사 없이 단문들을 숨가쁘게 이어 만들어내
는 그 문체는 인과의 논리도 설명도 배제한다. 다만 보여줄 뿐인데, 그래서
더욱 빠르게 내달린다. 그 질주를 따라 바람이 인다. 그러면서도 성석제의
문체는 날카롭다. 표창 날과도 같은 날카로움이 그 속에는 번득이고 있어
표정을 몸짓을 미묘한 심리의 기미를, 그뿐인가 그것들을 에워싸고 있는 상
황의 전체를 놓치지 않는다. 찍어 올리는 듯하다. … 성석제는 빼어난 이야
기꾼이다. 그의 이야기에는 읽는 이의 호흡을 완전히 장악하는 힘이 들어
있다. 그 힘은 소재의 신기함, 부드럽고 매끄럽게 흘러 갑자기 목소리가 높
아지는 바람에 덜컹대거나 멈칫거리는 일은 찾아볼 수 없는 호흡 조절의 절
묘함, 경쾌하고 빠른 문체, 독자의 의식을 한순간 마비시키는 유쾌한 재치
의 연속 등이 만들어낸다. 성석제의 소설의 그런 힘에 장악 당한 독자는 재
미있는 이야기 한판 즐겼다는 기분에 흐뭇해하며 책장을 덮을 것이다. 그러
나 실상 그 독자는 성석제의 소설 안쪽으로는 한 발짝도 들이지 못하였다.
성석제의 소설은 단순히 재미있기만 한 이야기가 아니다. 대상의 심부를 꿰
뚫어보는 심안이 그 속에 빛나고 있어, 세계와 인간 삶의 진실을 열어 보인
다. …>
나도 이런 해설 글이 붙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런 날이 언젠가는 와
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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