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와 그의 사상/발터 벤야민

[스크랩] “바로크”와 알레고리 - 발터 벤야민의 언어이론

ddolappa 2016. 8. 30. 00:10

 

 

 

 

“바로크”와 알레고리 - 발터 벤야민의 언어이론

최 문 규(연세대)

 

 

 

I. 바로크와 현대

 

17-18세기의 예술 양식을 지칭하는 바로크(Barock) 개념은 본래 “과다한” “과장된” “기괴한” 같은 의미를 지닌다. 물론 바로크 예술 양식 자체가 어느 정도로 과다하고도 기괴한 모습을 띠고 있는지는 전혀 중요치 않다. 역사적 양식과 그 명칭 간의 적합성 여부를 떠나서 “바로크”라는 개념은 일종의 은유적 개념으로 사용될 수 있다. 요컨대 벤야민(1892-1940)이 경험했고 혹은 우리가 아직도 경험하고 있는 “현대”, 즉 희생의 역사, 상품의 범람, 기술적 매체의 출현 등 다양한 현상과 관련하여 기괴한 모습을 띠는 현대를 가리키는 은유로서 “바로크”라는 개념이 사용될 수 있다. 혹은 벤야민 연구의 최근 동향을 보면 우리가 존재하고 있는 현재의 “탈현대”(포스트모더니즘)라는 시기는 “바로크가 다시 도래하고 있는 시기”로 진단되기도 하는데, 이 경우 인식 주체의 소멸, 파편화, 불일치, 알레고리 같은 측면이 벤야민의 미학적 사유와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을 서로 연결해 주는 공통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로크”로서의 현대와 “바로크”로서의 탈현대는 서로 모순이 아닌가? 물론 가벼운 흥분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없지는 않지만, 그러나 “현대”와 “탈현대”를 어떻게 이해하고 관찰하는가에 따라서 그 양자는 모순 없이 자연스럽게 결합될 수 있으며 또한 “바로크”로 지칭될 수 있다.

 

벤야민이 비판하였던 “현대”는 계몽의 시대이며, 이 계몽의 시대는 역사철학적 시대라고 불릴 수도 있다. 그와 같은 역사철학적 계몽의 시대는 진보의 이념을 표방하면서 역사의 낙관적인 발전에 도취되어 왔지만, 그 발전은 사실상 수많은 희생을 대가로 얻어지는 “피러스(Pyrrhus)의 승리”와도 같다. 수많은 희생을 외면한 채 진보의 결과에만 몰두하는 역사철학적 계몽의 시대는 더욱이 그 진보 자체를 절대화하는 “신화”로 전락하고 마는데, 이런 점에서 벤야민이 파악한 “현대”는 아도르노/호르크하이머가 지적한 것처럼 “계몽의 변증법”을 걷는 현대이기도 하다. 이처럼 발전과 희생, 계몽과 신화의 동시성이 형성되는 “현대”의 역사를 조명하기 위해서는 앞으로만 진행하는 현대와 같은 방향에 서는 것이 아니라 - 벤야민이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요구하였듯이 - 그 “역사의 결을 반대 방향에서 솔질하는” 사유가 필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벤야민이 반대 방향에서 솔질하려 했던 시기는 다름 아닌 역사적인 바로크 시기였다. 그렇지만 그 “바로크”는 단지 역사적인 특정 시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금 “역사의 무한한 진보” 혹은 “세계의 탈주술화”를 꾀했던 현대 전체로 확장되는 것이다.

 

결국 “바로크”는 “현대”의 생성 및 발전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동시에 그에 대한 “(탈)현대적” 저항 방식으로서도 중요한 의미를 띠고 있다. 이 점과 관련하여 벤야민 연구가인 가르버는 더 이상의 논지가 불필요할 정도로 매우 설득력 있게 “현대의 근원”으로서의 “바로크” 개념을 설명해 주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바로크 시대가 사실 현대의 근원으로서 그 역할을 도맡고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타당성을 지닌다. 또한 예술적 형성물에서 흔히 제시되는 화해의 모습과 형상(이미지)은 언제나 다시금 파괴되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완성되지 않은 것, 고통으로 가득 찬 것, 역사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생산되고 있는 악몽 등이 현재에도 존속한다는 점, 이에 대한 증거로서 알레고리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는 사실도 새로운 타당성을 지닌다. 포스트모더니즘에서 벤야민을 끌어들인다는 것은 곧 바로크, 보들레르, 현대에 대한 벤야민의 이념을 끌어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청은 계몽, 이상주의, 역사에 대한 각양각색의 낙관주의, 의미 잠재력, 목적론적 기대감, 진보의 은유, 유토피아적 지평 같은 의무감에 대한 저항을 뜻한다. 또한 인식이론적으로 말하자면, 작품/장르/시대의 형상을 항구적으로 해체하는 작업을 외면한 채, 그리고 말하고 글쓰는 주체 내에서 그것을 새롭게 생산하고 재생산해 내는 작업을 외면한 채, 오로지 폐쇄적이고 통일적인, 조화로운 작품/장르/시대의 형상만을 고집하는 시각에 대한 저항을 뜻하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의 근원”으로서 바로크는 이중적이다. 그것은 한편으로 이데올로기(계몽, 낙관주의, 이상주의, 완결성, 폐쇄성, 통일성)가 생산된 근원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파괴하고 해체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미학적 범주로 표현하자면, 현대는 아름다움과 숭고함, 총체적 형상과 파편적 형상의 이중성으로 구성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현대에 대한 벤야민의 시각은 어떻게 수용되고 있는가? 벤야민을 수용하는 과정을 보면 90년대를 기점으로 일종의 “분위기 전환”이 일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즉 70-80년대의 경우 멜랑콜리와 혁명적 실천의식이 서로 결합된 벤야민의 정치적 모습이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거론되었다면, 9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론에서는 벤야민의 다른 모습이 자주 부각되고 있다. 전자의 경우 그 수용 방향이 주로 벤야민의 후기 글에 집중되었다면, 후자의 경우 벤야민의 초기 글이 적극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분위기 전환”을 정치적 맥락에서 탈정치적 맥락으로의 전환이라고 지칭해도 좋은 것일까? 70~80년대와 90년대의 벤야민 수용은 과연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 비판이론(Kritische Theorie)과 해체론(Dekonstruktion)을 서로 상이한 사상적 흐름으로 파악하는 이들에게는 그런 식의 독해 방식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이와 달리 비판이론과 해체론의 “유사성”을 생각하는 이들은 초기 벤야민과 후기 벤야민의 수용은 상이한 것이 아니라 같은 선상에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물론 초기 벤야민과 후기 벤야민은 분명 약간의 차이점을 갖고 있다. 예컨대, 철학적이며 신학적인 인식이론과 예술 이론의 성향이 초기에 강했다면, 후기 벤야민은 꿈과 유물론이 상호 결합하는 정신분석학적 맑스주의(혹은 맑스주의적 정신분석학)에 심취해 있었다. 만일 이러한 도식적인 구분이 타당할 경우, 70-80년대의 수용 경향 및 90년대의 벤야민 수용 경향과 관련하여 “정치적 맥락에서 탈정치적 맥락으로의 전환”이라는 논리가 유도될 수 있을 것이며 그러한 논리는 설득력을 얻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와 같은 도식적인 구분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물론 초기와 후기라는 구분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와 후기에 관계없이 벤야민의 글 전체를 관통하는 몇 가지 중요한 사유 모티브가 발견된다. 그것은 비평, 언어, 알레고리, 형세(Konstellation) 같은 개념들과 관련된 사유이며, 이러한 개념들은 박사학위 논문인 <독일 낭만주의에서의 예술 비평 개념>과 교수자격 취득논문으로 제출되었다가 거부당한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뿐만 아니라 후기의 단편적 글쓰기(특히 <아케이드-작업 Passagen-Werk>)까지 계속 이어지는 일종의 중추신경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에서 제시된 알레고리 수법과 의식은 후기까지도 지속하고 있는데, 형상(이미지)과 의미의 불일치로서의 알레고리는 “현대”와 관련하여 비판이론적인 동시에 해체론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또한 비평, 언어, 알레고리, 형세 같은 측면 이외에도 벤야민은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에서 “절대 군주가 역사를 대변한다”라는 식으로 절대 군주의 역사적 출현과 그 의미를 분석하고 있는데, 이때 그는 예외상태, 결단론 등을 강조한 법철학자 칼 슈미트의 “절대 주권”(Souver nit t) 이론에 의존하고 있으며 그 관계는 마지막 글인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에서도 지속하고 있다. 파시즘 체제 성립에 결정적인 이론적 틀로 작용하였던 슈미트의 이론에 벤야민이 의존되어 있다는 점은 매우 아이러니컬한 현상이 아닐 수 없으며, 더욱이 정치이론 차원에서 파시즘과 맑스주의가 서로 극단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벤야민과 슈미트의 사상적 관계는 사실 난해한 측면이기도 하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알레고리, 결단론적 사유에서 발견되는 파괴와 구성 같은 사유 모티브는 초기에서 후기까지 끊임없이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동시대의 보수적인 학문 풍토에서 수용되지 못했지만 뒤늦게 그 가치와 의미가 인정된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1927)은 사실 벤야민의 독창적 인식의 뿌리가 내려 있는 매우 중요한 글이다. 그 글은 역사적인 바로크 시대의 문학과 예술을 새롭게 인식하려는 시도이지만, 사실은 30년 전쟁을 겪은 역사적인 바로크 시대와 1차 세계 대전 이후 벤야민의 동시대 간의 시대적 유사성이 저변에 깔려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바로크”는 포괄적인 “현대” 자체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바로크로서의 현대를 고찰하려는 벤야민의 글쓰기 작업은 아방가르드적 혁신성을 지닌다. 즉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의 “인식비판적 서문”에 제시되어 있는 것처럼, 벤야민의 글쓰기 작업은 종래의 철학적이고도 문학학적 “체계”와는 완전히 다른 방식을 취하고 있다. 역사주의적, 실증주의적, 문헌학적 방법론에서 출발하는 종래의 글쓰기 방식이 소위 느슨하고 일관된 체계화만을 추구함으로써 소위 “역사적으로 평탄하게 다지는 작업”에 고착되어 있다면, 이에 대항하여 벤야민은 “모자이크식” 글쓰기, 즉 아방가르드적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런 연유에서 벤야민은 때로는 아리스토텔레스와 플라톤 전통으로 소급하며, 때로는 셸러, 코엔, 크로체, 로젠츠바이크, 니체 같은 동시대의 철학적(신칸트주의), 역사적 연구와 대면하기도 하며, 혹은 아이쉴로스로 소급하다가 스트린드베리의 표현주의 연극으로 다시 내려오기도 하며, 혹은 르네상스 시대와 고전주의를 비판하기도 하며, 또는 셰익스피어, 칼데론, 낭만주의 문학을 지시하는 등 다양한 글쓰기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바로크에서 엿볼 수 있는 알레고리의 특징이 “파편성”이라면 벤야민의 글쓰기 자체가 “파편성” 혹은 알레고리적 특성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벤야민의 글쓰기 방식은, 초기낭만주의자인 슐레겔이 사용한 표현처럼, “화학적” 글쓰기 방식에 가까우며, 혹은 [초현실주의]에서 벤야민이 직접 표현했듯이 “다양한 방향으로의 활동성”이 표출된 방식이라고 명명될 수도 있다. 이 밖에도 벤야민은 수많은 “인용” 방식을 취하고 있는데, “텍스트를 인용한다는 것은 그 연관성을 중지시키는 것을 포함하고 있다”고 밝힌 벤야민의 사유를 고려한다면 바로크 연구에서 엿보이는 인용 방식은 바로크라는 시대적 맥락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맥락(즉 “현대” 전반)을 만들어 나가는 알레고리임을 알 수 있다. 혹은 바로크 시대의 알레고리에 대한 연구는 현대에 대한 알레고리, 즉 “알레고리의 알레고리”(Allegorie der Allegorie)이라고 명명될 수 있는 것이다.

 

 

Ⅱ. 이념, 인식, 언어의 관계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은 그 첫 부분부터 독서의 어려움을 불러일으킨다. 우선 “인식비판적 서문”에서 시도되고 있는 다양한 개념 정의와 그 상관관계를 들 수 있다. 여기서 그 모든 개념들의 의미를 재분석할 수는 없으며 단지 진리, 이념, 인식에만 집중해 보기로 하자. 벤야민은 “다양성”이라는 특성으로 이념과 진리를 거의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데, 구체적으로 말하면 다양한 이념들이 “진리”를 구성하게 된다.

 

“각각의 이념은 하나의 햇살이며 마치 많은 햇살들이 서로 관계를 맺듯이 각각의 이념은 비슷한 종류의 이념들과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한 본체들의 울림 관계가 진리이다.”

 

“햇살들”이라는 복수적인 표현에서 암시되고 있듯이, 이념은 결코 플라톤 철학에서처럼 “하나의” 이념으로 절대화되지 않고 다양한 이념들로, 즉 단자론적으로 분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한 이념들이 서로 관계를 맺을 때, 즉 “형세”(Konstellation)를 형성할 때 비로소 진리는 싹트게 되며, 그런 의미에서 벤야민은 “이념들은 영원한 형세”라고 밝힌다. 이념과 진리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진리와 인식의 관계는 완전히 다르다.

 

“인식 대상이란 주로 개념의 의도로 규정된 것이며, 이러한 인식 대상은 진리가 아니다. 진리란 이념들로 형성된 의도 없는 존재이다. 따라서 진리에 합당한 태도는 인식하는 사유가 아니라 진리 속으로 들어가서 사라지는 것이다. 진리는 의도의 죽음이다.”

 

이 대목은 인식 대상과 인식 주체라는 전통적인 이분법적 사유를 비판한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일종의 주체의 죽음을 선언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즉 자신의 관점이나 의도에서 대상을 인식하려는 주체 중심의 사유가 전통적인 철학에 내재해 있다면, 그러한 철학적 사유에 대해 벤야민은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주체의 인식 혹은 “의도”를 지닌 인식이란 항상 “소유”(Haben)와 관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식이란 일종의 소유이다. 인식 대상은 의식 속에서 - 예컨대 선험적으로 - 소유되어야만 하는 과정을 통해 인식 대상 자체로 규정된다. 대상에는 소유물의 특성이 주어진다.” 대상을 인식한다는 것은 대상을 소유하는 것과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대상은 항상 인식 주체에 의해서 억압되기 마련이다.

 

이와 달리 “의도의 죽음”으로서의 진리는 일종의 “존재” 특성을 지니는데, 즉 진리의 경우 소유하려는 주체와 소유되는 대상 간의 구분이 존재하지 않으며 더욱이 주체까지도 “사라지는” 것이다. “의도의 죽음”, 요컨대 인식 주체의 개념적 사유와 결별하고 “존재”로서의 “진리” 자체를 회복하려는 시도는 벤야민과 아도르노에게 공통적인 출발점이었으며, 이러한 측면은 대상(혹은 기호)에 대해 주인 행세를 하는 인식 주체의 죽음을 선언하는 포스트모더니즘 및 해체론과도 연결되는 중요한 단초로 작용한다. 유럽의 전통적인 합리주의 철학들이 일반적으로 인식 주체의 절대성에서 출발하고 있다면, 이러한 인식 주체의 중심에 대항하는 벤야민의 모습은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뿐만 아니라 {독일 낭만주의에서의 예술 비평 개념}에서도 이미 제시된 바 있다. 독일 초기낭만주의의 “성찰”(Reflexion) 개념을 탈주체론적인 차원에서 해석하고 있는 그 학위논문에서 벤야민은 가령 피히테는 의식적인 성찰을 통해 “근원의 규정, 근원의 존재”를 마련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독일 초기낭만주의자인 슐레겔과 노발리스의 경우 그와 같은 “존재론적 규정이 누락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요컨대, 피히테의 경우 성찰은 오로지 지적 관조를 지닌 절대적 자아의 능력 속에 자리매김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대상에 대한 자아의 성찰을 뜻한다면, 초기낭만주의의 성찰 개념은 “자신의 형식을 만들어 내는 사유”를 뜻한다. 성찰이 구체적인 대상에 대한 주체의 성찰이 아니라 사유 자체에 대한 성찰로서 파악됨으로써 결국 사유, 사유의 사유, 사유의 사유의 사유 같은 무한한 가능성이 열린다. 이러한 성찰 개념이 예술과 관계를 맺을 경우 예술 이념의 절대성을 향한 과정 속에서 “성찰의 주체는 근본적으로 예술적 형상물”, 즉 개별 예술작품 자체이다. 따라서 작품의 형식이란 “그 작품에 고유한 성찰”이 객관적으로 표현된 것이며, 예술의 전체 과정에서 보면 모든 개별작품들의 전개는 다름 아닌 형식, 형식의 형식, 형식의 형식의 형식 같은 무한한 성찰 과정으로 전이되는 것이다. 이처럼 초기낭만주의의 예술 이론에서 작동하는 성찰 개념을 “자아로부터 자유로운 사유”로 파악함으로써 벤야민은 이미 객체로서의 대상을 자기중심적으로 점유하는 주체 철학의 맥락에서 벗어나고 있었으며 또한 해체론과의 유사성까지도 내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형식으로서의 성찰의 무한한 전개 과정이 기호학적 차원으로 전이될 경우 기호, 기호의 기호, 기호의 기호의 기호 같은 자기준거성이 형성되며, 이러한 사유는 곧 해체론적 사유의 기본틀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식과 의도를 지닌 주체를 배제하고 “존재”로서의 진리에 접근할 때 글쓰기는 어떤 매개적 특성을 지니는 것일까? 그 매개적 특성은 이데올로기적 내용에 있는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글쓰기의 새로운 형식에서 찾을 수 있는데, 예컨대 “철학적 비평”(Kritik), 에세이(Essay), 소논문(Traktatus) 같은 형식이 그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그와 같은 형식은 다름 아닌 독일 초기낭만주의가 내세운 형식이라는 것이며, 벤야민은 그러한 글쓰기의 새로운 형식을 통해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다. 벤야민에 의하면, 글쓰기의 새로운 형식으로서 “철학적 비평”은 “의미 있는 작품의 근본을 이루는 역사적 실상내용을 철학적인 진리내용으로 만드는 것이 바로 예술형식의 기능임을 입증하는”에 그 초점을 둔다.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에서 제시된 “실상내용”과 “진리내용”의 구분은 벤야민이 [괴테의 친화력]에서 시도했던 “비평”과 “주석”의 구분과도 연결되며, 또한 “철학적 비평” 이외에도 벤야민은 후에 에세이 형식과 단편적 형식의 글쓰기를 통해 실상과 진리의 결합을 추구했던 것이다.

 

탈주체적인 차원에서 진리에 접근하는 방식은 언어의 문제와도 연결된다. 그것은 “이념은 언어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식이 주로 언어를 “전달”의 수단으로 삼는다면 진리나 이념은 “전달”이 아닌 언어적 “서술”(Darstellung)을 토대로 삼는데, 그것은 진리란 “의도의 죽음”이며 또한 “스스로 서술하는 이념 영역”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전달”과 “서술”의 대립은 중요한 역사적인 배경을 지닌다. 18세기 루소와 함께 시작된 자연과 문명의 대립은 언어에도 전이되어 자연적 언어와 사회적(이성적) 언어의 대립으로 발전하며, 또한 그러한 대립은 문학과 예술 영역으로 전이되면서 “서술”과 “전달”이라는 또 다른 형태의 대립을 낳는다. 당시 “서술”과 “전달”의 대립은 독일 초기낭만주의 문학이론에서도 핵심적이었으며, 가령 슐레겔은 “서술”과 “전달”을 통해 운문(Poesie)과 산문(Prosa), 문학과 철학의 차이까지도 설명한 바 있다. 괴테 또한 엑커만과의 대화에서 “특별한 것을 포착하고 서술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본래의 삶”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초기낭만주의 문학 이론의 경우 “서술” 개념은 “불특정성” “무한성” 같은 특성까지도 지니게 된다. 따라서 “독일 낭만주의에서의 예술 비평 개념”이라는 테마로 박사학위 논문을 썼던 벤야민이 “서술” 개념의 의미를 지각하고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충분히 짐작되는 일이다. 물론 초기낭만주의와의 연관성 이외에도 존재로서의 진리와 이념이 “스스로 서술하는” 특성을 지닌다는 점은 신학적 사유와 연결된 벤야민의 독특한 언어철학을 통해서도 설명된다. 예컨대 [언어 자체에 관하여, 그리고 인간의 언어에 관하여]라는 글에서 벤야민은 언어는 최초에 사물과의 완전한 동일성 내지는 보편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인간적 언어”, 즉 “인식언어”가 나타남으로써 언어는 본래의 특성을 상실하고 만다고 밝히고 있다. 즉 더 이상 서술의 언어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전달하려는 “인간적 언어”가 발생함으로써 소위 “언어 정신의 타락”이 나타나는 것이다. “의도”를 지닌 주체가 비판되었듯이,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의 마지막 부분에서도 “선과 악에 대한 지식”에 기초한 언어의 발생이 비판되고 있는데, 이처럼 인식에 대한 비판은 결국 전달로서의 도구적 언어에 대한 비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Ⅲ. 자연과 역사로서의 알레고리

 

의도의 죽음으로서의 진리, 주체의 의도를 철저히 언어적 서술, 역사적 실상 내용을 철학적 진리내용으로 옮기는 글쓰기, 이것이 벤야민이 바로크 연구에 앞서 설정한 새로운 인식론적 전제조건인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벤야민은 역사적인 바로크 비극을 현상적으로 관찰하면서 다양한 관점 하에 그 특징을 제시하고 있다. 우선 벤야민은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 및 르네상스의 인본주의적 시각에서 바로크를 해석하는 데 반기를 들고 있으며, 이런 점에서 벤야민은 반고전주의적 미학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적절한 우리말 번역이 불가능하기에 “비극”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지만 사실 “바로크 비극”(Trauerspiel)은 전통적인 아리스토텔레스의 “비극”(Trag die)을 지칭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전통적인 비극과 벤야민이 해석하고 있는 바로크 비극 간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비극의 특징으로 삼았던 “포보스”(Phobos)와 “엘레오스”(Eleos), 즉 공포와 연민이 바로크 비극에는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 데 있다. 또한 전통적인 비극의 경우 역사 이전의 “신화”가 다루어진다면, 바로크 비극에서는 “역사”가 중심이 된다. 요컨대, 바로크 비극에서는 전통적인 비극처럼 “신화적 영웅”의 죽음이 중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물들의 죽음, 그것도 역사와 연결된 죽음이 중시된다. 벤야민은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에 앞서 비극에 관한 글들을 쓴 바 있으며, 그 글에서도 두 형태의 비극은 확연히 구분되고 있다. 전통적인 비극의 경우 영웅은 자신의 죄에 대한 벌로서 죽음을 맞이하며 이 때 영웅의 죽음은 거대한 초개인적인 힘에 의해 이미 결정되어 있는 죽음이다. 즉 전통적인 비극에서 영웅의 죽음은 “아이러니컬한 불멸성”을 획득하는데, 그것은 영웅이 신과 운명에 항거하지만 결국 “죽음”을 통해 다시금 신과 운명의 힘에 복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로크 비극의 경우 인물의 죽음은 신의 세계로 복귀하는 “완결성이 아니며, 더욱 숭고한 삶에 대한 확신도 없으며, 아이러니도 없는” 죽음 자체인 것이다. 이 밖에도 드라마의 형식적 측면에서 보면, 전통적인 비극은 “모두 폐쇄적인 형식”을 갖고 있다면 바로크 비극은 “그 자체 폐쇄적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벤야민은 현재의 드라마 전문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닫힘과 열림, 폐쇄극과 개방극 같은 개념을 이미 선취하고 있다. 또한 전통적인 비극은 “인간들 사이의 구두 언어의 법칙성에 기인한다면”, 바로크 “비극”은 다름 아닌 “말(혹은 소리)과 의미의 양 축”을 지니며 이러한 측면은 알레고리의 중요한 특징인 기표와 기의의 차이 혹은 괴리와 연결된다.

 

고대 비극의 경우 특정 영웅의 죽음이 중심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바로크 비극의 경우 인물들의 다양한 죽음, 즉 “형세”로서의 죽음이 나타난다. 그 “죽음”은 결코 이상화되지 않으며 또한 도덕적인 차원에서 아름답게 변용되지도 않는다. 바로크 비극에서는 “운명도 죽음을 향해 굴러가고 있는” 것이다.

 

“바로크 비극의 인물들은 죽는다. 그것은 반드시 시체로서만 그들은 알레고리의 고향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불멸성을 위해서가 아니라 시체 자체 때문에 그들은 파멸하는 것이다. (...) 17세기 바로크 비극에서 시체는 최고의 엠블렘적 소도구였다.”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이나 기독교적 도덕 전통의 경우 죽음이나 시체는 불멸로 나아가기 위한 전단계로서 미화되거나 혹은 아름답게 변용되지만, 벤야민에 의하면 바로크 비극의 경우 죽음, 시체, 몰락 같은 생물체의 자연특성은 더 이상의 아름다운 변용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그 자체로 남는다. “거기서(해골들이 쌓여 있는 무덤의 황량한 모습에서: 역주) 허무함은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이 아니라 (...) 알레고리 자체로 제시되고 있다.” 그런데 더욱 중요한 점은 죽음, 시체 같은 형상을 담은 엠블렘(Emblem)을 통해 표출된, 즉 알레고리화된 육체로 표현된 허무함(Vanitas)은 단순히 삶과 인생의 공허함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름 아닌 “역사” 혹은 “현세”(Immanenz)를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적인 삶이 (...) 바로크 비극의 본질적 내용이며 진실한 대상”으로 간주되고, 이 점이 “역사” 의식을 배제한 채 문체 연구에만 초점을 맞추었던 종래의 경향과 완전히 다른 차원에서 바로크에 접근하였던 벤야민의 독창적인 시각이기도 하다. 이상적인 자연이 아니라 일그러지고 몰락한 생물체의 자연적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그러한 죽음, 시체 같은 육체의 몰락한 자연 상태는 숭고한 역사의 목표와 이념을 향해 나가도록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파괴된 역사 자체의 진리내용에 대한 알레고리로 작용하는 것이다. 즉 바로크 비극에서는 자연과 역사가 결코 대립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물체의 상태 속에 역사적인 것이 여지없이 세속화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무대 위에서 바로크 비극에 의해 제시된 자연-역사의 알레고리적 외양은 실제로 파괴된 잔해물로 현존한다. 그러한 알레고리적 외양과 함께 역사가 감각적으로 무대로 옮겨진 것이다. 더욱이 역사는 영원한 삶의 발전 과정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지속적인 파멸 과정으로서 각인되어 표현되고 있다. 결국 알레고리는 아름다움과는 다른 차원에서 표출되고 있는 것이다. 파괴된 잔해물이 사물의 영역에 있다면 알레고리는 사유의 영역에 있다.”

 

여기서 파괴된 자연의 모습은 파괴된 역사를 가리키며, 그러한 역사는 다음 아닌 발전이 아니라 수많은 희생을 낳고 있는 현대의 역사와 연결되는 것이다.

 

아름답게 변용된 삶이나 자연에 대한 아름다운 예술적 가상이 아니라 죽음, 시체 같은 인간 육체의 파괴된 허무적인 자연 모습이 곧 잔인한 역사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다는 점, 혹은 “역사가 자연으로 방향을 전환하고 있다”는 점, 이것이 바로크 문화와 예술을 분석하는 벤야민의 핵심 관점이다. “그 자연은 몰락한 자연이며, 거기에는 역사 과정의 형상이 각인되어 있다” 이 점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벤야민은 상징과 알레고리의 대립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상징과 알레고리의 대립은 “아름다움”과 “숭고함”의 대립으로 설명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상징과 알레고리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것은 다음과 같은 대목을 통해 파악될 수 있다.

 

“조형적인 상징, 유기체적 총체성의 형상인 예술상징에 강력하게 대립하는 것으로서 다름 아닌 무형적 파편 조각을 떠올릴 수 있다. 알레고리적 글의 형상은 그러한 무형적인 파편 조각으로 나타난다. 지금까지 누구나 그 고전주의와의 대립을 낭만주의에서만 찾아내려 했지만, 알레고리적 글의 파편 형상을 통해서 바로크도 고전주의와 현격하게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 알레고리적 직관 영역에서 형상은 파편 조각, 폐허의 잔재이다. (...) 총체성이라는 거짓된 가상은 사라진다. 그것은 본질이 사라지고 비유가 들어서기 때문이며 또한 그 안에서 우주가 시들고 있기 때문이다. (...) 부자유, 미완성, 감성적이고 아름다운 육체의 파괴 등을 고전주의는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본질적으로 거부하고 있었다. 그 화려한 모습에 가려져 있지만, 이전에 예견되지 않았던 강조를 통해 바로크의 알레고리는 그 점을 내보이고 있다.”

 

“파멸과 함께, 오로지 그 파멸과 함께 역사적인 사건이 수축되어 무대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한 몰락한 사물이라는 포괄적인 개념은 초기 르네상스가 포착하려 했던 변용된 자연이라는 개념과 극단적으로 대립한다.”

 

상징과 알레고리의 차이에 대한 벤야민의 분석을 자세히 살펴보자. 상징은 “조형성”과 “유기체적 총체성”을 지니며, 그러한 상징의 예로는 자유, 완성, 아름다운 육체의 미를 보여주는 고대의 조각상이나 초기 르네상스 및 고전주의 작품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 상징 작품의 특징은 “변용된 자연”, 즉 아름답게 승화된 자연을 제시하는 데 있다. 이와 달리 낭만주의, 바로크 시기의 알레고리적 형상물들은 “무형적인 파편 조각”의 모습을 띠며 부자유, 미완성, 아름다운 육체의 파괴 같은 특징을 띤다. 알레고리는 “파괴의 잔해 속에 침잠되어 있는 것”, “파편 조각” 자체로 남으면서 상징의 “변용된 자연”과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알레고리를 구사하는 시인들은 세계의 윤리적 의미가 상실되고 있고 또한 역사가 발전이 아니라 몰락의 길을 걷고 있음을 인지한 멜랑콜리한 현대인들이며, 이들은 알레고리적 서술을 통해 다름 아닌 역사에 대한 “슬픔의 이론”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상징과 알레고리의 대립은 다음과 같은 대목에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상징에서는 몰락의 변용과 함께 자연의 변용된 모습이 구원의 불빛 속에 일순간 계시되지만, 알레고리의 경우 죽음에 임한 역사의 얼굴이 경직된 근원 풍경으로서 관찰자의 눈앞에 놓이게 된다. 역사가 처음부터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것, 고통으로 가득 찬 것, 놓치고 만 것을 간직하고 있는 모든 것 속에서 역사는 하나의 얼굴, 요컨대 죽은 자의 머리에 각인되어 있는 것이다.”

 

“변용된 자연”을 추구하는 상징에 대한 벤야민의 비판은 역사에 대한 비판이며, 더욱이 낙관적이고도 희망적인 역사 이데올로기에 대한 비판이다. 따라서 상징과 알레고리, 초기 르네상스(혹은 고전주의)와 바로크 시기,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대립은 특정 역사적 시기에서의 예술 양식의 대립을 넘어서 역사관 자체의 대립으로 확장되는데, 이러한 형태의 대립은 곧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한다는 낙관주의적 이념과 다른 한편 역사란 “파국” 혹은 “몰락”의 과정을 걷고 있다는 비관적 의식 간의 대립인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와 같은 상징과 알레고리의 대립은 맑스주의 자체 내의 상이한 미학적 시각과도 연결된다는 것이며, 예컨대 고전주의 및 헤겔 전통에 서 있던 루카치와 블로흐가 비교적 “유기체적 특성”과 “변용된 자연”을 중시하는 상징 전통에 의존해 있었다면 바로크 및 낭만주의에서 출발하는 벤야민, 브레히트, 아도르노는 반유기체적이고도 파편적인 특성을 강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한 입장의 차이는 동시대의 새로운 예술 현상(표현주의 및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상이한 반응에서도 표출된다. 가령 루카치는 표현주의 및 아방가르드 미학을 가차 없이 비판하고 있다면,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유기체적인 아름다운 가상”을 거부하는 아방가르드 미학을 수용 - 물론 벤야민과 아도르노는 각기 수용의 강도를 달리했지만 - 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파국”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현대 역사를 비판하였던 것이다.

 

물론 바로크 비극과 알레고리에 대한 벤야민의 분석에는 신학적 측면이 담겨 있다. 벤야민에 의하면, 알레고리를 구사하던 바로크 작가들은 세계 혹은 역사 전체의 진행을 “수난사”로 파악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수난사에 직면하여 그들의 주관성은 “악의 공허한 심연” 내지는 “깊은 심연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드는 위험을 지니게 된다. 벤야민은 근본적으로 바로크 시대나 후에 보들레르에서 다시 나타나고 있는 알레고리의 “숭고함”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었지만 그러한 알레고리가 자칫 “엄청난 반예술적 주관성”에 빠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계몽으로서의 현대란 다름 아닌 주체의 역사 혹은 “주관성”의 역사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여기서도 벤야민이 염두에 두고 있던 시기는 단순히 바로크 자체가 아니라 현대 전체임을 다시 한 번 읽어낼 수 있다. 그렇다면, 알레고리에 내재해 있는 주관성 내지는 “자의성”은 어떻게 극복되는 것일까? 이러한 질문과 관련하여 벤야민은 알레고리를 구사하던 바로크 작가들의 주관적인 의도는 궁극적으로 역사 전체의 구원 같은 신학적인 틀 내에서 작동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부활의 알레고리로서. 특히 바로크의 죽음의 회화에서는 (...) 알레고리적 관찰이 급격하게 변한다. (...) 알레고리적 작가는 신의 세계 속에 깨어 있다.”

 

즉 알레고리를 구사하던 바로크 작가들은 궁극적으로 “구원” 내지는 “기적”이 보장된 틀 내에 거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파편성을 통해 새로운 구원을 기다리는 의식, 즉 주관적 니힐리즘과 구원이 서로 결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크 비극의 알레고리적 구성에는 구원된 예술작품의 파편 조각 같은 형태가 본래 명확히 제시되어 있다.” 그렇다고 해서 알레고리적 서술을 통해 암시되는 구원이 상징의 그것과 동일시될 수는 없다. 그 구원은 매우 애처롭게 암시될 뿐이며 후에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에서 벤야민 스스로가 제시한 것과도 상통한다. 그 글에서 벤야민은 역사의 낙관적 진보를 비판하기 위해 파울 클레의 그림 [새로운 천사]를 인용하면서 나름대로 구원의 알레고리를 제시하는데, 그 새로운 천사는 르네상스 시대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천사의 모습이 아니라 역사의 폐허 속에서 애처로운 모습을 띠고 있을 뿐이다.

 

 

Ⅳ.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로서의 알레고리

 

흔히 벤야민 연구에서는 바로크 알레고리와 현대적 알레고리가 구분되고 있다. 그러한 구분은 초기 벤야민과 후기 벤야민이라는 구분의 연속선상에서 제시되고 있는데, 예컨대 바로크 알레고리에 대한 분석에는 멜랑콜리와 신학적 구원이 지배적이라면 현대적 알레고리 경우 자본주의적 대도시와 상품 사회를 예리하게 비판하는 정치적 의식이 우세하다는 것이다. 신학적 사유로부터 강도 높은 정치적 실천성으로의 전환이라는 구분에서 항상 중시되는 측면은 “정치적 의식”이며, 이를 통해 초기 벤야민보다는 후기 벤야민이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정치적 의식”의 존재여부가 벤야민 해석의 결정적인 논점으로 작용할 경우, 더욱이 바로크 알레고리와 현대적 알레고리를 구분하는 중요한 계기로 작용할 경우, 그러한 시각은 벤야민의 시각뿐만 아니라 벤야민 시각에 내재해 있는 잠재력까지도 축소시키고 마는 결과를 낳게 된다. 정치적 의식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바로크로서의 현대 전체를 분석하는 가운데 벤야민이 중시했던 알레고리의 핵심은 “지각의 예외상태”를 통해 “지각의 자동화”에 제동을 걸 수 있는 잠재력에 있으며, 이 때 그 잠재력은 정치적 의식뿐만 아니라 기호, 언어, 글의 운동과도 연결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떤 측면에서 그것이 가능한 것일까?

 

<독일 바로크 비극의 기원>에서 벤야민은 죽음, 시체, 허무 같은 생명체의 자연적 몰락 상태의 알레고리적 서술이 사실은 “역사”와 관계한다는 분석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러한 분석의 이면에는 매우 중요한 언어학적, 기호학적, 미학적 사유가 놓여 있다. 그것은 알레고리의 구조가 “형상적 존재와 의미 사이의 심연”으로 정의되고 있는 대목에서뿐만 아니라 알레고리의 구조적 특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는 대목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즉 알레고리를 구사하는 작가: 역주)의 손에서 사물은 다른 어떤 것이 되며, 이를 통해 그는 어떤 다른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가 사물을 엠블렘으로서 경외시할 때 그 사물은 그에게 은닉된 지식 영역의 열쇠가 된다. 이것이 곧 알레고리가 지닌 글의 특성인 것이다.”

 

표현된 사물이 알레고리를 구사하는 작가의 손을 거치면서 “다른 것”으로 된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다른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 이러한 과정은 좁게는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 넓게는 텍스트와 의미의 불일치를 뜻한다. 일반적으로 바로크 시대의 알레고리는 그림과 간단한 텍스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러한 형상(텍스트와 그림)은 특정한 의미를 단순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의미”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즉 생명체의 자연적인 몰락 상태 같은 형상이 “역사”라는 다른 의미를 향하고 있는 까닭은 그 알레고리적 형상이 새로운 글읽기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찾도록 하는 “글의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인 것이다. 이러한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를 근본으로 하는 알레고리는 다름 아닌 “모든 전달과 내적으로 단절된 상태로서 언어 자체에 구성적으로 속해 있는 간극”이라고 부연될 수도 있다. 그와 같은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 내지는 간극으로서의 알레고리는 “현대의 알레고리 작가”인 보들레르에게서도 지속하며, 벤야민은 보들레르가 구사하는 알레고리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사물을 그것의 일반적인 연관성에서부터 떼어놓는 것 - 물론 이것은 상품이 진열되는 단계에서 자연스러운 일인데 - 이 보들레르의 매우 독특한 방식이다. 그것은 알레고리적 의도에 내재해 있는 유기체적 연관성의 파괴 방식과 연관되어 있다.”

 

알레고리로 표현된 사물이 그 사물의 본래 “연관성”을 파괴하고 다른 맥락으로 전이됨으로써 “다른 의미”를 획득하게 된다는 점은 이미 바로크 알레고리 연구에서도 제시된 특성이며 보들레르에게서도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크와 마찬가지로 보들레르 문학에서도 상품, 대도시, 에로틱한 여인 같은 형상적 서술은 단순히 자본주의적 삶에의 탐닉을 옹호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 사회에 대한 비판, 예술의 의미, 좌절된 혁명의 슬픔 같은 다양한 의미를 향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보들레르 문학과 관련하여 벤야민은 다음과 같은 분석을 제시한다. “알레고리로 일그러진 상품 세계의 모습은 바로 상품 세계의 기만적 변용에 대항한다. 상품은 자신의 얼굴을 보려고 한다. 창녀를 통해 상품은 자신의 인간화된 모습을 내보인다.” 또한 대도시에서 개최되는 “박람회는 상품 숭배를 위한 순례지”와도 같으며 그와 같은 박람회를 통해 유행이 조성되는데, 이 때 “유행은 상품 숭배가 성스럽게 치루어지는 예식을 지시한다.” 사실 보들레르의 알레고리적 서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기서도 “죽음”의 이미지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보들레르가 현대성의 특징으로 언급했던 “유행”이 사실은 그 모든 척도를 “죽음”에 두고 있기 때문인데, 요컨대 새로운 것의 유행은 낡은 것을 사라지게(죽음) 만들지만 동시에 그 새로운 것 자체도 곧 낡은 것으로 되고 마는, 즉 사라지게(죽음) 되는 운명을 갖고 있다. 그리고 상품과 유행의 형상을 통해 표출된 죽음의 이미지는 곧 역사의 모습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크 비극에서 팽배했지만 이후 “계몽”과 역사의 발전 이데올로기에 의해 점차 밀려났던 알레고리적 서술이 유일하게 보들레르 문학을 통해 다시 나타나고 있을 때, 바로크 문학에서 읽혀진 죽음과 역사의 변증법적 관계는 보들레르 문학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이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바로크 알레고리는 시체를 밖에서 본다. 보들레르는 그것을 안에서 보고 있다”라는 식의 외면과 내면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바로크 시대나 보들레르 문학을 통해서 벤야민이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로서의 알레고리를 읽어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곧 해석(글읽기)의 다양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이 점은 벤야민의 분석 작업과도 연관되는데, 즉 바로크 시대의 알레고리적 서술을 통해 역사를 읽어 내거나 혹은 보들레르의 알레고리적 서술을 통해 물신 숭배의 이데올로기 비판을 읽어내고 있는 벤야민의 해석은 “다양한” 글읽기 방식 가운데 한 가지 유형의 글읽기에 불과한 것이다. 벤야민의 해석이 절대적일 수 없는 까닭은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라는 알레고리 자체의 특성에 근거하는데, 즉 그러한 불일치는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벤야민의 글 자체에도 적용된다는 것이며, 가령 알레고리적 서술로서의 보들레르 문학을 “해석하는 차원”에서 벤야민 자신도 알레고리적 서술을 취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벤야민의 글은 다양한 맥락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읽혀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알레고리가 기존 연관성을 파괴하면서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를 꾀한다면 넓은 의미에서 “인용”의 기법도 사실 알레고리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텍스트를 인용한다는 것은 그 연관성을 중지시키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이며 또는 “인용”이란 “각각의 역사적 대상이 그 연관성에서 분리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알레고리와 인용 기법 사이의 유사성이 형성될 때, 벤야민이 인용한 수많은 텍스트 구절들은 새로운 맥락에서 다양하게 해석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알레고리인 것이다.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를 기본으로 하는 “알레고리”는 벤야민의 미학적 시각을 새로운 맥락에서 활성화시킬 수 있는 기폭제 역할을 한다. 물론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로 인해 알레고리는 한편으로 독자를 “불확실성”의 늪으로 유인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알레고리는 “언어가 지닌 글의 특성을 구원해 낸다.” 예컨대 보들레르뿐만 아니라 벤야민도 자주 제시했던 대도시의 삶, 사건, 사물 등에 관한 알레고리적 서술은 단순한 묘사나 전달로 남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인 집단적인 기억을 읽어내는 “글”의 특성을 지니며, 또한 “언어는 육체를 갖고 있고 육체는 언어를 갖고 있다”는 벤야민의 언급처럼 “언어”와 “육체” 사이의 유사성을 매개하는 특성도 다름 아닌 알레고리에 내재해 있는 것이다.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로서의 알레고리적 서술이 “글”의 특성을 간직할 때, 그 글은 단순히 감각적 유사성에 기초한 미메시스적 특성을 벗어나 “초감각적 유사성”을 지니며 이 때 유사성은 “범속한 의미”와 “신비로운 의미” 사이에서 부유하는 새로운 형태의 “글읽기”(Lesen)를 요청한다.

 

“이러한 초감각적인 유사성은 모든 독서에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심오한 층위에서 ‘책읽기’란 말의 이중적인 의미가 열린다. 즉 범속한 의미뿐만 아니라 신비로운 의미로서의 책읽기가 그것이다.”

 

“초감각적 유사성”과 교감하는 “글읽기”에서 중요한 점은 다름 아닌 “순간” “지금” 같은 시간적 계기이며, 벤야민은 “순간적으로 빛남” 혹은 “스쳐 지나감” 같은 형상적 표현을 통해 그러한 시간적 계기를 강조한 바 있다. 이는 유사성의 지각으로서의 “글읽기”란 다름 아닌 해석자가 서 있는 “지금”이라는 현재의 시간 의식과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그와 같은 “지금이라는 시간 속에서의 인식 가능성”이 작동될 때 모든 형상은 단순한 형상으로 머물지 않고 “읽혀지는 형상” 혹은 “변증법적 형상”으로서의 글의 특성을 갖게 된다.

 

기표와 기의의 불일치,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로서의 알레고리는 텍스트 내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텍스트의 바깥”, 즉 정치적 역사적 맥락과도 연결된다. 이 때 알레고리에 내재해 있는 “불일치”는 일차적으로 “파괴”의 속성을 지니며, 그 “파괴”는 “중지”(Unterbrechung)라는 개념으로 보충될 수도 있다. “중지”로서의 파괴는 다양한 기술적, 미학적 형태를 취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사유 방식과의 단절을 뜻하기도 하며, 모자이크 식의 파편적 모습을 띠기도 하며, 특정한 말과 개념의 반복을 통해 그 의미의 동일성을 중지시키는 경우도 있다. 혹은 정치적인 맥락의 경우 [역사의 개념에 관하여]에서처럼, “역사의 연속성을 파괴하는” 행위도 “중지”에 해당된다. “중지”가 실천 행위와 연결될 경우 확고한 의지가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그런 점에서 “중지”로서의 파괴에 대한 벤야민의 시각에는 “결단”을 강조한 슈미트의 이론이 작용한다. 그런데 “중지” “파괴”를 강조하는 벤야민의 시각과 관련하여 벤야민 연구가인 메닝하우스는 “중지”에 내재해 있는 다른 측면, 즉 인식론적 차원에서는 새로운 “구성”을, 신학적 차원에서는 “구원”을, 정치적 차원에서는 “해방”을 강조하고 있다. 즉 벤야민의 “중지” “파괴”는 한편으로 글의 내적 구조를 파괴하고 그 의미를 지연시킨다는 점에서 데리다의 “차연”(Diff rance)과 연결되지만, 다른 한편 구원과 해방의 특성으로 인해 데리다와는 다른 측면을 보인다는 것이다. “중지라는 벤야민의 담론은 넓은 의미에서 중지의 사유를 제시하는 데리다를 다시 중지시키는 기능을 지닌다.” 요컨대, 파괴 혹은 중지는 벤야민의 경우 “진리, 결정, 메시아주의의 힘”을 향하고 있다는 것이 메닝하우스의 해석이지만, 그러나 이러한 중지의 중지, 즉 “구원”에 대한 강조는 한 가지 유형의 해석일 뿐 그 구원은 다시금 언제든지 중지될 수 있다.

 

 

V. 맺는 말

 

“바로크”로서의 현대를 조명하는 데 있어서 벤야민의 사유는 역사철학과 미학의 동일성보다는 항상 그 양자의 불일치에서 움직이고 있으며, 이는 벤야민의 글쓰기 자체도 형상과 의미의 불일치로서의 알레고리 특성을 지닌다는 점을 통해서 뒷받침된다. 형상의 중요성에 관해서 벤야민은 “역사는 이야기들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형상들로 나뉜다”고 밝힌 바 있으며 그런 차원에서 “역사”에 대한 자신의 글쓰기에도 항상 “형상”의 특성을 부여했던 것이다. 이 때 형상은 결코 특정 의미를 재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하지 않는다. 역사철학적 형상이 때로는 미학적 의미와 불일치 관계에 놓이기도 하며, 역으로 미학적 형상이 역사철학적 의미와 불일치 관계에 놓이기도 한다. 물론 불일치 속에서도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초감각적인 유사성”이 형성되지만, 그러한 유사성은 하나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자의 관점에 따라서 다양하게 구성될 뿐이다. 카프카 작품과 관련하여 브레히트가 정치적인 차원에서 카프카를 “위대한 볼셰비키 작가”로 일방적으로 칭송하려 했다면, 1938년 6월 12일 숄렘에게 보낸 편지에서 벤야민은 브레히트의 시각과 거리를 취하면서 카프카의 작품에 다음과 같은 “미결정성”의 특성을 부여하고 있다. “카프카 작품은 하나의 타원형(Ellipse)이며 그 서로 대립하는 양극의 초점은 한편으로 신비적인 경험 - 이것은 무엇보다도 전통의 경험인데 - 과 다른 한편으로 현대의 대도시 사람들의 경험으로 규정될 수 있다.” 여기서 신비적 경험과 현대적 경험을 양 축으로 하는 “미결정성”의 타원형 형태는 카프카의 작품뿐만 아니라 사실은 벤야민 자신의 글쓰기에도 적용된다. 벤야민의 경우 그 양 축은 역사철학과 심미성, 정치와 상상력, 아우라(Aura)와 흔적(Spur), 과거와 현재, 글자 문화와 기술적 매체 문화, 종교와 문학, 파괴와 구성 등 다양한 형태의 양 축으로 구성되며, 이러한 양 축으로 구성된 타원형 공간 속에서 벤야민의 사유는 끊임없이 부유하고 있다. 따라서 카프카에 대한 브레히트의 시각이 수정되어야 하듯이, 벤야민을 일방적으로 “맑스주의적 역사철학자”로서만 파악하려는 시각도 마찬가지로 수정되어야 한다. 벤야민의 사유에는 통일성이나 동일성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기묘한 “형세”가 형성될 뿐이며, 그 형세 내에는 상이한 경험들의 “분리와 결합”이 동시적으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매체 시대에서도 벤야민의 미학적 시각이 적용가능한 것은 아닐까?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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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usammenfassung

 

”Barock” und Allegorie: Walter Benjamins Sprachtheorie

 

 

Choi, Moon-gyoo(Yonsei Univ.)

 

Benjamins “Barock”-Begriff ist eine Metapher f r die Moderne, die mit der Fortschrittsideologie eng verbunden ist. Zusammen mit dem Begriff “Allegorie” bildet der Begriff “Barock” ein gemeinsames Bedeutungsnetz, in dem die Moderne doppelseitig aufgefa t wird: er l t sich als ein Ursprung der Moderne einerseits, als eine kritische Erkenntnis an die Moderne andererseits begreifen.

In Benjamins “Ursprung des deutschen Trauerspiels” fungiert die Allegorie zun chst als ein zentraler Begriff der historischen Epoche “Barock”. W hrend das Symbol auf eine sch ne Ordnung und Totalit t zielt, bezieht sich die Allegorie zun cht auf das Bild von Zerfall und Fragment. Dieses allegorische Bild l t sich vor allem im verfallenen Natur- und Tod-Bild suchen. Aber die barocke Allegorie spricht nicht blo von der Natur selbst, sondern von dem Anderen, d.h. der Geschichte. Das Verh ltnis von Natur und Geschichte ist das Spezifikum der barocken Allegorie.

Der Begriff “Allegorie”, der vom “Trauerspiel” ausgeht, l t sich weiterhin sprachtheoretisch fundieren. Weist Bejamin darauf hin, da es einen “Abgrund zwischen bildlichem Sein und Bedeuten” gebe, der am Verh ltnis von Natur und Geschichte in der barocken Allgeorie zu lesen ist, so k nnte man von einer Differenz zwischen Bild und Begriff, Materie und Bedeutung, Signifikanten und Signifikat sprechen. In seinen sprach- theoretischen Aufs tzen ist solche Differenz als “ bersinnliche hnlichkeit” bezeichnet, wobei Benjamin schon vom tradierten Mimesis-Verst ndnis abweicht. Damit ist das doppelte Chrakteristikum der Allegorie erkennbar: Schrift- und zugleich Lekt recharakter.

Wie das doppelte Charakterisitum der Allegorie zu betonen ist, kann man auch von einer “Ellipse” der Benjaminschen Schriften sprechen: Benjamins gesamte Schriften sind gewisserma en wie eine “Allegorie der Allegorie”(B. Witte). Sie schweben zwischen sthetik und Geschichts- philosophie, Imagination und Politik, Aura und Spur, Destruktion und Konstruktion usw. Es ist unm glich, da man auf eine harmonische Einheit bzw. Identit t von Bild und Bedeutung in Benjamins Schriften hinweist. Seine allegorischen Schriften lassen sich nur als eine “Konstellation” lesen.

 

출처 : B눈O눈D의 회색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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