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론/문화 현상의 이해

[펌]이인화는 왜 리니지2를 찬미할까

ddolappa 2008. 7. 23. 06:24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출처:
http://gomsik.egloos.com/1564074

 

 

이인화는 왜 리니지2를 찬미할까 
by 김웅남

 


예전에 내가 익명으로 운영하던 블로그에 썼던 글인데, 아까 이글루스 밸리에 갔다가 어떤 분이 이인화씨의 [바트해방전쟁] 관련 글을 읽고 너무 감동하시는 걸 보고 충격받아서 여기에 다시 올린다. 그 글에 감동받기 전에, 이인화라는 분이 왜 리니지를 좋아하는지 잘 알아 두시는 게 좋을 듯하다. 파시스트는 대(大)를 위해 소(小)가 자발적으로 목숨을 던지는 장면에서 숭고한 감동을 느끼기 좋아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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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부터 꼭 한마디 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오마이뉴스 이성규 기자의 블로그에서 이인화씨의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이라는 책의 리뷰를 보고는 지금이 그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찌기 [영원한 제국],[인간의 길] 등의 작품을 통해 국가주의와 영웅주의를 찬미한 바 있었던 이인화씨. 나는 이분이 왜 자꾸 온라인 게임. 특히 [리니지2]를 찬미하는지 궁금했다. 그저 선의로 봐 주려고 해도 이분의 과거도 있고... 결코 이유 없이 온라인 게임에 빠져들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신동아에 기고된 그의 글을 읽고는 이해하게 되었다. 그가 왜 '온라인 게임'에 집착하는지를 말이다.


앞의 책 [한국형 디지털 스토리텔링]도 그렇고, 신동아 기고문도 그렇고 그가 리니지2를 언급할 때마다 거론하는 것은 이른바 '바츠 해방 전쟁' 그 중에서도  '내복단의 활약'이다. 저렙의 전사들이 강력한 고렙 유저에 맞서서 목숨을 초개같이 던지면서 결국 승리를 이루어냈다는 숭고한 장면. 그 장면이 이인화씨 글의 핵심부이다. 이에 대해 그가 어떤 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는지 한번 보자.


<바츠 해방전쟁 스토리는 아직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다. 사용자들은, 미약하지만 아직도 자신이 하는 게임이 바츠 해방전쟁 절정기의 그 숭고한 감정을 실어 나르는 매체, 숭고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살아 있는 물건으로 변모하는 현상을 목격한다.


숭고란 뭔가 고귀하고 성스럽고 영웅적인 것이 자신의 눈앞에 현전(現前)하고 있다는 충격의 체험이다. 그것은 묘사할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는 천지창조의 순간을 연상시킨다. 그런 의미에서 아직도 ‘리니지2’의 스토리는 날마다 놀랍고 비일상적이며 충격적인 순간, 묘사 불가능한 것이 일어나는 순간의 미학, 숭고의 미학에 의해 지배된다.>


보다시피, 이인화씨는 리니지2의 가상전쟁 체험을 통해 플레이어가 '숭고한 감정'을 경험하게 된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그는 이 숭고의 미학을 '비일상적이고 충격적인 순간, 묘사 불가능한 것이 일어나는 순간'을 통해 경험하게 된다고 하는데, 이는 이인화씨가 좋아하는 "죽음"에 대한 감동을 의미한다.


<전투력이 낮은 저레벨 사용자들은 DK혈맹을 중심으로 한 3혈 연합군의 ‘화살받이’가 돼 무수히 죽어갔다. 민중 계층이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대응방안은 인해전술이다. 버프(공격 및 방어 능력의 일시적 증강)와 스킬의 화려한 효과음과 함께 일방적으로 상대를 도륙하는 DK혈맹 전사의 모습과 수십명이 낙엽처럼 죽어가는 일반 사용자의 모습은 고대적 파토스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이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죽음의 운명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운명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전 아직도 그때가 떠오릅니다. 그리고 그립습니다. 정의를 위해 질 걸 알면서도 당당하게 싸우다 죽어간 혈원들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행동에 대해 단 한번도 후회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번 바츠 해방전쟁에서도 그렇게 자랑스럽게 싸울 것입니다.>


정의를 위해 질 걸 알면서도 싸우다 죽는다는 '신화적 체험'을 [리니지2]라는 게임은 생생하게 체험시켜 주는 것이다. 사실 바츠 해방 전쟁에서 '정의'라는 것이 알고 보면 사냥터의 지배권 싸움이라는 보잘 것 없는 것인데, 이인화씨에게 중요한 것은 이것이 아니다. 대(大)를 위해 소(小)들이 자발적으로 목숨을 던지는 그 숭고한 체험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그는 이들이 [리니지2]에서 겪었던 '숭고한 체험'을 지닌 채 현실 사회로 되돌아 올 것을 원하고 있다.


<일찍이 조셉 켑벨은 많은 스토리에서 잊을 수 없는 체험을 한 영웅이 평범한 인간 세상으로 귀환하는 데 어려움이 따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영웅은 평범한 세계에서 ‘낯설고 특별한 세계’로 들어가 통과제의의 성격을 갖는 고통스런 체험을 한다. 그리고 남들이 경험하지 못한 그 세계로부터 어떤 물질적, 정신적 전리품을 들고 다시 평범한 세계로 돌아와 사람들을 널리 이롭게 해준다. (...)


온라인 게임 스토리만이 줄 수 있는 이 같은 서사적 감동과 사상적 깊이를 체험한 사람들은 두번 다시 예전과 같은 사람일 수가 없다. 그들은 ‘폐인’이라는 조롱을 웃어넘기며 온라인 게임이 만든 매트릭스로 날마다 들어간다. 이 귀환하지 않는 영웅들이 어떻게 현실로 돌아와 세계를 복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가상현실과 현실의 융합이 중요한 관심사로 떠오른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깊이 고려해야 할 지점이다.>


즉, '온라인 게임이라는 새로운 미디어에 대한 학문적 탐구'를 가장한 이 글에서 실제로 그가 원한 것은 영웅주의, 전체주의, 전쟁과 죽음의 현장을 보다 많은 이들이 가상적으로나마 체험해 보고, 그 경험을 가진 채 현실로 돌아왔으면 하는 것이다. 전쟁과 죽음의 체험, 대장을 보호하기 위해 한 목숨 미련 없이 바치는 삼국지식의 영웅적 체험, 대를 위한 소의 희생 등등 그가 추구하는 가치를 현대인들이 체험해본다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그런데 [리니지2]에서 이러한 체험을 현실 못지 않게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어찌 이 멋진 미디어를 그냥 지나칠 수 있을 것인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 신화적 인간들을 양산하고자 하는 것. 이것이 그의 의도인 것 같다.


이러한 나의 분석이 너무 '악의적'이지 않나 하고 생각하실 분도 있을텐데, 평소 이인화씨의 글을 접해보신 분들이라면 과거에 그가 쓴 글과 [리니지2] 관련 글에서 일관된 사고를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사용한 용어. 즉, 숭고의 미학, 죽음에의 찬미, 죽음의 운명을 알면서도 그 길을 택했다는 서술 등은 그가 평소에 강조했던 것들이며, 결코 [리니지2]에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이 글을 그의 과거 글들과 다른 의미로 해석할 수 없는 것이다.


온라인 게임에 대해 흥미를 느끼고 그 인문학적, 사회학적, 경제학적 가치를 눈여겨 본 지식인들은 많다. 하지만 이들이 온라인 게임에 흥미를 느끼는 것은 일반 사용자들처럼 "그저 즐기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온라인 게임이라는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무엇인가를 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 표면이 아니라 이면을 뒤집어 보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겉과 속이 같을 수도 있고 다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용당하지 않는 것이다.따라서 비판적 읽기를 게을리할 수 없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 뿐이다.

 

 

* <리니지2와 '집단 지성'의 결합 그리고 디지털스토리텔링>

- 오마이뉴스 이성규 기자의 블로그

http://blog.ohmynews.com/dangun76/135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