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세계/한국 문학

[스크랩]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ddolappa 2008. 8. 9. 05:30

 

                                     사진<자본주의 택시에 맞서투쟁하자>님의 카페에서

 


 
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王宮) 대신에 왕궁(王宮)의 음탕 대신에
오십(五十) 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 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越南)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二十) 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情緖)로
가로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수용소의 제사십야전병원(第四十野戰病院)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폰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폰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무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 서 있다 절정(絶頂)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항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二十) 원 때문에 십(十) 원 때문에 일(一) 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일(一)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거대한 뿌리, 민음사, 1974>

 

 

  작자 소개

 서울 출생. 선린상고(善隣商高)를 거쳐 도일, 1941년 도쿄상대[東京商大]에 입학했으나 학병 징집을 피해 귀국하여 만주로 이주, 8 ·15광복과 함께 귀국하여 시작(詩作) 활동을 하였다. 김경린(金璟麟) ·박인환(朴寅煥)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여 모더니스트로서 주목을 끌었다.

6·25전쟁 때 미처 피난을 못해 의용군으로 끌려 나갔다가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석방되었다. 그 후 교편생활, 잡지사·신문사 등을 전전하며 시작과 번역에 전념하였다. 1959년에 시집 《달나라의 장난》을 간행하여 제1회 시협상(詩協賞)을 받았고, 에머슨의 논문집 《20세기 문학평론》을 비롯하여 《카뮈의 사상과 문학》 《현대문학의 영역》 등을 번역하였다. 《거대한 뿌리》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 등 2권의 시집과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 《퓨리턴의 초상》 등은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에 간행된 것들이다.

초기에는 모더니스트로서 현대문명과 도시생활을 비판했으나, 4 ·19혁명을 기점으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을 바탕으로 한 참여시를 쓴 그는 1945년 《예술부락》에 <묘정(廟庭)의 노래>를 발표한 뒤 마지막 시 《풀》에 이르기까지 200여 편의 시와 시론을 발표하였다.

이 시인이 가진 작품의 시사적(詩史的) 맥락에 대해 평론가 김현은 “1930년대 이후 서정주 ·박목월 등에서 볼 수 있었던 재래적 서정의 틀과 김춘수 등에서 보이던 내면의식 추구의 경향에서 벗어나 시의 난삽성을 깊이 있게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던 공로자”라고 말하였다. 사망 1주기를 맞아 도봉산에 시비(詩碑)가 건립되었고(1969), 미완성의 장편소설 《의용군》이 《월간문학》(1970)에 발표되었다. 민음사(民音社)에서는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김수영문학상’을 제정하여 매년 수상하고 있다.< 자료출처 : 야후 백과 사전> 

 

이해와 감상

 자신이 싫어질 때가 있다. 시인은 사라져 버린 왕조의 궁궐을,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지만, 둘러보았고, 그 부근에서 설렁탕을 먹었던 모양이다. 또한 그때 그는 이 일체의 일정에 대해 까닭 모를 짜증을 느꼈던 것이다. 그의 짜증 또는 분개는 사라진 왕조의 우울한 유물인 궁궐의 스산함과 설렁탕의 맛없음에 대해 일차적으로 표출된다. 그러면서 시인은 자신의 분노가 특히 후자에게 더 공격적임을 스스로 분석해 내고, 자신의 옹졸함과 비겁함에 대해 이차적으로 분개한다. 이를테면 그것은 체질적으로 본질을 우회하고 마는, 그리고 비본질적인 것을 단지 편리함과 심리적인 안정 때문에 물고 늘어지는 나약한 지식인의 속성에 대한 짜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것조차도 사실은 비겁함과 옹졸함의 발로일 수 있을 텐데.
 그러나 시인이 진단한 자신의 옹졸함은 뿌리가 깊은 것이다. 자신에 대한 한없는 힐난에 잠겨들지 않고, 그 뿌리를 짚어가며 사회적, 현실적인 문제로 한 걸음씩 다가서는 비판적 지성의 발길에 이 시의 힘과 재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하여, 월남파병에 대한 태도표명에 대하여,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서 전쟁 때의 수모에 대하여, 이제 시인은 더없이 냉정하게 자신의 태도를 비판한다. 이윽고 그의 자기비판, 또는 자기진단은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라는 표현에 귀결되며, 그것이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라는 단정에 이른다. 결구 `모래야 나는 얼만큼 작으냐'는, 일상의 작은 행동을 깊이 파고들어 시인이 이른 자기성찰의 핵심이라 할 만하다.
 무서우리 만큼 철저하게 수행되는 이 시의 자기비판에서 우리는 시에서 흔히 목도할 수 있는 자기 미화와 과시의 흔적을 찾기 힘들다. 이와 같은 작품에서 우리는 시가 진정한 내면의 탐색과정임을 느낄 수 있다. 이 시를 통해 우리는 시인 김수영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심을 가졌느냐보다는, 얼마나 치열한 정신의 소유자인지를 더 잘 알게 된다. 자신에 대한 냉정한 태도는, 바람직한 경우, 세상과 삶에 대한 엄정한 태도에 곧바로 이어진다. 이 시는 바로 그렇다. [해설: 이희중]

 

 참고 자료

 

 

김수영 시의 문학사적 의의 : 김수영은 신동엽과 함께 1960년대 한국 시단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 가된다. 특히 1970년대 이후 한국시에서 중요한 흐름을 이루었던 민중문학의 선구자로서 이 두 사람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민중적인 성격이 강한 이 두 사람의 시는 모두 4.19의 역사적 경험의 소산이라고 할 수 있다.

신동엽은 투철한 역사 인식과 건강한 민중성에 기초하여 시를 쓴 데 비해, 모더니즘의 세례를 받은 김수영 은 4.19를 계기로 점차 모더니즘의 한계에서 벗어나 강렬한 현실 인식과 민중성에 기초한 시를 쓰게 된다. 그런 점에서 김수영은 한국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로, 또 모더니즘의 태내에서 자라난 모더니즘의 비판자로 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발표한 '풀'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김수영이 모더니즘의 한계를 넘어서서 투철한 역사 인식과 민중 의식을 획득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시여 침을 뱉어라 : 1968년 4월 부산에서 펜클럽 주최로 행한 문학 세미나에서 발표 원고로 그의 현실 참여적인 문학 정신이 잘 드러나고 있다. 나중에 그의 산문집 제목이 되기도 했다.다음은 시에 대한 그의 관점을 알 수 있게 해주는 그 글의 주요 부분이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그림자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의 형식은 내용에 의지하지 않고 그 내용은 형식에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그림자에조차도 의지하지 않는다. 시는 문화를 염두에 두지 않고, 민족을 염두에 두지 않고, 인류를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것은 문화와 민족과 인류에 공헌하고 평화에 공헌한다. 바로 그처럼 형식은 내용이 되고, 내용이 형식이 된다.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이 시론도 이제 온몸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순간에 와 있다. '막상 시를 논하게 되는 때에도' 시인은 시를 쓰듯이 논해야 할 것'이라는 나의 명제의 이행이 여기 있다. 시도 시인도 시작하는 것이다. 나도 여러분도 시작하는 것이다. 자유의 과잉을, 혼돈을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 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시작하는 것이다. 모기 소리보다도 더 작은 목소리로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시작하는 것이다. 아무도 하지 못한 말을, 그것을--------.

 

김수영의 시 모음 : http://kkucc.konkuk.ac.kr/~garaiul/poem/ksy.shtml

 

김수영 평론 : 살아있는 김수영 - 백낙청

 

참여 문학이 갖는 의미 : 참여문학은 개인의 순수한 서정 세계의 구현보다는 사회정치 상황의 구체화

에 관심을 갖는다. 참여 문학은  2차 대전 이후 프랑스의 사르트르에 의해 주창되었다. 우리 나라의 경우는  1920년대의 카프에 속했던 작가들의 작품이나 해방 후에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입했던 작가들의 작품에서 시도되었다. 이들은 계급 문학의 관점에서 노동자 농민들의 삶과 그들의 지향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 김수영, 신동엽 등의 시인들에 의하여 현실 문제, 예를 들면 분단과 통일, 민족 민중 의식 등을 시적 제재로 취급하였다. 이후 1970년대 이후의 민족 민중 문학 계열의 작가들에 의하여 , 통일 문제, 노동 문제, 농민 문제 등이  작품화되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의 참여 문학은 우리 민족과 민중들을 문학적 형상화의 주체로 나타내고 있으며, 이들의 지향성을 문학적으로 표현하였다

출처 : 시와 창작
글쓴이 : 심은섭<굴뚝새>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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