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행동을 위한 밑받침. 행동까지의 운산(運算)이며 상승. 7할의 고민과 3할의 시의 총화가 행동이다. 한편의 시가 완성될 때, 그때는 3할의 비약이 기적적으로 이루어질 때인 동시에 회의의 구름이 가시고 태양처럼 해답이 나오고 행동이 나온다. 시는 미지의 정확성이며 후퇴 없는 영광이다. 과학이 우주 정복을 진행하고 있다고 해도 시인은 조금도 놀라지 않는다. 그는 오히려 그의 주변의 쇄사(瑣事)에 만족하고 있을 수 있다. 따라서 그의 제재만 하더라도 세계적이거나 우주적인 것을 탐내지 않아도 될 듯하다. 우리나라의 국내적인 제 사건이 이미 충분히 세계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요즈음 보라. 신문 독자들은 우선 국내 기사부터 보고 그 다음에 해외 기사는 매우 요긴치 않은 표정으로 훑어보고 있지 않은가. 이런 새 현상은 4·19를 분수령으로 해서 휙 달라졌고 5·16 후에 더 자심해졌다. 시의 서정(抒情)면도 동일. 우선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서정을 찾아보자는 경향이 자연히 짙어지고 8·15 후까지도 농후하던 보헤미안적인 기분은 많이 탈피되었다. 이제 우리나라의 시는 어떻게 하면 멋진 세계의 촌부(村夫)가 되는가 하는 일이다. 시의 형식 나는 시의 형식 문제에 대해서 지극히 등한하다. 나의 경험으로 비춰볼 때 형식은 <투신(投身)만 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식상의 모방도 있을 수 있는 일인데,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심각하게 모방하면 실패하지만 유쾌하게 모방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와 유사한 소리를 엘리엇이 한 것 같고 또 실천하고 있다고 보는데 엘리엇의 고시(古詩)로부터의 인용은 훨씬 의식적인 것이라고 생각된다. 사람마다 모양을 내는 법이 각각 다르지만 나의 취미로서는 모양을 전혀 안 내는 것이 가장 모양을 잘 내는 법이라고 생각된다. 물론 5·16 이전의 우리 사회의 통속성에 대한 반발도 있었겠지만 나는 거지꼴을 하고 다니는 것이 퍽 좋았던 것만은 사실인데, 실은 일반 사회가 건전하고 소박해야지만 시인도 색깔 고운 수건쯤 꽂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시의 내용 종교적이거나 사상적인 도그마를 시 속에 직수입하고 싶은 충동을 느껴본 일은 없다. 시의 어머니는 어디까지나 언어. 따라서 나는 시의 내용에 대해서 고심해 본 일이 없고, 나의 가슴은 언제나 무(無). 이 무 위에서 파괴와 창조가 동시에 이루어진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어떻게 하면 생활을 심화시키는가 하는 것. 그러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는 언제나 어그러진다. 이러한 기대가 어그러질수록 작품의 질은 더 좋아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속으면서도 기대는 본능적으로 생겨나게 마련이고 창조를 위해서는 이 기대란 놈은 우주 로켓이 벗어버리는 투겁과 흡사하다. 시어 내가 써온 시어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어뿐이다. 혹은 서적어와 속어의 중간쯤 되는 말들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 고어(古語)도 연구해 본 일이 없고 시조에 대한 취미도 없다. 어느 서구 시인이 15세기까지 배운 말이 시어가 될 것이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는데, 나의 시어는 어머니한테서 배운 말과 신문에서 배운 시사어의 범위 안에 제한되어 있다. 스승 없다. 국내의 선배 시인한테 사숙한 일도 없고 해외 시인 중에서 특별히 영향 받은 시인도 없다. 시집이고 일반 서적이고 읽고 나면 반드시 잊어버리는 습관이 있어서 퍽 편리하다. 시인이라는, 혹은 시를 쓰고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큰 부담이 없다. 그런 의식이 적으면 적을수록 사물을 보는 눈은 더 순수하고 명석하고 자유로워진다. 그런데 이 의식을 없애는 노력이란 똥구멍이 빠질 정도로 무척 힘이 드는 노력이다. 환경 시의 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친구도 있는 모양 같은데 나는 오히려 그런 친구들을 경멸한다. 시를 쓸 때는 색색이 잉크를 사용하거나 사치스러운 원고지를 쓰거나 해서 기분을 내는 사람도 옛날에도 있었다고 하지만 나는 그런 장난을 해본 적이 없다. 나의 기벽이라면 k는 절대로 원고지에 시의 초고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체로 휴지에 가까운 종이에 쓰는 것이 편하고 거의 습관처럼 되어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나의 환경은 지극히 평범하다. 평범한 남편이요, 평범한 아버지요, 평범한 국민이요, 평범한 경제 상태요, 평범한 옷차림이요, 평범한 인인(隣人)이다. 독자 시의 독자. 가장 곤란한 존재는 필리스틴들이다. 소위 대학 교육이나 받았다는 친구들, 시를 쓴다는 친구들, 시를 사모한다는 친구들, 글줄이나 쓴다는 친구들, 이들이 시를 교살하고 있다. 신문사의 문화부, 라디오의 시 감상 시간, 하물며 문학지의 편집인들이나 대학의 문학과 선생님들까지. 그리고 시의 월평. 시를 가장 이해한다는 축들이 사실은 밤낮으로 어떻게 하면 시를 가장 합법적으로 독살시킬 수 있을까 하고 구수회의(鳩首會議)를 열고 있다. 그렇지만 그들은 나를 볼 때에는 누구보다도 자기가 가장 많이 시에 대해 이해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은근한 추파를 던진다. 나도 모르는 나의 시에 대해서까지도. 비평 나는 여지껏 나의 작품에 대해서 정확한 판단을 내린 비평을 본 일이 없다. 거기다가 우리나라의 소위 월평이라는 것이 전부가 한결같이 심미적인 것뿐이다. 우리나라의 비평가들처럼 시회성을 과도히 주장하고 있는 사람들도 없지만 우리나라처럼 심미적인 시평이 산적한 나라도 세계에 그 유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이 실천하는 심미주의가 어떠한 것이냐 하는 문제...... 좌우간 시단 월평이라는 것이 10년 동안만 신문이나 잡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춘다면, 나의 생각 같아서는 시의 질이 에누리 없이 한 백년은 진보할 것 같다. 시 아아, 행동에의 계시. 문갑을 닫을 때 뚜껑이 들어맞는 딸각 소리가 그대가 만드는 시 속에서 들렸다면 그 작품은 급제한 것이라는 의미의 말을 나는 어느 해외 사화집에서 읽은 일이 있는데, 나의 딸각 소리는 역시 행동에의 계시다. 들어맞지 않던 행동의 열쇠가 열릴 때 나의 시는 완료되고 나의 시가 끝나는 순간은 행동의 계시를 완료한 순간이다. 이와 같은 나의 전진은 세계사의 전진과 보조를 같이한다. 내가 움직일 때 세계는 같이 움직인다. 이 얼마나 큰 영광이며 희열 이상의 광희(狂喜)이냐! 예언 시의 예언성. 나는 사후 백년 후에 남을 시를 쓰려고 노력할 수는 없지만, 작품이 끝난 후 반년 정도의 앞을 예언할 만한 시를 쓰고 싶다. 반년 정도의 예언이지만 여기에도 피해가 많다. 원래가 예언자란 들어맞을 때는 상을 안 주고 안 들어맞을 때는 화형을 받는다. 아냐, 그는 들어맞을 때도 안 들어맞을 때도 한결같이 화형을 당하게 마련이다. 장시 장시 같은 것은 써보려고 한 일도 없다. 시는 되도록 짧을수록 좋다는 것이 나의 지론이고, 장시를 써낼 만한 역량도 제재도 없다. 장시를 쓸 바에야 희곡을 쓰고 싶다. 희곡에는 고료가 정해져 있지만 장시에는 지정됨 고료가 없으니 우선 이것부터 불편하다. 또 우리나라에는 몇 매 이상이 장시라는 상식조차도 없다. 엘리엇이 우리나라에서 「황무지」 발표하였다면 원고료는 역시 잘해야 3,000환밖에는 못 받았을 것이고, 그것도 매우 떳떳하지 못하게 받았을 것이다. 나의 동료 중에는 시의 고료는 일체 받지 않기로 작정하고 있는 드문 미덕을 가진 분도 있어서 나도 한번쯤 흉내를 내본다 내본다 하면서 아직까지도 실행을 해본 일은 한번도 없다. 시를 쓰는 시간 일정하지 않다. 성북동에 셋방살이를 할 때 그 집 주인이 이은상(李殷相) 씨와 동경에서 같은 하숙에 있었다고 하면서 씨의 미담을 많이 들려주었는데, 씨는 꼭 밤을 파가면서 시작(詩作)을 하였다고 해서 나도 흉내를 내볼까 했는데 한번도 성공해 본 일은 없다. 이유는 내가 씨보다 몸이 약한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나의 버릇으로는 술을 마시고 난 이튿날 시를 쓰는 기회가 비교적 많았다. 물론 시를 써보려는 불순한 동기로 술을 마신 일은 한번도 없었고 나는 시보다도 술을 더 좋아한다. 술은 우리 집 내력이라 아버지는 소주로 돌아갔고 증조할아버지는 마나님이 술을 못 마시게 하느라고 옷을 감추어 놓았더니 마나님의 베속곳을 입고 나가서 술을 마셔서 별명이 <베바지>였다고 한다. 나한테는 무슨 별명이 붙을지 모르겠다. <1961. 6. 14> |
'문학의 세계 > 한국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관념의 시와 몸의 시 / 김남호 (0) | 2008.12.05 |
---|---|
[스크랩] 산문에 고인 ‘침’ 시로 뱉었나/최성일 <김수영전집2:산문> (0) | 2008.08.09 |
[스크랩] 김수영 시인의 생애 (0) | 2008.08.09 |
[스크랩] 어느 날 고궁(古宮)을 나오면서 / 김수영 (0) | 2008.08.09 |
[스크랩] 문맥을 모르는 시인들/김수영 (0) | 2008.08.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