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환경

[스크랩]진실된 환경 보고서

ddolappa 2008. 8. 19.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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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환경 보고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자각, 부인과 복구 사이에서

 


[출처] 르몽드 디플로마티끄
http://www.vop.co.kr/A00000199918.html

 


생태계는 일정 시점 이후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형태를 계속 유지해 오고 있다. 왜냐하면 2만 년 전에 자연의 모습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대부분 지역에서 빙하에 뒤덮였던 모습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이행되었기 때문이다. 즉 빙하가 극지방과 고지대에 집중되어 있는 현재의 모습으로 말이다. 5천 년 동안 진행된 이와 같은 이행은 실제로 지구 온도의 50C 상승과 일치한다. 이러한 결과로 미루어보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장기간에 걸친 온도 변화의 자연적 리듬은 천 년 당 10C 정도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 2050년까지 CO2(온실효과의 주범인 이산화탄소)의 배출량이 두 배로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 결과 지난 최후의 빙하기 이래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일어났던 평균 온도의 변화보다 적어도 10배 빠른 속도로 평균 기온이 상승할 수도 있을 것이다.


AIE(국제에너지기구)는, 만약 화석연료 소비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계속될 경우, 에너지 소비에만 관련된 CO2 배출량이 2030년에 40기가톤(1기가=10억)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수치는 2004년을 기준으로 55%가 증가된 것이다.1) 이로 인해 21세기가 끝날 무렵에 지구의 온도는 2.40C~6.40C 정도 상승하게 될 것이다. 기후의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는 UN 산하 기구인 GIEC(정부간 기후 변화 담당 기구)의 보고서 역시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2) 물론 이와 같은 온도 상승이 발생한다면 세계 지도상에 대변화가 일어나게 될 것이다. 또한 농경지의 새로운 분포, 연안지대와 섬에 거주하는 주민들의 대이동, 다양한 동 · 식물종의 이동이나 멸종 등등과 같은 현상들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또한 이로 인해 문명의 대변화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이처럼 환경 위기는 현실 그대로의 사실을 넘어선 심리적인 문제이자 인지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이처럼 이 위기는 개인들의 이해 능력을 넘어서는 차원에 속한다. 1972년에 스톡홀름에서 개최되었던 첫 번째 지구환경 정상회담으로부터 최근에 이루어졌던 <<새 천년을 위한 생태계 평가>>3)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학 연구 결과들이 축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환경의 위기는 여러 논쟁으로 인해 그 심각성이 일반화되고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그 심각성을 부정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한 동안 과연 온난화 현상이라는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여론의 관심을 오도하기 위해 노력을 경주하고 있는 선동가들이 많이 있다. 그들의 면모는 반환경주의적 성향의 테크노 스릴러 작품인 <<긴급사태>>의 저자이자 <<기후 문제에 대해 회의주의적 태도를 취하는>> 소설가 마이클 크라이톤으로부터4) 지구를 위협하는 여러 문제의 해결책으로 제시될 수 있는 <<기술>> 제시에 정통한 클로드 알레그르 전 장관에까지 이르고 있다. 또한 엑손모빌사를 필두로 미국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 친척들이 운영하는 석유회사의 재정 지원을 받는 <<씽크 탱크들>>도 기후 변화의 폭을 최소화시키고, 또한 GIEC의 연구 결과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미국 과학자들과 시민들로 이루어진 한 단체는 최근 미연방연구소에서 근무하는 279명의 기후학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들 가운데 58%에 해당하는 자들이 상사들로부터 제재를 받았으며, <<기후 변화>>라는 표현을 자신들의 보고서에서 삭제하라는 압력을 받았다고 대답하고 있다.5)


같은 맥락에서 지구의 현 상태에 대한 논쟁이 2001년에 덴마크 국적의 비요른 롬보리가 쓴 <<회의주의적 환경주의자>>6)라는 한 권의 저서 출간과 더불어 대두되었다. <<걱정할 이유가 없다>>라는 기치 아래 이 저자는 여러 분야에서 환경 문제가 악화되기보다는 오히려 개선되었으며, 일부 일시적인 악화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개선될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저서에서 볼 수 있는 외관상의 과학적 엄격함을 속임수라고 비난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저자가 낙담한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그는 또 다른 저서인 <<그것을 식히자. 지구 온난화를 불신하는 환경주의자를 위한 가이드>>에서 ‘기온 상승의 폭’이라는 아주 세세한 문제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7)


요컨대 롬보리는 이상 기후를 막기 위한 조치를 취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국제사회에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지구 온실화의 원인이 되는 가스 배출을 줄일 목적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지불되어야 하는 비용은 년 간 약 1,300억 유로에 달할 것으로 그는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은 판단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막대한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는 오히려 경제 성장을 위해 환경을 더 파괴하고,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더 낳을 수도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기후 온난화에 대한 이와 같은 회의주의적 태도는 에너지 가격의 상승 때문이기는 하지만 급속도로 그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심지어 경제 저성장이라는 주장을 지지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AIE까지도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이 기구의 최근 연례 보고서인 2006년도 <<세계 에너지 전망>>에 따르면, 2006년~2030년 사이에 세계 경제 성장을 위한 에너지의 경쟁적 소비의 충족을 위해서는 총 145억 유로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AIE는 교토 의정서8)에서 명시된 것과 같은 대체 에너지 시나리오를 채택하는 하는 것, 그것도 가장 빠른 시일 내에9) 채택하는 것은 <<수익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와 같은 정책에 드는 비용은 훨씬 더 효율적인 소비와 에너지 생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통해 보상될 수도 있을 것이다.>>10)


기후 문제에 대한 이와 같은 접근은 매스컴을 통해 수없이 보도된 영국 경제학자 니콜라스 스턴의 보고서에서도 재차 확인되고 있다. 그에 의하면 지구 온난화로 인해 세계 경제에 5조 500억 유로의 비용이 부가되고 있다는 것이다.11) 자연의 훼손으로 인해 지금까지 생태계가 맡았던 계산 불가능한 생명유지 기능, 가령 공기와 물의 정화, 기후의 안정화, 여러 식물에 포함된 의학적 성분 등등을 잃게 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산업화된 국가들의 지도자들은 다음과 같이 생각하고 있다. 즉 경제 분야에서 기후라는 요소를 고려하는 것은 환경 위기에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대처하는가를 가늠하는 새로운 신뢰도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경제 성장의 근본적 요소들을 문제 삼는 것은 결코 아니다.


프랑스의 한 텔레비전 프로의 사회자인 니콜라 윌로, 전 미국 부통령 앨 고어와 같은 상징적인 대변인들에 의해 벌써 과도할 정도로 과학적 정보들과 보고들이 전달되고 있다. 물론 그 목적은 환경 위기의 현실이 아직도 부정되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리는 데 있다. 하지만 과도한 비상사태의 선언은 역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사태를 진부하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가 그것이다. 국제사회는 패러다임의 근본적 변화를 촉구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의 의식의 변화를 촉발시킬 수 있는 <<그린 워싱>>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고 있다. 가령 프랑스의 환경 및 국토 개발 장관이 주장한 바와 같이, 2007년에 개최된 럭비 월드컵 대회가 <<환경을 중시하는 이벤트라고 하는 개념에 충실한 하나의 전형적 모델로 여겨진 첫 번째 대규모 국제 스포츠 행사>>였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왜냐하면 이 대회 기간 중에 항공교통으로 인해 570,000t 이상의 CO2가 발생되었기 때문이다.12) 이것은 우리 시대의 알력을 잘 보여주고 있는 모순적인 이미지이다......


국제사회가 지구에서의 생명 조건이 악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과 비례해서 이러한 상황을 부정하는 표현 방식 역시 복잡해지고 있다. 가령 지구 공동체의 재편이 이루어지는 운명적인 날을 뒤로 미루거나, 혹은 세계적으로 만연해 있는 생산제일주의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을 뒤로 미루자는 표현 양식 둥둥이 그것이다. 2002년 9월 2일 요하네스버그에서 지구의 지속적 개발이라는 주요 의제에 할애된 제3차 지구환경 정상회담에서 자크 시락 대통령이 했던 경고성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연설의 한 대목 <<우리들의 집이 불타고 있다. 그런데 우리들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에 주목해보자. 이 연설에는 분명 하나의 역설적인 명령, 즉 지금까지 아무런 효과도 내지 못한 행동을 위한 대원칙을 제정해야 한다는 명령을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는 향후 3,000Km의 고속도로 건설을 계획하고 있지 않은가? 프랑스 환경 및 국토 개발 장관 세르즈 르펠티에는 2005년에 공기 오염의 주범인 4x4 자동차에 할증세를 부과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유로 장 피에르 라파팽 내각을 떠나지 않았던가? 지속적 개발이라는 개념은 이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환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개념은 환경 보호를 위한 행동에 대한 집단적 허구를 낳는데 소용되었다. 또한 이 개념은 가장 오염을 많이 시키는 다국적 기업들과의 관계를 <<청산>>(이 청산의 문제는 2007년에 프랑스 정부 주도호 시작된 <<그르넬 환경 포럼>>에서도 충분히 다루어진 것으로 보인다)하기 보다는, 오히려 이 기업들에게 위장을 위한 녹색 화장술을 제공했던 것이다.


프랑수아 피용 내각에 의해 금년 10월말로 예고된 이 그르넬 환경 포럼을 통해 프랑스는 과연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될 것인가? 에너지 정책의 방향을 결정하는 법제정 차원에서 프랑스는 2005년 7월 13일에 지금부터 2050년까지 CO2의 배출량을 1/4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었다. 그러나 과연 2005년 이후 환경 보호를 위해 어떤 조치들이 취해졌는가? 거의 없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이와 같은 야심에 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쓸데없이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다. 프랑스 당국은 약속을 실천에 옮기기 위한 의지를 보여주면서 환경 정책을 본궤도에 올릴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가능성에 대해 반신반의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랑스 정부는 유럽연합으로부터 종종 환경 정책이 충분치 못하다는 지적을 받곤 했으며, 따라서 그만큼 환경 분야에서 상당히 뒤졌기 때문이다. <<그르넬 환경 포럼>>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핵정책, 고속도로 건설 계획, 유전자변형 식물(프랑스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은 유전자변형 식물의 확고한 지지자들이다) 등등의 문제가 제기되지 않는다면, 공중 교통수단에 우선권이 주어지지 않거나 화석 연료에 할증세가 붙지 않는다면, 여전히 압력단체들이 활동할 수 있는 여지가 있거나 혹은 이 단체들이 주장하는 경제성장이라는 비전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이 모든 것은 결국 기후 변화에 도전하는 행동에 대한 이해가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많은 변화에 대해 별로 개방적이지 못한 프랑스의 정치 분위기를 고려해보면, 이러한 도전은 아주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다. 알랭 쥐페 내각에서 1995년에서 1997년까지 환경장관을 지낸 코린 르파쥬 여사는 프랑스 행정부 내에서 <<고급공무원들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과학 발전이나 외국에서의 실험을 통해 새로운 노선이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하지만 해결책은 늘 구태의연하다. (......) 도로나 고속도로, 핵이나 생물공학과 같은 규모가 큰 하부 영역을 담당하고 있는 <<국가 공무원들>>에게서 나는 별 다른 의문이나 별 다른 의혹을 발견하지 못했다. (......) 내가 보기에 이 고급공무원들이 가진 무소불위의 힘은 (......) 프랑스의 낙후를 설명해주는 요인들 - 핵심적인 요인은 아니지만 - 가운데 하나이다.>>13)


최근에 발생했던 농업 분야에서의 살충제 문제나 석면 문제와 마찬가지로 1986년에 체르노빌 사고를 가장 불투명하게(방사선 구름이 프랑스 국경에서 멈췄다고 주장했다) 처리한 바 있는 프랑스 국가 기구들이 어떻게 환경 문제에 대해 신속하게 문호를 개방할 수 있겠는가? 르파쥬 여사는 이렇게 덧붙이고 있다. <<석면 문제에 대한 계속되는 정부의 몰지각은 (......), 한편으로는 건설 자재업의 통제와 지휘 업무를 맡고 있는 광산 분야 공무원들의 힘이 없었다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핵산업과 그로 인해 야기된 행동들과 무관하지 않은 공무원들의 힘이 없었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다.>>14) 이처럼 유연하지 못한 국가 기구들로 하여금 변화의 긴급성을 이해시키는 것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


그렇다면 세계적 차원의 폐기물, 특히 CO2를 도대체 어떻게 확실하게 감소시킬 수 있을 것인가? 또 도대체 어떻게 겉만 번지르르한 말에서 에너지 감소라고 하는 실질적인 행동으로 이행할 수 있을 것인가? 기후 문제와 환경 문제 전문가들이 세계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단지 국가 정상들의 회담에서만 전 지구적 차원의 해결책이 제시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문제의 긴급성을 고려해보면, 미국이나 호주와 같은 몇몇 국가들(세계에서 가장 많은 양의 석탄을 생산해내는 국가들이자 석탄이라고 하는 천혜의 선물을 보존하기 위해 교토 의정서에 서명하지 않은 국가들)로부터 환경 정책의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요원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다른 몇몇 국가들이 앞장서고 또 모범을 보이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독일 사회민주당 의원 및 1999년 대안 노벨상 수상자이자 재생 가능 에너지 전문가이기도 한 헤르만 쉐어는 다음과 같은 예상을 하고 있다. <<어쨌든 [세계적인] 의견의 합치를 끌어내고자 하는 의지는 아주 빠른 시일 내에 위험을 줄여야 한다는 필요성과는 양립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의 동의를 확보해야 한다는 사실로 인해 우리는 정해진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방해를 받고, 제동이 걸리고, 또 이 목표를 약화시키고자 하는 자들의 뜻에 전적으로 끌려 다닐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15) 가능한 한 모든 사람들의 동의를 구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분명하다. 게다가 한정된 자원을 가진 지구에서 이루어지는 대규모의 국제 모임들에서도 결코 경제성장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적은 없다. 환경의 존속을 위한 조치들도 결국 경제성장의 원칙과 시장의 자유화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서만 용인될 뿐이다.


에너지와 관련이 있는 생산 활동(원유의 정제를 포함하여)은 전 세계에서 배출되는 CO2의 49%에 해당하는 양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것은 환경에 가장 해로운 결과를 미치는 요인들 가운데 하나이다.16) 지난 몇 십 년 동안 몇 개 안 되는 국가들만이 이러한 사실을 잘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 국가들만이 다른 에너지 노선을 개발하기 위해 박차를 가했을 따름이다.


예컨대 덴마크는 1980년대부터 지상 풍력 에너지를 개발했다. 영국은 1990년대 말부터 대체 가능한 해양 에너지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에 착수한 바 있다.17) 바르셀로나에서는 2000년에 새로 지은 주택에 태양열 집적기 부착과 기술 혁신을 장려했고, 또한 그 뒤로 카탈로니아 지방은 물론 스페인 전역에서 같은 정책을 실시하기도 했다. 꽤 오래 전부터 독일 역시 유사한 노선을 채택했다. 하지만 독일 정부가 석탄 사용을 중단하지 않은 채 에너지 절약을 도모하면서 대체 가능한 에너지를 개발하는 모순 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냉소적으로 비꼬는 자들도 없지 않다. 가령 프랑스로부터 전기를 수입하고, 또 그러면서 자국에 설치된 핵발전소의 생명을 연장시키고자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비판을 가하는 슬픈 중생들은 프랑스에서는 라인강 저편의 이웃 국가에서 적용되고 있는 정책의 1/20도 행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또한 그들은 거기에서는 두 개의 에너지 체계 사이에 실질적인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역시 망각하고 있다. 즉 석탄, 핵, 개인 교통수단과 연관되어 있는 에너지 사용이 집중된 옛 체계와 또 다른 하나의 체계, 즉 에너지 절약, 대체 가능한 자원, 대중 교통수단, 대중 건강 문제 등등과 연관되어 있으며, 에너지 사용이 집중되지 않는 새로운 체계 사이의 전투 말이다.


몇 십 년 전부터 활동을 하고 있는 옛 체계를 보호하는 압력단체들은 상황의 신속한 변화의 필요성과 그 가능성을 부정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대체 에너지 전문가들은 이러한 변화에 제동을 거는 요소가 기술적인 것이 아니라 주로 행정적이고 정치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독일의 한 주인 헤센(6백만 인구에 21,000Km2의 면적을 가진)에서 2008년 1월 27일에 치러질 지역선거의 결과를 지켜보도록 하자. 사회민주당 후보인 안드레아 입쉴란티 여사는, 만약 자신이 승리를 할 경우, 이 주를 쉐어가 설치 임무를 맡게 될 에너지 모델 지역으로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그녀는 5년 동안에 에너지 절약을 실천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개발하고, 두 개의 기존 핵발전소를 폐기하며, 석탄을 이용하는 발전소의 건설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줄 예정으로 있다.


미래에 행해질 선택에서 국가는 그 역할을 재발견하고, 장기적으로 공동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의 편에 서기를 강하게 요청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것도 압력단체들의 단기적인 이익에 굴복하지 않으면서 말이다. 미국 작가 리처드 하인버그는 최근 에너지 문제와 환경 문제를 다루고 있는 한 권의 저서를 출간했다. <<파티는 끝났다>>18)라는 제목은 의미심장하다. 왜냐하면 <<파티가 끝났다>>는 진단은 아주 정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으로 문제의 본질이 잘 파악된다면, 기후 온난화에 대한 도전은 인류 전체를 위한 좋은 기회일 수도 있다. 자동차 사용을 문제 삼는 것은 조용한 도시를 갈망하는 것과 같다. 핵과 화석 연료의 집중적 사용을 포기하는 것 역시 시민들이 참여하는 지역 에너지 모델을 개발하는 것과 같다. 전 세계를 통해 상품들의 이동의 빈도수를 줄이는 것은 지역 경제를 다시 활성화하는 길이고 또한 실업을 극복하는 길이기도 하다. 결국 기후 온난화에 맞선 투쟁은 세계 전체를 다시 아름답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일 수도 있는 것이다.


수 억 년 전부터 지구상에서 이루어졌던 기후의 역동적 균형은 비교적 잘 조절된 탄소 순환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마치 곡예사가 묘기를 부리는 것처럼 탄소는 고체상태에서 기체상태로, 생물계와 바다로부터 대기로 이동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의 균형은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 연료의 소비를 토대로 가능했던 산업혁명에 의해 무너졌다. 바다나 땅 속에 묻혀있던 수 백 억 톤에 달하는 탄소가 대기로 방출되었다. 또한 이로 인해 그 순환 과정에 포함되어 있었던 탄소양의 균형에 심각한 변화가 일어났다. 탄소가 재차 화석화되기 위해서는 수십 억 년의 긴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화석화된 탄소가 다시 대기 중으로 방출되기 위해서는 몇 십 년이면 족할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곡예사는 이와 같은 탄소 순환의 불균형을 어느 정도 시정하기 위한 수단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거대한 탄소 저장고인 생물계와 바다가 그것이다. 생물계와 바다는 대기 중에 퍼져 있는 탄소를 흡수한다. 즉 대지는 탄소를 끌어들이고, 또한 바다는 그것을 탄산염으로 만들어 침전시킨다. 이렇게 해서 생물계와 바다는 인류의 활동에 의해 대기로 방출되었던 탄소의 절반 정도를 벌써 흡수했다. 바로 이런 까닭에 생물계와 바다는 <<탄소의 샘>>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수단과 관련하여 하나의 문제가 제기된다. 그것은 바다 속에 포함된 탄소의 양이 기후 온난화...... 등등의 이유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바다의 온도 상승은 침전작용을 둔화시킬 수 있다. 특히 어떤 위도 선상에서는 침전물을 포함하고 있는 조류의 흐름(그린란드 부근과 와 태평양에서)을 완만하게 이루어지고 있거나 심지어는 이 조류의 흐름이 아예 생기지 않기도 한다.
더군다나 열대지방의 산림 파괴와 대지의 용도 변화(농작지 개간이나 도시화)로 인해 생물계의 탄소 보상 역할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기후 온난화로 인해 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확장되고 있는 사막화는 사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생물계(식물, 대지와 바다)는 우리 인류에 의해 배출되는 CO2의 양의 일부를 조절해준다. 하지만 그 양은 극히 제한되어 있다. 생물계의 작용을 통해 년 간 약 3~4기가톤(1기가=10억) 정도의 탄소가 자연적으로 순환되는 것으로 계산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재순환되는 탄소의 양은 탄소 순환의 교란이라든가 우리 인류의 손에 의한 생물계의 개간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기후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탄소의 샘>>의 기능을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근본적인 지구 온실화 가스의 배출량을 줄이는 것뿐이다.


기후 온난화로 인해 초래되는 위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는 가스의 집중 배출을 안정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 경우 생물계에 의해 재순환되고(3.2기가톤) 남는 탄소의 양을 정확히 측정하는 것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50년 동안 지구 온난화를 일으키는 전체 가스의 배출량을 1/4로 줄일 필요가 있다는 계산을 하게 된다. 따라서 제기되는 문제는 분할의 문제인 것이다. 각 나라마다 배출량을 1/4로 줄일 것인가? 아니면 개인당, 그리고 일년을 기준으로 배출하는 탄소 배출량(탄소 0.5톤, 즉 CO2 1.8톤이 제시되기도 한다)을 정할 것인가? 어쨌든 개발국들의 국민들이 더 큰 책임을 느끼고 도리를 다해야만 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개발도상국들(아시아, 남아메리카)들 역시 이와 같은 노력에 동참하는 것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 인간이라는 존재는 탄소 순환 과정의 일부를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존재가 야기 시키고 또 수동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사실로 인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실에 대해 아직까지 충분한 의식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만 할 것이다.

 

 

*유용한 사이트


* 지구 온난화에 대한 보고서:www.ipcc.ch/pub/online.htm


* 탄소 순환에 대한 설명: www.ggl.ulaval.ca/personnel/bourque/s3/cycle.carbonne.html


* 기후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프로그램:www.actioncarbonne.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