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 이상 / 144분 / 드라마 / 영국,미국,프랑스,이탈리아
다른 제목 : 챨리 채플린
감독 : 리차드 아텐보로
출연 :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찰리 채플린), 제랄딘 채플린(한나 채플린), 안소니 홉킨스(조지), 댄 애이크로이드(맥), 케빈 클라인(더글라스)
1962년, 73세의 찰리 채플린Charles Chaplin: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분)은 스위스의 자택에서 자신의 자서전 편집을 맡은 작가 조지 헤이든(가상의 인물, George Hayden: 안소니 홉킨스 분)에게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준다. 영국 뮤직홀 배우 부부의 아들로 태어난 채플린은 건달이다시피한 아버지가 어려서 죽고, 어머니(Hannah Chaplin: 제랄딘 채플린 분) 마저 정신 이상으로 어려서 헤어지게 된다. 17세에 당시 영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리던 프레드 카노(Fred Karno: 존 토우 분) 극단에 입단, 인기를 끌면서 헤티 켈리(Hetty Kelly: 모이라 켈리 분)라는 극단 배우를 사랑하게 된다.
당시 헐리웃에는 단편 희극 영화를 주로 만들며 코미디왕으로 불리는 케스턴 영화사의 감독 겸 프로듀서 맷 세네트(Matt Sennett: 댄 애크로이드 분)가 단편 희극에 쓸 영국 배우를 찾다가 채플린을 스카웃하게 되어 미국으로 오게 된다. 채플린은 당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영국인들 모습을 재미있게 분장하여 그의 전설이 시작된다. 1914년 그는 캐스턴 영화사에서 짧막한 희극 영화를 35편이나 찍으면서 대중의 우상으로 떠올랐고, 이듬해에는 형 시드니(Sydney Chaplin: 폴 라이스 분)가 영국에서 건너와 채플린의 메니저가 되면서 영화사로 옮겨 단편 영화들에 직접 감독까지 겸하게 된다. 1919년 채플린은 그리피스, 매리 픽포드(Mary Pickford: 마리아 핏틸로 분), 더글러스 페어뱅크스(Douglas Fairbanks: 케빈 클라인 분) 등과 함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사를 만든 뒤에 장편영화 제작에 착수하는데.
[스포일러] 그는 16살의 여배우 밀드레드 해리스(Mildred Harris: 밀라 조보비치 분)와 결혼하나 곧 이혼하고, 다시 16살의 여배우 아내 리타 그레이(Lita Grey: 데보라 무어 분)와 재혼한다. 하지만 그녀도 떠들석한 헐리우드의 여배우에 불과했고 이혼 후 재산 분쟁으로 공개도 하지 못한 영화 필름들을 그녀에게 빼기지 않기 위해 고생을 하기도 한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작품에 몰두해 광대들의 삶을 그린 <서커스>와 하층 빈민들의 사랑과 애환을 웃음과 눈물로 그려내 채플린의 작품 중 가장 감상적이고 인간미가 넘치는 따뜻한 작품 <시티 라이트>를 만든다. 식당에서 우연히 에드나 퍼바이어스(Edna Purviance: 페네로프 앤 밀러 분)라는 여배우를 알게 되어 <이민선>, <키드> 등 자신의 영화에 많이 출연시키기도 했다.
한편, 1933년에 채플린은 자신의 대표작이자, 2차대전 뒤 냉전적 기운이 미국 전역을 휩쓸 때 현대 문명의 기계 만능주의와 인간 소외를 날카롭게 풍자한 <모던 타임스>를 준비한다. 이때 그는 당시 19살이었던 폴래트 고다드(Paulette Goddard: 다이안 레인 분)를 만나 비밀 결혼식을 올린다. 1940년에 만들어진 <독재자>는 다분히 나찌를 공격 목표로 한 영화였으나, 그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던 후버 FBI 국장(J. Edgar Hoover: 케빈 던 분)에 의해 좋은 빌미가 된다. 1942년 채플린은 세 번째 아내였던 고다드와 헤어지지만 후에도 두 사람은 좋은 관계를 지속한다. 채플린은 54의 나이로 극작가 유진 오닐의 딸인 18살 된 우나 오닐(Oona ONeill: 모이라 켈리 분)과 결혼을 한다.
우나 오닐은 채플린 최후의 순간까지 지켜본 일생의 반려자로 채플린의 가장 힘든 시기를 같이 하게 된다. 채플린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가한 <살인광 시대>로 인해 곤경에 처하고, 매키시즘 선풍에 휘말린 50년대 말까지 두문불출하다가 <라임 라이트>의 초연이 있는 고국 영국으로 떠났다가 재입국이 금지당해 스위스의 제네바 호반에 외딴 집에서 말년을 보내게 된다. 1972년 4월, 아카데미의 초청으로 20년 만에 다시 미국 땅을 밟게 된 그는 미국 영화예술 아카데미가 헐리우드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에게 바치는 특별상을 수상한다.
영화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영화계의 거인 찰리 채플린의 일대기를 다룬 전기 영화이다. 그의 영화사에서의 업적이나, 그의 영화 활동에 촛점을 맞추지 않고, 그의 사생활이나, 그의 작품활동에 얽힌 야사와 같은 이야기들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진행해 나간다.
영국에서의 채플린의 어린시절에서부터, 맥 세넷트와 함께 영화를 만들었던 초기, 그리고 전세계적인 스타가 되는 과정, 스캔들에 이르기까지의 그의 일생을 조망한다. 채플린은 1952년 미국의 암흑기라 할 만한 메카시즘의 발흥으로 미국을 떠나게 된다.
<주라기 공원>에서 해먼드 역을 맡기도 했던 영국 출신의 배우이자 전기영화 <간디>로 명성을 얻은 감독이기도 한 리차드 아텐보로가 <간디>에서의 명성을 되 찾고자 야심차게 기획한 찰리 채플린의 전기영화이다. 하지만 1983년 아카데미에서
찰리 채플린의 딸인 제랄딘 채플린은 그녀의 할머니이자 찰리 채플린의 어머니인 한나 채플린 역을 맡았다.
찰리 스펜서 채플린(Charlie Spencer Chaplin)은 72년 아카데미 특별상(Honorary Award)을 수상했다. 그리고 며칠 후 헐리웃을 떠나 스위스의 집으로 돌아갔다. 1975년 채플린은 버킹검 궁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기사 작위를 수여받고 찰리 채플린 경(Sir Charles Chaplin)이 되었다. 채플린은 54년동안 81편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그 중 67편은 30살이 되기 전에 완성했고 죽는 순간에도 새 영화를 구상 중이었다. 채플린은 88살이 되던 해인 1977년 크리스마스날 스위스의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다.
채플린의 어머니 한나 채플린(Hannah Chaplin)은 아들이 태평양 해안가에 마련해 둔 집에서 생의 마지막 일곱해를 보냈다.
채플린의 형 시드니 채플린은 2차 대전이 끝난 후 프랑스에 거주하며 찰리가 있는 스위스에서 여름을 보내곤 했다. 그는 찰리의 76세 생일에 사망했다.
찰리에게 처음 일을 준 프레드 카노(Fred Karno)는 1926년에 파산했고 15년 후 무일푼으로 죽었다.
찰리의 첫사랑이었던 헷티 켈리(Hetty Kelly)는 정치가와 결혼했으나 25살에 사망했다. 찰리의 영화 대부분은 그녀에게서 영감을 얻어 창조되었다.
죠지 헤이든(George Hayden)은 가상 인물이지만 채플린은 1964년 실제로 자서전을 출판했으며 이 영화는 부분적으로 그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코미디왕 맥 세네트(Mack Sennett)의 시대는 발성 영화의 출현과 함께 막을 내렸다. 세간에서 잊혀질 무렵인 1937년 그는 아카데미 특별상을 수상했다.
메이블 노먼드(Mabel Normand)는 1922년 한 영화 감독의 살인 사건을 둘러싼 마약과 섹스 스캔들에 연루되어 다시는 연기를 하지 않았다.
에드나 퍼바이어스(Edna Purviance)는 30편이 넘는 채플린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그녀가 은퇴하자 채플린은 그녀에게 평생 연금을 지급했다.
1919년 찰리, 매리 픽포드(Mary Pickford), D.W. 그리피스(D.W. Grifith)와 함께 유나이트 아티스트(United Artists)를 창립한 더글라스 페어뱅크스(Douglas Fairbanks)는 매리와 1936년 이혼하고 3년 후 자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채플린과 함께 헐리웃에서 가장 비싼 출연료를 받았던 미국의 연인(Americas Sweetheart) 매리 픽포드(Mary Pickford)는 86세에 생을 마감했다.
채플린의 첫 번째 아내 밀드레드(Mildred Harris)는 결국 싸구려 나이트클럽을 전전하다가 43세에 알콜중독으로 사망했다.
50년 가까이 FBI를 지휘했던 에드가 후버(J. Edgar Hoover)는 유력 인사들을 조정하기 위해 부하들을 시켜 불법적으로 그들의 사생활을 캤다. FBI의 채플린 파일(Charlies FBI file)은 무려 1900 페이지에 달했다.
리타 그레이(Lita Grey)는 채플린의 두 번째 아내였다. 이 영화가 완성되었을 때 리타와 그녀의 둘째 아들 시드니(Sidney Jr.)는 생존해 있었다.
채플린의 세 번째 아내 폴렛 고다드(Paulette Goddard)는 은퇴 후 남편과 함께 스위스로 이주, 채플린 부부와 가까운 데서 살았다.
조엔 배리(Joan Barry)는 대부분의 생을 정신 병원에서 보냈다. 채플린은 아버지도 아니면서 조앤의 딸 캐롤 앤(Carol Anne)이 21살이 될 때까지 부양해야 했다.
조셉 스캇(Joseph Scott) 변호사의 법정 진술은 당시 자료를 참고로 했다. 혈액 검사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채플린의 양육권 소송은 사법 사상 중대한 오심 사례로 간주된다.
우나 오닐(Oona ONeill Chaplin)은 채플린과 결혼할 당시 18살이었고 8명의 아이를 낳았고, 채플린이 추방당하자 그녀 역시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우나는 채플린 보다 14년을 더 살았고 1991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남편의 죽음을 슬퍼했다.
세기의 희극 천재 찰리 채플린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그의 전기 영화로, 그가 활동했던 당시의 고증을 재현하였고, 채플린과 주변 인물 등 실존 인물들을 세심히 묘사한 대작이다. 특히 채플린이 헐리웃에 크나큰 영향을 끼친 만큼 영화의 배역진이 화려하다. 채플린을 연기하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부터 댄 애크로이드, 제랄딘 채플린(채플린의 실제 딸), 케빈 던, 안소니 홉킨스, 밀라 조보비치, 모이라 켈리, 케빈 클라인, 다이안 래드. 페네로프 앤 밀러, 낸시 트레비스, 제임스 우즈, 데이빗 듀코브니 등등, 호화로운 조연진이 등장한다.
희극을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이 셰익스피어라면 이를 완성시킨 사람이 채플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채플린은 한 세기를 풍미했던 희극인이었다. 그는 1889년 런던 빈민가에서 영국 뮤직홀의 단골 가수였던 아버지와 유랑 극단의 여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채플린의 첫번째 데뷔는 그가 5살 되던 해, 어머니가 기력이 쇠신하여 노래를 부를 수 없게 되자 어머니를 대신하여 노래를 부름으로써 이루어졌다. 그날 밤 그에겐 첫무대가 이루어졌지만 어머니에겐 마지막 무대가 된 것이다. 1913년 의붓형인 시드니를 따라 풍자 희극 극단에 들어가 영국, 유럽을 순회 공영한 뒤 미국에 들렀다가 인기 코미디언이 되었다. 그 후 채플린은 미국 최고의 계약금을 받는 연기자이자 만드는 작품마다 대성공을 거두는 유능한 제작자로 독보적 존재가 된다. 그러나 1950년, 국제 정치가 냉전으로 돌입하자 채플린의 사회 비판 의식은 그가 공산주의자가 아니냐는 억측을 낳았으며 또한 나이 차이가 많은 여배우와의 스캔들이 법정 시비로 비화되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급기야 1953년 영국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미국무성이 그의 입국을 거부함으로써 그는 스위스로 건너간다. 이 영화의 클라이막스는 채플린이 1972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20년만에 미국의 팬들 앞에 다시 등장하는 장면이다. 관객들의 기립 박수를 받은 채플린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감동적이다.
기술적으로 아직 개발 단계에 있었던 시기의 각종 영화제작 현장의 충실한 재현이 흥미롭다. 당시의 헐리우드 모습과 촬영 현장을 그대로 재현하고 그 영화제작 환경과 영화계 종사자들의 갖가지 애환과 에피소드들을 진솔하게 전개시키고 있는 것이다. 맥크 세네트의 무성 영화 초기 시절 슬랩스틱 코미디 명품들의 면모라든가 더글러스 페어뱅크스, 매리 픽포드 등 그와 함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United Artists) 영화사를 함께 설립하게되는 영화인들의 이야기들이 채플린의 영화적 성장과 함께 그려지고 있다. 또한 그가 예술 지향의 집념과 자기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 한다는 정신으로 나치, 에드가 후버 FBI 국장, 맥카시 청문회 등과 충돌하면서도 어디까지나 작품으로 승부하는 외곬의 예술 인생이 잘 부각되고 있다. 아쉬운 것이 있다면, 그의 인간적 고뇌에 더 중점을 두기 시작하는 후반부부터 이야기 전개가 점점 쳐지는 느낌이 들었다. 특히 그가 만년에 겪은 정신적, 인간적 고뇌를 너무 안일하게 다루지 않았나 한다. 그가 맥카시 청문회의 선풍이 가라앉고 많은 미국의 국민들과 영화인들이 그의 귀국을 애타게 요청을 하는데에도 불구하고 72년까지 미국을 찾지않는 배경이 거의 부각되지를 않고 있다.
채플린 역의 로버트 다우니 쥬니어(Robert Downey Jr.)는, 전부터 채플린과 닮았다는 평을 들었고 그의 흉내도 잘 내었기 때문에 거의 당연하다시피 캐스팅이 되었다고 한다. 최근에는 <베니와 준(Benny & Joon)>(93)에서 죠니 뎁이 빵 조각에 포크를 꽂아 장난을 하는 그의 흉내를 아주 멋지게 흉내낸 바가 있는데, 다우니도 이 영화에서 바로 그 장면을 재현해내고 있다. 또한 그는 채플린 특유의 몸짓과 표정을 거의 완벽하게 재현해내고 있는데, 오히려 인간 채플린을 연기하는 부분보다 배우 채플린을 다시 연기하는 부분들에서 더욱 돋보인다. 이 영화의 제작 과정에 깊은 관여를 한 제랄딘 채플린도, 그의 연기에 크게 만족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는 19세부터 83세까지 채플린을 연기하여 아카데미 남우주연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했다.
영화사의 한 단면을 충실하게 재현한 것과 함께 당시의 인물들을 연기하는 기라성같은 배우들의 얼굴과 그들이 연기하는 인물들이 영화사와 채플린에게 있어서 가지는 의미를 찾아보는 것 또한 영화팬들에게는 커다란 즐거움을 준다. 그의 어머니 한나 채플린(Hannah Chaplin) 역은 채플린의 딸인 제랄딘 채플린(Geraldine Chaplin). 우리에게는 <닥터 지바고(Doctor Zhivago)>(65)에서 지바고의 부인 역으로 알려졌고, 지금은 유럽에서 주로 남편인 스페인의 카를로스 사우라(Carlos Saura) 감독과 함께 활동 중이다. 그녀는 자기 할머니의 역을 하는 셈인데, 이런 것이 또한 연기의 매력이다. 그녀는 이 영화의 제작에도 아주 열성적인 도움을 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첫사랑 여인 헤티 켈리(Hetty Kelly)와 네번째 아내 우나 오닐(Oona ONeill)의 1인 2역을 하는 모이라 켈리(Moira Kelly)는 <사랑은 은반 위에(The Cutting Edge)>(92)에서 보여준 귀염성있는 모습은 여전하다. 우나 오닐은 현대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극작가로 노벨 문학상도 받은 유진 오닐의 딸로 채플린과 불과 19살 때 결혼을 했으나, 그와 만년을 함께 한 여인으로 알려지고 있다. 제랄딘은 그녀가 낳은 첫 아이였다. 그녀가 1인 2역을 하는 것은 채플린이 첫 사랑 헤티의 흔적을 우나에게서 찾으려 했다는 해석과 통하는 캐스팅이라 하겠다.
첫번째 아내 밀드레드 해리스(Mildred Harris)는 나이 16살 때 채플린과 결혼을 했는데, 밀라 조보비치(Milla Jovovich)가 그녀역을 맡아 데뷰작인 <블루 라군 2(Return To The Blue Ragoon)>(91)에서와 마찬가지로 역시 연기보다는 몸으로 승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채플린이 나이 어린 여성을 좋아했던 것은 전기 작가들에 의해서 여러가지로 해석되고 있는데, 성적인 컴플렉스라는 견해 보다는 불우했던 어린 시절의 영향으로 보는 경향이 많다. 채플린과 같은 이유로 모성에 굶주렸던 클라크 게이블(Clark Gable)은, 정반대로 주로 연상의 여인들과 결혼을 했던 것과는 아주 대조적이라 하겠다. 두번째 아내 리타 그레이(Rita Grey)도 아주 어린 나이에 그와 결혼을 했다고 하는데, 그녀 역은 데보라 마리아 무어(Deborah Maria Moore)가 한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이름 탓으로, 제법 비중있는 역할인데에도 크레딧 화면에서 아주 괄시를 받고 있었다. 아마 <샷 건(Into The Sun)>(91) 같은 3류 영화들만 출연한 이유일 것이다.
세번째 아내 폴레트 고다드(Paulette Goddard)는, 미국 최초로 로케트 발사에 성공한 과학자 고다드 박사와 같은 집안이라고 하는데 뛰어난 연기력과 이지적인 지성미를 보여준 여배우였다. 영화에도 나오지만, 그녀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39)의 스칼렛 오하라 역으로 상당히 유력한 후보들 중에 올랐었다. 채플린의 <모던 타임스>, <독재자> 외에, <정복되지 않는 사람들(Unconquered)>(47)을 비롯한 많은 작품들이 우리에게도 소개가 되었다. 그녀는 채플린과 이혼한 후에 <서부전선 이상없다>, <개선문> 등으로 유명한 작가 레마르크와 재혼했다. 그녀 역은 다이안 레인(Diane Lane)이 맡았는데, 전부터 그녀는 폴레트와 무척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어왔었다. 그녀는 전 부인과는 달리 이혼 후에도 채플린과 좋은 관계를 계속 유지했다.
채플린과 동거를 하다가, 헤어진 후 아이를 낳고서 그에게 친자 확인 소송을 벌여 승소를 했던 조안 배리(Joan Barry) 역은 낸시 트래비스(Nancy Travis)가 한다.
채플린의 영화들에서 가장 많이 상대역을 했던 에드나 퍼비언스(Edna Purviance)는, 채플린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여배우로 수 많은 명작들에서 그와 함께 하였으나 채플린은 그녀와는 호흡이 잘 맞는 동료 이상은 아니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나 채플린의 작품 이외에는 전혀 배우로서의 좋은 작품을 남기지 못했던 그녀를 위해 그가 평생동안 뒤를 돌보아주었다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남기고 있다. 그녀의 역은 페넬로피 앤 밀러(Penelope Ann Miller)가 하는데, 평소의 이미지로 볼때 가장 의외의 캐스팅이 아니었나 한다. 그러나 그녀는 전작들에서 보여준 현대적이고 깔끔한 모습들을 일체 털고서 약간은 촌스럽지만 자신만만한 배우지망생으로 변신을 보여주었다.
무성영화 시대 활극영화의 영웅으로 채플린과 함께 U.A. 사를 창립하게 되는 더글러스 페어뱅크스(Douglas Fairbanks)는 다소 희화적으로 그려져있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 역할을 케빈 클라인(Kevin Kline)이 하고 있다.
무성영화와 토키 초기에 걸쳐서 최고의 인기를 자랑하며 미국의 연인이란 칭호를 들었던 매리 픽포드(Mary Pickford)는, 페어뱅크스와 한때 결혼도 했었다. 비교적 짧게 소개되는 그녀 역은 마리아 피틸로(Maria Pitilo)라는 생소한 여배우가 맡았다.
채플린, 페어뱅크스, 픽포드와 미국 영화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미국 무성영화의 최고 거장 D.W. 그리피스 감독(D.W. Griffith)의 4명이 함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를 창립하게 된다. 그를 미국 영화계에 데뷔시킨 은인이랄 수 있는 맥크 세네트(Mack Sennett)는, 초창기 무성영화 시절 슬랩스틱 코미디 영화의 수 많은 작품들을 만들어낸 명 제작자이자 감독이다. 그가 채플린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 나오는 경찰차의 추적 장면이라든가 채플린의 독특한 재치가 처음 발휘되는 결혼식 사진 촬영 장면 같은 것이 나오는 영화들은 전부 무성 영화 시절의 명작 코미디들 중 하나이다. 그의 역할은 코미디 배우 댄 애크로이드(Dan Aykroyd)가 한다.
세네트의 아내로 그의 영화에 출연했고 채플린과 의견 충돌을 일으켜 그가 세네트를 떠나 독립을 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한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 메이블 노먼드(Mabel Normand) 역은 마리사 토메이(Marisa Tomei)가 맡았다.
이밖에 그의 형 시드니 역으로 폴 라이스, 가상 인물인 그의 전기를 쓰는 작가 죠지 헤이든 역으로 안소니 홉킨스, 친자확인소송의 조안 배리의 변호사로 제임스 우즈, FBI의 대부인 J. 에드가 후버 역으로 케빈 던, 그를 영국서 처음 무대에 발탁해준 프레드 카노 역으로 죤 소우 등이 있다. 그리고 잠깐 지나가는 인물들로는 홀쭉이와 뚱뚱이(Laurel & Hardy)의 스탠 로렐(매튜 코틀 분), 서부 쑈의 인기스타 브롱코 빌리(리차드 패스트 분), 신문 왕으로 걸작 영화 <시민 케인(Citizen Kane)>(41)의 모델이 된 랜돌프 허스트(잭 리첼 분)와 그의 아내 마리온 데이비스(헤더 맥네어 분) 등의 얼굴이 보인다. written by 홍성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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