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피스토퍼 말로의 작품
위반과 욕망의 미학크리스토퍼 말로의 대표적인 희곡 작품들, 「탬벌레인 대왕Tamburlaine the Great」, 「몰타의 유대인The Jew of Malta」, 「파우스투스 박사Doctor Faustus」는 영국뿐만 아니라 서구 유럽 문화의 전성기였던 르네상스 시기가 인간의 사고와 가치관에 어떤 강렬한 변화를 가져왔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즉 중세의 봉건적, 신 중심, 계급 중심의 세계관과 새롭게 대두한 자본주의, 인간 중심, 개인의 능력 위주의 세계관이 대립, 갈등, 공존하였던 르네상스 시기에, 말로는 그 혼란스러우면서도 격정적이었던 사회가 추구하였던 권력과 지식, 부의 욕망을 대변하는 비극적이면서도 영웅적인 인물들을 창조함으로써 영국 문학사에서 놀라운 업적을 이루었다.
하지만 그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이라는 이유로 그 빛이 많이 가려졌다. 셰익스피어의 걸작들이 르네상스 시기 영국을 대표하는 희곡들로 평가받음으로써 그의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그 가치가 평가 절하된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할 점은 셰익스피어가 존재하게 된 배경에는 크리스토퍼 말로가 있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극작가로서 성공하기 전에 이미 당시 극장가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었던 말로의 주요 작품들(이 책에 번역된 작품들)은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상상력과 작품 세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말로의 극단적인 작품 세계가 있었기에 셰익스피어는 그 활동 범위가 더욱 넓어졌으며, 또한 그와의 경쟁을 통해 더욱 분발할 수 있었던 것이다
20대 초반에 영국 드라마 역사에서 가히 혁명적이라고 할 만한 놀라운 작품들을 발표한 말로가 29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요절하지 않았더라면 영국의 문학사는 다시 쓰였을지도 모른다. 그의 작품들은 르네상스 시기뿐만 아니라 현대에도 얼마든지 우리에게 개인의 삶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깨우칠 수 있는 걸작들이다. 더구나 말로의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중요한 특징은 바로 실험 정신으로, 그는 반복과 중복을 거부하고 각 작품마다 항상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탬벌레인 대왕」의 경우 주인공 탬벌레인은 극단적으로 대립되는 평가가 가능할 정도로 모호한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탬벌레인은 자신과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 분명한 확신을 갖고 있으며, 도덕적으로도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흔들림이 없다. 그는 패배를 모르는 정복자로서 죽음을 맞이할 때조차, 아들들과 추종자들의 애도 속에서 하늘에서의 영원한 권좌에 대한 확신을 갖는다. 하지만 이 극의 매력은 그러한 탬벌레인의 확신에 찬 영웅적 언행의 타당성에 대해 우리가 결코 확신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탬벌레인의 적들은 그를 천하고 야만적이고 잔인하며 야비한 도둑이자 찬탈자, 괴물, 악마로 부르지만, 또 다른 순간에는 그의 놀라운 능력에 경이를 표하고 그를 지지하기도 한다.
탬벌레인에 대한 이러한 긍정적이면서도 부정적인 모호한 태도는 비평가들의 시각에서도 드러난다. 어떤 비평가들은 그의 적들이 내리는 평가는 잘못된 것이고, 작가는 우리가 탬벌레인 자신의 확신을 받아들이기를 원한다고 주장한다.
다른 비평가들은 표면적으로는 탬벌레인이 매력적인 존재로 묘사되지만 그의 거만한 자기 과장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또 한편으로는 작가가 위의 상반되는 견해들 중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으며, 혼합과 변화를 추구했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몰타의 유대인」은 주인공 바라바스가 끊임없이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 탐욕의 화신이기에, 그 극단적인 상상력에서 「탬벌레인 대왕」과 어떤 유사성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극의 표현 방식이나 스타일은 많이 다르다. 「탬벌레인 대왕」이 화려한 대사와 볼 거리를 제공하는 작품인 반면, 「몰타의 유대인」은 볼 거리가 거의 없으며 액션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그리고 이러한 액션의 강조는 주인공의 내면 세계를 소홀히 하는 원인이 되어 이 극을 비극보다는 멜로드라마나 소극에 가깝게 만든다. 하지만 극장에서의 성공 이상으로 이 극이 갖는 중요한 의미는 사회에 대한 강하면서도 일관된 풍자적 비판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이 작품에는 겉으로는 숭고한 종교적 가치들을 추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물질주의와 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사회에 대한 통렬한 비난이 담겨 있다. 성서에 등장하는 유대인들이 예수 대신 십자가의 형벌에서 구한 인물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유대인 주인공의 운명은 기독교가 지배하던 당시 르네상스기 영국 사회에서 이미 정해진 것이었다. 극의 표면에 드러난 질서는 바로 사악한 유대인과 터키인에 대한 기독교인의 승리다. 그러나 결말이 보여주는 아이러니와 극의 전반적인 효과는 이러한 표면적인 결과에 대한 확신을 모호하게 만든다. 결국 말로는 이 작품을 통해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도덕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점을 분명하게 암시해준다.
놀라운 천부적 재능을 지닌 「파우스투스 박사」의 주인공 역시 그 극단적인 상상력에서 탬벌레인과 바라바스를 닮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추구하는 위대한 존재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파우스투스가 처음에 열망했던 것과 영혼을 판 후에 그가 이루는 것과의 차이에서 분명해진다. 신학과 철학, 법학 등 세상의 모든 학문을 모두 섭렵하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이 없기에 루시퍼와 계약하여 현세에서 가장 경이로운 존재가 되었지만, 파우스투스는 신과 같은 존재가 될 수는 없었고 그가 얻은 것들은 아름다운 헬레네로 모습을 바꾼 악마처럼 허구에 불과하다. 이 극에 대한 평가는 대조적이다. 즉 우주의 섭리에 대항하는 파우스투스의 반란을 인간 정신의 위대성의 증거로 보고자 하는 시도들이 있는가 하면, 이 극이 인간의 한계와 그 한계를 부인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물론 작품의 전반적인 내용과 구조를 볼 때, 후자의 견해가 훨씬 무게를 지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파우스투스의 비극은 의미심장하고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 파우스투스가 종교적인 인물이었고 결말 부분에서 그가 겪는 고뇌가 너무나도 깊기 때문에, 그가 받게 될 영원한 저주는 더욱 비극적으로 느껴진다.
이처럼 말로의 주인공들은 작가 자신의 삶처럼 강렬하고 극단적이다.
그들은 동시대의 시인 스펜서의 주인공들과는 정반대로, 자신들의 욕망을 제한하고 억압하는 것들을 깨트리려고 애쓰는 인물들이다
말로는 인간의 정체성은 정치적, 종교적, 사회적 질서가 위반되는 순간에 형성된다고 본다. 이러한 시각이 반영된 말로의 작품들은 후기 구조주의의 지평 위에서 볼 때, 매우 현대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후기 구조주의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이성과 권력, 질서의 틀 안에서 구성되고 만들어진다고 보며 인간을 그러한 권력과 질서의 틀에서 해방시키고자 노력한다. 이러한 현대의 사상적 흐름을 미루어 볼 때, 말로의 작품들은 르네상스기라는 독특한 시대적 상황을 통해 현대 사회가 지향하는 인간 존재의 해방과 권력의 연관 관계를 새롭게 비추어볼 수 있는 훌륭한 거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저자 및 역자 소개
크리스토퍼 말로, Christopher Marlowe
크리스토퍼 말로(Christopher Marlowe, 1564∼1593)
영국 캔터베리 출생.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였고, 셰익스피어와 함께 르네상스 시기 영국의 대표적인 극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기독교가 지배하던 당대 사회에서 무신론자로 공격받다 체포당하기도 했으며, 술집에서 다툼으로 인해 칼에 찔려 29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하였다.주요 극작품으로는 「탬벌레인 대왕」 「몰타의 유대인」 「파우스투스 박사」 「에드워드 2세Edward II」 「파리의 대학살The Massacre at Paris」 등이 있으며, 주요 설화시로 「히어로와 리앤더Hero and Leander」가 있다.
출처: 문학과 지성사
【해설】
영국의 극작가 C.말로의 대표적 비극. 1588∼1592년에 집필하였으며, 파우스트 전설에서 취재한 것인데 괴테의 <파우스트>와는 달리 소극적(笑劇的)ㆍ풍자적 부분도 많다.
'파우스트 전설'은 괴테의 시극(詩劇), 토마스 만의 소설, 구노와 베를리오스의 음악 등 많은 예술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파우스트란 인물은 15세기말에서 16세기에 걸쳐 실존했던 게오르그 파우스트라는 연금술사와 전설적 인물 요하네스 파우스트라는 마술사의 행적을 종합하여 만들어낸 인물이다.
백과(百科)의 학문에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파우스터스가 마법으로 메피스토펠레스를 부르고 영혼을 악마에게 팔아버리는 조건으로 24년간 극한적 욕망을 한껏 부린다는 것이 그 줄거리인데, 특히 헬렌의 환상을 보는 장면과 지옥으로 떨어져가는 종막이 압권이다. 르네상스인의 영광과 비참을 상징하는 작품이다.
【줄거리】
『독일의 철학자 파우스터스 박사는 논리학ㆍ의학ㆍ법학ㆍ신학 등의 학문 탐구에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그는 대신 마술에 흥미를 느껴 숲으로 둘어가 주문을 외며 메피스토펠레스(메피스토라고도 함)를 불러낸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자기가 24년간 파우스터스 박사의 시중을 들고 박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는 대신 박사의 영혼을 마왕 루시퍼에게 팔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악마와의 흥정을 받아들인 파우스터스 박사는 미술을 몸에 익혀 용이 끄는 마차를 탄 채 하늘을 조사하고, 로마 법왕에게 마술로 장난을 치기도 한다. 점차로 명성이 자자해지자, 그는 독일 황제의 궁정에 초대되어 재주를 과시하기도 한다. 또한, 그리스 미녀 헬렌을 애인으로 삼아 관능적 쾌락에 한껏 빠진다. 그러나 어느덧 악마와의 계약 기간이 끝나버리자 파우스터스 박사는 절망과 후회의 독백을 남기고는 죽어버린다.』
【감상】
악마와의 계약으로 스스로의 영혼을 파멸시켜 버리는 내용의 비극 작품이다. 중세와 르네상스기(期)의 중간에 서 있는 한 지식인의 고뇌를 다룬 것으로, 인간이 지식을 절대적인 수단으로 믿고 진리에 도달하려고 하면, 결국은 파멸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주인공 파우스터스 박사는 독일의 저명한 신학 연구가로 명망있는 학자였으나, 자만심에 빠져 신에게 도전하기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넘긴다. 그러나 영혼과 바꾸어 얻은 그의 전지전능한 힘이 사실은 자신의 환상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된다. 점차 절망과 회한으로 괴로워하던 파우스터스 박사는 고통 속에 죽어간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터스 박사와의 계약 기간이 끝난 후 그의 영혼을 빼앗아 가는 악마이다. 그러나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이 악마는 현대적 지성을 갖춘 악당으로 등장한다. 따라서, 처음에는 악마도 신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파우스트를 유혹하여 파멸시키려 하다가 결국은 그를 구제해 준다.
이 말로의 <파우스터스 박사>는 ‘파우스트 전설’을 문학화한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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