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세계/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시 모음)

[스크랩] 1.파블로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20.`

ddolappa 2008. 12. 24. 07:08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중


           20. 오늘 밤 나는 쓸 수 있다.

                                                      파블로 네루다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이를테면 이렇게 써야지 '밤은 부서지고

  저 멀리서 별들은 파랗게 떨고 있다'라고

 

  밤바람은 공중에서 원을 그리며 노래하고

  오늘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쓸 수 있다.

  나는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도 가끔 나를 사랑했다.

 

  오늘 밤과 같은 밤에 나는 그녀를 가슴에 품고

  가없는 하늘 아래서 수없이 그녀와 입을 맞추곤 했지.

 

  그녀는 나를 사랑했고 나 역시 그녀를 사랑했지

  깊고 커다란 그녀의 눈을 사랑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지.

 

  정말이지 나는 오늘 밤 가장 슬픈 시를 써야겠다.

  그녀는 내 곁을 떠났다고 생각하면서

  그녀를 잃었다고 느끼면서

 

  거대한 밤에 귀를 대고 있노라면 

  그녀가 없는 이 밤은 더욱 거대하다.

  그리고 목장에 이슬이 내리듯 내 영혼에 시가 내린다.

 

  내 사랑이 그녀를 붙들지 못했대서 무슨 대수인가.

  밤은 부서지고 그녀는 내 곁에 없다.

 

  이게 전부다 먼 데서 누가 노래하고 있다 아주 먼 데서

  그녀를 잃은 내 영원은 공허하다.

 

  그녀 곁으로 가기라도 하려는 듯

  나의 눈길은 그녀를 찾고 있다.

  내 마음도 그녀를 찾고 그러나 그녀는 내 곁에 없다.

 

  그때와 똑같은 밤이

  그때와 똑같은 나무를 하얗게 드러내는데

  우리는 우리 두 사람은 그때와 같은 사람이 아니다.

 

  단연코 나는 지금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아, 그러나 나는 얼마나 그녀를 사랑했던가.

  나의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 닿기 위해 바람 속을 헤매고 있다.

 

  딴 남자의 딴 남자의 것이 되어 있겠지.

  지난 날 나의 키스도

  그 목소리도 해맑은 그 육체도 무한한 그 눈도

 

  단연코 나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사랑하고 있는지도 몰라

  사랑은 이다지도 짧고 망각은 이다지도 긴 것인가.

  오늘 밤과 같은 밤에 나는 그녀를 가슴에 안고는 했다.

  그녀나 그녀를 잃은 나의 영혼은 공허하다.

 

  그녀가 내게 남긴 이 아픔이 부디 마지막 아픔이 되기를

  그녀에게 쓰고 있는 이 시가 부디 최후의 시가 되기를

출처 : 이혜령 시인
글쓴이 : 푸른 사막의 흰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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