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행으로 동맹을 맺었다"
"이 땅에서 바로 이 시간에 '행복하다' 믿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다."
"'난쏘공'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철거민의 집을 방문한 날이었다. 식사라도 같이 하자며 국을 끓여 먹는데 철거반이 퉁 하고 밀어붙였다. 그래도 그때는 망치, 큰 해머가 전부였다. 그때도 그렇게 충격을 받았는데…. 30년 후면 뭐가 발전이 돼 있어야 했는데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난쏘공 쓸 때, 미래에는 이런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이런 슬픔, 불공평, 분배의 어리석음, 이런 정치로는 미래가 깜깜할 수밖에 없다, 이대로 가면 벼랑 끝을 향해 가는 것이다, '난쏘공'은 이 선을 넘으면 위험하다, 벼랑으로 떨어진다는 표시였다.
그런데 30년 동안 발전했다며 오늘에 다다랐다. 오늘은 21세기의 어느 날이다. 미국에서 시작된 경제 위기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한국도 굉장히 어려움에 처해 있다. 무엇으로 극복할 줄 모른다. 정치가, 경제가가 극복하는 방법은 한 가지다. 가난뱅이에게 고통을 넘겨줘버리는 것이다.
한국의 가난뱅이는 경제를 위해서 희생을 치뤄야 되는 것이 싫었다. 왜 가난뱅이만 두들겨 맞고, 희생을 치르고, 잘사는 권력층은 이 세상에서 최고로 행복한 사람이 되어서 행복을 누리고 좋은 나날을 보내야 하나.
작년에 말했다. 오늘날 한국에서 행복해 하는 자는 다음 두 부류 중 하나다, 하나는 도둑이고, 하나는 바보라고. 지금도 취소할 생각이 전혀 없다. 한국이 존재하기 위해서 어떤 사람이 고생하고 있나. 비정규직 850만, 농민 300만이 있다. 지금까지 버텨온 건 착취의 방법이 달라졌기 때문에 가능했다.
초기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만 잘 지키면 모든 게 잘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근로기준법이 존재하나 마나다. 비정규직이라는 것 상상도 못한 것이다. 200만 원 받던 사람에게 100만 원 받으라는 거다. 100만 원 받던 사람들은 나가라고 한다. 어제 저녁에 내가 집에서 편하게 잠을 잘 수 있었던 건 어느 집에서 울면서 한숨소리, 한탄을 하면서 괴로워한 덕이었다."
현장에서 그는 "우리 시대의 '난장이' 비정규직"을 만났다. "써야 하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 못 쓰는"
그들은 열심히 일하는데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참 먹고 살기가 힘이 드는 '일하는 빈민'이다.
"우리나라 높은 사람들에 대해 잠깐 얘기하자. 미국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특별히 공부한 것은 없다. 그런데 오바마가 읽은 책 이야기를 봤다. 오바마는 우리가 도달해야 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는 작가, 정치가, 경제가가 쓴 중요한 책을 거의 다 읽었다. 실무도 공부했고 인문학도 공부한 것이다. 그것이 누적되어서 오바마가 태어난 것이다.
무력을 행사하고 동족을 죽여놓고도 잘했다는 이들의 독서량은 얼마일까. 그 머릿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이런 것을 생각하면 끔찍하다.
5·18 이후 늘 고민에 잠겨 있는 것은 우리 동족에게 왜 이렇게 잔인함이 있어서 보호해야 할 동족을 괴롭히고 학살하냐는 문제다. 책 안에 조선시대 민란에 대해 얼마나 많은 일이 쓰여 있나. 농민 집회 때마다 나가서 느끼는 게 그것이다.
2005년 11월 15일, 나는 여의도에 있었다. 농민 하나가 경찰 부대에 맞아 희생됐다. 나도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서 숨돌리고 있었는데 경찰이 진입해왔다. 그때 공원 잔디밭에서 젖은 옷을 짜면서 카메라를 체크하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 현장에서 고 전용철 농민 가까이서 사진 찍고 있었다면 나는 그때 죽었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동족을 괴롭히면서 선진국이 된 예가 인류 역사상 단 한 차례도 없다. 정치가들은 우리나라도 20세기 후반에 선진국이 됐다고 하지만 아니다. 허풍을 더 떨어서 우리는 최강대국이 되어서 이 지구 위 모든 국가를 우리가 꼭 다스릴 것처럼 했지만, 지금 그런가?"
"전세계 1300여 인종이 살고, 200여 개 국가가 있다. 그중에서 이렇게 뻔하고 피해갈 수 있는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국가가 어디 있나. 이미 어제 소식이 전 세계에 몇 바퀴나 돌았을 것이다. 어제의 미개하고 야만적인 불행이.
어제 돌아가신 6명은 그 순간에 뭘 느꼈을까? 절망을, 뜨거움을 느꼈을 것이다. 나도 숱한 싸움을 옆에서 지켜보고, 카메라도 망가지고, 몸도 다치면서 공포심을 안다. 그러나 우리 모든 사람이 갖는 공포심을 합해도 어제 6명의 그 공포심, 슬픔, 비극에는 비교를 할 수 없다.
어제 진압에 들어갔던 김모 청장의 경찰부대는 21세기의 경찰이 아니다. 조선시대, 인구가 500~600만 명에 불과했던 조선시대의 관군과 같다. 외국군이 들어왔을 때 백전백패하면서 동족 상대할 때는 백전백승을 했던 관군.
또 경찰은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에 수행했다는 5.18때의 동족을 학살한 미개한 군인과 똑같다. 어제 경찰은 80년 5월 한국의 특전사 병사처럼 자기 임무를 유기했다. 군대나 경찰은 우리 공동체, 이 구성원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임무를 유기하고 공동체의 구성원을 죽였다."
"만약 이명박 대통령이 자기 형제나 친구가 6명 중에 끼어 있었다면 어젯밤 잠자리가 어땠을까. 또 어제 이 대통령은 밤을 지새웠을까. 그 아래 사람들은 어제 일을 가지고 밤에 고민을 했을까. 나의 동시대의 문인 작가들은 잠이 제대로 왔을까.
여섯 명이 죽었다. 내 '난장이' 소설에 보면 폭력은 경찰의 곤봉이나 군대의 총만이 폭력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 시대의 어느 아이 하나가 배고파서 밤에 울면 그 아이의 울음소리를 그치게 하지 않고 놔두는 것도 폭력이라고 했다. 어제 어마어마한 폭력이 가해졌는데도 우리가 그냥 지나간다면 죄를 짓는 것이다.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 밑의 사람들을 공격할 생각이 없다. 어떤 공격을 하려면 나의 적이어야 하는데 그는 나의 적이 아니다. 공동체 안에 적이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우리 이웃들이 가서 이명박을 다 찍어준 것이다.
여러분이나 나나 똑같이 동시대 구성원이다. 우리 형제들이 그 추운 날 옥상 건물에 가 있을 때 우리가 거기에 물을 뿌리고, 그 뜨거움 속에서 죽게 하진 않았다. 그러면 우리에게는 죄가 없나? 그렇지 않다.
그 범죄 행위, 학살 행위를 미리 막지 못한 것이 우리의 죄라는 말이다. 동시대인으로서 다 같은 죄인이다. 이 말을 하러 나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우리가 그 죄에 연루되지 않도록 우리 책임을 다하자는 말을 드리고 싶었다."
"막자. 불행을 막자. 아는 사람들은 일하자. 적과 만나서도 토론할 것 있으면 하자. 우리 안에는 힘이 있다. 몇 사람이 모이면 힘은 배가 된다. 이 힘을 알아야 한다.
토론을 하고, 싸워야 할 자리가 있고, 촛불을 들 자리가 있을 때 한 사람의 힘을 보태는 것은 중요하다. 권력을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알아서 잘 할 수 있는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 상태로 가면 한국에 비극이 또 일어난다.
독재라는 말을 쓰지 않을 뿐이지 민주주의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지 않나. 민주주의가 제대로 된다면 남의 평화, 자유, 행복을 지켜줘야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도 그렇고 수많은 사람이 행복하지 않다. 내가 보기에 한국은 집이 부족한 게 아니라 지혜가 부족하다.
그리고 20대들은 절대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라. 냉소주의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공동의 일, 공동의 숙제를 해낼 수가 없다. 냉소주의는 우리의 적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다."
"만약 당신이 이성과 힘을 모두 가질 수 없다면 항상 이성을 택하고 힘은 적에게 주어버려라. 힘은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하도록 해주지만, 전쟁에서 승리를 안겨주는 것은 오로지 이성뿐이다. 지배자는 절대로 자신의 힘으로부터 이성을 얻어낼 수 없지만, 우리는 우리의 이성으로부터 항상 힘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다."
- 끝 -
[참고자료]
조세희 "공동체 동족 죽인 경찰, 5·18 군인과 똑같다"
[인터뷰] "학살 막지 못한 우리도 죄인이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121225434&Section=03
조세희 "행복한가? 당신은 '도둑' 아니면 '바보'요"
"'난장이'는 바로 비정규직…가슴에 희망의 철기둥 박자"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81205090412&Section=03
용산 참사, 정권 유지 도구로 전락한 '법'의 횡포가 낳은 비극
[창비주간논평] '법-질서' 추구의 법 이념, '정의-자유'와 균형 이뤄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090121105016&Section=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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