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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겨레] `대전환`의 시대, 브래너 교수 이번 경제위기 원인은 ‘금융’ 아닌 ‘실물’

ddolappa 2009. 2. 2. 22:38

이번 경제위기 원인은 ‘금융’ 아닌 ‘실물’
2009 특별기획 [‘대전환’의 시대]
한겨레 최우성 기자 이세영 기자

» 정성진 교수 (왼쪽) 브레너 교수 (오른쪽)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나’라는 물음에 답해 줄 네번째 목소리의 주인공은 로버트 브레너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다. 브레너 교수는 세계 역사학계에서 언제나 논쟁을 몰고 다니는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이자, 이른바 ‘거품경제론’(버블노믹스)을 무기로 현대자본주의에 날선 비판을 해온 지식인이다. 브레너 교수와의 대담은 지난해 12월22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샌타모니카의 한 호텔에서 정성진 경상대 교수가 진행했다. 이 대담에서 브레너 교수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뿌리는 산업자본의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떨어진 데 있다는 논지를 폈다. ‘금융위기’의 본질은 ‘금융’이 아니라 ‘실물’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신흥공업국·중국 등장
전세계 공급과잉 심해져
산업자본 이윤율 하락

정성진 교수 대부분 언론과 경제평론가들이 현재의 위기를 ‘금융위기’라고 일컫는다. 금융위기란 말이 현재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브레너 교수 사람들이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기 상황을 분석하면서 은행과 주식시장의 붕괴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좀더 본질적인 측면으로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들은 이번 위기를 금융부문의 문제로 설명하고 이른바 경제의 ‘펀더멘털’(기초여건)은 괜찮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만큼 잘못된 것도 없다. 오늘날 위기의 근본 원인은 지난 1973년 이후, 특히 2000년 이후 선진 경제권의 활력이 떨어진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 미국과 서유럽, 일본의 경제적 성과는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일반적인 거시경제지표인 국내총생산(GDP)이나 투자, 실질임금 등은 경기순환 때마다 나빠졌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가장 최근에 끝난 경기순환 국면, 즉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경기순환 국면이 2차 대전 시기를 통틀어 가장 미약했다는 점이다. 특히 이 기간에 미국 정부가 전시를 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경기부양책을 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 8
정성진 당신은 이미 <혼돈의 기원>(1998)에서 지난 1973년 이후 제조업 부문에서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윤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세계경제가 ‘장기 하강’ 국면으로 들어갔다는 주장을 펴왔다. 방금 들려준 얘기는 최근의 경제위기 또한 이러한 세계경제 ‘장기 하강’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주장의 핵심은 과연 무엇인가?

브레너 1973년 이후 세계경제가 장기 하강세를 보이는 것은, 한마디로 자본이 챙겨갈 수 있는 이윤율이 1960년대 말부터 지속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윤율이 떨어진 주된 요인은 뭘까? 그 비밀은 바로 세계경제의 제조업 부문이 과잉설비라는 덫에 빠져든 데 있다. 새로운 제조업 강국들, 예컨대 독일과 일본, 동북아시아의 신흥공업국, 남아시아의 ‘호랑이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중국이라는 거인이 잇따라 세계시장에 진입하지 않았나. 이들 후발 경제성장국들은‘선발 국가’들이 이전에 생산했던 것과 동일한 재화들을 더욱 싼값에 생산해냈다. 그 결과 여러 산업부문에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아졌고, 이는 제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압력 요인으로 작용해 당연히 이윤마저 압박했다. 그러자 기업들은 혁신능력에 기대거나 혹은 신기술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지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과잉설비 문제는 되레 악화됐을 뿐이다. 결국 그들은 설비와 투자, 고용 증가세를 둔화시키는 것 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나마 수익성을 최대한 방어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했고, 정부로 하여금 사회지출을 삭감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이냐? 장기적으로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총수요의 부족’이라는 문제를 불러왔을 뿐이다.

 

1970년대이후 장기하강
자산 거품 키워 막으려다
‘총수요 부족’ 되레 심화

정성진 자본주의가 70년대 이후 장기 하강 국면으로 들어갔다는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흔히 ‘자본의 반격’이라는 말이 있듯이, 80년대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이같은 장기 하강 추세를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저지한 것 또한 사실 아닌가?

브레너 만일 신자유주의가 단지 규제 완화와 금융 중심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것을 뜻한다면, 그것이 경제 회복에 보탬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그리고 복지국가 시스템에 대해 자본의 공격 강화를 뜻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앞서 말한 이윤율 저하 추세를 어느 정도 저지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이러한 ‘자본의 반격’은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불리는 1980년대 이전에 이미 시작됐다는 점이다. 1970년대 초 이윤율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자본은 곧장 반격에 나섰다. 그럼에도 이윤율은 회복되지 않았고 총수요 부족 문제만 더욱 악화시켰다. 이때 정책 당국자들이 들고 나온 무기가 있다. 더욱 강력하면서도 더욱 위험한 형태의 경기 부양책이었는데, 바로 ‘자산가격 케인스주의’(Asset Price Keynesianism)라 불릴 만한 것이다.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워 쪼그라든 소비를 회복시키겠다는 게 기본 발상이다. 바로 오늘날의 대재앙을 불러온 싹이다.

 

정성진 실제로 이번 위기를 촉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10년 동안 사상 유례없는 규모로 팽창했던 부동산시장 거품이 마침내 터진 것이다. 부동산시장의 팽창과 뒤이은 폭발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위기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봐야 하나?  

브레너 앞서 말한 대로 경제가 장기 하강 국면에 들어서자 정책 당국은 총수요 부족의 문제를 공적·사적 차입의 증대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풀려고 했다. 처음에는 주로 정부의 재정적자에 의존하다가 한계에 부닥치자 1990년대 초에 이르러 정책방향 전환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의 정책담당자들은 경제를 다시 팽창시키기 위해 1980년대 말 일본이 택했던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이자율을 낮춰 차입을 쉽게 만들어줬고, 이를 통해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를 장려했다. 그다음 스토리는 너무도 잘 알 것이다. 자산가격이 치솟자 기업과 가계의 부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적어도 장부상으로는 말이다. 이들 기업과 가계는 어머어마한 규모로 차입을 늘렸고, 이를 무기로 투자와 소비를 크게 증가시켜 경제를 끌고 나갔다. 민간적자가 공공부문의 재정적자를 고스란히 대체한 꼴이다. 바로 전통적인 케인스주의가 물러난 자리에 ‘자산가격 케인스주의’가 들어선 것이다. 세계경제는 지난 10여년 동안 매우 특이하게도, 사상 유례없는 투기 파동으로 자본축적이 진행되는 경험을 했다.

» 브레너 교수
케인스식 ‘재정투입’으론 위기탈출 못해

정성진 일부 논자들은 지난 80년대 이후 금융부문이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금융화’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자본주의가 ‘금융주도형 자본주의’ 형태로 변모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런 주장들은 여전히 현재 위기를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 때문이라기보다는 ‘금융화된’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브레너 ‘금융주도형 자본주의’란 용어는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금융부문의 이윤이라 하더라도 결국엔 실물부문에서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해내는 것에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나라들의 정부가 실물부문의 이윤율 하락이라는 난관에 봉착하자 금융부문의 규제완화를 통해 경제의 무게중심을 금융부문으로 옮기도록 부추겼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실물경제가 계속 악화일로를 걸었기 때문에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금융부문의 경쟁은 더욱 격화됐고 그만큼 이윤창출의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다. 투기가 더욱 극성을 부리고 모든 사람들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마인드로 바뀐 건 자연스런 결과일 뿐이다. 70년대 이후 이른바 ‘금융팽창’은 매차례 금융위기라는 재난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대규모 구제금융으로 이어졌다. 70년대와 80년대 초 제3세계에 대한 대출 붐, 80년대 미국 저축대부조합들의 대출 붐과 차입인수(LBO) 광풍, 상업부동산 거품, 90년대 후반의 주식시장 거품, 그리고 2000년대의 주택과 신용시장 거품 사례를 봐라. 금융부문이 마치 ‘독자적인’ 동력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한결같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해준 결과였다.

 

대공황보다 상황 악화 가능
그동안 경제성장 전적으로
소비·부동산 투자에만 의존

정성진 가까운 예만 들더라도, 당신은 2001년의 불황 뿐 아니라 이번 위기도 미리 정확하게 예측한 사람으로 꼽힌다. 이번 위기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나? 이번 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모습을 대략 그려달라.

브레너 이번 위기는 2차 대전 후 가장 심각한 불황이었던 1979~1982년 불황 때보다 더 심각한 상태고, 19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갈 정도로 악화될 수 있다. 대부분 경제예측가들이 현재 상황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들은 그동안 실물경제가 자산시장 거품과 부채 누적으로 지탱해왔다는 사실에 눈감고 있다. 경제성장은 거의 전적으로 소비와 부동산투자에 의존했을 뿐이다. 이 정도로 경제적 성과가 보잘 것 없었다. 부동산시장에는 거품이 잔뜩 끼었고 부시 정부가 엄청난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경기를 부채질했는데도 그 정도 성과밖에 내지 못했다. 2001~2005년에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3분의1과 고용증가의 절반은 부동산 부문에서 비롯됐다. 부동산시장 거품이 터지자, 소비와 투자가 줄어들고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정성진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지난 30년간 위세를 떨쳤던 신자유주의 시대가 저물고 케인스주의 혹은 국가주의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등장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때마침 오바마 정부의 등장과 함께 이런 움직임에도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특정한 형태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이므로 단지 케인스주의나 국가주도형 발전전략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신이 지금까지 들려준 얘기도 이런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브레너 오늘날 각국 정부는 일단 케인스주의, 그리고 국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위기에서 탈출하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시장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시장방임주의는 현재와 같은 경제 재앙을 막거나 대처하는 데 무능한 것으로 이미 판명났다. 하지만 케인스주의의 의미를 대규모 재정적자 정책, 그리고 총수요를 부양하기 위한 신용완화 정책 정도로 이해한다면, 과연 이런 정책들로 기대하는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짧게는 지난 7년 동안 부동산시장 거품을 조장한 연준의 정책, 그리고 부시 정부의 적자재정 정책 덕분에, 우리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케인스주의적 경기부양책을 이미 경험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땠나? 바로 가장 미약한 수준의 경기순환 주기였을 뿐이다. 현재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대출 길이 막히면서 가계와 기업은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있다. 기업의 이윤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기업 역시 임금을 삭감하고 일자리를 빠른 속도로 줄이고 있다. 총수요 감소와 이윤율 저하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경제가 한창 확장하던 시기에도 케인스주의가 경제를 안정적으로 끌고가는 데 실패한 마당에, 1930년대 이후 최악의 불황 상황인 지금 우리가 케인스주의로부터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바마, 노동자 이익위한
결정적인 행동 취하려면
노동대중 조직화 필수적

정성진 오바마는 강력한 경제살리기에 나설 태세인데.

브레너 오바마 정부는 경제에 어떤 의미있는 자극을 주기 위해 결국 국가자본주의 형태의 대규모 직·간접 투자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치적·경제적 장애물을 넘어서야 한다. 미국의 정치문화는 정부지출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편이다. 또 정부지출과 국가부채가 대규모로 늘어난다면, 당연히 달러의 가치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동아시아 나라의 정부들이 기꺼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를 메꾸는 데 필요한 자금을 제공해줬다. 미국의 소비수준 유지가 자국의 대미 수출에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중국마저 경제위기의 영향권 아래 들어서고 있지 않나. 동아시아 나라 정부들이 미국의 적자를 메꿔주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의 쌍둥이 적자 규모가 지금보다 몇 배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달러 투매라는 공포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지 않을까.

 

정성진 이제 오바마 시대가 공식적으로 열렸다. 오바마는 ‘21세기의 루즈벨트’를 자처하며 ‘새로운 뉴딜’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 오바마 정부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궁금하다.

브레너 오바마의 집권은 당연히 환영할 일이다. 만일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면 미국 정치에서 가장 반동적인 세력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주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또 부시 정부가 보여준 극단적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복지국가, 환경보호 정책의 마지막 흔적까지 없애려는 이들의 의도를 승인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길 수 없는 건 오바마 역시 루스벨트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중도파라는 점이다. 따라서 오바마는 혼자서는 노동 대중 다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다수 노동대중은 쪼그라든 이윤을 일자리 감축과 임금 삭감 등을 통해 벌충하려는 기업들로부터 강력한 공격을 받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납세자에 대한 최대 규모의 약탈’이라고 불리는 금융구제안을 지지했다. 오바마는 또 자동차산업 구제금융 법안도 지지했다. 이 구제금융안이 자동차산업 노동자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을 조건으로 했는데도 말이다. 분명한 것은 루스벨트와 마찬가지로, 오바마는 노동대중이 ‘아래로부터’ 조직화된 직접 행동을 통해 압력을 행사할 경우에만 노동대중의 이익을 지키기위한 결정적인 행동에 나설 것이란 사실이다. 루스벨트가 그러지 않았나. 실제로 루즈벨트 정부는 대중 파업의 거대한 물결 속에 압박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등을 강화하는 1933년의 와그너법을 비롯해 사회보장제도 등 진보적인 색채의 각종 뉴딜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바마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되풀이되지 않겠는가.

정성진(53)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뒤, 1990년 같은 대학에서 <한국 경제에서 마르크스 비율의 분석>이라는 주제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96년부터 경상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일하면서, 주류 경제학에서는 전혀 다루지 않는 ‘공황이론’을 중심으로 현대자본주의 위기이론을 발전시키고 있는 국내 대표적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로 꼽힌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노동문제>(2003), <현대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의 쟁점들>(2002) 등 많은 저서를 남겼고, 브레너 교수의 대표작인 <붐 앤 버블>(2002)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기도 했다.

로버트 브레너(63) 교수는 경제사 분야에서 독보적인 연구 성과를 이룩한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로,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역사학과 교수이자 사회이론비교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1970~1980년대를 풍미한 ‘봉건제-자본주의 이행 논쟁’을 주도했으며, 당시 그가 제시한 ‘소유관계와 계급투쟁에 바탕을 둔 이행’이라는 분석 틀은 이후 중세 유럽사 연구에서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이정표로 자리매김했다. 그는 1998년 <신좌파평론>에 ‘불균등 발전과 장기 침체’라는 제목의 대형 논문을 발표해 다시 한번 열띤 논쟁을 불러왔다. 이 논문을 기초로 <혼돈의 기원>(1998)을 펴냈고, 이어 생생한 자료를 바탕으로 199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호황과 불황을 다룬 <붐 앤 버블>(2002)을 내놓아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앞서 두 책의 알맹이를 하나로 합쳐 2차 대전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자본주의 전개과정을 다룬 <전지구적 혼돈의 경제학>(2006)은 부동산 거품 붕괴에 따른 경제위기를 정확히 예측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정리 최우성 이세영 기자 morgen@hani.co.kr


■ 브레너 교수의 이론은

브레너 교수의 주장은, 1970년대 이후 세계시장에서 제조업 부문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이 누적돼 자본이 거둘 수 있는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떨어졌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임금 상승에 따른 이윤 압박 등으로 설명해왔던 기존 좌파 경제학의 통설을 뒤집은 것이다. 세계경제가 활력을 잃은 것은 한마디로 각국의 자본이 벌이는 무한경쟁에 따른 필연적 결과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1998년 펴낸 <혼돈의 기원>에서 “어떠한 실질임금의 성장도 표용할 수 없는 자본의 무능력”이 경제 위기의 실제 원인임을 꼬집었다. 이런 주장을 두고 좌파 경제학자들은 물론 역사학계 전반에서 엄청난 논쟁이 벌어졌다.

 

‘제조업 이윤율 저하’ 위기 근본
‘임금상승이 문제’ 통념 뒤집어

세계경제가 위기 속으로 깊숙이 빠져들면서, 그의 분석과 이론은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진보학술지인 <신좌파평론>은 지난해 11·12월호에서 브레너의 2006년 역작 <전지구적 혼돈의 경제학>을 토대로 3명의 학자들로부터 제기된 비판을 특집호로 꾸몄다. 유례없는 경제위기의 한가운데서 ‘3차 브레너 논쟁’의 싹이 움트고 있는 셈이다. 특히 3명의 비판가 가운데는 <한겨레>의 특별기획 - ‘대전환’의 시대, 세계 석학과의 대담 두 번째 주인공인 미셸 아글리에타 파리 10대학 교수도 포함돼 있다. 아글리에타 교수는 브레너 교수가 주장하는 제조업 부문 이윤율의 장기 하락은 미국의 경우에만 해당할 뿐, 유럽과 일본 자본주의에는 곧장 적용되기 힘들다는 내용의 비판 논문을 실었다.

 

브레너 교수는 <한겨레>와 이번 대담에서 자신에게 제기된 다양한 비판에 대해 열띤 반론을 펴기도 했다. 하지만 브레너 교수가 그 내용이 곧 출간될 <신좌파평론> 3·4월호에 담길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간곡하게 비공개를 요청한 터라, 지면에는 아쉽게도 담지 못했다. 다만, 브레너 교수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의 회복과정과 중국 경제의 성장이 세계경제에 더욱 깊숙하게 통합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사실을 강조하면서, 전세계적인 경제위기가 심화할수록 한국과 중국은 심각한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브레너 교수는 한국의 진보진영에게 요즘 유행하는 케인스주의적 정책 대안을 모색하기보다 ‘아래로부터’의 투쟁과 조직을 건설하는 데 더욱 힘써야 한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 최우성 기자

 

[전문] 이번 경제위기 원인은 ‘금융’ 아닌 ‘실물’
2009 특별기획 [‘대전환’의 시대]
한겨레 최우성 기자 이세영 기자

» 정성진 교수 (왼쪽) 브레너 교수 (오른쪽)
‘대전환’의 시대를 맞아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나’라는 물음에 답해 줄 네번째 목소리의 주인공은 로버트 브레너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LA) 교수다. 브레너 교수는 세계 역사학계에서 언제나 논쟁을 몰고 다니는 대표적인 맑스주의 역사학자이자, 이른바 ‘거품경제론’(버블노믹스)을 무기로 현대자본주의에 날선 비판을 해온 지식인이다. 브레너 교수와의 대담은 지난해 12월22일(현지시각) 저녁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의 한 호텔에서 정성진 경상대 교수가 진행했다. 이 대담에서 브레너 교수는 세계적인 경제위기의 뿌리는 산업자본의 이윤율이 장기적으로 떨어진 데 있다는 논지를 폈다. ‘금융위기’의 본질은 ‘금융’이 아니라 ‘실물’ 자체에서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신흥공업국·중국 등장
전세계 공급과잉 심해져
산업자본 이윤율 하락

정성진 교수(이하 정)대부분의 언론과 경제평론가들이 현재의 위기를 ‘금융위기’라고 부른다. 금융위기란 말이 현재 상황을 가장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나? 금융위기란 표현에 동의하나?

브레너 교수(이하 브)사람들이 현재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기 상황을 분석하면서 은행과 주식시장의 붕괴를 그 출발점으로 삼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이 단지 그 지점에서만 맴돌 뿐, 보다 본질적인 측면으로 깊이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미국의 재무장관이었던 헨리 폴슨과 연준 의장인 벤 버냉키같은 사람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이번 위기가 금융부문의 문제로부터 모두 설명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또 ‘배후’에 있는 실물경제는 견실하다고 강조한다. 이른바 ‘펀더멘탈’(기초체력)은 튼튼하다는 식의 주장말이다. 이런 주장만큼 잘못된 것도 없다. 오늘날 위기의 근본 원인은 지난 1973년 이후, 특히 2000년 이후 선진 자본주의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데서부터 찾아야 한다. 미국과 서유럽, 일본의 경제적 성과는 지속적으로 악화됐고, 표준적인 거시경제지표들, 그러니까 국내총생산(GDP)이나 투자, 실질임금 같은 것들을 얘기할 수 있을텐데, 이런 지표들은 경기순환때마다 갈수록 나빠졌다. 가장 놀라운 사실이 뭔지 아나? 가장 최근에 끝난 경기순환 국면, 즉 2001년부터 2007년까지의 경기순환 국면이 2차 대전 시기를 통털어 가장 미약했다는 점이다. 이는 이 기간 동안에 미국 정부가 전시를 뺀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로 경기부양을 지원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일이다.

 

당신은 이미 <혼돈의 기원>(1998)에서 지난 1973년 이후 제조업 부문에서 경쟁이 격화되면서 이윤율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세계경제가 ‘장기 하강’ 국면으로 들어갔다는 주장을 폈다. 아마도 방금 들려준 얘기는 최근의 경제위기 또한 이러한 세계경제 ‘장기 하강’의 연속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당신의 저서가 출간된 후 이 책을 두고 국제적으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고, <신좌파평론> 최신호에서도 당신의 이론을 다시 특집으로 다루기도 했다. 최근 들어 전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심화되면서 당신의 주장이 새롭게 힘을 얻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게 아닌가 싶다. 당신이 내세우는 주장의 핵심은 과연 무엇인가? 독자들을 위해 이 대목에서 당신의 논거를 한번 짧게 요약해주면 좋겠다.

1973년 이후 세계경제가 장기하강세를 보이는 것은 한마디로 자본이 챙겨갈 수 있는 수익률이 1960년대말부터 지속적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무렵부터 임금생활자들의 몫인 실질임금의 증가세가 줄곧 눈에 띄게 둔화됐는데도, 이윤율이 이전 시기 수준으로 회복되지 못했다는 점은 특히 더 놀라운 일이다. 이윤율이 떨어진 주된 요인은 뭘까? 물론 유일한 요인은 아니겠지만. 어쨌든 그 비밀은 바로 세계경제의 제조업 부문이 과잉설비라는 덫에 빠져든 데 있다. 새로운 제조업 강국들, 예컨대 독일과 일본, 동북아시아의 신흥공업국, 남아시아의 호랑이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중국이라는 거인이 잇따라 세계시장에 진입하지 않았나. 이들 ‘후발 경제’들은 앞선 ‘선발 국가’들이 이전에 생산했던 것과 동일한 재화들을 이제 더욱 싼값에 생산해냈다. 그 결과 여러 산업 부문에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너무 많아졌고, 이는 제품 가격을 떨어뜨리는 압력 요인으로 작용해 당연히 이윤마저 압박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잊지 말아야할 게 있다.

 

이윤 압박을 받게 된 기업들은 순순히 자신들의 산업을 떠나지 않았다. 그들은 혁신능력에 기대거나 혹은 신기술에 대한 투자를 가속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입지를 지키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로 인해 과잉설비 문제는 되레 악화됐을 뿐이다. 자본가들은 수익률이 떨어진 탓에 투자로부터 더욱 적은 잉여만을 챙겨가게 됐다. 결국 그들은 설비와 투자, 고용 증가세를 둔화시키는 것말고는 달리 도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나마 수익성을 최대한 회복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했고, 정부로 하여금 사회지출을 삭감하도록 압력을 가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무엇이냐? 장기적으로는 경제학에서 말하는 ‘총수요’ 부족의 문제를 불러왔을 뿐이다. 총수요가 지속적으로 줄어든 것은 결국 경제가 장기적으로 취약하게 된 직접적 원인이다.

 

자본주의가 70년대 이후 장기 하강 국면으로 들어갔다는 주장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흔히 ‘자본의 반격’이라는 말이 있듯이, 80년대 이후 이른바 신자유주의가 등장하면서 이같은 장기 하강 추세를 어느 정도 성공적으로 저지한 것 또한 사실 아닌가?
논점을 분명하게 잡아야 한다. 만일 신자유주의가 단지 규제 완화와 금융 중심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경제 ‘회복’에 보탬이 되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노동자들의 임금과 노동조건, 그리고 복지국가 시스템에 대해 자본의 공격 강화를 뜻하는 것이라면, 그것이 앞서 말한 이윤율 저하 추세가 더욱 악화되는 것을 어느 정도 저지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하나 있다. 이러한 ‘자본의 반격’은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불리는 1980년대 이전에 이미 시작됐다는 점이다. 70년대 초 이윤율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자본은 곧장 반격에 나섰다. 그럼에도 이윤율은 회복되지 않았고 총수요 문제만 더욱 악화시켰다. 이 때 정책 당국자들이 들고 나온 무기가 있다. 더욱 강력하면서도 더욱 위험한 형태의 경기 부양책이었는데, 바로 ‘자산가격 케인즈주의’(asset price Keynesianism)라 불릴만 한 것이다. 자산시장의 거품을 키워 쪼그라든 소비를 회복시키겠다는 게 기본 발상이다. 바로 오늘날의 대재앙을 불러온 싹이다.

 

1970년대이후 장기하강
자산 거품 키워 막으려다
‘총수요 부족’ 되레 심화

실제로 이번 위기를 촉발시킨 직접적인 계기는 지난 10년 동안 사상 유례 없는 규모로 팽창했던 부동산시장 거품이 마침내 터진 것이다. 부동산시장의 팽창과 뒤이은 폭발이 현재 벌어지고 있는 위기에서 갖는 의미는 무엇이라고 봐야 하나?

부동산시장의 거품은 90년대 중반 이후 미국 경제가 경험했던 자산시장 거품, 특히 이런 거품을 조장했던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역할을 떼어놓고는 이해할 수 없다. 앞서 말한대로 경제가 장기 하강 국면에 들어서자 정책 당국은 총수요 부족의 문제를 공적·사적 차입의 증대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풀려고 했다. 처음에는 주로 정부의 재정적자에 의존했고, 이를 통해 매우 심각한 불황에 빠져드는 것은 그나마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무작정 재정적자에 의존할 수만도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결국 90년대 초에 이르러 클린턴 정부를 필두로 미국과 유럽의 정책 담당자들은 정책방향 전환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다. 고질적인 재정적자의 폐해가 드러남에 따라 균형재정정책으로 하나둘 돌아서면서 이전의 적자재정정책과 단절하려 든 것이다. 여기엔 시장이 경제를 조절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도 담겨 있었다. 하지만, 재정지출의 감소는 어찌되었든간에 수익성 회복이라는 과제도 달성하지 못한 채, 총수요에 충격을 줬다. 그 결과, 91~95년 사이 미국 경제는 2차 대전 후 최악의 불황과 저성장을 경험해야만 했다. 사정이 이렇게 되자 미국의 정책담당자들은 경제를 다시 팽창시키기 위해 80년대말 일본이 택했던 카드를 꺼내들었다. 연준은 이자율을 낮춰 차입을 쉽게 만들어줬고, 이를 통해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를 장려했다. 그 다음 스토리는 너무도 잘 알 것이다. 자산가격이 치솟자 기업과 가계의 부는 엄청나게 늘어났다. 적어도 장부상으로는 말이다. 이들 기업과 가계는 어머어마한 규모로 차입을 늘렸고, 이를 무기로 투자와 소비를 크게 증가시켜 경제를 끌고 나갔다. 민간적자가 공공부문의 재정적자를 고스란히 대체한 꼴이다. 바로 전통적인 케인즈주의가 물러난 자리에 ‘자산가격 케인주주의’가 들어선 것이지.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전후 자본주의 발전단계를 흔히 케인주주의와 신자유주의로 기계적으로 나누는 것은 사실 별 의미가 없다. 세계경제는 지난 10여년 이상 매우 특이하게도 자본축적이 사상 유례없는 투기 파동에 의존해 진행되는 체제를 경험했다. 90년대 후반의 주식시장 거품과 2000년대 초반의 부동산시장과 신용시장 거품이 그것이다. 정책당국자들은 의도적으로 이런 투기적 거품을 조장하고 합리화했다.

 

이 대목에서 다소 전문적인 내용으로 비칠지는 모르나 다시 한번 확실하게 정리하고 넘어가고 싶은 게 있다. 현재 상황을 바라보는 당신의 생각을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다. 자본주의 시스템 안에 내재한 ‘위기’ 가능성을 강조한 사람으로 대표적으로 두 명을 꼽을 수 있다. 한 명은 누구나 알듯이 자본주의 비판가의 대표격인 칼맑스이고, 또 한 사람은 지난 96년에 사망한 금융학자 하이먼 민스키다. 특히 민스키는 이번 위기를 계기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인물이다. 두 사람은 나름의 위기이론을 발전시켰지만, 위기의 성격이랄까 근본원인이랄까에 대해서는 엇갈린 시각을 갖고 있었다고 본다. 맑스는 기본적으로 실물경제의 위기라는 쪽에 초점을 뒀고, 민스키는 금융시스템 자체의 불안정성에 주목했다. 일부 경제이론가들은 이번 위기에서 금융시장에 형성됐던 거품의 팽창과 붕괴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번 위기가 이른바 ‘민스키식 위기’이지, 실물경제 위기에 바탕을 둔 ‘맑스식 위기’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앞선 얘기 속에서 논점이 분명하게 드러났다고 생각하는데, 현재의 위기는 분명 ‘맑스식 위기’다. 그게 내가 확고하게 갖고 있는 생각이다.

» 브레너 교수
케인스식 ‘재정투입’으론 위기탈출 못해

위기의 발단은 결국 실물부문에서부터 찾아야한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현재 위기는 이윤율의 장기적 하락에 그 뿌리를 두고 있고,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자본축적의 둔화 추세가 바로 위기의 기본적 원천이다. 지난 2001년 미국 비금융부문 기업의 이윤율은 1980년을 제외한다면 2차 대전 이후 시기 중 가장 낮은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투자와 고용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것이 다시 총수요 부족 사태를 악화시켜 기업환경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일종의 악순환에 빠졌다는 얘기다. 이제 막 끝난 가장 최근의 경기순환 주기 동안에 성장률이 그토록 낮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실물경제의 취약성과 금융시장 붕괴 사이의 구체적인 연결고리를 밝혀내야 한다. 주된 연결고리는 바로 경제가 굴러가기 위해 점점 더 차입에 의존하게 됐고, 이런 차입구조가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정부가 자산가격 상승에 점점 더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됐다는 사실이다. 주택과 신용시장 거품의 기본전제는 싼값에 계속 돈을 꿔올 수 있어야한다는 데 있다. 지난 97~98년 위기와 2001~2년 위기를 지나면서 동아시아 나라의 정부가 미국의 고소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들의 통화가치를 계속 낮추면서 엄청난 규모로 달러를 시들인 결과, 미국의 장기금리는 비정상적인 수준까지 떨어졌다. 연준 역시 단기금리를 1950년대 이래 그 어느때보다도 낮게 유지했다. 은행들은 아주 싼값에 돈을 빌려올 수 있었기 때문에 투기자본에 더 많이 대출해줬다. 그 결과가 뭐냐? 투자자본의 투자 붐은 모든 종류의 자산가격을 끊임없이 상승시켰고 대출에 대한 수익률(채권금리)는 계속 낮아졌다. 주택가격은 치솟고 미국 재무성 채권의 실질수익률은 급락한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수익률이 계속 낮아지면서 대출로부터 거둬들인 수익에 의존해온 전세계 금융기관들은 더이상 충분한 이윤을 얻기가 점점 힘들게 됐다. 연기금과 보험회사는 물론 헤지펀드와 투자은행들도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등장한 탈출구가 바로 리스크가 매우 높은 비우량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모기지)을 기초자산으로 한 증권(MBS) 에 대량으로 투자하는 것 아니었나. 이런 자산유동화증권이 당장엔 아주 높은 수익률은 안겨다줬기 때문이다. 이들 금융기관들은 이 증권을 사들이는데 끝없이 돈을 쏟아부었다. 금융기관들이 이 증권에 돈을 쏟아부을수록, 모기지대출업자들는 다시 점점 더 자격이 미달되는 차입자들에까지 대출을 늘릴 수 있었다. 이런 요술방망이가 또 어디 있을까. 역사상 예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주택가격은 폭등했고 그 덕에 경제성장은 한동안 계속됐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분명하게 지켜보고 있듯이, 이런 과정은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는 것이었다. 주택가격이 떨어지자 실물경제는 곧장 불황에 빠져들었고 금융부문 붕괴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금융부문의 붕괴는 신용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 또다시 실물경제의 불황을 악화시킨다. 실물부문의 위기와 금융부문의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파국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대공황보다 상황 악화 가능
그동안 경제성장 전적으로
소비·부동산 투자에만 의존

일부 논자들은 지난 80년대 이후 금융부문이 경제발전을 주도하는 ‘금융화’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자본주의가 ‘금융주도형 자본주의’ 형태로 변모했다는 주장을 내놓는다. 이런 주장들은 여전히 현재의 위기를 자본주의 자체의 모순 때문이라기보다는 ‘금융화된’ 자본주의 탓으로 돌리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금융주도형 자본주의’란 용어는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이다. 기본적으로 금융부문의 이윤이라 하더라도 결국엔 실물부문에서 지속적으로 이윤을 창출해내는 것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나라들의 정부가 실물부문의 이윤율 하락이라는 장애물에 봉착하자 금융부문의 규제완화를 통해 경제의 무게중심을 금융부문으로 옮기도록 부추겼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실물경제가 계속 악화일로를 걸었기 때문에 규제를 완화하더라도 금융부문의 경쟁은 더욱 격화됐고 이윤창출의 기회는 더욱 줄어들었다. 투기가 더욱 극성을 부리고 모든 사람들이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려는 마인드로 바뀐 건 자연스런 결과일 뿐이다. 투자은행과 헤지펀드의 최고경영자들이 엄청난 보수를 챙긴 걸 잘 알거다. 이들이 어마어마한 보수를 받을 수 있었던 건 이들의 보수가 오직 단기이윤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기업의 자산과 대출을 팽창시킴으로써, 즉 위험을 증대시킴으로써 고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류의 사업방식은 결국 해당기업의 장기적 건전성을 훼손했고, 그 결과야 눈앞에서 똑똑히 보지 않았나. 월가를 대표하던 투자은행들이 줄줄이 몰락해버렸다. 70년대 이후 이른바 ‘금융팽창’은 매차례 금융위기라는 재난으로 이어졌고 이는 다시 대규모 구제금융으로 이어졌다. 70년대와 80년대 초 제3세계에 대한 대출 붐, 80년대의 조축대부조합 대출 붐과 차입매수(LBO) 광풍, 상업부동산 거품, 90년대 후반의 주식시장 거품, 그리고 2000년대의 주택과 신용시장 거품 사례를 봐라. 금융부문이 마치 ‘독자적인’ 동력을 갖는 것처럼 보였을 때란 한결같이 정부가 이들을 지원해줬을 때 뿐이다.

 

가까운 예만 들더라도, 당신은 2001년의 불황 뿐 아니라 이번 위기도 미리 정확하게 예측한 사람으로 꼽힌다. 이번 위기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으로 보나? 이번 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모습을 대략적으로라도 그려달라.

이번 위기는 2차 대전 후 가장 심각한 불황이었던 79~82년 불황 때보다 더 심각한 상태고, 30년대 대공황에 버금갈 정도로 악화될 수 있다. 대부분의 경제예측가들은 현재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과소평가하고 있는 느낌이다. 이들은 실물경제가 그래도 견실하다고 과대평가하고 있다. 이들은 실물경제가 그동안 자산시장 거품에 의존한 채무 누적으로 지탱돼왔다는 사실에 눈감고 있다. 미국의 경우 가장 최근의 경기순환 주기인 2001~7년 동안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차 대전 후 가장 낮은 수준이라고 앞서 말했다. 이 기간 동안 민간부문의 고용은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설비와 투자 증가율은 역사상 최저 수준이었을 때보다도 3분의1만큼 더 낮았다. 실질임금 역시 거의 제자리걸음을 했다. 가계소득이 전혀 늘어나지 않은 건 전후 처음 있는 일이다. 경제성장은 거의 전적으로 소비와 부동산투자에 의존했을 뿐이다. 이 정도로 경제적 성과가 보잘것 없었다. 부동산시장에는 거품이 잔뜩 끼었고 부시 정부가 엄청난 재정적자를 감수하며 경기를 부채질했는데도 그 정도 성과밖에 내지 못했다. 부동산 부문은 2001~5년 동안 미국 국내총생산(GDP) 성장의 3분의1과 고용증가의 절반을 설명해준다. 부동산시장 거품이 터지자, 소비와 투자가 줄어들고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지난 30년간 위세를 떨쳤던 신자유주의 시대가 저물고 케인즈주의 혹은 국가주의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등장하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때마침 오바마 정부의 등장과 함께 이런 움직임에도 탄력이 붙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현재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특정한 형태의 위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이므로 단지 케인즈주의나 국가주도형 발전전략만으로는 결코 이번 위기를 해결하기 어려워 보인다. 당신이 지금까지 들려준 얘기도 이런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은듯 봐도 될까?

오늘날 각국 정부는 일단 케인즈주의, 그리고 국가를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위기에서 탈출하고자 노력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시장에 모든 것을 내맡기는 시장방임주의는 현재와 같은 경제 재앙을 막거나 대처하는 데 무능한 것으로 이미 판명났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탈규제된 자유로운 금융시장을 소리높여 찬양했던 전 세계 정치지도자들이 갑자기 모두 케인즈주의로 돌아선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케인즈주의의 의미를 대규모 재정적자 정책, 그리고 총수요를 부양하기 위한 저렴한 신용정책 정도로 이해한다면, 과연 이런 정책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하는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짧게는 지난 7년 동안 부동산시장 거품을 조장한 연준의 정책, 그리고 부시 정부의 적자재정 정책 덕분에, 우리는 평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케인즈주의적 경기부양책을 이미 분명히 경험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땠나? 바로 가장 미약한 수준의 경기순환 주기였을 뿐이다. 현재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한 수준이다. 부동산시장의 거품이 꺼지고 대출 길이 막히면서 가계와 기업은 소비와 투자를 줄이고 있다. 기업의 이윤이 줄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기업 역시 임금을 삭감하고 일자리를 빠른 속도로 줄이고 있다. 총수요 감소와 이윤율 저하의 악순환이 시작된 것이다. 그간 가계는 주택가격이 끝없이 오르는데 힘입어 차입을 늘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누적된 채무 압박 탓에 차입을 줄이고 저축을 늘리려 들 것이다. 정작 지금이야말로 가계의 소비지출 증가를 경제가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때임에도 불구하고말이다. 나는 정부가 가계에 쥐어주는 돈의 대부분은 소비로 흘러들지 못하고 결국 저축될 것이라 생각한다. 경제가 한창 확장하던 시기에도 케인즈주의가 경제를 안정적으로 끌고가는 데 실패한 마당에, 30년대 이후 최악의 불황 상황인 지금 우리가 케인즈주의로부터 도대체 무엇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오바마, 노동자 이익위한
결정적인 행동 취하려면
노동대중 조직화 필수적

오바마는 강력한 경제살리기에 나설 태세인데.

오바마 정부는 경제에 어떤 의미있는 자극을 주기 위해 결국 국가자본주의 형태의 대규모 직·간접적 정부투자에 나설 것이다. 하지만 이런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엄청난 정치적·경제적 장애물을 넘어서야 한다. 미국의 정치문화는 정부지출에 대해 매우 적대적인 편이다. 또 정부지출과 국가부채가 대규모로 늘어난다면, 당연히 달러의 가치가 위협받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동아시아 나라의 정부들이 기꺼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수지 적자를 메꾸는데 필요한 자금을 제공해줬다. 다름아니라, 미국의 소비수준 유지가 자국의 대미 수출에 도움을 줬기 때문이다. 이제 중국마저 경제위기의 영향권 아래 들어서고 있지 않나. 동아시아 나라 정부들이 미국의 적자를 메꿔주기가 점점 어려워질 것이다. 미국의 쌍둥이적자 규모가 지금보다 몇 배 더 늘어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달러 투매라는 공포의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 있지 않을까.

 

이제 오바마 시대가 공식적으로 열리고 있다. 오바마는 ‘21세기의 루즈벨트’를 자처하며 ‘새로운 뉴딜’을 소리높여 외치고 있다. 오바마 정부에 대해선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궁금하다. 다소 엉뚱한 질문일지는 모르겠으나, 당신은 진보진영 일부가 오바마 정부를 부시 정부에 비교해 ‘차악’으로 간주하면서 ‘비판적으로 지지’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오바마의 당선은 응당 환영스러운 일이다. 만일 공화당의 매케인 후보가 당선되었더라면 미국 정치에서 가장 반동적인 세력에게 엄청난 힘을 실어주게 되었을 것이다. 이는 또 부시 정부가 보여준 극단적인 군국주의와 제국주의 뿐 아니라, 노동조합과 복지국가, 환경보호 정책의 마지막 흔적까지 없애려는 이들의 의도를 승인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숨길 수 없는 건 오바마 역시 루즈벨트와 마찬가지로 민주당 중도파라는 점이다. 따라서 오마바는 혼자서는 노동 대중 다수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많은 일을 할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오늘날 대다수의 노동대중은 쪼그라든 이윤을 일자리 감축과 임금 삭감 등을 통해 벌충하려는 기업들로부터 강력한 공격을 당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오바마는 미국 역사상 ‘납세자에 대한 최대 규모의 약탈’이라고 불리는 금융 부문 구제금융안에 지지를 보냈다. 오바마는 또 자동차 산업의 구제금융 법안도 지지했다. 이 구제금융안이 자동차산업 노동자 임금을 대폭 삭감하는 것을 조건으로 했는데도 말이다. 분명한 것은 루즈벨트와 마찬가지로, 오바마는 노동 대중이 ‘아래로부터’ 조직화된 직접 행동을 통해 압력을 행사할 경우에만 노동 대중을 방어하기 위해 결정적인 조치를 취하리라는 사실이다. 루즈벨트가 그러지 않았나. 실제로 루즈벨트 정부는 대중 파업의 거대한 물결 속에 압박을 받은 후에야 비로소 단결권과 단체교섭권 등을 보호하기 위해 부당노동행위 등을 규정한 1933년의 와그너법을 비롯해 사회보장 제도 등 진보적인 색채의 각종 뉴딜 법안을 통과시켰다. 오바마 시대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이 되풀이되지 않겠는가.

 

귀한 시간 내줘 정말 감사하다.

오랜 시간 유익한 토론이었다.

정리 최우성 이세영 기자 morgen@hani.co.kr

출처 : 안일규의 정치 이판사판
글쓴이 : Forever GuGu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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