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술자리에서 '90년대의 민주화는 강준만 혼자서 다했다'라고 이야기 한 적이 있다.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사실 90년대는 지지부진한 시대였고, 그래서 이명박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때 나는 암흑의 90년대를 생각했다. 또 그렇게 힘들게 살아가겠구나, 그런데 과연 새로운 시대는 올까? 이제는 누가 강준만이 되지?
강준만의 강점은 솔직함이다. 그가 항상 맞는 말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자신의 삶에 솔직하다. 다시 말해서 적어도 그는 자신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에 부당하다고 말을 한다. 이리저리 빼지 않고, 싱싱한 횟감같이 날 것을 그래로 드러낼 줄 아는 것이 그의 미덕이다. 그래서 때론 그가 실수할때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가 왜 그런 생각을 하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
한겨레에 그의 칼럼이 실렸다.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그는 김진석이 쓴 동명의 책을 소개하며 한국 진보의 근본주의를 질타했다. 한국의 진보가 현실의 대안이 되지 못하는 것은 '제국주의나 파시즘'으로 모든 것을 때려잡는 근본주의 때문이라는 것이다.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338958.html
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내가 아는 진보주의자들 역시 민족, 계급, 신자유주의 등의 몇가지 말로 그들이 하는 모든 말을 정리할 수 있다. 심지어 차이를 강조한다는 사람들도 여성, 환경 등의 몇가지 말로 정리가 가능하다.
물론 이런 근본주의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들은 민중운동이나 시민운동과 같이 사회운동을 하는데는 별 문제가 없다. 운동이라는 것이 자신의 소중히 여기는 가치는 실천하는 일이고, 이런 점에서 모든 가치는 소중히 다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강준만이 지적하듯 한나라당의 인기는 떨어지는데 왜 민주당의 인기 혹은 진보정당의 인기는 올라가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부딪칠 때, 다시 말해서 정치의 문제에 부딪칠 때 근본주의는 문제가 된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른 현실에서 근본적 사고를 다양한 현실과 접속시키지 못한다면, 근본주의는 엘리트주의 혹은 우월주의에 빠지기 쉽고, 따라서 다수이기 보다는 소수이기 쉽기 때문이다.
왜 우리의 진보는 근본주의자가 되었을까? 정말 근본주의자이기는 한 걸까? 이 근본주의는 혹시 전근대적인 신념, 독사, 혹은 주술이 아닐까?
내 의심은 이런 것이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보여주는 근본주의는 사실상 비합리적 우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이는 세 가지 원인에 기인한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듯 한국의 진보주의가 갖는 이념의 진보성과 생활의 봉건성이다. 최근의 민주노총 사태는 진보임을 자처하는 노조에서 전근대적 남성우월주의가 팽배함을 보여주고 있다. 기실 이 사태에서 더 문제인 것은 소위 '조직보위'라는 차원에서 행해지는 집단주의이다. 사람은 누구나 잘 못할 수 있고, 잘못하면 그에 합당한 벌을 받는다. 만약 민주노총이 이 문제를 피해자의 요구에 따라 순리대로 처리했다면 이렇게 큰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잘못을 조직으로 덮으려 했다. 이념은 진보적이지만 조직, 혹은 생활은 '조끼문화'로 대변되는 집단주의, 조직이기주의였기 때문에 문제가 더 크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연고주의 혹은 전근대적 문화는 한국 진보주의의 기본적 재생산구조이라는 점에서 이 문제는 단순히 한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진보주의 전체의 문제인 것 같다. 최근에는 달라졌지만 한국의 사회운동 역시 학연, 지연, 혈연과 같은 연고주의를 통해 조직을 재생산했기 때문에 진보의 비합리성은 재생산되었던 것이다. 한국 진보는 근본적으로 이념적 진보와 문화적 전근대가 공존했기 때문에 비합리성을 내장하고 있었고, 이것이 근본주의를 재생산하는 원인으로 보인다.
이런 기본적 구조하에서, 진보가 시대적 요구를 놓치게 될 때 근본주의는 강화된다. 다시 말해서 연고주의로 재생산된 조직간의 갈등만이 적나라게 노출되는 상태에서 이념은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 아니라 조직의 정체성을 수호하는 깃발이 된다. 80년대 민주/반민주 구도가 해체된 이후 한국의 진보는 현실적 문제를 잃어버렸다. 다시 말해서 민주당계열의 사람들은 사회적 양극화가 진행되는데도 민주/반민주만 주장했고, 보다 진보적인 사람들은 사회적 양극화의 근본적 해결은 주장했지만 여전히 민족/민중의 연장선에서 노선싸움에 열중하였다. 현실적 대안을 둘러싼 치열한 노선갈등은 진보를 살찌게 할 수 있지만, 현실과 다른 갈등 혹은 대안없는 근본주의적 노선갈등은 조직간의 싸움만 치열하게 할 뿐이고, 이것은 정체성으로서의 이념, 즉 근본주의를 강화하는 효과를 갖는다. 여기에 앞에서 말한 집단주의와 연고주의가 겹치면 사실 노선갈등은 없고 그저 조직싸움만 낳게 되고, 조직간의 싸움은 근본주의을 더욱 강화한다. 이러한 근본주의적 이념은 근본주의가 아니라 사실상 비합리적 우상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보수와 진보간의 '적대적 의존관계'다. 보수가 비합리적 대응을 지속적으로 하는한, 진보가 굳이 실력을 쌓을 필요는 없다. 반사이익만으로 지지를 얻는 것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즘처럼 보수가 삽질경제와 공안통치로 나오면 진보는 우선 반대를 해야되고, 그렇게만 해도 지지를 얻으니 굳이 자신의 이념을 현실에 견주어 세련화시킬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반사이익의 악무한' 이것이 진보의 근본주의, 보다 정확하게 진보주의의 비합리성을 재생산하는 것이 아닐까?
진보의 존재근거는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이지만, 진보의 인식론적 근거는 현실이 변하기 때문이다. 변하는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면 진보는 인식할 수 없고, 따라서 존재할수도 없다. 한국에서 진보는 근본주의라는 비합리적 우상을 깰때 말그대로의 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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