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가 지나면서 집권세력은 예의 뻔뻔함을 다시 한번 드러내고 있다. 관심의 촛점이었던 김석기 서울청장의 거취는 오리무중이 되었고, 김석기 총장 역시 자진사퇴의 의사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이럴때 헐이라는 말을 쓰나... 할말이 없다.
김청장은 아마 억울할 것이다. 그는 단지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기 위해 진압명령을 내렸을 것이고, 그것은 어쩌면 그들 말처럼 보다 많은 사람들의 희생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일 수 있다. 그는 절대 살인을 의도하지 않았을 것이고, 적어도 참사를 예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직무에 충실했을 뿐인 그는 자신을 비난하는 세상이 참으로 원망스러울 것이고, 작금의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는 다만 왜 철거민들이 망루에 올라갔는지, 왜 화염병을 들 수 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고, 그건 대통령이나 행안부 장관의 지시사항에는 없는 것이었다.
옛날에 아돌프 오토 아이히만(Adolf Otto Eichmann)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히만은 나찌친위대 중령(최종계급)으로, 국가안전국에서 유태인 문제에 대한 ‘최종 해결책’, 즉 유태인 학살의 실무 책임자였다. 이스라엘 법정에서 그는 다만 자신에게 주어진 직무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항변했다. 그는 오히려 주어진 상황에서 최대한 유태인들에게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유태인들과 협의하여 최선의 방법을 찾았다고 진슬했다. 그는 다만 성실한 직장인에 불과했었다는 것이다.
한나 아렌트는 이러한 아이히만의 태도에서 악의 평범성을 끌어낸다. 즉 홀로코스트라는 전대 미문의 비극을 만든 것은 인간의 내면에 내재한 거대한 악이라기 보다는 명령 이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태도, 즉 평범한 인간의 '생각없음'이라는 것이다. 그가 명령 이외의 것을 생각할 줄 알았다면, 다시말해서 그가 타인에 대해 조금이라도 배려할 줄 알았다면 아마 홀로코스트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역으로 '생각없고', '배려 없는', 요즘 말로 하면 '개념' 없는 아주 평범한 인간의 마음이 대학살이라는 거대한 악을 만들어 낸 것이다.
김청장은 자신의 변명이 아이히만의 변명과 같다는 것을 알까? 혹은 보다 높은 책임자인 행안부 장관과 대통령은 그것을 알까? 사람의 생명을 앞에 두고 떼잡이, 배후세력을 연발하면서 경찰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논리가 대학살의 논리와 같다는 것을 정말 모르는 것일까?
그러나 그들이 알고 모르고를 떠나 내가 더 무서운 것은 이번 용산사태로 드러난 경찰의 무모함이다. 아이히만은 적어도 관료적 합리성은 지켰다. 적어도 그의 진술에 따르면 그는 절차의 틀에 따라 적절한 협의 후에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 경찰은 자신들의 '내부진압수칙'마저 지키지 않았다. 이 황당한 무모함의 원천은 또 어디인가?
타인에 대한 배려는 없더라도 자기편에 대한 배려는 있어야 하는데, 내 부하마저 죽음의 길로 몰아넣는 이 '조직이기주의'조차 없는 무모함이 나는 정말 무섭다. 자신들의 부하를 죽여놓고 여론조작을 위해 백분토론 투표에 참여를 독려하는 그 지도부의 뻔뻔함에 나는 정말 진저리가 난다.
정말 우리 기득권 집단의 이 참을 수 없는 '싸가지 없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개념탑재' 정말 요원한 일일까? 세종로 2구역 철거지역의 세입자들이 장사했었으나 이젠 헐리고 없는 건물터에는 지금 이런 역설적인 문구의 전단지가 붙어 있었다고 한다.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하라!"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57561&PAGE_CD=N0000&BLCK_NO=3&CMPT_CD=M0001&NEW_GB=
정말 이것밖에 안되는 것인가? 정말 이제는 생존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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