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지난 주 ‘인도’ 에피소드에 대해서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도 많더라.
김태호 PD: 지난주는 사람들이 ‘무인도 특집’ 같은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지만 원래부터 이런 느낌이었다. 하하가 있는 동안 100회가 지나서, 그걸 정리해보고 싶었다. 매주 큰 웃음보다는 잔잔한 웃음도 한 번 주고 싶었고. 사실은 현장에서 문제도 좀 있어서 의도한 것과는 다르게 나간 것도 있다. 도저히 찍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그런데 원래 1, 2월에 시청률이 제일 높다가 3, 4, 5, 6월에 쭉 빠진다. 그 때 되면 거품도 빼고, 부담도 줄여서 다른 거를 하는 편인데. 지금 준비하고 있는 건 100회, 그 이후다. 식목일 특집이 기점이 될 것 같은데, 올해부터는 지구라든가 환경 같은 걸 다루고 싶다.
t: <무한도전>이 주목받은 게 재작년 말 정도다. 그 때 상황과 지금은 또 많이 바뀌었는데, <무한도전>이 성장하면서 고민도 많이 늘었을 거 같다. 사건들도 많았고, 멤버도 빠지고.
김태호 PD: 매번 해오던 고민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더 재밌는 거 뭐할까. (웃음) 다른 게 없다,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무한도전>의 리얼한 콘셉트가 다른 프로그램에도 많이 들어가서 우리가 또 변해야 한다는 생각은 든다. 그래야 다른 데가 또 변하니까, 그게 의미있을 거다. 결국 크게 보면 같이 고민하고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니까. 노홍철이 다친 건 본인 잘못도 아닌데 되게 미안해해서 오히려 신경쓰일 정도다. 하하가 군대 간 이후에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도 종종 받는데, 누가 들어오더라도 그 공백을 일단 유지하고 싶다. 브라운관에서 뿐 아니라 현장에서도 너무 비중이 컸던 존재여서 그 빈자리를 메우는 게 쉽지도 않으니까.
t: 그 빈자리에 누가 들어올 가능성은 있다는 얘기인가.
김태호 PD: 지금 상황에서는 누구도 <무한도전>에 들어오려고도 안한다. (웃음) 딱히 어떤 계획이 있는 건 아니고 그냥 흐름에 맡겨둘 생각이다. 그게 <무한도전>의 방식이니까. 누가 하하 역할을 대신하는 건 말도 안 된다. 그저 여섯 명이 다섯 명으로 바뀌었을 때 그 다섯이 바뀐 상황에 적응하는 시간을 주고, 그 시간동안 멤버들이 고민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 그러면 원래 멤버 중 누군가가 자연스럽게 하하가 하던 역할을 대신할 수도 있고, 즉석에서 누군가를 불러서 함께 할 수도 있는 거고.
“못 생긴 애들이 일 잘한다고 뽑혔다”
t: 처음부터 예능 PD가 되고 싶었나?
김태호 PD: 맞다, 대학 들어가면서부터 그랬다. 예능을 하면 시트콤도 하고, 쇼도 하고, 모든 걸 다 할 수 있겠구나 싶었다.
t: 처음부터 MBC에서 일하고 싶었나?
김태호 PD: 2001년에 입사했는데, 대학 다닐 때 KBS로 몇 주 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거기서 ‘너는 MBC로 가라’는 말을 들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웃음) 그래서 막연히 MBC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 면접을 신종인 부사장님이 당시 예능국장님으로 보셨다. 남들은 뭘 만들고 싶나? 이런 걸 물어보던데, 나는 머리는 어디서 잘랐냐, 옷이랑 신발은 어디서 샀냐는 걸 물어보더라. 그래서 떨어졌구나! 싶었는데, 합격하고 나서 들은 얘기로는 특이해서 뽑았다고 하더라. 못 생긴 애들이 일 잘한다고. (웃음)
t: 패션을 전공했다는 소문도 있다.
김태호 PD: 아니, 신방과다. 패션학과는 가고 싶었을 뿐이다. 어머니께서 한복집을 하셔서 어려서부터 의상에 관심이 많았다. 6학년 때에는 실과 시간에 주머니를 만들면서 수도 놓은 게 뽑혀서 도교육청에 전시된 적도 있다. 패션하고 싶다고 하고선 어머니께 엄청 혼났다. 서른 되기 전에 꼭 하고 싶어서 미국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에 원서도 냈었다. <일요일 일요일 밤에>에서 ‘대단한 도전’ 조연출을 할 때였는데 그때 쓰러졌다.
t: 그래도 패션보다 예능 프로그램이 재미있었지 않나.
김태호 PD: 물론 재미있었다. 그때 쓰러진 것도 하루에 세 시간씩 자면서 일하다가 그랬다. 병원에서 무식하게 일한다고 할 정도였으니까. ‘상상원정대’를 할 때에는 ENG카메라말고, 내가 직접 6mm를 들고 다니면서 찍었다. 지금과 비교하면 정말 열악한 환경이었는데 되게 재밌었지. ‘도전 요리왕’도 (여)운혁이 형이 어떤 거 할 거냐고 물어서 어려운 거 하겠다고 해서 맡았다. 정말 어려웠는데 재밌었다. 일주일 내내 작가들도, 나도 같이 밤새면서 만들었다.
“방송국도 언제까지나 광고로만 살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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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해진 <무한도전>표 상품들. | |
t: <무한도전>은 꾸준히 성장한다는 느낌이 있다. 프로그램이나 사람이나.
김태호 PD: 갑자기 들어간 상황이라 첫 주 동안, 몇 주 동안은 막연히 다른 분들이 미리 만들어 놓은 걸 하다가, 이러면 안 되겠다, 참 소모적이고 효율적이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원점에서 시작했다. 어차피 바닥이었을 때라서 뭘 해도 부담이 없었으니까. 구성도 없었다. 연기자들에게도 ‘그냥 놀아보자’는 정도였고. 그런데 지금도 뭘 딱 준비해서 ‘이렇게 합시다’하면 되게 어색해한다. (웃음) 그냥 (유)재석이 형이나 (정)형돈에게 전화해서 ‘이거 어떨까? 저거 어떨까?’하며 콘셉트를 던져주고 자연스레 접근해야 시청자들도 좋아하더라.
t: 그러던 프로그램이 이젠 달력도 만들고 음반도 만들었다. (웃음)
김태호 PD: 입사하고 한 4년 만에 처음으로 휴가를 썼다. 그 2주 동안 무작정 뉴욕에 가서 뮤지컬, 오페라 다 보면서 놀았다. 돈도 엄청나게 썼다. (웃음) 그 때 누나가 살고 있는 LA에서 조카와 함께 <도라>라는 애니메이션을 봤는데, 그 때 비즈니스 마인드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송국이 언제나 광고로만 살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캐릭터 사업 같은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상 원정대’에서 타이틀, 캐릭터 작업에 관심을 주고, <무한도전>으로 캐릭터를 좀 더 체계적으로 밟아 나갔다. 그런데 사내에서는 그런 얘기를 하면 왜 일을 만드냐는 식으로 받아들인다. 티셔츠, 후드 티, 모자 이런 기념품들도 일부러 만들어보는데, 언젠가 사업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내가 일단은 회사원이라서 앞에 나서면 구설수도 있으니까 조심해야할 문제다. 멤버들에게도 회사에도 도움이 되는 게 있을 거라는 건 분명한데. 예전엔 학용품 회사에 전화해서 필통 같은 것도 만들어볼 생각도 했다.
t: 사실 그런 마인드는 제작사나 기획사 마인드다.
김태호 PD: 그런데 지금 상황에서는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MBC도 97% 이상이 광고로 나오는 수익구조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 중에서도 대부분이 인건비로 나가니까. 앞으로 방송시장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여기에 중국이나 일본은 이미 방송과 통신 시장의 박빙인 상황이지만, 거기서 방송사들은 캐릭터 사업이나 다른 관광상품처럼 개발한 아이템으로 나름의 길을 찾고 있다. 그런데 결국 그런 건 외부적인 고민이고, 내부적으로는 프로그램에 대한 고민일 수 밖에 없다.
“이제는 공익적이고, 사회적인 것들에 대해 고민하고 싶다”
t: 지난 100회를 돌아보면 어떤가. 점차 확장되고 규모도 커졌을 텐데.
김태호 PD: 예산은 똑같다. 사람들은 프로그램이 치고 올라갔으니까 예산도 올라갔으려니 하지만 똑같다. 거의 매주 적자를 보고 있어서 운영부에서 혼난다. (웃음) 이제부터는 가끔씩이라도 발전적인데 힘을 쏟고 싶다. 다들 생각해봤으면 싶은 공익적이고, 사회적인 것들. 서울시내 교통판도 체크해보고, 어떻게 고칠까 고민해보고 이런 거.
t: 지금까지 <무한도전>의 터닝포인트라고 할 만한 게 많지 않나.
김태호 PD: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과 비교한다. 지난 번 했던 거랑 비슷하지 않아? 그런 것들을 신경 안 썼으면 훨씬 쉽게 100회를 했을 거다. 우리가 만들어낸 이미지, 우리가 만들어낸 과거라서 누굴 탓할 수도 없고. 오히려 우리에게 자극이 되고 발전이 된 계기는 우리가 스스로 도전한 것들이었다. ‘일찍와주길 바래’ 같은 경우는 처음으로 리얼한 콘셉트로 가보기로 한 거였고, 기왕 멤버들이 늦는 걸 살려보자는 의도여서 우리로서는 터닝포인트였고, ‘뉴질랜드’ 때는 여름에 그냥 시원한 눈을 보여주기로 했던 거였고. 원래 알래스카로 가려고 했는데, 거기엔 눈이 없다는 얘길 듣고 2주 전에 뉴질랜드로 바꿨다. 그런데 거기서 정말 죽을 뻔 했다. 3000미터 위에서 차가 미끄러져서 낭떠러지로 쭉 내려가는데, 정말 죽는구나 싶어서 오히려 차분해졌다. (웃음) 거길 다녀오고 나서 서로가 뭉친 계기가 되었고. 그러다가 갑자기 시청자 층이 넓어졌다. 그 전에는 불친절한 프로그램이었는데 어르신들이 많아져서, 다시 캐릭터를 상기시킬 필요가 있어서 캐릭터를 비교하거나 점도 보면서 서로에게 집중한 에피소드들도 우리에게 터닝 포인트로 작용했다. 비판을 받긴 했지만, 3월에 한 ‘드라마’ 특집이 제일 재밌었다. 잘못 푼 건 내 잘못이지만, 제일 힘든 도전이었고 그래서 보람도 가장 컸던 에피소드였다.
t: 그런데 이제는 <무한도전>이 하나의 브랜드가 된 상황에서 비판도 많아지고 부담도 늘었다.
김태호 PD: 우리는 매 회 도전하는 사실에 의미를 두는데, 시청률만 보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많다. 되든 안 되든, 우리로서는 그 과정이 중요하다. 드라마처럼 반응이 안 좋은 경우도 있으니까 오히려 성공하는 도전들이 살기도 하고. 우리에게 제일 위험한 건 ‘자뻑’이다. ‘너희 못난 놈들이 어떻게 그런 걸 감히 하느냐’는 식의 반응을 기대한 경우에도 재미있었고 감동이라는 기사가 나오면 당황스럽다. 참 애매하다. 그냥 편하게 봤으면 좋겠다. 우리는 그저 주말 저녁에 재미를 주려는 것뿐인데 그 재미라는 게 단지 큰 웃음만은 아니지 않나. 우리 나름대로 다양한 웃음을 주려고 하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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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가 되었던 ‘뉴질랜드’편과 ‘드라마’편. | |
t: 표절 시비도 있었고, 정준하의 사업에 관련된 비판도 컸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가장 중요한 팀워크가 위협받는 상황도 생겼으리라 짐작하는데.
김태호 PD: 글쎄, 그 문제에 대해 또 언급하긴 그렇다. 말 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다만 나도 이것저것 많이 고민했고 결국 MBC 내부에서 내린 결론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 개인적으로 아쉬운 것도 많지만 그 얘기는 이 정도로 접고 싶다. 그리고 표절 문제는, 사실 내가 한 얘기를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상황에서 뭐라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고 생각한다. <무한도전>에 관계된 사람들이 100명이 넘는데 그들이 대부분 일주일 내내 아이템을 고민하는 상황에서 비슷한 상황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조심한다고 매번 작가들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테이프를 검토받고, 폐기하는 것도 부지기수지만 그 과정을 배제한 채 스틸 사진만 놓고 표절이라고 하는 건 좀 그렇다. 축구공에 물을 넣는 걸 일본에서만 생각했을 거라고 여기는 것 자체가 기분이 나쁜 거다. 사실 라이센스 하나 구입하는 비용은 얼마 안 된다. 제작비에서 충분히 감당이 되는데 왜 굳이 표절을 하겠나. 이번에 시청자 응모로 아이템을 구하는데, 90 정도가 비슷한 아이템이다. 이런 것도 나중에 그냥 다 오픈할 생각도 한다. 제일 속상한 건 예능 프로를 만드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다. 방송 3사가 모두 머리 싸매고 노력하는데 그걸 몰라주니까. 이젠 표절 관련해서는 대꾸하고 싶지도 않다.
t: 하지만 어쨌든 <무한도전>에 대한 시선이 전부 호의적이지 않은 건 사실이다. 그 중에는 오래된 팬들도 있고, 새로운 기대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프로그램이든 성장은 오래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금방이니까, 그에 대한 부담이나 고민이 없을 수는 없지 않나.
김태호: <무한도전>이 내 생각만으로 가는 프로그램은 아니다. 일정 부분 내 손을 떠난 것도 있고, 지금 내가 빠진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생길 수준도 아니다. 지금 나도 변화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문제는 멤버들과 논의해서 결정할 수 있는 문제다. 5인 체제냐 6인 체제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시청자들과 함께 고민해보고 대안을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 그러다가 안 되면 안 되네, 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앞으로 우리가 살아남은 방법은 계속 발전하는 것뿐이다. 100회 이후에 그런 고민들이 있다. 결국, 우리의 제일 큰 경쟁 상대이자 적은 <무한도전>일 수 밖에 없다.
“미국의 프로덕션에서 1년 정도 인턴 생활을 해보고 싶다”
t: <무한도전>이 시청률 30%를 넘기는 프로그램이 되면서 예전의 즐거움이나 기쁨을 뺏어간 건 아닌지 궁금하다. ‘2등만 하자’는 원래 콘셉트에서 비겨나도 한참 멀어진 상황에서 그건 일이 될 수밖에 없으니까.
김태호: 나는 콤플렉스가 많은 인간이라 항상 구원의 손길을 요청했다. 못하는 게 너무 많은 인간이라서 지금까진 멤버들이, 작가들이, 후배들이 도와줬는데, 이제는 그게 감당이 안될 정도로 규모가 커진 건 사실이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까, 일적으로는 어느 정도 반응을 이끌어냈다고 해도 일상적인 삶은 빵점이다. 정신이 없어서 아파트 관리비도 두 달을 못 냈다. 그래서 가끔은 내가 이렇게 해서 돌아오는 게 뭐가 있나하는 생각도 들고, 어차피 월급쟁이라는 생각도 들고, 그러다 보면 프로그램에 직접 영향을 미치니까 오히려 내가 빠지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을 때도 있다. 내 삶의 김태호와 <무한도전>에서 일하는 김태호가 항상 대립을 하지만 결과는 항상 일하는 김태호 위주로 돌아가니까. 밤샘 작업하면 야근 수당은 나오지만, 그 돈은 나중에 병원 갈 돈이라서, 받아서 행복하지도 않다.
t: <무한도전> 외에 다른 사적인 계획이 있는 것처럼 들린다.
김태호PD: 사실은 이번 봄 개편까지만 프로그램을 맡고, 가능하면 미국의 어느 프로덕션에서 1년 정도 인턴 생활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프로젝트 런웨이> 같은 리얼리티 쇼에 관심이 많아서 미국에서는 어떻게 제작하는지, 어떻게 시도하고 만들어가는 지 그런 걸 보면서 변화하고 성장하고 싶은데, 상황이... 못 갈 거 같다. (웃음)
t: 당신에게도, <무한도전>에게도 성장이란 중요한 키워드인데, 결국 지금 성장할 대로 성장한 이 프로그램이 많은 변수를 겪으며 어떻게 바뀌리라 생각하는가.
김태호 PD: 우리는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그 느낌은 놓치지 않을 거다. <무한도전>도 나이를 먹고, 멤버들도 나이를 먹으면서 죽을 때까지 성장하고 변화하는 바로 그 과정 자체가 되는 것 같다. 그렇게 되면 좋겠고. 나로서는 오히려 그 과정을 즐기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무한도전>은 결국 그 과정을 프로그램으로 보여주는 거다. 지금으로서는 우리가 이리저리 끌려 다니면서, 당구대 공처럼 이리 튕기고 저리 튕기는 소모적인 상황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앞으로 가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