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곧 100회를 맞이한다. 보잘 것 없는 인물들이 각자의 캐릭터를 가지고 버라이어티 쇼를 만든 지 몇 년, <무한도전>은 전례가 없는 과정을 겪으며 현재 한국 버라이어티 쇼의 정점에 위치한 프로그램으로 성장했고, 여섯 명의 멤버들은 ‘평균 이하의 연예인’에서 누구도 무시못할 존재들로 거듭났다. 100회 특집을 앞둔 <무한도전>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을 김태호 PD가 직접 골랐다.
처음으로 해외에서 촬영한 에피소드였는데, 당시엔 아무도 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봐주지 않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리가 좀 더 폭넓은 아이템을 할 수 있게 만든 계기가 되어서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에피소드다.
이 시간을 통해 <무한도전>의 리얼한 느낌이 더 강화되었고 멤버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이 에피소드를 통해서 하하와 형돈의 어색한 관계를 발견했고, 이것을 그 다음 아이템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그 둘의 관계에 대해서 당시로서는 그랬나? 정도였는데, 한국에서 몰카로 확인한 대로 실제로 두 친구는 참 많이 어색한 관계였다.
출연자들 뿐 아니라 스태프들 모두에게 도전이었던 에피소드였다. 어느 한 분야도 편한 게 없어서 시청자들에게는 불편함을 줬다고도 생각하지만, 연출자로서는 오히려 <무한도전>의 모든 멤버들에게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몸 개그나 센 아이템으로 큰 웃음을 주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상황극의 아이러니를 통해 잔잔한 웃음을 의도한 에피소드였고, 그 의도대로 만들어지긴 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면 홍자매의 좋은 대본을 살리지 못한 제작진의 경험부족 때문일 것이다. 2월 말과 3월 초의 추위에 유재석이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 하며 찍어서 미안했던 기억도 있다. 그래도 그걸 할 수 있는 게 유재석이라는 생각을 하게 한 경험이기도 했다.
<무한도전>을 만들면서 호흡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 언제나 센 것만을 할 수도 없고, 언제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웃음을 선보일 수도 없기 때문에 <무한도전>의 에피소드들은 언제나 큰 흐름에서 결정된다. 그런 점에서 이 에피소드를 결정했던 것인데,
뜻밖에 현장에서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촬영 여부에 대해서 결정해야하는 상황이었다. 출연진들이 그래도 가겠다고 결정하고, 스태프들을 설득해 촬영을 시작했는데 비 때문에 조명이 터지는 와중에서도 좋은 결과를 얻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촬영을 끝내고 돌아갈 차도 없어서 1킬로 정도를 걸었는데, 그게 그렇게 시원할 수 없었다. 다들 기분이 좋았다. 홍철이는 걸어가는 동안 막 소리 지르고. 어릴 적 비 맞고 돌아다니는 그런 느낌이었다.
연출자의 입장에서 이 에피소드는 하루 동안 찍어서 2회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효율성이라는 걸 생각하게 된 경험이었다. 물론 그 동안 굵직한 아이템을 선보이면서 다소 현실과 동떨어졌던 멤버들을 다시 생생한 현장으로 들여보낸 에피소드라는 의미도 크다. ‘
서울구경’ 에피소드는 ‘하나마나 공연’ 에피소드처럼 길에서 만난 사람들이 많은 재미를 줬던 에피소드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은 오로지 연출자로서의 입장에서 고려한 지점들이고 오히려 여섯 멤버들은 이걸 왜 해야 하는지, 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다소 애매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관계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본 계기랄까.
대외적으로 큰 도전을 하게 된 계기였다.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이런 미션을 수행하게 하면서 개개인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이런 저런 얘기들이 많이 나왔다. 그런데 패션쇼에 나가겠다고 말하고 나서, 그리고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하기도 했다. 이상봉 선생과는 타이밍이 좋았다. 파리에서 이미 쇼를 열었던 선생이 한국에서는 좀 재미있는 콘셉트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런웨이에 설 수 있었다. 멤버들 뿐 아니라 스태프들도 모두 긴장했는데, 나는 이럴 때마다 학부형이 되는 기분이다.
패션쇼 아이템에서부터 발전한 아이템이 바로 스포츠 댄스였다. 굳이 이렇게 어려운 미션을 잡은 이유는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무한도전>과 비슷한 콘셉트의 프로그램들이 많이 나와서 그들과 어떻게든 <무한도전>을 차별화 시킬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멤버들이 공연 무대에 올라갈 때에는 패션쇼를 볼 때보다 몇 배나 더 심장이 쿵쿵거렸던 기억이 있다. 현장에서 모두 울어버렸는데 그때 나도 울었다. 그만큼 모두가 열심히 했던 도전이었고, 웃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속에서 잔잔한 감동도 주고 싶었던 에피소드였는데 결과적으로 좋았던 에피소드였다.
100회를 앞두고, <무한도전>이라는 시간들을 모두가 정리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 개그나 큰 웃음도 중요하지만, 연출자로서는 때로 잔잔한 웃음을 주고 싶을 때도 있다. 그렇다고 인도에서 자아를 찾겠다고 거창한 뜻을 밝힌 적은 없었고 오히려 에필로그처럼 100회까지의 <무한도전>을 마무리하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사실 현지에서 함께 하기로 했던 프로덕션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원하던 것을 전혀 얻지 못해 촬영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연출자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난감한 상황이었지만 멤버들 덕분에 촬영을 진행하기도 했다. 스태프들을 포함해 <무한도전> 멤버들에게 인도 편은 중요한 계기로 남을 것 같다. 100회 이후의 <무한도전>은 좀 더 넓은 분야를 깊게 다루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