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화 '천일의 스캔들'을 본 이후에 대한 내용입니다. 본래 사극 영화나 드라마를 본 뒤에는 과연 그 내용이 실제 기록된 역사와는 얼마나 다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고, 거기에 대한 간략한 해설에 해당하는 글입니다.
우선 분명히 해 둘 것은 저는 영국 역사 전공자가 절대 아니고, 다음 글에는 그저 심심풀이로 알고 있던 상식에다 금세 찾아볼 수 있는 연대와 날짜를 결합한 내용을 담고 있을 뿐이란 점입니다. 당연히 오류도 널려 있을 겁니다. 사정을 잘 아시는 분들은 서슴없이 '아닌 것 같은' 부분을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의에 따라 연대기 형식으로 글을 배치했습니다.
(어린 헨리 8세)
1491 헨리 8세 출생
헨리 7세의 차남으로 태어납니다.
1499 메리 볼린 출생(추정)
토머스 볼린과 아내 엘리자베스 사이의 맏딸입니다. 물론 '천일의 스캔들'에서는 앤이 맏딸로 나옵니다만, 사실 지금까지의 정설로는 메리 볼린이 언니로 되어 있습니다.
1501 앤 볼린 출생(추정. 1507년 설도 있음)
물론 작가 필리파 그레고리가 우기면 우길 수 있을 정도로,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죠.
1502 헨리, 형 아서 사망으로 왕세자가 됨.
1504 조지 볼린 출생
1509 6월11일 형수 캐서린과 결혼. 6월24일 왕위 등극.
캐서린은 18세인 헨리보다 6세 연상(1485년생). 게다가 그리 미인은 아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신앙심이 깊었고, 당시의 영국 국민들에겐 상당한 인기를 자랑했다고 하죠. 또 친정 쪽으로도 신성로마제국 황제 칼 5세-당시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 버건디와 남 이탈리아를 지배하던-의 고모일 정도로 막강한 정치적 배경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런 왕비와 이혼한다는 것은 거의 왕 노릇을 포기할 정도의 미친 짓이 아닐 수 없습니다.
1514 메리 볼린과 앤 볼린, 프랑스 궁정으로 보내짐
1519 메리 볼린, 영국으로 귀국.
엘리자베스 블라운트, 헨리의 사생아 헨리 피츠로이 낳음.
엘리자베스 블라운트는 메리 볼린보다 앞서 헨리의 총애를 차지했던 여성입니다. 그 아들은 헨리 8세의 '공식 사생아'로 알려져 있지만 그걸로 블라운트가 덕을 본 건 별로 없습니다. 이런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메리 볼린이 아들만 낳으면 팔자를 고쳤을 거라는 얘기는 설득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앤이 왜 헨리 왕과 그렇게 기를 쓰고 결혼을 하려 했는지가 설명되죠.
또 메리 볼린에 대해서도 이때 이미 프랑스 왕과의 스캔들이 파다했다고 전해집니다. 영화에서 나오듯 메리가 세상 이치에 별 관심 없는, 사랑에 목숨 거는 청순한 캐릭터는 아니었다는 것이 정설이죠.
1520 메리 볼린, 윌리엄 케리와 결혼. 결혼식에 헨리 8세 참가.
이맘때 언젠가부터 두 사람 사이의 불륜이 시작됐을 거라고 추정하고 있더군요.
1522 앤 볼린, 프랑스에서 귀국.
앤 역시 프랑스 궁정에서 화려한 연애담을 뿌리고 돌아옵니다. 1501년생이라면 이때 이미 21세, 1507년생이라면 15세. 뭐 어느 쪽이든 배울 건 이미 선진국 프랑스에서 다 배운 상태였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15세는 너무 이르군요. 이래서 1501년생 설에 더 무게가 실리는 것 같습니다.
1524 메리 볼린, 맏딸 캐서린 케리 낳음. 헨리 8세의 사생아라는 소문 퍼짐.
1526 메리 볼린, 아들 헨리 케리 낳음. 역시 헨리 8세의 아들이라는 소문 퍼짐.
물론 증거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만 필리파 그레고리는 확신한답니다.
1527 헨리 8세, 앤 볼린에게 매혹돼 캐서린과의 이혼 추진 개시(추정).
윌리엄 케리 사망.
이렇게 해서 메리 볼린이 과부가 되죠.
1533 5월23일 캐서린 왕비와 이혼. 5월28일, 헨리와 앤 볼린 결혼
32세의 신부... 당시로선 대단한 정열입니다.
1534 로마 교회로부터 파문 위기에 몰린 헨리, 수장령 선포. 영국 국교의 수장이 됨. 앤 불린, 엘리자베스(뒷날의 엘리자베스 1세) 낳음.
자, 이제 풍운의 1536년입니다.
1536 1월 8일 캐서린 왕비 사망.
1월29일 앤 볼린 유산.
5월 2일 앤 볼린과 조지 볼린, 근친상간과 반역으로 기소
5월17일 앤 볼린과 조지 볼린 사형 집행
5월18일 헨리, 제인 세이무어와 약혼
5월 30일 헨리, 제인 세이무어와 결혼
캐서린이 죽고, 45세의 헨리 8세는 말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습니다. 이대로 헨리 왕이 죽기라도 했다면 영국은 후계자 없는 난국을 맞는 셈이죠. 이런 스트레스 때문인지 앤 볼린은 태중의 아이를 유산해버립니다.
역사가들은 사실 앤 볼린이 감췄을 뿐이지 엘리자베스를 낳은 이후 두 차례 은밀한 유산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유산된 아기는 아들로 밝혀지고, 아들 하나 낳겠다고 모든 불이익을 감수(이혼, 파문, 등등등...)했던 헨리 8세는 야수로 돌변합니다.
"저 여자와 결혼한 건 마녀의 짓(witchcraft)에 당한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히 하고 꼬투리를 찾죠. 물론 속내는 이제 35세(혹은 29세?)에다 세번이나 유산을 했다는 앤 불린에게서 더 이상 아들을 기대할 수 없을 거란 쪽일 겁니다.
결국 5월2일, 볼린 남매는 근친상간과 반역으로 체포되고 단 15일만에 참수형을 당합니다. 속전속결이죠.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참수형 다음날 새 신부와 약혼을 발표한 헨리 왕은 달을 넘기지 않고 결혼식까지 해 버립니다.
아무리 앤 볼린에게 정나미가 떨어졌다 해도 이건 좀 심하다 싶죠.
1537 에드워드(뒷날 에드워드 6세) 출생, 10월 24일 제인 왕비 사망
46세에 마침내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을 얻은 헨리 8세. 그러나 기쁨도 잠시. '진정한 아내'라던 제인 왕비가 산후 조리 미숙으로 사망합니다.
1540 헨리 8세, 클레브 공의 딸인 클레브의 앤(안나 폰 클레페)과 결혼했다가 바로 이혼. 캐서린 하워드와 결혼.
이 갑작스런 결혼과 이혼에도 정말 코미디같은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당시 조각조각 찢어져 있던 독일의 서부 지역(현 프랑스 동부와 겹침)에 위치해 있던 클레브(클레페) 공작령은 캐서린과의 이혼 때문에 신성로마제국과 등지고 있던 헨리 8세에게는 중요한 우방 역할을 할 수 있는 땅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홀아비가 된 헨리 8세에게 중신들은 클레브 공작의 딸과 결혼하라고 등을 떠밀죠.
선을 볼수도 없던 시절, 헨리 8세는 초상화를 보내게 하고 유명한 화가인 홀바인(아들 쪽)이 그림을 그립니다. 이 초상화에 흡족했던 헨리 왕은 신부를 보내게 하지만... 실물과 초상화는 너무도 달랐던 겁니다. 결국 헨리 왕은 그 길로 신부를 돌려보냅니다. 물론 영국과 클레브의 동맹도 한방에 물 건너간 얘기가 되고 말죠.
...정말 무책임의 극치인 왕이 아닐 수 없습니다.
1541 캐서린 하워드와 이혼. 캐서린 하워드, 불륜죄로 참수형.
앤 불린의 외가가 하워드 가인 것은 영화를 보신 분들은 잘 아실 일이죠. 캐서린 하워드도 앤 불린과 사촌간입니다. 결혼은 하지만... 18세의 캐서린은 곧바로 왕의 측근과 불륜을 벌여 체포됩니다. 결과는 또 한번의 싹둑.
1543 캐서린 파와 결혼
재정에 위협을 느꼈는지 갑자기 왕은 부유한 이혼녀와 결혼합니다.
1548 헨리 8세 사망
결국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반역죄로 몰아 머리를 떨군 왕도 57세를 일기로 이렇게 가 버리죠. 그리고 나서 에드워드 6세는 거지 소년과 함께 행복하게 나라를 다스렸다고 전해집니다. (물론 이건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 에 나오는 주장이죠.)
그의 사후 아들인 에드워드(6세), 캐서린의 딸 메리(1세), 그리고 엘리자베스(1세)가 잇달아 왕위에 오릅니다. 여러가지 상황을 고려하면 엘리자베스가 살아남아 왕위에 오른 것이야말로 정말 기적이라고 봐야겠죠. 게다가 대단히 훌륭한 왕이 됐다니 참... 그러나 엘리자베스가 미인이었다는 기록이 없는 걸 보면 아무래도 아빠를 닮은 모양입니다.
자, 그럼 앤 불린은 대체 얼마나 미인이었을까요.
이 그림은 후대 화가들이 그린 상상도입니다. 이런 스타일은 아니었을 겁니다.
많은 역사가들은 앤 볼린이 '전형적인 미녀는 아니었다'는 데 일치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검은 머리와 깊은 눈빛이 누구라도 끌어들일 수 있었다. 특히 교양과 화제가 풍부하고 다재다능해서 항상 주위에 사람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군요. 결국 프랑스 유학이 큰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아무튼 큰 꿈을 꿨던 이 영국 역사의 요부는 이런 식으로 역대 영국 왕비 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어 버렸으니, 어쩌면 당초의 목적보다 몇 배 더 큰 성공을 거뒀다고 봐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천일의 스캔들, 영국의 장희빈 이야기 http://blog.joins.com/fivecard/9335427
천일의 스캔들, 영화와 역사의 차이 http://blog.joins.com/fivecard/9346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