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데거 사상과 포퍼 사상의 비교연구
- 양자의 과학관을 중심으로 -
박찬국(서울대)
1. 들어가면서
하이데거와 포퍼는 인간과 세계, 과학과 철학, 그리고 사회와 역사 등 거의 모든 철학적인 주제에 대해서 대극적인 입장에 서 있다.
포퍼는 과학적인 이성과 과학적인 이성에 입각한 열린 대화야말로 인간과 세계에 대해서 가장 신뢰할만한 이해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 본다. 이에 반해 하이데거는 과학 이전의 우리의 생활세계 자체가 인간 자신과 사물들 그리고 세계에 대한 이해에 입각해 있는 것으로 보는 동시에 이러한 일상적인 세계이해를 시와 예술을 통해서 심화하고 정화하는 것만이 인간과 세계에 대한 보다 근원적인 이해를 가능케 하는 것으로 본다. 하이데거에게 시와 예술은 인간들의 단순한 주관적인 감정의 표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과학보다 훨씬 더 심원하고 근원적인 세계이해를 전달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양자 간에 보이는 이러한 차이는 포퍼가 20세기 후반의 자유민주주의적인 서구세계를 이제까지 존재했던 가장 좋은 세계로 보는 반면에 하이데거가 그것을 존재망각의 극단으로서 세계와 대지의 황폐화가 갈 데까지 간 것으로 보는 데서 정점에 달한다.
양자 간의 차이가 이렇게 극단적이기 때문에 양자 간에는 어떠한 비교나 대화의 가능성도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럼에도 양자 사이에는 상당히 공통된 문제의식이 존재한다. 포퍼든 하이데거든 20세기의 주요한 현상 중의 하나인 전체주의를 극복하는 것을 중요한 사상적 과제로 삼았다. 다만 양자는 전체주의의 기원과 그것의 해결방안에 대해서 전혀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었다.
포퍼는 이들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들이 과학의 이름을 빌어서 자신들을 정당화하는 데 주목했다. 따라서 그는 그것들이 사이비 과학에 불과하며 진정한 과학은 무엇인지를 제시함으로써 사람들을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들의 기만적인 유혹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고 했다. 포퍼는 과학의 본질적인 특성을 비판적인 정신에서 찾으면서 이러한 비판적인 정신을 보장하는 사회체제로서 자유민주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이에 반해 하이데거는 나치체제나 공산주의체제와 같은 사회체제 뿐 아니라 개개인들의 주체성과 자유를 내거는 자유주의 사회도 실질적으로는 인간들을 사회의 기능 인자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하는 전체주의라고 본다. 따라서 하이데거는 전체주의적인 이데올로기가 붕괴하고 제대로 된 과학적인 접근방식을 사회 문제의 해결에 적용할 경우에도 사람들이 존엄한 존재로서 대우 받는 사회가 성립되리라고 보지는 않는다. 하이데거는 이러한 사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인 방법을 사회문제에 제대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자들을 계산 가능한 에너지원으로 보는 기술적인 존재이해를 넘어서 근원적인 존재이해를 건립하는 것이 필수적이라고 본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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