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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19세기의 이데올로기 (월러스틴)

ddolappa 2008. 5. 16. 04:03
 

19세기의 이데올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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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보통 이데올로기를 제도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데올로기는 세계관이라는 의미 이상이다. 세계에 대한 인간들의 해석 방식을 결정 짓는 하나 또는 몇몇의 세계관은 모든 시대와 장소에서 존재해 왔다. 즉,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공통된 안경을 통해서 현실을 구성한다. 이데올로기는 바로 이러한 세계관이지만, 그것은 의식적인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의식적이고도 집단적으로 형성된 아주 특수한 종류의 세계관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들은 19세기에 보수주의, 자유주의, 그리고 마르크스주의로 나타났다. 이것들은 한결같이 세계 체제적인 이데올로기였다. 당연히 보수주의가 제도적으로 가장 먼저 등장하였다. 보수적인 성향을 지닌 사람들은, 변화는 정상적인 상태라는 '변화의 정상성'을 수용하게 됨으로써 절박한 딜레마에 부딪히게 되었다. 그들은 가능한 가장 느린 속도의 변화에 대한 지적 근거를 마련해야만 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들이 이런 종류의 변화는 다른 종류의 변화보다 더 심각한 것임을 깨달았다는 점이다. 그러하여 최우선으로 내세운 것은, 모든 조잡한 개혁가와 혁명가들에게 제각기 제동 장치로 구실하게 될 여러 구조들을 보조하는 것이었다. 이 구조들은 보수주의자들이 찬양할 만한 장점들을 지니고 있었는데, 예를 들면 가족, 공동체, 교회, 그리고 군주제 같은 것이 여기에 속한다. 보수주의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요소는 언제나 '전통'이었다. 그들은 전통이 지혜의 소산이기에 그 가치를 보존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는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간에, 전통을 바꾸려면 그만큼 설득력 있는 정당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분열과 퇴폐가 뒤따를 것이다. 따라서, 보수주의 이데올로기는 본래부터 방어적인 성격을 지닌, 카산드라같은(Cassandra-like)일종의 문화적 비관론을 구현한 것이다. 보수주의자들은 이제 정상적인 것으로 통하게 된 변화의 위험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정상적인 변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데올로기이다. 그러나 그것은 보수주의가 등장하고 나서야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되었다. 19세기 초 영국의 토리당원들이 자신들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자유주의자'라고 처음으로 불렀다. 분명히, 국가의 구속으로부터 벗어나야 할 개인의 권리라는 관념은 그에 앞선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었다. 절대주의 국가의 성장 과정 뒤에는 입헌 정부의 옹호자들이 줄지어 따라오고 있었다. 존 로크는 종종 이러한 사상적 계보의 상징적인 인물로 간주된다. 그러나 19세기에 출현한 자유주의는 의식적으로 입법화된 개혁의 이데올로기였고, 이러한 이데올로기는 17세기나 18세기에는 실재로 존재하지 않았다. 종종 언급되는 것처럼, 19세기초의 '최소 국가(minimal state)'자유주의와 19세기 말의 '사회 국가(social state)' 자유주의를 구별하는 것이 요점을 놓친 것이라고 내가 믿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양자의 대변자들은 똑같은 의식적인 정치적 강령, 즉 '정상적인 변화'를 부추기고 그것을 일정한 방향으로 이끌어 내며, 또 촉진시켜 줄 입법상의 개혁을 태어나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마르크스주의가 19세기 세계의 세 번째 이데올로기로 아주 늦게 다가왔다. 아마 어떤 이들은 사회주의를 세 번째 이데올로기로 생각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자유주의와 구별될 수 있는 유일한 사회주의 사상은 사실상 마르크스주의였다.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서 마르크스주의가 실천한 일은 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기본 전제인 진보 이론은 받아들이고, 그것에 두 개의 중대한 단서를 덧붙인 것이다.


첫째, 진보는 연속적으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불연속적으로, 즉 혁명에 의해 실현된다는 것이다.


둘째, 세계는 좋은 또는 완전한 사회로 나아가는 데 최종 단계에 도달한 것이 아니라, 그 직전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이다.


<이매뉴얼 윌러스틴, '사회 과학으로부터의 탈피'>


출처 : text reading
글쓴이 : 여민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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