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당분간 형식과 약속을 인식하지 못하는 어떤 사건에 의해 (인간주의를 태어나게 했던) 배열들이 마치 고전적 사유의 흙이 18세기의 전환기에 그러했던 것처럼 흔들린다면, 그때에 인간은 바닷가에 그려진 모래의 얼굴처럼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내기 걸 수 있다.” 『말과 사물』에 나오는 미셸 푸코(1926∼1984)의 유명한 반인간중심주의 철학 선언이다.
푸코의 저서는 저작 연대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정신병과 심리학』 『광기의 역사』『임상의학의 탄생』은 푸코 사상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들이다. 『정신병과 심리학』(문학동네, 2002)은 푸코의 첫번째 저서다. 역자 후기에 따르면, 1954년 『정신병과 인격체』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이 책은 1961년 재판을 찍으면서 그중 일부가 『정신병과 심리학』이라는 제목으로 고쳐졌다고 한다.
아무튼 이 책은 푸코 사상의 맹아-자명한 것에 대한 의심-를 잘 간직하고 있다. “생리학이 의학에 제공한 분석의 도구를 심리학은 정신의학에 결코 제공할 수 없었다.” 푸코는 심리학은 영원히 광기를 제어하지 못한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이미 광기가 진압되고, 광기가 비극에서 제외된 후에야 비로소 서구에서 심리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니체 혹은 루셀에게서처럼 광기가 다시 나타날 때, 심리학은 함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광기의 역사』(인간사랑, 1991)는 푸코의 박사학위 논문으로, 고전주의 시대에 광기를 둘러싸고 벌어진 일들을 분석한 책이다. 고전주의 시대 광기에 대한 규정, 광기와 관련한 감금의 관행들, 광기의 치료법 등을 통해서 푸코가 드러내려 한 것은 고전주의 시대 권력의 문제였다.
푸코는 광기에 관한 여러 현상의 분석을 근거로 “권력과 지식은 서로 직접 포함하고 있다는 점”과, “어떤 지식 영역과의 상관관계가 조립되지 않으면 권력관계는 존재하지 않으며 동시에 권력적 관련을 상정하거나 조립하거나 하지 않는 지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 책의 한글판은 축약판을 번역한 것이다.
『임상의학의 탄생』(인간사랑, 1993)은 의사들이 권력자로 떠오른 과정을 다룬다. 정상인과 미치광이, 건강한 자와 병든 자를 연관 관계 속에서 취급하면서 이들에 대한 구분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 살폈다. 또 정상과 비정상을 바라보는 각 시대의 특징적 시각을 검토했다. 예를 들면 19세기가 광기에 대해 취한 태도와 광기가 새로운 죄책감으로 부상하는 과정을 추적한다. 이 책은 19세기의 병원 제도의 탄생이 부르주아에게 비타협적인 인물을 격리시키기 위한 감금 시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결론짓는다.
『말과 사물』과 『지식의 고고학』은 푸코 사상의 중기를 대변하는 작품으로, 그의 사상을 이해하는 데 긴요한 책이다. 『말과 사물』(민음사, 1987)은 푸코 사상의 밑바탕을 이루는 구조주의적 인식론의 기본 골격을 제시한다. 푸코는 `인문과학의 연대기'를 인식론적 흐름에 따라 네 시기로 나눈다.
△중세 말∼16세기 말 △17세기∼18세기 △1785년∼20세기 초 △최근으로 나누는 시대 구분은 드라마를 이루는 네 개의 단막이나 설화을 구성하는 네 장과는 구별된다. 푸코는 각 시기의 시작과 끝을 나타내는 전이는 지속되는 주제의 변형이 아니라 서양 사상에서의 비연속성의 반영이며 각 시기는 고립적으로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지식의 고고학』(민음사, 1992)은 푸코 자신에 의한 푸코 철학의 해석으로 그의 사상의 핵심을 말해주는 책이다. 앞선 세 권의 저서 『광기의 역사』 『임상의학의 탄생』 『말과 사물』에서 전개한 고고학적 탐구에 방법론적인 기초를 부여해, 고고학이 확고한 형태를 갖췄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예증을 배제한데다 정교하고 추상적인 인식론적 논의로 시종일관한 탓에 매우 까다로운 책이다. 세 권의 전작에 대한 푸코의 설명 또한 난해하기 짝이 없다.
“『광기의 역사』는 하나의 `경험'으로서 지시될 수 있는 것에 매우 심각한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었다. 『임상의학의 탄생』에 있어서는, 여러 번 시도되었던 구조주의적 분석에로의 호소가 제기된 문제의 특이성과 고고학에 고유한 수준을 지워버리게 되는 위험을 드러냈다. 마지막으로 『말과 사물』에 있어서는, 방법론적 지표설정의 부재가 분석을 문화적 총체성에 의거한 것으로 믿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번역자는 이 책을 바하의 〈파르티타〉에 비유하며 “모든 파토스가 배제된 무색, 무미, 무취의 세계”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묻지 말라. 나에게 거기에 그렇게 머물러 있으라고 요구하지도 말라”는 두 번째로 유명한 푸코의 진술도 『지식의 고고학』에 들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권력에 대한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 후기 저작이 가장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감옥을 정점으로 가정, 학교, 군대, 병원, 공장 등의 감시·처벌 기구를 분석한 『감시와 처벌』(강원대출판부, 1989)은 첫 장에 나오는 절대왕정 시대의 잔인한 처형 장면이 인상적이다. 3부작 『성의 역사』(나남출판, 1990)는 `욕망의 계보학'을 다뤘다.
이 책들은 푸코 책으로는 드물게 중복 출판의 기록을 갖고 있다. 나남판 『감시와 처벌』(1994)은 불어 직역을 내세우고 있고, 『성은 억압되었는가』(1979, 인간사)는 『성의 역사』 3부작이 완역되기 전에 제1부 `앎의 의지'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성은 억압되었는가』는 최초로 번역된 푸코 책이기도 하다.
굳이 연대기적 구획 안에 가둘 까닭이 없는 푸코의 책들도 다양하게 나와 있는데 문학 평론, 대담집, 강연록이 그것들이다. 『미셸 푸코의 문학비평』(문학과지성사, 1989)은 진작에 푸코의 문학 평론에 주목한 비평가 김현이 엮은 책으로 푸코가 생전에 출판하길 꺼렸던 다수의 평론을 접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역시 김현이 번역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민음사, 1995)는 벨기에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뜨의 작품 18점을 분석한 것으로 놀라운 통찰과 도발적인 관점을 보여 준다.
푸코와의 대담을 엮은 『권력과 지식』(나남출판, 1991)에서는 1968년 혁명 때의 정치적 견해와 후기 저작에 대한 평가와 설명을 들을 수 있다. 꼴레주 드 프랑스의 취임 강연을 풀어 쓴 『담론의 질서』 (새길, 1993)를 필두로 한 강연록은 저서들과는 별개로 푸코 사상의 또 하나의 광맥을 이룬다. 푸코는 안식년인 1977년을 제외하고 1971년 1월부터 1984년 6월까지 꼴레주 드 프랑스의 강단을 지켰다. 1997년부터 쇠유와 갈리마르의 공동 작업으로 꼴레주 드 프랑스 강연록이 간행되고 있는데 이중 두 권이 한글판을 얻었다.
『비정상인들』(동문선, 2001)은 1974~1975년의 강연을 묶은 것이고,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동문선, 1998)는 1976년의 강연을 엮은 것이다. 강연 시기는 어중간하지만 맨 먼저 출간된 강의록인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에서는 예의 기존의 통념에 대한 전복이 시도된다. 푸코는 클라우제비츠의 “전쟁은 정치의 지속에 불과하다”는 말을 뒤집어 `정치가 전쟁의 지속'이라고 일갈한다.
『말과 사물』이 빵집의 아침 빵처럼 팔리고 휴가지에서도 널리 읽힐 정도로 인기를 끌었지만 푸코의 강연을 들으려는 수강 열기도 대단했던 모양이다. 강의 시간을 오후 4시 30분에서 오전 9시 30분으로 앞당겨도 강의실에 발 디딜 틈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미셸 푸코의 삶과 죽음은 드라마틱하다. 현재로선 가장 충실한 평전으로 통하는 디디에 에리봉의 『미셀 푸코』(시각과언어, 1995)는 푸코의 예술 작품 같은 생애를 만끽하게 한다. 제임스 밀러의 『미셸 푸꼬의 수난』(인간사랑, 1995)은 후천성면역결핍증의 희생자인 푸코의 최후에 주목한 전기이다.
푸코에 관한 2차 문헌은 숫자가 꽤 많지만 몇 권만 간단히 소개한다. 푸코의 저작에 대한 비판적 평론임을 표방하는 J.C. 메르키오르의 『푸코』(시공사, 1998)는 푸코의 주요 개념인 에피스테메(episteme)를 “역사적 아 프리오리(a priori)”라 풀이한다. 『미셸푸코론』 (한울, 1990)은 푸코에 대한 국내 학자의 비교적 이른 반응을 보여주며, 『자유를 향한 참을 수 없는 열망』(새물결, 1991)은 희한한 논쟁인 푸코-하버마스 논쟁을 다시금 살피는 기회를 제공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적이 없기에 `희한한'이라는 수식어를 썼다. 이를테면 하버마스가 “푸코는 인식론적으로는 상대주의자이고 이념적 성향은 니힐니스트이자 정치적으로는 아나키스트로서 한마디로 반동(反動)”이라 공격했다면, 푸코는 이렇게 응답했을 것이다. “나는 프로이트 학파도 아니었고, 마르크스주의자도 아니었고, 구조주의자도 아니었다.” 하지만 생전의 푸코는 하버마스의 공격에 대해 침묵했다. 아니, 반격할 기회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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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일 씨는 1967년 인천 부평에서 태어나 군 복무시절 강원도에서 지낸 걸 제외하고, 줄곧 인천에서 살고 있다. 인하대 국문과를 나와 3년간 백수로 지내다 <출판저널>기자로 발탁되면서 출판계에 입문했다. <도서신문>에 몸 담기도 했다. 조직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편이라 인터넷 서점에서 잠시 일하다 지금은 프리랜서로 여기저기, 주로 마이너 매체에 글을 쓰고 있다. 야구에 비유하면 마이너 리거지만 이제는 빅 리거가 되고 싶은 생각도 없다. 책을 좋아하지만 책읽기보다 아장아장 걷는 딸애를 보는 게 더 좋다. 저서로는 『베스트셀러 죽이기』,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