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세계/철학의 바다

[스크랩] 후설의 판단중지

ddolappa 2008. 5. 16. 04:32
〈다시 쓰는「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지킬 박사와 하이드가 같은 사람이었다니. 이 편지를 보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짐작할 수 있겠지요? 그 두 사람에게 도대체 어떤 공통점이 있는 걸까요? 하지만 그 끔찍한 사실을 알게 되자 모든 것들이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하이드가 지킬의 수표를 사용했던 것, 하이드의 살인 현장에서 지킬의 지팡이가 발견된 것, 하이드가 남겼다는 편지의 필적이 지킬의 것과 같다는 것, 그리고 지킬의 유서, 또 지킬의 하인들이 했던 말들도 모두 밝혀진 셈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사실이 해명된다고 해도, 해명의 열쇠가 된 바로 그 사실은 도무지 믿기지 않았고, 이해할 수도 없었습니다. 지킬과 하이드가 같은 사람이었다니!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대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란 게 과연 얼마나 믿을 만한 것인지, 그리고 인간이란 대체 무엇인지."

이는 영국 변호사 어타슨의 말이다. 법학의 개념으로 이 혼돈을 해결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독일 철학자인 후설에게 조언을 구하려 한다. 바로 후설의 '현상학'에 기대를 건다.

〈지킬 박사의 실험과 후설의 판단 중지〉

◎후설이 생각하는 철학이란?
; 엄밀학(엄밀한 학문)이다. 철학의 목표는 정확하고 정밀한 묘사가 아니라 과학이 발 딛고 서 있는 지반을 엄밀하게 세우는 것이다. 그럴 때 진리는 비로소 존재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 나의 현상학이 목표로 하는 바이다.

◎의식 내용과 의식 작용
의식 내용은 어떤 대상을 보고 얻은 표상. 의식 작용은 두 개의 표상을 비교하고 판단하는 작용으로 이는 대상을 보기 전에 이미 있어야 그 대상에 대한 경험이 가능하다. 따라서 후설에게 있어 의식작용은 인식을 형성해주는 궁극적 원천이다. 모든 경험에 앞서며, 인식 형성의 궁극적 원천을 이루는 의식 작용을 그는 '선험적 의식(작용)'이라고 부른다.
예) 동일률, 모순율 같은 논리학의 법칙들

◎자연적 태도란?
; 세계는 당연히 존재하며 그 세계를 인식하는 데도 별다른 어려움이 없으리라고 믿는 태도. 일상 생활에서나 학문에서, 인식 가능성이 갖는 어려움에 무관심하다.
예)쥐를 가지고 시험을 하고선 그걸 인간에 적용하는 의학, 수학을 이용한 물리학(이러한 학문은 그렇게 해서 정말로 세계나 인간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지에 관해선 별로 관심이 없이 이를 당연시한다.)

◎판단중지(괄호 치기, 현상학적 환원)란?
; 자연적 태도에서는 우리의 시선이 외부 대상으로만 향해 있었는데, 절대적으로 명확한 인식을 위해서는 그 시선을 의식 내부의 세계로 돌려야 한다. 의식 속에서 대상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따라서 자연적 태도에 따라 생각하고 대상에 대해 판단하기를 중지해야 한다. 그리고 대상에 대한 당연시된 생각을 괄호 속에 묶어두고 판단을 보류한다는 뜻으로 '괄호 치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또 현상학의 공유한 영역인 의식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 세계에 대한 판단을 보류한다는 뜻으로 '현상학적 환원'이라고도 한다.

◎현상학이란?
; 현상이 어떻게 구성되는가를 연구하는 학문. 현상학은 의식 외부의 대상에 대해 자연적 태도에 따라 판단하기를 그만두고 의식 내부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의식 내부의 영역에서는 경험 주관을 괄호로 묶어두고 선험적 주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선험적 주관의 작동방식을 알아냄으로써 대상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이해하려고 한다.

예) 빛의 존재를 통해('밝음 지향' 속에서)집이나 다른 대상을 인식하는 것은 다람쥐 전체의 선험적 주관. 두더지는 그 반대로 '어둠 지향' 속에서 집이란 대상을 구성.

결국 중요한 것은 어떤 대상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대상이 어떤 의미를 갖느냐는 것. 세계가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가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게 중요한 것. 이처럼 어떤 대상을 의미있게 만드는 것, 아니 의식 속에서 대상을 구성하는 것은 의식이 '지향성'을 갖기 때문에 가능하다. 선험적 주관이란 재료로 들어온 것을 지향성에 따라 '구성'하는 작용.

구성 = (재료) + 의식 작용 + 대상
선험적 주관 = (재료) + 지향성 + 대상

철학용어로는 재료를 '질료'라 부르고, 의식 작용을 '노에시스(Noesis)'라 하며, 의식이 구성한 대상을 '노에마(Noema)'라 한다.

구성 = (질료) + 노에시스 + 노에마

여기서 의식 작용인 '노에시스' 와 그것이 만들어낸 대상인 '노에마'는 뗄 수 없이 연관되어 있는데, 여기서 '노에시스' 가 만들어낸 '노에마'가 바로 '현상' 이다.
의식 작용과 대상이 이처럼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한다면 의식과 대상을 분리하고,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데카르트식의 이원론을 넘어설 수 있다. 이렇게 해야만 정신만 강조하는 관념론이나 물질만 강조하는 유물론을 넘어설 수 있다고 후설은 생각함.

◎지킬 박사를 위한 변명
1.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두 개의 주체로 분열된 인간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 하이드에게서 분리된 지킬 박사는 한 사람의 경험적 개인을 자연적 태도에 따라 판단하기를 중지하고, 경험적이고 잡다한 요소를 제거함으로써 도달한 선험적 주관이다. 반면 하이드는 선험적 주관이 구성한 경험적 주체로서 인간이 지닌 잡다하고 추한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2. 지킬 박사와 하이드의 관계
하이드는 지킬 박사가 '구성' 한 존재. 선험적 주관인 지킬 박사의 의식 작용 속에서 형성된 대상이 바로 하이드다. 의식이 만들어낸 대상이 의식 작용 속에, 선험적 주체 속에 존재하듯, 하이드는 지킬 박사 내부에 존재하는 것. 결국 지킬 박사는 하이드라는 존재를 형성한 궁극적 기초요, 모태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 두 사람은 당연히 한 사람이다. 두 사람을 동시에 셀 수 없다는 점에서도 알 수 있다.

3. 하이드라는 경험 주체가 벌인 행동의 책임 문제.
하이드와 분리된 지킬 박사는 예전의 자연인 지킬 박사와 다르다. 그것은 선험적 주관의 상징이며, 어떤 경험적 개인과도 같지 않다. 그건 모든 인간들 내부에 존재하는 공통된 의식작용을 순수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반면 하이드는 선험적 주관을 통해 구성된 경험적 개인이다. 그것은 예전의 자연인 지킬 박사가 선험적 주관에 비추어 재구성된 것이다. 하이드야말로 예전에 선생의 친구였던 지킬의 본질적인 모습일 것이다. 그러니 하이드가 한 모든 행동은 하이드라는 경험적 개인이 한 일이니까 지킬 박사가 책임질 일이 아니다.

◎그렇다면 어타슨 변호사의 친구는 지킬 박사가 아니라 하이드?
하이드와 분리된 지킬 박사는 이미 어떤 경험적 개인이 아니니까. 반면 하이드는 경험적 주관으로 구성된 존재지만, 그러한 구성 자체가 선험적 주관의 작용이었음을 염두에 둔다면 하이드가 어타슨이 알던 그 친구의 본래 모습이라고 보아야 한다. 지킬 박사가 선험적 주체(순수 자아)로 분리됨으로써 감춰져 있던 모습이 드러난 것이다.

◎자연적 태도의 힘은 막강하고 철학적 사고의 길은 멀고 험하다.
당신의 친구가 누구인지, 아니 심지어 자신은 누구인지를 알려면 당연시된 친구나 '나'에 대해서 판단을 중지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선험적 주관(순수 의식)은 죽지 않는다.
그건 개개인 속에 존재하는 거니까
출처 : text reading
글쓴이 : 여민락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