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1회(2005.12.17.)
싹 바뀐 무한도전
'무(모)한 도전'과 '무(리)한 도전'을 통칭해서 흔히 '클래식'이라 부르는 시기의 무한도전은 그 이전 유재석이 진해해오던 오합지졸 컨셉트 쇼의 연장으로 이해될 수 있다. 당시의 평론가들이 "유재석이 고집하고 있는 컨셉트의 프로그램은 항상 변화하지 않고 머물러 있는데 혁신없는 정체가 결국은 유재석의 발목을 잡을 것"이라고 지적했던 것도 '무(모)한 도전'이 그가 이전에 진행해 왔던 '외인구단'이나 '감개무량' 등과 크게 차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디테일한 부분에서 사소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다소 모자라 보이는 연예인들이 무모한 도전을 일삼고 다닌다는 점에서 이들은 대동소이하게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혁신 없는 자기복제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받았던 유재석 스타일의 쇼는 '퀴즈의 달인' 시기를 거치며 이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새로운 개념의 코미디 장르로 재탄생하게 된다. '무(모)한 도전'을 연출했던 권석 PD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무(리)한 도전'을 담당하게 된 김태호 PD가 초기에 중점을 두었던 것은 출연자들의 캐릭터를 분명하게 다듬는 일이었는데,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무한도전은 '캐릭터라이즈드(Characterized) 엔터테인먼트 쇼'(TV평론가 조지영)로 자리를 잡게 된다.
"김태호 pd : 초기에는 왜 현장보다 방송이 재미가 없을까라는 걸로 고민했다. 결론은 캐릭터였는데,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작년 겨울엔 스튜디오 녹화에 집중하며 캐릭터를 잡았다. 스튜디오란 곳도 공간적으로 집중되는 곳이어서 놓치기 쉬운 사소한 대사나 반응들이 살아났다. 게임이나 앙케이트는 캐릭터 구축을 위한 방법이면서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려는 전략이었다. 우리는 회의도 유재석씨와 함께 한다. 그게 멤버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 같다. 올해까지도, 우리는 조금만 지나면 된다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미련하다는 애기를 많이 들었다. 월드컵이 지나면 확실해질 거라 예상하고 기다렸다."1)
이러한 대대적인 구조 개혁을 위해 무한도전이 한 일은 '더 이상의 쫄쫄이는 없다'는 말이 함축하고 있듯 도전을 포기하는 것이었다. 대신에 말끔한 정장 차림을 한 멤버들이 등장해서 '꺼꾸로 말해요 아하'나 '퀴즈의 달인'과 같은 게임을 하며 각자의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힘을 쏟기 시작했다.
사실 변화의 시작은 '퀴즈의 달인'이 방영되기 직전 '지적 능력 향상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M본부 앞마당 구석에서 천막을 치고 촬영을 했던 '무(리)한 도전' 6회로부터 이루어졌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암산왕과의 대결'을 펼쳤던 이 방송분에서 그 전까지 함께 해왔던 조혜련이 빠지고 '슈퍼주니어'의 신동이 새롭게 영입되고, 후줄근한 체육복 대신 레이스 달린 의상을 입게 된다. 그리고 자신들의 문제점을 '급격한 체력 저하'가 아니라 지적능력과 감성의 부족에서 찾으며 변화를 예고했다.
재미있는 점은 '위기의 무도 초심으로 돌아가자'라는 자막이 이 때에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한도전은 위기를 맞을 때마다 '초심'을 강조하며 분위기 쇄신을 위한 전환점을 마련해왔는데, 기자들이 상투적으로 '초심 타령'을 하게 된 빌미도 어쩌면 무한도전이 먼저 제공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기자들이 말하는 '초심'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그 정체조차 알 수 없는 것인 반면, 무한도전의 '초심'은 '실험성'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구분되는 개념이지만 말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하지만 '퀴즈의 달인' 첫 회는 너무나 미숙하기 짝이 없었던 한 회였다. 합판에 검은 색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넣은 무대 세트는 너무나 초라했고, 그래서 간결하기 보다는 오히려 황량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조명도 불안정해서 수시로 서로 다른 명도의 화면 영상을 내보냈다. 또 지금과 달리 너무나 많은 리플레이 화면이 등장해서 지루한 느낌마저 주고 있는데, 멤버들이 박을 맞는 장면은 10 차례도 넘게 반복해서 보여준 건 지금 생각해도 조금 심한 것이었다.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1회 때 모습. 아무 것도 없는 무대는 황량함 그 자체이다.)
(불안정한 조명을 보여주는 예. '퀴즈의 달인' 1회는 수시로 이러한 기술적 문제를 노출했다.)
게다가 처음으로 등장한 '마봉춘 아나운서'를 놓고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연기하던 어설픈 모습이나 실내로 들어와서 아직 적응이 안 된 것인지 어색하게 주고받던 대사들이나 말장난을 보면 이 사람들이 정말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사람들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든다.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게임조차 변변하게 정해진 이름도 없이 '꺼꾸로 말하기'라고 부르던 상태였고, 게임의 기본 컨셉트도 '공포의 쿵쿵따' 게임에서 차용한 것임을 한 눈에 봐도 알 수 있었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방송의 타이틀이자 메인 게임인 '퀴즈의 달인'이 너무나 재미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퀴즈의 달인' 게임은 그 이후 몇 차례의 변화를 거듭한 끝에 슬그머니 사라지게 되고, 대신 시청자 앙케트와 '꺼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마봉춘 아나운서'도 당시의 인기 프로그램이었던 '상상 플러스'의 노현정 아나운서를 벤치마킹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여자 아나운서가 장난꾸러기 출연자들을 목소리로 통제해서 게임을 진행시키는 방식은 누가 봐도 '상상 플러스'의 컨셉트를 떠올리게 했다.
('상상 플러스'의 노현정 아나운서를 모방해서 '퀴즈의 달인' 1회 때 처음으로 출연한 '마봉춘 아나운서')
'퀴즈의 달인' 시기의 기본 컨셉트가 어디선가 본 듯한 인상을 주는데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숨어 있었다. 지금은 주기쁨 작가가 무한도전의 메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문은애 작가가 메인 작가였는데, 당시 그녀는 '상상 플러스'의 메인 작가이기도 했다.
"방송 초기는 구체적인 상황을 작가들이 다 짠다. < 상플 > 에서 노현정 아나운서한테 처음부터 '공채 29기 아나운서'란 말만 하게 했다. 그는 명랑한 사람이지만 프로그램에서 남자 넷에 여자 하나이니 그 여자는 비밀스러워야 했다."2)
그래서 '얼음 공주' 노현정이 도도한 표정으로 '공채 29기 아나운서'와 '공부하세요'만을 반복해서 외치며 신비한 매력을 발산했듯 '마봉춘 아나운서'는 목소리만 출연해 '사내방송입니다. MBC'만을 반복해서 말하며 자신의 비밀스러움을 유지하려 했다. 이 대사 역시 처음에는 '문화방송입니다. MBC'였던 것을 변형시킨 것이었고, 네티즌 수사대가 출동해 그녀가 신입 아나운서 나경은이라는 사실이 이내 밝혀지기도 했지만 이러한 전략은 나름 성공적이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수많은 장치들이 이미 보아왔던 것들이라는 인상을 주는 결정적인 이유는 김태호 PD의 인터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영향을 받은, 혹은 계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프로그램이 있다면?"이란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은 답변을 하고 있다.
"표본을 삼고 있는 건 없지만, 기존에 있던 포맷을 쓰고 있다. 우리 캐릭터들은 만들어낸 캐릭터라기보다는 실제 그 인물의 캐릭터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고 보면 된다. 사실 우리 안에서 진행하는 게임이나 코너들은 원래 있던 것들을 활용하는 것인데, 익숙한 요소들이 이런 캐릭터들을 통해서 보이는 게 새로운 것 같다. 특별하게 염두에 두고 진행한 프로그램이나 코너들은 없다. 대신 그 속의 일반적인 요소들이 변주되는 거라고 보면 될 것 같다."3)
그러니까 '퀴즈의 달인' 시기의 다양한 요소들이 기존에 존재해왔던 쇼 오락의 아이템들은 재활용하거나 변주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이 인터뷰 내용은 보여주고 있는 셈인데, 바로 여기에 무한도전이 지닌 창조성의 비밀이 숨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즉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다면, 기존의 것을 비틀고 변형시키는 작업을 통해서 새롭게 보이는 결과물을 산출해 내는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이처럼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사실을 현대의 예술가가 직면한 역사적 상황으로 인식하고 이를 '패러디'나 '혼성모방'과 같은 기법을 활용하여 타개해 나갔던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미학의 출발이었다면, 무한도전이 쇼 오락에서 제시한 새로운 미학적 감수성은 포스트모던 예술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최근에 방영되어 큰 호평을 받았던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 역시 이러한 미학적 인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 안에서 패러디 되고 있는 수많은 영화들, 가령 스파이 영화의 고전인 '007', 90년대 초반 한 시대를 이끌 새로운 영화적 감수성의 출발을 알렸던 쿠엔틴 타란티노와 가이 리치의 영화들, 홍콩 느와르 영화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영웅본색'과 홍콩의 대표적인 코미디 영화인 주성치의 코미디 영화들, 그리고 최근에 상영된 맷 데이먼의 '본 얼티메이텀', 코엔 형제 감독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나홍진 감독의 '추격자', 개봉을 앞두고 있는 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등에서 차용된 아이디어들은 무한도전식으로 변형되어 오락적 재미의 극한을 맛보게 했던 동시에 대한민국 예능이 도달한 수준이 곧 무한도전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인식시켜 주었다. 그런 점에서 무한도전이 보여준 미학적 핵심은 한 마디로 패러디의 정신으로 요약될 수 있다.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퀴즈의 달인' 첫 방송은 모든 것이 어설펐고 제대로 준비가 안 된 게 역력했지만 다가올 새로운 변화를 예감케 하는 징후들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특히 자신의 캐릭터를 부각시키는 작업에서 누구보다 앞서 나갔던 사람은 바로 박명수였다. 그는 '놀러와'나 'X-맨'에서 차츰 다듬어나갔던 캐릭터를 무한도전 안으로 끌고 들어와서 그의 말처럼 '제8의 전성기'를 열게 되는데, '퀴즈의 달인' 1회에서 보여준 그와 유재석, 그리고 그와 노홍철이 맺는 관계는 대장정의 첫 걸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유재석의 소개에 따라 무대로 들어서게 된 박명수는 근사한 양복을 차려입은 것이 내심 흐뭇했던지 유재석에게 듀엣으로 패션쇼를 하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유재석은 오늘은 시간이 없으니까 다음에 하자고 그의 제안을 묵살하게 된다. 그러자 박명수는 "견제하는 거야? 너무 크니까 견제하는 거야? 그렇게 살아왔어?" 라며 유재석을 비난하게 된다.
이어진 장면에서 박명수는 CEO답게 근엄한 말투로 일장 연설을 하게 된다. "CEO로서 많은 직원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바보같은 모습보다는 진지, 진취, 논리적인 모습을 십분 발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라며 자신의 포부를 밝힌다. 그의 말을 듣고 이번에도 유재석이 나서서 "10분 동안 발휘를 하신다고" 라고 말해 그에게 면박을 주게 되고, 박명수는 체념한 듯 "이 프로그램 나랑 안 맞아. 나는 '경제 매거진 M' 이런 거 해야 돼" 라고 자조적으로 말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후로도 박명수는 게임을 하며 계속해서 유재석과 신경전을 벌이는 모습을 보여주게 된다.
박명수의 이러한 모습들은 이미 '무(모)한 도전' 시기나 다른 프로그램들에서 보여준 것들이긴 하지만 그것이 무한도전 내에서 보다 집중되고 강화되면서 그가 '1인자' 유재석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2인자'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 그가 '화목론'을 내세워 유재석을 흥분하게 만들거나 '신의 손'을 사용해 끊임없이 그를 괴롭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자신의 공격성을 극대화시키는 방편임과 동시에 만년 2인자 신세에 머무는 자신의 설움을 극명하게 표현하는 수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첫 피박을 당하자 박명수는 "연예인인데, 스타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되죠"라고 말하며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게 된다. 유재석은 그 말을 듣고 웃으며 "본인이 본인을 스타라고 하는 분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라며 박명수의 뻔뻔스러움을 살짝 꼬집는다. 그런데 박명수의 이 대사는 '거성 박명수'의 탄생을 알렸던 "왜 거성 옆에서 방송하니까 떨려?"라는 대사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것이었다는 점에서 앞으로 있을 그의 새로운 캐릭터 탄생을 예고한 것이었다.
노홍철은 보다 극적인 방식으로 박명수와 자신의 관계를 노출시키고 있었다. 게임을 하던 도중 박명수는 갑자기 뜬금없이 자신에 대한 평가를 해달라고 멤버들에게 부탁을 하게 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는 어색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게 되는데, 그러한 정적을 깨고 나섰던 인물이 노홍철이었다. 그는 따발총 같은 말투로 "박명수님! 언제나 한결 같은 분이죠. 방송과 실제가 똑같아요. 늘 호통치시고 윽박지르고. 남의 것도 자기 것처럼, 제 돈도 자기 것처럼! 난, 난 피해갈 수 있어. 뻔해! 단어가 넓지가 않아!"라며 박명수를 공격했다.
'놀러와'에서 처음으로 만나 친분을 쌓은 이 둘의 관계는 박명수가 노홍철이 너무나 빨리 얻게 된 인기를 질투하게 되면서 틀어지게 된다. 박명수는 특채 출신인 노홍철을 '근본이 없다'고 비난하게 되고, 노홍철은 자신을 시기하지만 모든 것이 어설프고 실수가 잦은 박명수를 틈만 나면 공격하게 된다. 유재석이 박명수를 공격하는 것과 노홍철이 박명수를 비난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인데, 박명수보다 거의 모든 점에서 우월한 유재석보다 이제 겨우 신인에 불과한 노홍철이 박명수의 헛점을 폭로하는 것이 박명수의 '하찮음'을 더욱 부각시켜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홍철에 비해 젊지도 않고, 지식이 많지도 않고, 체력이 뛰어나지도 않은 박명수는 그의 공격을 받게 될수록 자신의 단점들을 캐릭터로 승화시킬 수 있게 된다.
무한도전이 실외에서 실내로 자리를 옮기며 인물들의 캐릭터를 부각시킬 수 있었던 것은 협소한 공간 안에 머물며 그들의 관계가 보다 선명하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김태호 PD는 '동해 가스전'을 기획했던 의도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언급하며 섬이란 제한된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숨겨져 있던 욕망들이 거침없이 드러나게 되어 박명수가 반장이 되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말을 했는데, 멤버들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마련된 '퀴즈의 달인'의 무대공간 역시 기본적으로 이러한 구상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 인물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상황이 먼저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은애 작가는 김태호 PD와 더불어 무한도전 멤버들이 초기에 캐릭터를 구축하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던 인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녀는 어떻게 캐릭터가 만들어지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다음처럼 명쾌한 답변을 제시하고 있다.
"드라마도 시놉시스와 인간관계도를 짜지 않느냐? 오락도 마찬가지다. 작가 역할이 캐릭터가 도드라지도록 상황을 만드는 거다. 1990~91년 유재석이 소심한 캐릭터로 나와 무식한 캐릭터인 남희석의 매니저 김종석과 퀴즈 대결을 벌이는 장학퀴즈 패러디가 있었다. 김종석은 '스케줄'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데 한국 역사는 많이 알았다. 유재석이 이기면 작가들이 한국사 문제를 쭉 낸다. 그러면 유재석은 한숨을 쉬어댄다. 그렇게 캐릭터가 사는 것이다. 카리스마 넘치는 사람 옆에는 그의 카리스마를 한방에 무너뜨릴 수 있는 쥐약 같은 사람을 앉혀놓는다."4)
예측불허 난장쇼의 시작
'꺼꾸로 말해요 아하' 게임은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6회에서 전판에 진 사람이 주제어와 자리를 정할 수 있다는 룰만 유재석에 의해 만들어진 채 아직 정식 명칭도 아직 없이 '꺼꾸로 말하기'로 불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번 방송분에서 유재석이 마지막 문제이니 박 2개를 맞자고 제안을 하게 되고, 노홍철이 그것을 '쌍박'이라고 부르게 되어 '쌍박' 제도가 생겨나게 된다. 여기에 유재석이 즉석해서 노래를 붙여 '쌍박송'이 만들어지게 된다. 'MBC'에서 순간적으로 '마봉춘'이라는 이름을 만들어냈듯이 즉흥적으로 '쌍박' 제도와 명칭 그리고 '쌍박송'을 만들어내는 이 장면은 준비의 미숙함을 놀라운 순발력으로 극복하는 노련함을 보여준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초기에 화제가 되었던 단어들은 '오돌뼈'나 '베네수엘라'와 같은 것들이었다. 노홍철의 '오돌뼈' 공격을 박명수가 '돌오돌'이라고 말하고, 이윤석의 '베네수엘라' 공격을 노홍철이 '네베수엘레'라고 발음해서 웃음을 주기도 했다. 박명수는 이번에도 '오돌뼈' 공격을 받고 '돌오오'라고 발음을 해서 부정확한 발음이 그의 캐릭터로 흡수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박명수는 게임에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여 혼자 박마일리지를 쌓아가던 상황이었는데, 이를 이윤석이 비웃으며 "오늘 독박이시네요, 독박!"이라고 지적하고, 정형돈이 "그래서 박명수구나!"라고 말해 '박의 명수 박명수'가 탄생하게 된다.
이후 무한도전 멤버들 전체를 공포에 떨게 하고, 유재석을 돌이킬 수 없는 절망의 늪에 빠뜨렸던 공격용 단어는 김성수에 의해 발견된다. 그것은 바로 '브라질'이었다. 김성수는 노홍철의 '브라질' 공격을 받고 '지랄부'라고 발음해서 스튜디오에 큰 혼란을 일으켰다. 그러나 부족한 연출력과 방송용으로 부적절한 단어의 파급력으로 인해 그 장면은 멤버들이 시청자 사과를 하는 선에서 어색하게 정리되고 만다. 다만 '브라질'이란 단어가 몰고올 엄청난 파장이 김성수에 의해 확인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장면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게임에서 시도된 흥미로운 장치는 박을 때리는 벌칙 방식이었다. 이 역시 이미 기존의 오락 프로그램에서 자주 시도되었던 것이지만 무한도전은 벌칙자를 숨어 있다가 갑자기 튀어나오게 만들어 출연진과 시청자를 놀라게 하는 방식을 취했다. 첫 피박의 주인공이었던 유재석이 내뱉은 대사는 이런 사실을 잘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다. "뭐야, 저 사람 뭐야? 수많은 벌칙을 받아왔지만 이렇게 누가하는 지도 모르고!"
그래서 무한도전 멤버들은 박명수를 제물로 삼아 도대체 범인이 누구인지 확인하기 위해 한 번 더 게임을 하게 된다. 결국 작전은 성공을 거두게 되어 코수염이 난 할머니가 범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그리고 알다시피 벌칙맨은 나중에 '박치는 소년'이라 불리게 된다.
모든 게 새롭다 보니 의도하지 않게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박명수가 이미 나온 단어인 '수박'을 말해서 그가 벌칙을 받아야 했음에도 애먼 이윤석이 박을 맞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이윤석이 억울해 하며 왜 자신을 때리냐고 하소연했지만 이미 벌칙맨은 멀리 떠난 뒤였다. 그런데 정황을 살펴보니 박명수가 손가락으로 이윤석을 가리키며 '얘 얘 얘'한 것이 화근이었다. 벌칙맨은 박명수의 말을 듣고 순간적으로 착각을 일으켜 문제를 틀린 박명수 대신 이윤석을 받으로 내리친 것이다.
억울한 이윤석은 "'쟤 쟤 쟤' 그러셨잖아요?"라며 박명수에게 따져보지만 박명수는 뻔뻔스럽게 "'쟤 쟤 쟤' 그러지 '나 나 나' 그럽니까?"라고 되물어 이윤석을 허탈하게 만들었다. 박명수는 위기의 순간에 직면하게 되었을 때 자기만 생각하는 무한도전의 뿌리깊은 풍토인 '무한 이기주의'를 몸소 실천했던 것이다.
그런데 진행의 미숙함으로 인해 억울한 사건이 또 벌어지게 되었다. 노홍철은 유명인 3글자 단어로 '강호동'을 '장호동'으로 잘못 발음하는 실수를 저질렀지만 이의를 제기했던 유재석이 오히려 박을 맞게 된 것이다. 게다가 벌칙맨이 처음에 박이 잘 안 깨지자 다시 한 번 유재석의 머리에 박을 내리쳐서 깨고 지나가버려서 유재석이 분통을 터트릴 만한 상황이 벌어졌다.
예측불가능한 일련의 사건들은 박을 때려야 하는 사람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고, 또 벌칙맨을 통제하지도 못했던 제작진에 그 원인이 있는 것이지만 그로 인해 벌어지는 소동이 쇼의 색다른 재미라는 사실은 나중에서야 발견하게 된다. 특히 하하가 영입된 이후 게임의 룰을 파괴하는 룰인 '어거지'라는 요소가 가미되고, 유재석이 그것을 '착하면 인정'이라고 말해 묵인해줌으로써 무한도전은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럽고 시끄러운 쇼로 변하게 된다.
모든 시작은 어렵다, 그러나 시작이 반이다
'명수를 제외한 모두가 한편!'이라는 자막이 등장할 정도로 박명수는 다른 멤버들이 힘을 합쳐 무찔러야할 공공의 적이었다. 그런데 이는 박명수에게만 적용되었던 것이 아니라 어리숙한 모습을 보이는 누구에게나 적용되었던 무한도전식의 장난이었다. 그래서 유재석이 '유명인 3글자' 단어로 이윤석이 이미 선택했던 '유재석'을 다시 말해 피박을 맞게 되자 다른 멤버들은 합심해서 그를 놀려주게 된다.
- 정형돈 : (유재석이 도망 못 가도록 그를 꼭 붙잡았던 그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유재석의 머리에 붙은 박 조각을 다정하게 털어주며) 머리에 많이 묻으셨어요.
- 김성수 : 아까 형돈이가 꽉 잡더라.
- 정형돈 : 게임이니까요.
- 노홍철 : 마땅히 해야 할 일 한 것뿐인데요 뭘.
- 이윤석 : 본인 스스로가 두 번 불렀어요.
- 정형돈 : 은연 중에 자기를 홍보하고 싶은 거예요.
- 박명수 : 자기를 좀 더 알리고 싶으세요? 지금 (연말) 시상식 있으니까 그런 거죠?
그래서 차태연도 게스트로 출연했을 때 썰매견처럼 이글루에서 엉금엉금 기어나와야 했고, 혼자만 뒷걸음 쳐서 멤버들로부터 떨어져야 했던 것이다. 유재석이 '브라질 청년'으로 불리게 되는 사건이 벌어졌을 때 그가 더욱 당황했던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만 혼자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비건전팀'이 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편 가르기는 이미 무한도전에 존재해왔던 것이고, 그것이 하하의 등장 이후 보다 역동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고, 정준하의 '니편 내편' 발언으로 인해 웃음의 요소로 재정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무한도전 특유의 썰렁한 말장난이 '퀴즈의 달인' 첫 회에서도 이루어지고 있다. 게임이 천천히 진행되다 보니 긴장이 풀렸던 박명수는 평소 말투처럼 '호랑이'를 '호랭이'라고 말해 벌칙을 받게 된다. 노홍철은 "호랑이가 이 방송 보면 얼마나 섭섭해 해!"하고 말해 박명수를 비난하고 나서자, 박명수는 할머니한테 말을 배워서 그렇다고 변명을 늘어놓으며 오히려 자신의 할머니를 무시하냐고 호통을 치게 된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지 박명수는 "차라리 타이거로 할 걸"이라고 후회한다.
- 박명수 : 차라리 타이거를 할 걸.
- 유재석 : 영어는 안 됩니다.
- 박명수 : 침팬지는? 침팬지 영어인데?
- 유재석 : 침팬지 되지.
- 박명수 : 침팬지는 되는데 타이거는 왜 안 되?
- 유재석 : 타이거는 호랑이가 되잖아요.
- 박명수 : 침팬지는 원숭이?
- 유재석 : 침팬지는 침을 뱉어. 원숭이는 원을 그려.
- 박명수 : 호랑이는 호호 해? (잘 생각나지 않는 듯 한참 생각을 한 뒤) 도마뱀은 도도하냐?
- 정형돈 : 그새 또 생각했구나.
- 유재석 : X파리는 X 눠요?
근사한 양복을 차려 입고 평균 연령 서른이 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장난 치고는 유치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런 유치함, 철없음, 정신사나움이야말로 '퀴즈의 달인' 시기를 거치며 무한도전을 특징짓는 B급 정서의 바탕이 되었던 요소들이고, 이러한 요소들은 나이를 들었지만 아직 철이 들지 않은 미성숙한 어른들이라는 이미지와 결합되어 '최고령 아이돌 그룹' 무한도전이 형성되어가는데 자양분을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퀴즈의 달인' 첫 회는 아직까지 모든 것이 서툴고 어설펐지만 무한도전이 지향하고자 하는 변화의 방향과 그것이 싹 틔울 맹아들이 골고루 산포되어 있었던 방송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포맷에 변화를 주기 위해 과감하게 실내로 들어왔던 것이나 실패를 두려워 하지 않고 가능한 모든 것들을 해보고자 했던 진취적 실험성, 그리고 여기에 무한도전 멤버들의 열정과 재능이 더해져 '퀴즈의 달인'은 '무한도전 클래식'에서 현재의 '무한도전'으로 변화하게 되는 강한 동력원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에 형성된 무한도전의 힘은 아직도 꺼지지 않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에너지의 근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아름답게 추억될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무한도전이 미래를 열어나가기 위한 에너지가 비축된 저장고로서 여전히 그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것으로 내가 '퀴즈의 달인' 첫 회를 '무한도전 History'의 맨 마지막에 써야 했던 의도가 분명하게 전달되었기를 바라며, 길고 지루했던 여정에 동참해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무한도전 History - 퀴즈의 달인'이라 제목 붙인 일련의 글들은 글쓴이가 'ddolappa'로 되어 있지만, 그건 대표 필자에게 부여된 명칭일 뿐 무한도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모든 분들이 공동필자로 참여해서 쓰여진 글들이다. 그 분들이 내 글에 관심을 갖고 오탈자를 지적해주시기도 하고, 내용상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시지 않았다면, 결코 이 연재물은 지금과 같은 형태로 완성될 수 없었을 것이다.
무한도전과 그 프로그램을 사랑하는 팬들께 한없이 부족한 글이지만 이 글을 바치며 시리즈를 마감하고자 한다.
여러분, 사... 사.... 사.... 사랑합니다!
무한도전!
by ddolappa
1) 남승용, 여운혁, 김태호 PD 인터뷰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article_id=43118&page=32&mm=006001000
2) 문은애 작가 “오락물은 통계와 전략이다”
http://media.daum.net/entertain/all/view.html?cateid=1005&newsid=20080608211104384&cp=hani
3) 1)번 인터뷰 참조
4) 2)번 인터뷰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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