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무한도전 History-퀴즈의 달인

'무한도전 History - 퀴즈의 달인'를 마치며

ddolappa 2008. 7. 3. 19:28
LONG 글의 나머지 부분을 쓰시면 됩니다. ARTICLE

'무한도전 History - 퀴즈의 달인'를 마치며

 


감사의 말을 전하며


내가 '무한도전 다시 보기를 시작하며'라는 글로 무한도전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작업에 동참을 호소했던 것도 엊그제 같은데 그것도 벌써 몇 개월 전의 일이 되고 말았다. 당시 갤러리 쪽은 활성화가 잘 되었던 반면, 게시판 쪽은 안티 세력들이 활개를 치고 돌아다녔을 뿐 아니라 이상하게 갤러리 쪽 분들의 관심이 적어 늘 인기 프로그램 순위에 올라 있던 무한도전 갤러리의 순위가 곤두박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게다가 하하의 군입대로 인해 무한도전의 향방을 높고 팬들 사이에서도 크고 작은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그래서 무한도전 팬으로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을 고민하다가 무턱대고 '퀴즈의 달인' 시기를 되돌아보는 연재물을 올리겠노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그래야 일주일에 만만치 않은 분량의 2편의 글을 올리는 작업을 내가 무사히 끝낼 수 있을 오기가 생길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자기 선언에 동의하셔서 자발적으로 동참해주실 분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은근히 해보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내가 짊어져야 할 짐으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이 때까지만 해도 내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 그건 연재물을 나 혼자의 힘만으로 써가는 것이 아니라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지켜봐 주셨기 때문에 내가 연재해나갈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내 글을 읽으며 많은 분들이 당시를 떠올리며 즐거워 해주시기도 했고, 이 시기를 몰랐던 분들은 내 글을 통해 무한도전의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기뻐하시기도 했다. 또 내 글에서 발견되는 오타와 잘못된 문장을 지적해주시기도 했고, 무한도전의 역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지니신 팬분들이 나타나 내용상의 오류를 바로잡아 주시기도 했다. 결국 나는 혼자서 글을 써 갔던 것이 아니라 부족한 내 글을 읽었던 많은 분들과 함께 글을 써내려 갔던 것이다. 내 글을 읽고 때로는 격려해주시기도 하고, 또 때로는 부족한 점을 지적하며 질책해주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영웅은 난세에 태어난다


'퀴즈의 달인' 시기에 무한도전 멤버들이 직면했던 위기감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당시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M본부는 2005년 '쌀집 아저씨'란 별명을 가진 김영희 PD를 예능국장에 임명하기 위해 '인사규정'까지 고치는 편법까지 동원해서 최연소 예능국장을 탄생시켰다. 김영희 PD는 '이경규의 몰래카메라'(1996)을 시작으로 '칭찬합시다!'(1999), '전파견문록'(2001), '느낌표!'(2001)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공익과 재미를 동시에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제작해 M본부가 자랑하는 스타PD의 반열에 오른 인물이었다. 이런 김영희 예능국장이 봄 개편을 진두지휘해서 탄생시킨 프로그램들 중 하나가 <토요일>이었고, '무모한 도전'은 그 곳의 한 코너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김용만, 김국진, 남희석, 유재석, 김제동, 박경림 등 "이만한 출연진이면 웬만한 예능 프로그램 3개는 만든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쟁쟁한 MC들을 총출동시켜 만든 <토요일>은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시청률 경쟁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여기에 2005년 7월과 10월에 벌어진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M본부 예능국 전체에 암운이 드리워지게 되었다. 7월에는 <음악캠프>에 출연했던 한 인디밴드가 생방송 도중 바지를 내리는 사건이 발생해 밴드 멤버가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10월에는 경북 상주에서 M본부가 주관하는 공개방송을 관람하기 위해 입장하던 11명의 시민이 압사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출범했던 김영희 예능국장은 단 7개월만에 PD로 좌천되는 수모를 겪게 되었고, 그 자리를 '빛과 소금'인 최영근 예능국 부국장이 대신하게 되었다. 그래서 분위기 쇄신을 위해 시청률이 저조했던 <토요일>은 채 반년도 되지 않아 <강력추천 토요일>로 개편되었고, 그나마 기존 코너들 중에서 제 몫을 다 해주었던 '무모한 도전'은 '무리한 도전'으로 명칭을 바꾸고 살아남을 수 있었다. 무한도전 시즌2 '20회 특집'에서 개편의 칼바람을 피해 살아남게 되었다고 무한도전 멤버들이 얼싸안고 기뻐했던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때 무한도전 팀은 자신들의 운명을 책임질 또 한 명의 걸출한 인물과 만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김태호 PD였다. 당시 김태호 PD는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상상원정대'를 마치고 잠시 쉬어갈 요량으로 무한도전을 맡았다고 하는데 그런 우연한 만남이 서로의 운명을 결정짓게 될 줄은 아마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권석 PD에서 김태호 PD로 담당 연출자가 바뀌면서 무한도전이 한 일은 멤버들의 캐릭터를 다듬기 위해 도전을 포기하고 실내로 들어온 것이다. 이 점은 워낙 많은 글들에서 지적되고 있기 때문에 생략하도록 하고 대신 내가 덧붙이고 싶은 점은 다음과 같은 점이다.


"무한도전이 실외에서 실내로 자리를 옮기며 인물들의 캐릭터를 부각시킬 수 있었던 것은 협소한 공간 안에 머물며 그들의 관계가 보다 선명하게 부각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김태호 PD는 '동해 가스전'을 기획했던 의도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을 언급하며 섬이란 제한된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숨겨져 있던 욕망들이 거침없이 드러나게 되어 박명수가 반장이 되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했다고 말을 했는데, 멤버들의 캐릭터를 만들기 위해 마련된 '퀴즈의 달인'의 무대공간 역시 기본적으로 이러한 구상에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한 인물의 캐릭터를 선명하게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에 적합한 상황이 먼저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다."('무한도전 History - 퀴즈의 달인' 1회)


여기에 당시 무한도전의 메인 작가였던 문은애 작가의 공로 역시 무한도전 멤버들의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있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그녀는 김태호 PD를 도와 그의 연출의도가 제대로 실현될 수 있도록 했을 뿐 아니라 지금의 무한도전이 탄생할 수 있도록 애썼던 개국공신에 포함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난세에 영웅이 탄생하지만, 그 영웅은 혼자의 힘으로 영웅의 반열에 오른 것이 아니라 이처럼 수많은 조력자들의 도움을 얻어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유비에게 제갈량이라는 걸출한 지략가가 있었다면, 김태호 PD에게는 문은애 작가가 지위하는 뛰어난 작가군이 있었던 것이다.

 


마침내 여의주를 얻은 6인의 용들


그렇게 해서 마침내 잘 다듬어진 6인의 캐릭터들이 탄생하게 된다. 김태호 PD는 그들 각자에 대해 다음처럼 말한 바 있다.


"'무한도전'의 출연진 중 전체적인 흐름을 조율하는 유재석은 플레잉 코치같은 존재다. 김태호 PD는 "유재석이 프로그램 전체에 대해 함께 논의할 수 있어 종종 공동 연출을 하는 느낌이 든다"고 그의 비중을 설명했다.
 

박명수는 차근차근 노력을 통해 인기를 쌓아간 전형적인 늦깍이 스타다. 그래서 그는 늘 "인기는 언제든 떨어질 수 있다"며 매주 긴장을 풀지 않고 어떻게 웃길지 진지한 고민을 한다고 한다. 김태호 PD는 "이런 박명수가 정작 프로그램에서는 정반대로 매사 불만 많고 불성실해 보이는게 매력"이라고 말한다.
 

정준하는 풍부한 방송 출연 경험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의 큰 그림을 아는 존재다. 그래서 그는 유재석 박명수를 든든히 받쳐줘 김태호 PD의 흐뭇하게 만든다.
 

정형돈은 개그맨의 입장으로는 꽤 부담스러울 수 있는 '재미없는 캐릭터'라는 설정을 너무 잘 소화해 고마워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하하에 대해서는 제작진의 마인드를 충분히 알고,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악역을 자청한 점을 높게 평가했다.
 

끝으로 노홍철은 언제고 엉뚱한 방향으로 튈지 모르는 '4차원적 정신세계'가 매력이라고 한다."1)


그러면서 그는 "이들 여섯 명의 남자들은 제게 가족 같은 존재예요. 만약 그 중 한 명이 군입대나 이민 등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프로그램을 떠나야 한다면 제게는 큰 아픔이 되겠죠"라는 말로 그들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했다.


간혹 김태호 PD는 이 인터뷰와는 다른 언어로 무한도전 멤버들 각자를 표현하기도 했다. 가령 정준하는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겁쟁이 사자' 캐릭터로 그의 입장에서 무한도전은 용기를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인 셈이다. 또 박명수는 거대한 나무를 보고 달려가는 인물이라면, 유재석은 숲은 보고 달려가는 인물이라고 두 사람의 차이점을 설명하기도 했다. 이러한 평가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는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 편에서 찾아볼 수 있다. 박명수가 돈이 든 가방에만 집중해서 노홍철과 처절한 사투를 벌였다면, 유재석은 제2의 야전 사령관으로서 프로그램 전체의 흐름을 조율하고 맥을 짚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최고령 아이돌 그룹' 무한도전의 리더 유재석


그런데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을 시작할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메인MC인 (유)재석이 형의 컨셉을 잡는 일이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MC와 게스트가 분리된 기존 관계를 바꾸고 싶었다”면서 “재석이 형이 진행을 하되 팀워크의 큰 역할을 담당하는 일원이 되도록 하는 방식이 성공할 수 있을지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그런 진행자는 너무 카리스마가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다”고도 밝혔다.


이 인터뷰 기사는 다소 의아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는데, 유재석의 진행방식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MC와 게스트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플레잉 코칭'식의 진행에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역시 유재석의 그런 진행방식의 연장선 상에서 이해되어왔는데, 담당 PD가 MC와 게스트가 분리된 기존 관계를 바꾸고 싶었다고 하니 이상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데 '퀴즈의 달인' 초창기의 역사를 살펴보면 김태호 PD의 말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인지 대충 감을 잡을 수 있다. '무모한 도전', '무리한 도전' 시기에 비해 '퀴즈의 달인' 시기의 유재석은 멤버들로부터 공격을 많이 당하고 있고, 그럴수록 진행자로서 유재석은 사라지고 멤버들과 뒤섞여 함께 있는 그의 모습이 부각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과거 무한도전에서 유재석이 진행자임에도 게스트들과 잘 어울리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면, '퀴즈의 달인'을 거치면서 유재석은 무한도전의 멤버들 중 '진행중독'이 있는 일원으로 비춰지게 된다. 사소하지만 이 차이는 결정적인데, 무한도전이 유재석의 '무한도전'이 아니라 하나의 팀인 '무한도전'으로 받아들여지게 되고, 나아가 무한도전이 '최고령 아이돌 그룹'으로 탄생하게 되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유재석이 멤버들로부터 공격을 당할수록 오히려 '순수청년'이라는 그의 이미지는 강화되고, 그가 몸을 낮추어 멤버들과 동화됨으로써 무한도전의 팀워크는 더욱 단단해지게 된다. 그래서 적어도 무한도전 내에서 유재석의 위치는 'MC'라기보다 팀의 '리더'로 보는게 보다 타당할 듯싶다. 결국 이 시기에 유재석이 겪고 있는 수난이란 그가 '최고령 아이돌 그룹' 무한도전을 이끄는 '리더'가 되기 위한 과정일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시기에 다른 멤버들과는 달리 유재석이 '비디오 청년' 이외에 별다른 캐릭터가 만들어지지 않은 이유가 설명된다. 왜냐하면 유재석에게는 '진행자' 자체가 캐릭터였기 때문이다. 물론 '비디오 청년'이란 캐릭터를 이어 받아 <특전사 편>에서 '에로 재석'이란 타이틀이 붙기는 했지만, <체인지 편>에서 유재석이 멤버들 중 자신만 캐릭터가 없다고 하소연하는 모습이 그의 위치를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거성 박명수'와 같은 강력한 캐릭터가 없는 대신 멤버들을 조율하고 이끄는 '진행 중독'에 걸린 팀의 리더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무한도전 History - 퀴즈의 달인' 5회)

 


무한도전을 통해 스스로 '제8의 전성기'를 열어갔던 박명수


'졸업특집'은 한 마디로 박명수를 위한 특집 방송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그의 활약이 처음부터 끝까지 두드러진 한 회였다. 그는 시작부터 노홍철과 팽팽한 대립관계를 보여주며 웃음을 선사하더니, 눈곱이 낀 모습이 유재석에게 포착되어 '분비물 개그'를 완성하고, 앙케트 결과에 망연자실한 그의 모습은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스페인 선수들 모습과 합성되기도 하고, 이 날 공개된 그의 돌사진은 영화 <오스틴 파워>로 패러디되고, 마봉춘으로부터 '박명수씨나 잘 하세요'라는 그녀의 최초의 애드리브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방송의 마지막 부분이 갑자기 중단되는 방송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지만 '졸업특집'은 '맹비난 특집'과 더불어 박명수의 팬이라면 결코 놓칠 수 없는 에피소드라 할 수 있다.


'아하 게임의 신동'이자 '비난계의 꿈나무' 노홍철은 하하가 개인 사정으로 출연하지 않은 이 날의 방송에서 '박명수 킬러'로서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는 유재석의 '뻥이야!' 공격에 울컥한 박명수가 3위 휘장을 억지로 빼앗아 두르려 하자 '형님도 너무하신다! 설마 3위겠어? 만날 위 아래 없다고 그러더니 더 없어!'라며 박명수를 비난한다. 화가 난 박명수가 노홍철을 공격하려 하자 슬쩍 피하면서 위로하는 척하며 '1,2위 하시겠죠! 언젠가. 늙으시면 칠순 파티 때 (1,2위를) 한번 해요!'라고 말해 부화를 더 돋우어놓는다.


2위 발표 때도 노홍철은 박명수가 자신을 가리자 그를 밀치면서 '조금만 옆으로 서주세요! 카메라 가리잖아. 내가 (방송에) 나가는 게 나아! 채널 돌아가! 채널 돌아가!'라고 말해 박명수보다 젊고 잘생긴 자신의 외모를 뽐내며 박명수와 팽팽한 긴장관계를 보여준다. 노홍철은 그 이전에도 박명수와 아옹다옹하는 관계였지만 하하의 등장 이후 박명수에 대한 그의 비난은 보다 원색적이고 보다 대담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하하의 입대 이후 노홍철의 비난 수위가 다시 높아진 것은 박명수를 견제했던 하하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그의 의식적인 노력으로 볼 수 있겠다.


박명수는 개인 사정으로 인해 하하가 녹화에 불참하게 되자 자신의 방송 분량이 늘어나서 좋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런 그를 옆에서 지켜보던 유재석이 눈곱이나 떼고 말을 하라고 나즈막이 지적해서 박명수를 무안하게 만든다. 정형돈은 박명수가 처음에는 침을 흘리더니 그 다음에는 방귀를 뀌고 마지막으로 눈곱 낀 모습을 보여준다며 그의 이미지 실추 변천사를 정리해준다. 그 다음으로 이윤석이 나서서 '각종 분비물 개그의 일인자!'라고 최종적으로 정리를 해주게 된다. 이 한 장면에서 알 수 있듯이 무한도전의 팀워크는 멤버들 각자의 확실한 역할 분담에서 나오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멤버들의 놀림을 당하는 중심에는 거의 항상 박명수가 있다는 사실은 '무한도전 100회 특집'에서 다른 멤버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그의 캐릭터를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아버지, 흑채1기 개그맨, 호통명수, 찮은이형, 2인자, 박반장, 거성, 악마의 아들, 소년명수, 쿨거성, 벼멸구, 싼초박(싼초밥), 고유명수, 박사장, 외계인, 깨방정 형님, 산유국, 민머리, 여운계 선생님, Eye of 살쾡이, 박구리다, 여드름 브레이크, 일본 원숭이, 대머리 독수리 etc.>


혹자는 한 개인이 지닐 수 있는 캐릭터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리얼버라이어티쇼'이자 '캐릭터쇼'이기도 한 무한도전이 최근에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에서 예로 든 박명수의 대표적인 몇 가지 별명들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캐릭터들은 '유한한' 박명수라는 개인이 '다양한' 상황들에 놓임으로 해서 만들어진 것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박명수가 한 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사물이 아니라 연애를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기도 하는 유기적인 생명체라는 점에서 그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존재이고, 또한 무한도전 역시 유기체처럼 끊임없이 진화하고 변화하는 쇼라는 점에서 캐릭터의 한계라는 우려는 불식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0과 1이라는 단순한 숫자의 조합이 무한대의 우주를 만들고 있듯이 유한한 다섯 멤버들의 조합은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들을 산출해내고 있기 때문이다.(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10회)


그런 점에서 박명수의 성장과정은 무한도전의 성장과정과 일치한다. 그가 보여준 지칠줄 모르는 개그에 대한 열정은 자신의 성장과 더불어 무한도전의 쇼를 성장시켰고, 농담처럼 내던졌던 말인 '제8의 전성기'를 스스로 만들어 갔다. 유재석이 무한도전의 혼이라면, <슬램덩크>의 정대만처럼 '포기를 모르는 남자' 박명수는 무한도전의 투지다.

 


무한도전행 기차에 올라탄 마지막 승객 정준하


'봉춘리 MT 특집'편에서 비어 있던 무한도전 멤버쉽의 한 자리가 드디어 채워지게 된다. 그 자리는 MT후발대로 등장한 '식신' 정준하의 몫이었다. 2003년 M본부의 <코미디 하우스>에서 '노브레인 서바이버'로 그해 '방송연예대상'에서 최우수상 및 인기상을 수상한 이후 주로 드라마와 영화계에서 활동을 해왔던 정준하가 이처럼 무한도전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알려진 것처럼 유재석의 권유 때문이었다.


정준하의 등장은 여러가지 점에서 잘 계산된 쇼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우선 2년만에 컴백하는 특급 게스트인 이효리를 섭외해서 대중의 관심을 그녀에게 집중시켜 이윤석의 빈 자리를 눈에 띄지 않게 하고, 게스트로 잘 출연하지 않았던 이경규를 내세운 '비난특집'을 방영해서 큰 반향을 일으킨 뒤, 게스트의 신분으로 무한도전을 방문한 정준하의 출연이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하지만 정준하에 대한 정교한 캐릭터화가 상당히 오래 전부터 준비되어 왔다는 사실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식신', '알콜CEO', '헬멧', '뚱보', '술에 물 타기', '쉽게 삐치는 성격', 일본과의 인연,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캐릭터, 인맥이 넒은 사람 등은 이후 무한도전 멤버로서 정준하를 특징짓는 대표적인 특징들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이 단 한 회 방송분에서 모두 쏟아져나왔다는 사실은 그가 평범한 게스트가 아니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첫 출연에 이처럼 다양한 특징들을 선보일 수 있다는 점에서 무한도전이 이윤석이 아닌 정준하를 선택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개성 강한 무한도전 멤버들 속에서도 전혀 뒤지지 않은 매력을 발산하는 인물을 만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15회)


정준하는 정식 멤버로 영입되었을 때부터 줄곧 박명수와 아옹다옹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는 그가 처음부터 박명수의 대항마로서 설정된 캐릭터였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미 첫 등장 때부터 '식신', '헬멧', '잘 삐치는 성격', '바보' 등 정준하의 캐릭터를 규정하는 다양한 특징들이 반복적으로 화면에 비춰져 출연 이전부터 그의 캐릭터가 상당히 정교하게 구축되어 있다는 인상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무한도전 제작진에 따르면 정준하는 뮤지컬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겁쟁이 사자'와 같은 역할로 덩치는 크지만 소심한 인물이 여행을 통해 용기를 찾게 되는 역을 맡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또 다른 임무는 '호통개그'로 제8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박명수의 독주를 견제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 시기의 박명수는 유재석을 비롯한 무한도전 멤버 전원이 달려 들어 싸워야 할 만큼 거침없는 악의 포스을 내뿜었다. 침착한 유재석마저 박명수를 만나면 이성을 잃고 흥분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던 데서도 알 수 있듯 이 당시 그의 포스는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 '하찮은 형'이 된 박명수는 너무나 평범한 동네 아저씨로 전락해버려 팬들의 원성을 사고 있긴 하지만.(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18회)

 


무한도전의 아이디어 뱅크 정형돈


무한도전의 세계를 유심히 관찰하면 갑작스럽게 준비된 아이템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에피소드 중에 등장한 '100분 토론 끝없는 논쟁, 유재석씨 가정 화목한가?'라는 자막은 그 한 예이다. 이 자막은 이미 지난 주에도 등장했던 것이기도 한데, 이후 무한도전은 2007년에 방영된 '황금돼지해 특집'편에서 '한류 열풍 무한도전 멤버도 가능한가?'라는 주제로 녹화시간 100분 동안 벌이는 '100분 토론'을 방영하기도 했다. 또 2008년에 방영된 100회 특집에서는 무한도전 멤버들과 동명이인 100명을 초대해서 무한도전의 과거와 미래를 주제로 '100분 토론'을 펼치기도 했는데, 이 역시 시사토론 프로그램인 <100분 토론>에 대한 끊임없는 변주와 패러디라 할 수 있다.


이처럼 무한도전이 사소한 아이디어를 조금씩 변형시켜서 진화를 해나가는 데에는 멤버들의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순간적인 재치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정형돈은 이번 방송에서 여러차례 재기발랄한 아이디어는 내놓음으로써 무한도전 내의 아이디어 뱅크로서의 면모를 확실히 각인시키고 있다.


그는 유재석에 의해 말이 중간에 끊겼지만, 유재석의 가정이 화목한가의 여부를 시청자 게시판에서 물어보자고 제안을 해서 유재석의 화를 돋우게 된다. 또한 박명수가 초콜릿 CF에 어울리지 않는 이유로 '안 사면 호통칠 것 같다'는 시청자 의견이 발표된 후 오히려 그런 방식으로 CF를 찍으면 효과적일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내놓아서 박명수를 돋보이게 하는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 박명수 : (이를 악물고 호통을 치며) 심혈을 기울여 만들었잖아! 왜 안 사? 정확한 정량이야! 코코넛 반 팜유 반!
- 유재석 : 아니 그런데 이 초콜릿 너무 달지 않나요?
- 박명수 : (여전히 호통을 치며) 소금 쳐(서) 먹어!
- 정형돈 : 소금을 쳐서 먹으란 얘기죠.
(멤버들 모두 하하의 선창에 따라 '박명수!'를 연호한다.)


위 대화에서 정형돈은 자칫 시청자들로부터 오해의 소지가 있을 지도 모를 박명수의 말을 순화시켜서 지적해 줌으로써 만일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 있다. 자신이 부각되기보다는 다른 멤버들을 돋보이게 만드려는 이런 작은 노력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무한도전이 있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 다시 한번 입증된다.(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9회)


이처럼 정형돈은 비록 '국민의 이모', '악뚱 뚱토벤', '홍금보' 같은 별명들이 말해주듯 이 시기에 대중들로부터 큰 주목을 받지 못한 인물이었지만 무한도전에 섬세한 감정을 불어넣고 유재석과 더불어 프로그램 전체를 이끌어가는데 없어서는 안 될 멤버이기도 했다.

 


무한도전의 젊은 피 하하와 노홍철


하하는 2005년 6월 4일에 방영된 무모한 도전 7회 "동전 분류기 vs 인간 동전분류"편에서 게스트로 이미 출연한 바 있지만 무한도전의 정식 멤버로 등장한 건 '크리스마스 특집' 편부터였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모습을 드러낸 하하는 시종일관 유들유들하고 건방진 모습으로 무한도전도 간당간당하다거나 유재석도 많이 약해졌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물론 다른 멤버들은 특유의 무한 이기주의로 말미암아 떨떠름하거나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고, 박명수는 자신들의 에어리어에 들어온 건 좋지 않다며 노골적인 반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당시 같은 소속사에 속해 있던 박명수와 사사건건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거나, 케이블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노홍철과 단짝을 이루어 아옹다옹하는 다른 멤버들을 지켜보며 우린 저렇게 늙지는 말자고 다짐하거나, 형들이 자랑스러웠었는데 하며 비아냥거리는 모습은 무한도전의 젊은 피로서 앞으로 무한도전에 그가 가져올 새로운 긴장과 활력을 충분히 느끼게 해주고 있다. 무한도전이 특유의 정신없음과 시끄러움으로 무장하게 되는 데에는 그와 노홍철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에 긴장을 한다며 다른 멤버들을 비난하던 하하는 박을 한 대 맞고 나서 놀랍도록 빠르게 무한도전의 세계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명수가 "가족/가족들"로 분란을 일으키자 하하는 자신의 아버지 성함(하윤국)과 어머니 성함(김옥정)까지 게임에 끌어들여 앞으로 다가올 더 큰 어거지와 분란거리를 만들 단초를 마련했다. 하하는 무한도전이 실제 현실(사생활)의 영역을 방송 내로 흡수하게 되는 계기를 이미 자신의 등장과 함께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무한도전이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 진화하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무한도전 History - 퀴즈의 달인' 2회)


하하가 떠난 후에 그가 무한도전에서 어떤 역할을 했던가를 알아보기 위해 '무한도전 History'를 쓰기 시작했지만 막상 과거의 화면들을 살펴볼수록 그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다가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조금만 긴장하면 침을 흘려. 나도 모르게 세월 앞에 무릎을 꿇는거야!'와 같은 말 한마디로 박명수를 굴복하게 만들었던 하하, 빨간 방석이라는 작은 소품을 활용해서 유재석에게 큰 굴욕을 안겨주었던 하하는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동작과 말만으로 무한도전의 에피소드들을 좀 더 섬세하고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하하는 노홍철과 함께 무한도전의 젊은 피로서 감초같은 역할을 톡톡히 해냈지만, 노홍철이 조금 더 과장된 동작과 행동으로 남성적인 힘을 무한도전에 부여했다면, 하하는 여성스러운 섬세함으로 무한도전이 디테일한 웃음을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8회)

 


초저예산의 심플한 무대세트


'퀴즈의 달인' 시기로 넘어오며 무한도전은 매회 특집이라는 컨셉트를 내세우게 된다. 크리스마스 특집, 연말 특집, 새해 특집, 특집 없는 특집을 거쳐 이번 회에는 할머니댁 특집을 컨셉트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말이 특집이지 초저예산 합판 세트 위에 그려진 상황을 묘사하는 그림만이 주어진 전부였다. 이번 방송분에서도 시골 사랑방 분위기를 나타내는 그림과 장롱 세트 위의 이부자리가 무대세트의 전부였다. 나중에는 무대 정면이 갈라지면서 삼바춤을 추는 무희들이 화려한 조명을 받으면서 등장할 수 있도록 개조되고, 화면 오른쪽에는 앙케트 설문 조사 결과를 알 수 있는 사진 액자를 걸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되지만 초저예산의 심플한 무대세트는 이 시기 무한도전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소 궁핍해 보이는 이러한 세트는 무한도전이 내세우는 B급 감수성에 부합하는 것이기도 했다. 쫄쫄이와 늘어난 내복이 유니폼이었던 사람들이 실내로 들어와 갑자기 '여걸 6'처럼 화려한 무대 세트 안에서 쇼를 펼치는 것만큼 이질적인 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 시기의 무한도전은 화려함을 추구하는 대신 내실을 기울이는 실용적인 노선을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할 듯싶다.


우선 출연진 전원은 쫄쫄이를 벗어던지고 매회 깔끔한 정장 수트 차림으로 등장하게 된다. 비록 정장을 입고도 하는 짓은 여전히 유치하고 모자란 것이었지만 수트 의상은 무한도전의 마이너적 감성을 보완하는 완충제 역할을 하고 있다.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는 말이 있듯이 격식을 갖추어 차려 입은 복식은 출연진들과 시청자들에게 무한도전이 난장쇼이긴 하지만 분명히 넘지 말아야할 선이 있음을 가리키는 기능을 한다. 아마도 그 선은 무한도전의 B급 감수성과 대한민국의 일반 시청자들이 만날 수 있는 최소한의 접점과도 같은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소 성의없이 그려진 듯한 무대 그림 역시 자세히 들여다보면 세련된 미술적 감각이 발휘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게 된다. 군더더기 없이 상황을 전달하는 그림들은 미술의 미니멀리즘처럼 절제된 감성을 전달하며 무한도전의 비주류적 성격을 보완하는 동시에 시청자들이 출연자들이 펼치는 상황 자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있다.


이처럼 이 시기의 무한도전은 자신들이 표방하던 'B급 감수성'과 이를 보완할 '세련된 감각'을 결합시키려고 시도하고 있는데, 이는 대중들에 보다 가까이 다가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심플한 무대세트와 수트 정장이 형식적 소도구로 사용되었다면, 시청자 앙케트는 내용적 차원에서 도입된 장치였다.(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6회)

 


시청자 앙케트의 도입


'퀴즈의 달인' 6회에 처음으로 시청자 설문 결과가 발표되었다. 무한도전 내에서 최고의 얼짱이 누구인가 하는 주제였는데, 2주 전에 있었던 현장설문에서는 하하가 당당히 1위에 등극했다. 그러나 2만 여명이 참여한 시청자 앙케트 조사 결과, 노홍철이 무한도전 대표미남을 차지하게 되고, 2위 유재석, 3위 하하, 4위 이윤석이 그 뒤를 잇게 되었다.


시청자 설문 결과 발표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멤버들이 별것도 아닌 것에 설레발을 치며 호들갑을 떨면서 긴장감을 유발하고, 유재석이 '뻥이야!'를 통해 잔뜩 긴장해 있는 출연진들에게 낚시질을 하며 골탕을 먹이게 된다. 그리고 순위가 발표되면, 지난 주의 발표 결과에 따라 걸려 있는 출연자의 사진을 땅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자신의 사진을 걸어놓는 사진 던지기 퍼포먼스가 벌어지고, 마지막으로 시청자들이 보내준 선정 이유를 발표하는 시간으로 마무리된다.


시청자 앙케트를 통해 출연자들의 캐릭터가 구축되고, 이렇게 형성된 캐릭터에 따라 출연진 상호간의 관계가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게 된다. 이후 계속된 설문조사를 유심히 살펴보게 되면, 방송에서 제시된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반응을 하고, 시청자 반응에 따라 출연진의 캐릭터가 형성되는 순환과정을 거치면서 점차 멤버들 각자의 캐릭터가 구체적으로 다듬어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무한도전의 캐릭터는 '캐릭터(Character)' 본래의 의미인 출연자의 실제 '성격'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 세계와 쇼 오락의 세계를 연결시켜주는 가교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유재석이 무한도전의 대기실 분위기를 묘사하며, 박명수는 인사 대신 '아하! 다 죽일거야!'라고 말을 하며 들어오고, 노홍철은 정형돈에게 '안녕하세요! 나쁜 형!'이라고 인사와 동시에 비난을 한다고 말할 때, 실제의 '성격'과 쇼 오락의 '캐릭터'는 구분할 수 없게 된다. 그런 점에서 시청자 설문 앙케트는 오늘날의 무한도전이 있게 한 초석이라 할 수 있다.(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6회)

 


'잘 계산된 무형식의 형식'으로서 무한도전의 쇼


무한도전은 매회 특집 방송을 하며 '형식 없음'을 자신들의 고유한 형식이라고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엄밀하게 말해 무한도전의 '무형식성'은 '잘 계산된 무형식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우선 퀴즈의 달인 시기에 만들어진 멤버들의 캐릭터나 관계에 깃댄 개그 패턴은 시청자들에게 예측가능성을 부여하고 있다.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은 곧 일정한 법칙과 규칙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유재석이라면, 박명수라면, 정준하라면, 정형돈이라면, 노홍철이라면, 하하라면 이 상황에서 이런 행동을 할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해지고, 시청자들은 이러한 자신들의 기대가 실제로 맞기도 하고 어긋나기도 하는 데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멤버들 간에 설정된 먹이사슬 관계 역시 예측가능성을 높이는데 기여한다. 2인자 박명수는 유재석을 질투하고 공격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유재석에게 절대복종하는 사람도 드물다. 퀴즈의 달인 이전 시기만 해도 박명수는 유재석을 최고의 MC라고 치켜세우는데 바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이 시기의 박명수는 그 이전의 태도에 감추어진 유재석에 대한 질투와 시기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유재석에 대한 박명수의 질투와 복종이라는 양가적 태도는 그 후 무한도전에서도 종종 목격되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차태현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알래스카 특집' 편에서 커다란 공과 경쟁을 펼치기 위해 언덕에 서 있던 박명수에게 유재석이 점버를 벗으라고 하자 순순히 옷을 벗는 그를 보고 하하가 '저 형은 재석이형 말은 참 잘 들어.'라고 했던 장면을 떠올려보자.


그리고 유재석은 박명수의 짓궂은 장난이나 공격에 대책없이 당하는 것 같지만 그는 은근히 박명수를 골탕먹이고 괴롭히는 데서 즐거움을 찾는다. 퀴즈의 달인 시기에 유재석의 '뻥이야' 공격에 가장 많이 걸려 들었던 것은 다름 아닌 박명수였다. 그리고 박명수가 다른 멤버들의 공격을 받아서 당황하거나 곤경에 빠질 때, 그를 찾아가 위로를 하는 척 하면서도 웃음거리로 만드는 사람 역시 유재석이다.


하하와 노홍철은 버릇없는 막내 역할로 박명수를 가장 곤란하게 만드는 세력들이다. 이번 에피소드에서도 마봉춘 아나운서가 '박명수씨 좋아합니다.'라고 말해 그의 기대를 한참 높여놓고는 '저희 어머니께서!'라는 반전을 만들어서 박명수가 낙심을 하게 되자, '연배! 연배! 어머니가 친구하고 싶어서. 어머니가 친구하고 싶어서.'라고 말하거나 '동창이야!'라고 말해 박명수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것 역시 노홍철과 하하였다.


무엇보다 무한도전의 불연속적인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에 연속성이 생길 수 있도록 만들고 있는 것은 김태호 PD의 정교하게 계산된 연출력 덕택이다. 그는 2006년 3월에 있을 '드라마 특집'을 위해 이미 같은 해 1월에 방영된 '신년특집' 편에서 신년운세를 통해 멤버들 간의 관계를 설정해놓기도 하고, 2008년의 '인도 특집'은 2007년의 '개그 실미도 특집'에서 이미 암시되기도 하고, 최근에 방영된 '중국 사막 특집'은 2006년 '김장 특집'에서 그 가능성이 제시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최근 무한도전이 언론이나 대중들로부터 노쇠해졌다고 평가받기도 하지만, 실은 자유분방하게 넘치던 에너지를 적제적소에 활용하는 능력은 오히려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방영 시간 내내 시청자를 정신없이 몰아붙이는 대신 어깨에 잔뜩 들어갔던 힘을 빼고 중요한 부분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모습은 지난 4년의 시간만큼 그들이 노련해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화면 편집에서도 그러한 변화를 엿볼 수 있는데, 과거의 무한도전이 출연자들 뿐만 아니라 시청자들 역시 조금도 숨쉴 틈도 없이 몰아세웠다면, 최근의 무한도전에서는 사건과 사건 사이에 인서트 장면을 삽입하여 여백을 주고 있다. 가령 특전사 특집에서 본 에피소드와 무관하게 삽입되었던 서정적인 화면들이나 수색대로 분한 멤버들의 행군 장면 등이 그렇다.


무한도전은 자신의 정체성을 끊임없이 부정해야만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받을 수 있는 이상한 프로그램이다. 여타의 예능 프로그램이 자연계의 거의 모든 현상처럼 엔트로피의 증가 법칙에 따라 죽음을 맞이하듯이 무한도전 역시 결국에는 비가역적인 에너지의 법칙에 굴복하게 될 것이다. 무한도전이 자기 부정의 운동을 그만두게 될 때 죽음은 무한도전에게 찾아오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그 때가 아니다. 그들에게는 아직까지 수많은 도전 과제들이 산적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이 프로그램에서 보여주는 열정과 에너지는 처음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다만 그 에너지를 활용하고 배분하는 기술적 변화를 주목하지 못할 때, 무한도전의 죽음이 임박한 것처럼 보일 뿐이다. 더우기 무한도전이 죽기를 바라는 미디어 환경에서 이러한 착시 현상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선전되고 있다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그러나 무한도전에게 최종적인 죽음을 선고하는 것은 시청자들의 몫이지 '그들'이 억지로 나서서 해야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입에 재갈을 물리고 사형선고를 받아야 하는 것은 '그들'이 아닌지 반문하고 싶다.(무한도전 History - 무한도전 퀴즈의 달인 8회)

 


무엇을 할 것인가?


다소 길게 인용되었긴 하지만 '퀴즈의 달인' 시기를 정리할 수 있도록 멤버들 각자의 특징과 무한도전의 쇼 오락으로서의 형식적 특징을 정리해보았다.


실내로 들어와 에너지를 축적한 무한도전은 이제 답답한 실내를 벗어나 세상을 향해 뛰어나가게 된다. 그런데 대중들의 인기를 얻기 시작했던 무한도전 3기의 행보를 살펴보면, 매해마다 커다란 컨셉트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가령 2006년은 '리얼 버라이어티쇼'로서 무한도전이 완성된 시기라 할 수 있는데, 대표적인 에피소드로 정형돈과 하하의 '친해지길 바래'를 꼽을 수 있다. 반면 2006년 연말부터 시작되어 2007년까지 이어지는 컨셉트는 시청자들에게 받은 사랑을 다시 되돌려준다는 컨셉트이다. '하나마나 행사 특집'이나 '서울 구경 특집'이 대표적인 에피소드들이다. 그리고 2008년은 시사성과 공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기본 컨셉트를 잡고 이를 위해 '사전제작'과 '이종배합'의 전략들을 취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식목일 특사 특집'이나 '사랑의 도서관 특집' 편은 이러한 컨셉트의 산물이다.


따라서 벌써 100회가 넘은 무한도전 시즌3는 앞에서 언급한 기본 컨셉트에 따라 시기별로 구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100회의 역사를 살펴보게 되면,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간의 연관이 보다 분명하게 드러나게 되고, 무한도전이 지향하는 세계관과 가치관이 한 눈에 들어오게 된다.


그래서 내가 '무한도전 History - 퀴즈의 달인' 연재를 마치고 떠오른 생각은 무한도전 시즌3를 다시 살펴보고 싶다는 계획이다. 물론 하염없이 긴 글을 일주일에 두 번이나 연재하다 보니 글의 경제성이란 측면에서 크게 반성할 점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쓰는 사람도 괴롭고 읽는 사람도 고통스러운 글은 모두에게 이롭지 못하다는 판단이 내려진 셈이다. 게다가 가끔 내가 쓴 '발 리뷰'를 다시 읽어보면 너무나 모자란 부분이 많이 눈에 띄어 당장이라도 다시 쓰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했다. 아마 다시 쓰게 된다면 그 때와는 다른 관점과 다른 문체로 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도 들었는데, 그러고 보니 무한도전 리뷰를 쓰는 일은 이제 나에게 취미가 아니라 습관이자 일상이 되어버린 것 같다.


내가 혹시나 얼마 안 지나 새로운 글을 시작하게 된다면, 누군가 나서서 뜯어 말려서 이상한 취미로부터 나를 해방시켜주던지, 아니면 또 다시 시작한 나의 무한도전을 묵묵히 지켜봐주길 바란다. 읽는 이도 힘들게 만드는 글을 읽는 건 나로 하여금 괴상한 열정에 사로잡히게 만든 당신들이 해야할 최소한의 의무이자 함께 저주에 걸리기를 바라는 나의 악마적 본능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바라는 바는, 의무를 충실히 지켜 윤리적 인간으로 남든 지, 악마의 꾀임에 빠져 사악한 인물이 되든 지 간에, 내 글을 접하는 이들 무도가 무한도전을 사랑하는 팬으로 오래도록 남아 있는 것이다.

 

 

by ddolappa

 

 

1. [김은구의 PD열전]프로그램만큼 튀는 남자, '무한도전' 김태호 PD
http://media.daum.net/breakingnews/view.html?cateid=1021&newsid=20070521060105519&cp=Edaily


2. '무한도전' 출범할 때 가장 고민한 것은?
http://www.heraldbiz.com/SITE/data/html_dir/2008/03/06/200803060281.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