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ilovepalgong
지난 20일 고려대에서 최장집교수의 은퇴 강연이 있었다. 이 책은 행정고시 공부를 위한 필독서이기도 하다. 나도 한때 이 책에 푹 빠져 읽었던 기억에, no man's land님의 <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리뷰를 싣는다.
이 책에서 최장집 전 교수는 "오늘날 정부는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부패했다"고 21페이지(민주화이후의 민주주의, 후마니타스, 개정판, 2006)에서 밝히고 있다. 이 대목에서 나는 멍하니 수분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늘날...... 정부는 무능하고, 무책임하고, 부패했다는 구절을 말이다. 그는 또 그의 책 23페이지에서 "나는 한국민주주의의 가장 큰 문제는 매우 협애한 이념적 대표체제, 사실상 보수와 극우만을 대표하는 정치적 대표체제에 있다고 본다"며 핵심을 아울렀다. 나는 그의 책을 통해 국민을 대표하지 못하는 간부정당, 선거에서의 승리만을 추구하는 선거전문가정당, 아무런 빛깔도 내지 못하는 포괄정당에 대한 그의 언급에 공감을 많이 했다.
20일 퇴임 강연이 마친 후 블로거 커피프린스님은 "교수님, 당신께서 교편을 놓으시기엔 아직 이 세상이 너무나도 어둡습니다"고 고백했다. 나도 그분의 진보적이고 통찰력있는 연구는 마치 구약에 나오는 예언자와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글스 블로거인 커피프린스님의 블로그에서 가져온 사진. 사진/커피프린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는 명확하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태생적 오류를 벗어나지 못한 채 50년 이상을 허비하고 있으며 과거에서부터 이어지며 앞으로도 더 나아질 희망이 없는, 그런 어두운 민주주의의 현실을 신랄하고 명확한 분석과 구체적인 사례들로 풀어가고 있다. 그리고 과연 한국의 민주주의가 현재에도 이루어지고 있고 몇몇 부분에서는 오히려 심화되고 있는 이런 문제점들을 스스로 수정하며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 민주주의의 참 뜻을 구현할 수 있는 진정한 민주주의로 탈바꿈이 과연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온 국민의 염원으로 이루어진 민주화 이후 그것을 이루어낸 당사자들의 삶에 큰 변화가 있었을까 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일 수 밖에 없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그들과 젊은이들이 택한 것은 스스로 정치에 무관심해 지는 것이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을까?
저자가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위기인 이유는 책에 일일이 항목별로 보기 불편한 진실들이 세세하게 제시 되어있다. 나는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하고 나의 인식의 폭을 넓혀주었으며 한국 현대정치를 새롭게 알 수 있게 해주었던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는 보수적 민주주의, 그리고 그들과 땔래야 땔 수 없고 공생관계로까지 보이는 주류언론의 문제, 시민사회의 역량 부족, 정치로부터 배제된 대다수의 국민과 정치집권 세력들간의 소통을 위한 통로 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일제 식민지로부터 벗어 날 수 있었던 것은 외부세력이 우리에게 우연히 던져 주었던 해방으로 인한 것이었다. 따라서 자연히 다시 제국주의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고, 냉전의 무대가 되었으며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승만이라는 막강한 왕이 탄생하였다. 이런 비극적 역사 속에서 경제발전이라는 기치를 내건 군사 독재라는 타는 목마름으로 자유를 갈구 하던 시절이 있었으며 인민이 스스로 쟁취한 민주화로 이어진 격동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한국의 정치 현대사에서 한가지, 그다지 바뀌지 않은 것이 있다면 보수적 민주주의 세력일 것이다. 보수적 민주주의, 보수적 민주주의 세력은 끈질기게 명맥을 유지해왔다.
민주화 이후, 더 오래 전으로 간다면 광복 이후 생겨났지만 그들의 당 개명을 통해 스스로의 보수적 뿌리를 유지해온 보수적 민주주의 세력들. 하지만 하다못해 민족주의라도 없는 그들이 보수, 우익이라고 불릴 수 있을까 의문이 든다. 그들의 유일한 논리는 반공이었고 없으면 용공분자를 만들었다. 이들이 과연 진지하고 심각하게 나라를 생각하고 걱정을 할지 의문이 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겉으로는 나라의 구성원인 국민에 의해 대의제라는 민주주의의 기술적 부분이 존재하고 이루어 지고 있긴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 전체적인 정치무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모습은 어떠한가. 아직까지 스스로 자기들의 정체성을 찾지 못해 남들에 의해 주어지고 명령 받은 역할만을 가감 없이 잘 수행하는 여·야간의 재미없고 편협하며 일정한 논리에 국한되고 한정되어있는 그들만의 정쟁은 민주화, 민주주의 뜻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끔 만든다.
<여기서부터 계속 읽기>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는 어느 정도의 개혁적인(언론이 말하는 좌파적인) 정부를 거치면서 보수주의 민주 세력은 스스로, 또 언론에 의해 환골탈태의 필요성을 절감하며 개혁을 추진하는 척 했지만 결국에는 수십 년 동안 그들이 이루어 낸 것을 지키기 위해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는 모습을 드러냈다. 보수, 아니 수구정치세력의 모습을 그들이 말하는 소위 ‘잃어버린 10년’동안 볼 수 있었으며 다른 것은 모르지만 경제만은 확실히 하겠다는 공약으로 정권 탈환에 성공한 현 정부가 강부자, 고소영, S라인 등으로 불리며 스스로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1% 부자를 위한 정부라서 그런지 민생위기를 못 느끼기까지 한다는 글을 보면서, 그들만의 정치가 아직 존재하며 우리나라의 보수적 민주주의가 아직까지 태생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었다.
수많은 논쟁이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소모적이라는 표현으로 치부된 너무 많은 정치적 쟁점들로 인해 이제는 민의를 반영하고 수렴하여 정책에 반영 할 수 있는 정당의 출현과 의회로의 진출이 요구 되고 있다. 18대 국회의 어느 정도 과거보다는 많은 스펙트럼을 가진 정당의 정치 참여가 어느 정도 독점적 지위의 현 보수적 민주주의 세력을 견제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까지 그것은 상당히 미미하다. 따라서 보수적 민주주의, 보수적 민주주의 세력이 스스로의 개혁에 충실해야 하며 이 과정에 국민의 소리가 큰 부분으로 작용된다면 변화를 기대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독일 나치의 선전장관 괴벨스가 한 말 중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다음은 의심하나 계속하면 나중에는 믿게 된다.”라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지금의 한국의 언론. 특히 신문의 모습을 잘 나타낸 말은 없을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언론으로서의 최소한의 책임과 보도윤리가 존재하지 않는 한국의 소위 朝中東 메이저3社의 언론보도 태도는 많은 시민단체와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 PD수첩 등의 TV시사정보 프로그램에서도 비판의 대상이 되어왔다. 문제점은 이 메이저 신문3社가 변화의 기미를 보이기는커녕 점점 사실과 가치를 전달하는 언론 본연의 자리를 버리고 스스로 권력기구화 되어가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언론의 본래 기능은 권력을 감시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朝中東 메이저3社는 권력을 감시하기 보다는 권력을 자기 손 안에 넣기 위해 정부를 압박하고 대통령을 인정하지 않으며 많은 고위인사의 가족사를 정쟁의 도구로 삼게 만들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더 나아가 철 지난 색깔론으로 그들을 사상검증 한다. 또 국민에게 왜곡된 기사를 보여주며 그것을 믿게 만들고 기사 제목 하나만으로 대통령을 헌법을 무시하는 무법자로 그려내기도 한다.
이런 모습이 과거 수 년간에 걸쳐 심해진 이유는 평등한 시선대신 일부 당을 지지하는 신문 메이저 3社의 2번의 걸친 권력창출의 실패로 인해 그들의 자리는 어느새 좌불안석이 되었고 언론개혁과 정기간행물법등 그들에게 손해가 되는 법안을 추진하는 정권은 그들에게 눈에 가시가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언제나 가진 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대안 없는 비판을 하는 등 정권 흔들기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이 그들의 모습이다. 과거 노무현 정권 시절 한나라당의 박근혜 前대표는 1면 컬러사진으로 싣고, 노무현 대통령은 3면에 삽화로 싣는 행동을 하는 이런 신문들,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가 국회를 통과했을 때 탄핵반대를 외치며 모인 수만 명의 국민들에 대한 기사는 찾아볼 수 없고 “국민들이 관심을 갖지 않아도 나라는 잘 돌아간다.” 는 기사가 조선일보의 지면을 차지하고 있을 때 그들은 이미 언론으로서의 마지막 책임도 져버렸다.
언론의 자기 모습을 버린 이런 행동이 이렇게 비판 받는 데에는 인터넷의 역할이 컷을 것으로 생각된다. 인터넷에 사이버 논객이 난무하고 초등학생들조차 글을 쓸 때 스스로를 필자라고 칭하는 이때에 지금 신문의 권위는 예전의 그것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신문은 인터넷 매체와는 달리 축적성이 적으며 단방향 매체이다. 그 때문에 인터넷이 보급되기 전까지는 신문은 권력의 제 4부로써 그 능력을 여기저기에 과시해왔고 자신들의 말이 진리인양 사회를 자기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었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이런 상황은 변하기 시작했다. 인터넷은 축적성이 강하고 바로바로 피드백이 가능한 쌍방향 매체이다.
또한 익명성이 있기때문에 자기의 존재를 가면에 숨기고 활동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자기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한 기사에 대해서 바로 반박이 나올 수가 있고 바로 거짓 기사로 밝혀지며, 네티즌은 기사를 보며 서로 토론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의 왜곡, 편파적인 보도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것은 텍스트로 저장해놓고 언제든지 불러와서 우리에게 상기시킬 수 있다. 그리고 하루에 한번 씩 발행되는 신문과는 달리 인터넷에서는 빠른 업데이트로 새로운 소식에 대한 사람들의 욕구를 신문이상으로 채워줄 수 있게 되었다. 이미 인터넷을 통해서 알고 있는 내용을 신문을 통해서 보는 것은 뉴스가 아니라 이미 지나간 Oldnews로 전락하고 만다. 단지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복습역할을 하는 신문의 모습에서 신문의 존재이유 자체에 위기가 온 것이다.
그래서 이 신문들이 선택한 것은 좀 더 광고주의 구미에 맞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 수 있는 기사를 쓰는 것이다. 광고주를 붙잡기 위해서는 광고주의 입맛에 맞는 기사, 특종을 위해 소설을 쓰고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사와 기사제목을 싣게 된다. 오래 전으로 가지 않아도 몇 년 전 열린 우리당이 추진한 아파트분양원가공개안이 추진될 때 신문광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설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모습에서 우리는 지금 현재 신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지대가 아니고 광고비인 신문사의 취약하고 편집권, 기사내용에 간섭을 받을 수밖에 없는 수익구조와 인사권은 신문사의 모든 것을 움켜쥐고 있는 반자본주의적인 1인 집중 경영 체계는 분명히 개혁되어야 문제이다. 하지만 이런 작업을 정부 주도로 한다면 본래의 취지를 잃어버리고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언론의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될 가능성도 다분히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구단체 등 제 3의 독립기관에서 이런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나아가 언론 스스로 변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줄 때, 언론의 재구성을 통해 이들의 본 모습을 되찾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에 진정한 언론이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신문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는 메이저 신문3社 모두 보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기형적인 모습을 가진 우리 사회에서 이들 신문을 보는 우리들은 이들의 시각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버리고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사실과 가치를 받아들여야 한다.
아무리 신선하고 좋은 요리재료가 있어도 그 요리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요리를 망치는 요리사에게 요리재료가 맡겼을 때, 그 손을 거친 요리는 어떻게 될까.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고 국민이 꼭 알아야 할 뉴스가 있더라고 그것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언론으로부터 그 뉴스는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가공되어 다가올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정치로부터 배제된 대다수의 국민과 정치집권 세력들간의 소통을 위한 통로 부족은 대한민국 건국이래 항상 존재 했다. 투표를 통해서 나라의 주인으로서의 기쁨을 누리고 권리를 행사하고 난 후. 정치에서 국민은 배제되었고 견제할 수단도 없었으며 권력의 사유화를 그저 지켜 볼 수 밖에 없다가 와신상담하며 다음 대선, 총선에서 그들을 응징할 수 밖에 없는 존재로 전락해버렸다.
민주주의와 민주화를 위해서 한국은 학생운동, 시민운동으로 민주화를 이루어 내었으며 권력의 모순, 부패, 독점, 사유화에 끊임없이 저항하였다. 하지만 왜 이런 큰 희생을 낳을 수 밖에 없는 저항 전에 다른 경로를 통해서 이런 일들이 이루어 지지는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민의가 배제된 정치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다가 그것이 너무 자신들이 생각한 뜻과 맞지 않을 때 이런 저항이 나타나는 것인가. 아니면 어떤 사건 하나로 국민들이 분노하게 하면서 그것이 점점 번지게 되어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인가.
민의를 수렴하고 그것을 정책에 반영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와 시민사회의 연결통로 부재, 집권 여당과 시민사회의 연결통로 부재, 야당도 역시 시민사회의 연결통로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의 선택을 받았다는 거국적 미명하에 더 이상의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자신들이 하는 정치가 옳은 것이라는 자만에 빠지게 되고 그들을 지지하는 일부 어용학자, 일부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지만 기반은 확고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지지성명을 통해 정권은 스스로 정당화하고 나서 그들의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명박 정부의 광우병 쇠고기 정책만 봐도 우리나라는 과거와 같은 일이 되풀이 됨을 알 수 있다. 경제를 최우선으로 하겠다고 내세워 당선되었고 국회에서도 과반수를 넘는 집권여당으로 바뀌었지만 고유가와 물가상승, 747정책의 후퇴로 이어지는 연이은 악재 속에 국민의 건강권까지 팔았다는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정부와 여당 모두 스스로 국민과 대화를 통해 해결하려는, 또는 국민을 이해시키려는 노력은 상당히 부족하다. 조금만 기다리면 한국이라는 기업의 서프라이즈 분기 실적이 나올 테니 기다리라는 CEO대통령의 깊고 깊은 속내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화 통로부족과 자신들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시키지 못하는 정부에 화가나 스스로 거리로 나온 국민들에게 배후세력 운운하며 불법을 저지르는 사회악으로 규정하는 것에 대해서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섬기는 국민은 오로지 그들을 믿고 묵묵히 따라주는 사원 같은 사람들이란 말인가.
인터넷 댓글도 유죄선고를 받는 현실에 정당과 사회, 대통령과 사회를 이어주는 길이 너무나 부족하다. 이 것은 양자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부와 정치사회에서 여론을 수렴하려는 의지가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들은 단지 국민의 주권을 위임 받은 대리자라는 것을 스스로 알아 주었으면 한다.
한국의 민주화는 아직 걸음마 단계이다. 인류 문명이 만 20세 의 젊은이들에게 투표권 한 표를 주기까지는 기업인들의 데모크라시로부터 시작해 2500년 동안의 투쟁이 있었다. 불과 60년 전 외부세력에 의해 준비도 없이 주어진 해방. 그 이후 냉전 역할극 주인공들의 무대로서의 한반도를 거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에 대해 심층적이고 구체적이며 모든 국민을 아우를만한 연구,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어리다는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정권을 잡은 사람들이 항상 말했던 지금은 토론하기 적절한 때가 아니라는 것에 대해, 그리고 과연 앞으로 적절한 때가 존재할지에 대해서는 대다수의 국민이 회의적일 것이다. 적절한 때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회에서 어떤 문제가 표출 될 때, 그때가 가장 적절한 때이며 민주화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태생적 오류라는 것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 때문에 스스로 자괴감에 빠져 우리의 미래를 회색 빛 미래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치로 인한 오류는 정치로서 얼마든지 변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이 역사적으로, 세계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가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가르쳐주는 동시에 우리 손에 따라 얼마든지 좋은 쪽으로 바뀔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민주화는 피로 이루어진다는 말이 있듯이 과거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많은 희생이 필요하다. 나 스스로도 완전한 이상향적인 민주주의 안에서 살아가지 않는 것이 어찌 보면 좋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로 인해서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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