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예술도 정치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사회주의 국가는 예술의 정치화가 문제이고, 자본주의 국가는 정치의 심미화가 문제이다.”
독일의 유명한 문예비평가인 발터 벤야민은 예술과 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 이런 정의를 내렸다.
사회주의는 예술 속에 이념만을 과잉으로 담으려다 보니 오히려 예술을 망쳐버리고, 자본주의는 정치의 합리적인 요소들을 모두 제거해 버린 채 예술의 상징에만 매달리다보니 상징조작으로 치달아 버릴 수 있다는 비판인 셈이다.
이 책은 정치와 관련이 깊었던 세계적인 예술가 8명을 중심으로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물론 어떤 예술가도 정치와 무관하지 않으나, 이 책에서는 정치적 삶을 살았거나, 예술의 정치적 색채가 선명했던 사람들을 선별했다.
저자는 예술이 돈과 교환되는 상품을 목적으로 하거나 어떤 권력의 지배를 받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또한 예술이 권력의 호위를 받으며 권력의 꽃으로 전락하는 것도 경계해야 한다고 덧붙인다. 즉 예술은 정치로부터가 아니라 예술을 소비하는 주체인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예술이 그런 권력, 돈, 정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소비되지 않고,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예술은 예술로서의 가치를 상실한다는 것이 예술의 딜레마라고 지적한다.
이 책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시대의 격랑과 조우하면서 정치에 어떻게 휩쓸려 들어가고 어떻게 이용당했는지를 살피고, 또 정치가 한 개인의 삶과 예술에 어떤 영향을 미치면서 지배력을 행사하는지 고찰하고 있다.
■ 책의 내용과 특징
위대한 예술가들의 삶을 통해 그려낸 예술과 정치의 만남
모든 예술은 정치적이다. 정치와 무관한 예술은 없다.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면서 인간해방이라는 이상을 실현해야 하는 예술이 정치와 무관해야 한다는 것은 오히려 시대착오적이다.
그러나 예술이 독립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게 아니라 정치에 종속될 때가 문제다. 정치권력에 종속된 예술은 반드시 타락하기 때문이다. 예술과 정치의 자유로운 만남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만남, 즉 예술과 정치의 불륜이 문제다. 예술이 정치와 가까워질수록 정치가 낳은 권력을 탐하게 된다는 저자의 말은 올바른 지적이다.
이 책은 위대한 예술가 8명의 예술적, 정치적 행위와 고뇌를 중심으로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다양하게 보여준다.
저자는 예술이 정치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의는 별로 필요치 않다고 지적한다. 정치지향적인 예술보다는 오히려 권력지향적인 예술을 문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본질적으로 자유와 불가분의 관계이기 때문에 예술의 마지막 도전도 권력으로부터의 자유라고 강조한다.
이 책은 모두 8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롤로그에서는 예술과 정치의 일반적인 관계, 1장에서 8장까지는 루벤스, 괴테, 바그너, 베르디, 채플린, 피카소, 사르트르, 레논의 삶과 예술, 에필로그에서는 장르별로 예술의 정치적 속성을 다루고 있다.
제1장 루벤스
노동을 멀리 한듯한 루벤스의 그림 속 풍만한 여인들 때문이었는지 책의 저자인 박홍규교수는 오랫동안 루벤스를 매우 경원했었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루브르박물관에서 어느 날,『엘레나 푸르망. 혹은 모피를 입은 여인』의 장대한 누드를 다시 보고 루벤스에 대해 공부한 사연과 사유를 풀어놓는다.
백작부인의 시동으로 귀족사회에 발을 들여놓았던 가난한 소년 루벤스가 운이 좋거나 왕에게 아부를 해서 외교관이자 화가로 출세를 하고, 많은 부를 쌓았던 것은 아니었다. 글을 읽다보면 야망이 컸다는 루벤스가 정말 그토록 훌륭한 인물이었는지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한다. 그는 지배와 종속의 관계를 넘어 예술과 정치를 누구보다 잘 조화시킨 가장 모범적인 케이스로 꼽힌다.
제2장 괴테
괴테의 『파우스트』를 유명한 문화애호가로 알려진 저자는 40세가 넘어서야 완독했다는 고백을 하면서 괴테를 ‘르네상스적 인간’으로 부른다. 독일의 최고 문호로 손꼽히는 괴테는 부유한 집안의 법학도로 평생 예술을 사랑했다. 또한 바이마르에서 50년 이상을 살면서 재상으로 루벤스만큼이나 정치와 예술을 잘 조화시킨 인물이다.
제3장 바그너
불행한 정치의 앞잡이로 손꼽히는 바그너는 히틀러 그리고 나치즘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으며 누구보다 인생에 담긴 사연이 많다. 바그너는 히틀러라는 개인보다는 그 당시의 정치 상황을 잘 이용했고, 자신의 예술적인 이상을 인종주의와 반유대주의에 교묘하게 도입했다.
또한 히틀러는 평생 단 한 번도 만나지 않은, 할아버지뻘의 바그너를 정신적인 지주로 삼아 바그너의 예술에 놀아난 꼴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니벨룽겐의 반지』이다.
제4장 베르디
분단된 조국 이탈리아 때문에 가슴앓이를 하며 슬픔과 아픔을 가졌던 베르디는 민족주의자였다. 그는 이탈리아의 역사와 현실에서 소재를 구했으며 애국적이고 정치적인 오페라들을 낙관주의 입장에서 썼다. 하지만 그의 오페라들도 뭇솔리니의 파시즘에 이용당했다.
제5장 피카소
천문학적인 부를 쌓으며 5만 여점의 미술작품을 남겼다는 20세기 최고의 화가 피카소는 『게르니카』,『한반도의 학살』 등을 그리며 전쟁의 잔인함을 세계에 고발한 공산주의자이자였다. 공식적인 정치활동을 하지 않았지만 공산당에 입당한 후 신문기자들에게 “참여라는 것, 어딘가에 얽매인다는 데에 대한 두려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나는 지금보다 더 큰 자유와 충만함을 느낀 적이 없다“고 할 만큼 공산주의자로서의 소신이 뚜렷했다.
제6장 채플린
흑백영화의 천재이자 최초의 블록버스터를 만든 채플린은 평화주의자였다. 그는 『독재자』라는 영화를 통해 히틀러를 조롱했다. 또 민중의 밑바닥 생활을 중심으로 평생 웃음을 추구해 코미디를 최고의 예술로 승화시켰다는 평을 듣는다.
그는 어떤 이념을 내세우는 사회주의자도 아니었고 자유와 평등을 믿는 민주주의자이자 아나키스트였으나 공산주의자로 몰려 스위스에서 삶을 마감했다.
제7장 사르트르
20세기 최고 지성의 상징으로 꼽히는 사르트르는 세상의 모든 지상적인 가치를 거부하고, 예술가로서만 표표히 살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이 어떤 것에도 속하길 원하지 않았고 권위와 불의, 사상과 평생 싸우고 또 싸웠다.
사르트르는 병마와 실명으로 생을 마감했으며 본인의 소원대로 노벨상도 거절하고 평생을 정치와는 담을 쌓고 지내 순결했던 아나키스트로 꼽힌다.
제8장 레논
우리에게 사랑의 팝송으로 널리 알려진 「이매진」은 자본주의를 부정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래로 레논은 예술에 정치를 끌어들여 평화주의자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암살로 비교적 짧은 39세 삶을 마감한 레논은 오노 요코라는 정치운동가와의 결혼으로 더욱 세상과 싸우는 전사가 되었다. 그는 드물게도 대중음악에 개인적이고 정치적인 요소를 가장 많이 끌어들인 아주 독창적인 예술가였다.
■ 지은이에 대하여
박홍규
1952년 경북 출생으로 영남대 법대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하버드 법대, 영국 노팅엄 법대, 독일 프랑크푸르트대학교에서 법학을 연구했다. 오사카 시립대학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고 하버드 로 스쿨 객원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민주주의 법학연구회 대표와 영남대 법대학장을 지냈으며, 현재 영남대 법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세계적인 문화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저『오리엔탈리즘』을 번역했으며, 예술에 남다른 조예가 깊어『오노레 도미에』,『법과 예술』,『베토벤 평전』,『내 친구 빈센트』등 예술 책을 많이 썼다. 우리나라 법체계 문제를 비판한 『법은 무죄인가』로 백상출판문화대상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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