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사 입문
서론
칸트는 서양에서 가장 위대한 사상가들 중에 한 사람으로 손꼽힌다. 그는 독일의 철학자로 18c후반 유럽 계몽사상의 성숙기와 프랑스 혁명기에 살면서 그 이전의 유럽 근세철학에 내재해 있던 문제상황을 범 유럽적인 규모에 입각하여 근대인의 사상과 행동을 규율하는 「이성」의 기본적인 윤곽을 제시하고, 이후 낭만파에서 오늘에 이르는 철학적인 사색을 위한 길을 열어 놓았다. 철학이 다루는 문제는 삶의 근본적인 문제들이고 이 근본적인 문제들은 시간과 공간 제약을 넘어서서 반복적으로 물어지는 문제들이다. 그렇기에 철학이라는 것은 유행처럼 새로운 문제에 대한 새로운 철학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철학은 철학의 고유한 근본 문제들에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칸트철학은 우리가 철학의 영역에서 문제삼는 거의 모든 근본적인 문제들의 보고라 할 수 있다. 삶과 행복, 법과 도덕, 몸과 마음, 역사와 인간 등등 모든 근본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칸트는 근세과학의 성과를 알고 있었고 또한 유럽정신의 연속성에 바탕하고 있는 형이상학적인 지혜와 윤리적인 지혜의 가치에 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칸트는 진리와 윤리와 종료를 하나의 새로운 바탕 위에 자리잡게 했다. 칸트는 영국과 프랑스의 사고로부터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경험론에 연결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신, 영혼, 불사, 윤리적인 세계, 예지계등을 버리지 않음으로써 독일 철학을 중단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칸트의 철학이 후세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는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19세기의 철학사는 거의 대부분이 칸트사상의 수용과 전파, 반론과 변형 그리고 부흥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칸트 철학은 칸트의 유한주의의 입장에서 무한한 우주를 산출하는 주체, 유한의 감성을 무한의 예지적 직관 등으로 확대하는 형태로 피히테, 셀링, 헤겔 등으로 이어지는 낭만주의 세대의 이른바 독일 관념론 철학으로 계승되었고, 칸트의 영향은 또 영국·프랑스의 이상주의의 여러 조류에 영향을 미쳤다. 독일의 신(新)칸트학파의 철학은 19세기 후반부터의 학문적인 문제상황에 따라 칸트의 비판주의를 부흥시키려 한 것이다. 신칸트학파의 퇴조 후에 나타난 오늘의 각종 철학의 조류도 그 대부분이 직접·간접적으로 칸트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칸트의 철학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면 인식비판적인 초월론적 철학방법의 영향은 후설, 하버마스 등의 비판적 합리주의와 비트겐슈타인 등의 언어분석의 철학에 까지 미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칸트의 철학은 현대의 과학기술의 발전과 물질주의 대두 등의 여러 가지 문제들 속에서, 사람들은 인간자신의 존재의 가치를 찾기 위해 더욱 철학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칸트에 대하여 알아야만 하는 것이다.
본론에서는 제1부와 제2부로 나누어 제1부에서는 칸트의 생애와 저서 또한 그의 인식론과 도덕론에 대하여 살펴보고 제2부에서는 칸트의 미학과 종교·역사·정치철학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제1부
1.칸트의 생애와 저서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1724년 4월 22일 동(東) 프로이센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현재 리투아니아의 칼리닌그라드)에서 마구(馬具) 제조업을 경영하는 부친과 경건주의(敬虔主義)의 신앙이 깊은 모친 사이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자라면서 어머니의 경건주의와 많이 접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만년에 이르러서는 교회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다. 1740년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신학을 전공하였으나 얼마 안 가서 포기하고 철학과 자연과학을 택하였다. 그후 9년간은 어떤 귀족의 농장에서 가정교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갔다.
1755년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교수자격을 얻었지만 15년 동안이나 사강사(私講師)생활을 해야 했다. 1770년에야 그는 쾨니히스베르크 대학의 논리학과 형이상학 담당의 교수직을 획득하였는데 그가 에어랑겐과 예나의 두 대학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을 때야 사람들은 비로소 그를 쾨니히스베르크에 붙들어두려고 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r의 생활이 안정되었고 그후로 칸트는 평생동안 그 도시를 떠나본 적이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독일에서 자연지리학의 강의를 한 첫 번째 교수였다.
외면적으로 본다면 칸트의 일생은 평정상태를 유지하였는데 이 사실
은 그의 타고난 체질이 허약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바로 이 점에 유의한 그가 스스로 세운 규칙을 고수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는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을 유지하였고 그리하여 평생의 과업을 위하여 정신을 집중할 수가 있었다. 그는 언제나 5시에 일어나 곧 일에 열중했고 아침 7시~9시까지 강의를 하고 9시~1시는 자신의 연구시간으로 활용하였다. 점심식사 때는 사회인들인 대부분인 손님들과 다양한 주제를 놓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후 산책을 하고는 연구를 하다가 10시에 취침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의 일과가 어찌나 정확했던지 이웃들은 그의 거동을 보고 시계바늘을 맞출 정도였다고 한다. 1781년 그의 『순수이성비판』이 출판된 이후 갑자기 유명해져서 1790년에 그의 철학은 유행처럼 번져 귀부인들의 안방에도 스며들었고 이발사들이 그의 용어를 사용한다는 기록까지 나왔다. 한편 프리드리히 빌헬름 2세는 내각명령으로 그의 종교철학을 비난하였으며 하이델베르크의 한 교수는 무신론자인 칸트에 관하여 강의를 하였다는 이유로 파면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저항을 극복하고 그의 철학은 독일국경을 넘어서까지 알려졌고 여러 곳으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는 외지로의 초빙만은 끝내 사양하였다. 그후, 그의 정신력으로도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쇠하여 마침내 1804년 2월 12일에 영면하게 될 때에는 이 위대한 인물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보기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택으로 모여들었고, 조용하기만 하던 그 도시와 대학과 주민들은 일찍이 겪어보지 못한 거창한 장례절차를 마련하였다.
그의 저서 가운데 중요한 것만을 열거해보면, 1755년 발행한 그의 초기저서《일반 자연사와 천체이론》은 뉴턴의 원리를 확정 적용하여 우주의 생성을 순 기계론적·역학적으로 해명하려고 시도한 연구이며 후에「칸트-라플라스의 성운설」로 알려진 획기적인 학설을 확립하였고, 1756년에는《물리적 단자론》을 발표하였다. 또한《자연신학 및 도덕의 여러 원칙의 판명성에 관한 연구》(1764)에서의 방법론적이 논구,《미와 숭고의 감정에 대한 관찰》(1764)에서 보여지는 영국 감정철학의 영향을 받은 인간의 여러 모습에 대한 생생한 관찰, 그리고 《어느 환상가의 꿈》(1766)에 나타난 초능력자에 의해 촉발된 형이상학 비판의 시도 등이 이 시기의 칸트의 관심을 잘 나타내고 있다. 1770년 교수 취임 논문인《감상계와 예지계의 형식과 원리에 관하여》는 형이상학적 인식과 수학·자연과학적 인식의 관계에 대한 문제에 고민하고 있던 칸트에게 하나의 새로운 비약이 엿보인다. 그리고 1781년 인간의 이성인식의 근거와 한계를 밝혀야할 보다 완전한 저작으로 10년의 고투를 거쳐 완성된 칸트의 대표작인《순수이성비판》이 나왔고, 1783년에는《모든 형이상학을 위한 프롤레고메나》, 1785년에는《도덕형이상학 원론》이 발표되었다. 그리고 1788년에는 제2의 비판서인《실천이성비판》이 나왔고, 2년 후인 1790년에는 제3의 비판서인《판단력비판》이 나왔다. 이외에도《이성의 한계내에서의 종교》(1793),《영구평화론》(1795),《도덕형이상학 2부작》(1797),《학부의 논쟁》(1798) 등 많은 저서가 있다. 칸트는 자신의 모든 글을 전집으로 출간할 결심을 밝혔으나 이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20C에 와서야 프러시아 학술원이 모두 18권으로 된 그의 전집을 발간하였다.
2. 비판전기
모든 철학은 그 시대의 산물이며 이미 이루어진 철학과의 논쟁에서 출발한다. 이 점에서는 칸트도 예외가 아니었다. 칸트의 출발점은 근세 자연 철학과의 논쟁이었고, 이에 대한 관심은 그의 전 사상에 영향을 미친다.
《일반 자연사와 천체이론》에서는 그의 자연 철학적인 입장이 확고하게 학적인 근거 위에서 기술되었기 때문에 현대까지도 그 중요성이 인정되고 있다. 우주의 신비화를 거부하고 오성에 합당한 법칙으로 자연을 해석하려는 근세의 자연 철학적인 경향이 칸트에까지 넘어온다. 코페르니쿠스는 신의 거주지인 하늘이 지구를 포함한 무수한 천체들의 집합장소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그러나 아직도 천체의 운동을 신의 힘으로 돌린 것이었다. 갈릴레이와 케플러는 천체 운동마저 수학적인 법칙으로 환원하여 계산하려 하였다. 뉴턴은 이러한 이론들을 근거로 여 우주는 스스로에 내재하는 필연적인 법칙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신의 간섭을 전혀 받지 않는다고 하는 결론에 도달하였다. 그러나 아직 뉴턴도 우주의 법칙이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철저한 물음을 제기하지 않음으로써, 아마 그것을 신이 만들었을 것이라고 전제하는 그 시대의 종교적 권위와 타협하였다. 칸트는 이렇게 뉴턴도 해결하지 못한 우주의 역학적인 근원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려 하였다. 신에 의한 우주의 창조라는 종교적 신화 대신에 이성적인 추리에 의하여 세계의 발생을 이해하려한 것이다. 질서 정연한 우주인 코스모스(Kosmos)는 결국 혼돈의 상태의 우주(Chaos)로부터 진화되었다는 것이 칸트의 결론이다. 우주의 근원인 최초의 상태를 칸트는 '영원의 심연(Abgrund der Ewigkeit)'라고 불렀는데, 그것은 바로 무한한 우주의 공간을 의미한다. 이 '영원의 심연'은 다양한 밀도를 갖는 물질적인 원자로 가득 차 있는 무질서의 세계였다. 이러한 물질과 공간의 세계에서 작용하는 두 힘이 있었는데, 그것은 인력과 척력이라는 기계적인 힘이었다. 이 힘은 원자에 내재되어 있는 힘이었다. 인력의 힘은 밀도가 낮은 원자들이 밀도가 높은 원자들의 궤도 안으로 끌려가게 한다. 이렇게 하여 확고한 물질의 핵이 형성되고 더 큰 원자들은 더 작은 원자들을 끌어당기며, 개별적인 원자들은 이 궤도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이 인력과 척력은 서로 작용을 하여 결국 핵을 중심으로 원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새로운 원자가 첨가되고 달아난다. 핵은 점점 불어나고 운동은 점점 빨라져 급속화 되며 서로의 마찰을 통해 열이 발생하고 빛이 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우주에서 가장 먼저 태어난 태양이다. 태양이 회전함에 따라 다시 원심력의 작용으로 물질들이 튕겨 나와 인력과 척력에 의하여 질서 있게 태양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물질이 바로 유성이다. 또한 이러한 유성에서 다시 물질이 분리되어 유성의 주위를 돌기 시작한 것이 달이다. 이러한 식으로 지구를 포함한 전 태양계가 형성되었다. 그 원리는 물질에 내재해있는 기계적인 법칙이다. 이러한 칸트의 이론은 영국의 천문학자 허쉴(J.F.W.Herschel)의 관찰에 의해 입증되었고, 프랑스의 천문학자인 라플라스(P.S.Laplace, 1749~1827)의 실험을 통하여 증명되었기 때문에 칸트의 우주론은 자연 과학사에서「칸트-라플라스의 성운설」이라고 알려졌다.
칸트의 천체이론이 갖는 철학적인 중요성은 첫째, 그때까지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을 밑받침으로 주장되었던 운동의 제1원인에 대한 가정이 무너지게 되었다. 물체의 운동은 외부의 충격에 의한 것이 아니라, 물체 속에 내재하는 인력과 척력의 작용에 의하여 일어난다. 둘째, 진화의 개념이다. 천체뿐만 아니라 지구, 그리고 지구 위의 모든 존재가 '영원의 심연'으로부터 진화되어 질서를 이루게 되었다는 생각이다. 칸트에 의하면 자연은 스스로를 불태우고 다시 그 잿더미 속에서 소생한다고 한다. 셋째, 우주의 전체적인 조화를 근거 지운 점이다. 자연의 질서는 우주의 전체적인 체계 속에 포함된 일부이다. 이러한 조화의 원인도 역시 인력과 척력의 균형 때문이다.
3. 인식론
인식론이란 이간의 인식이 어떻게 가능한가를 철학적으로 규명하는 학문이다. 즉 인식은 어떤 것에서 출발하여 어떤 과정을 거쳐 인간에게 습득되는가를 밝히는 학문이다. 인간이 인식하기 위해서는 이식되는 어떤 대상이 필요하다. 즉 인간의 인식이 출발하기 위해서 무엇이 전제되어야 하는 가의 문제이다. 근세의 인식론은 두 가지 방향이 있다. 하나는 영국의 경험론에서 대두된 것으로 모든 본유의 관념을 부정하고 경험에 의한 지식만을 확고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방향이다. 로크에 이르기까지의 영국의 경험론은 유물론적인 요소와 관념론적인 요소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었다. 로크에 의해 출발한 이 방향은 버클리와 흄으로 발전되면서 주관적인 관념론으로 극단화된다. 즉 세계의 본질은 주관의 작용에서 나온 결과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주관주의다. 그러나 경험론은 다른 한편으로 프랑스의 계몽주의에 유물론의 기초를 제공하면서 주관주의를 극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인식론의 다른 한 방향은 데카르트에서 출발하여 스피노자, 라이프니츠, 볼프 등에 연관되는 합리주의였다. 여기서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본유의 관념으로 세계를 확고하게 인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칸트는 이러한 근세의 두 조류의 인식론을 지양·종합했다. 라이프니츠, 볼프 이래 합리론적이고 동시에 독단적인 형이상학이 우세한 독일의 철학의 전통 속에서 이에 대한 회의를 갖게 하고 합리론적인 독단에서 깨어날 수 있게 해준 계기가 흄의 회의주의하고 칸트는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인식론의 주류를 이루는 칸트의 저서《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에 대하여 알아보기로 한다. 여기에서 칸트는 몇 가지 개념을 말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정의를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선천적과 후천적>
선천적(a priori):'경험에 앞선' 혹은 '경험 이전' 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이것은 합리론 자들이 주장하는 독단적인 인식의 본질을 표명해 준다. 즉 인간은 경험을 전혀 하지 않더라도 태어날 때부터 갖고 있는 '선천적' 능력인 오성 혹은 이성에 의하여 세계를 파악하고 세계에 재한 확고 부동한 진리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천적(a posteriori):선천적과는 반대로 모든 인식은 인간이 경험하고 난 뒤에야 가 능하다는 경험론의 특징을 지칭해주는 말이다. 그러므로 '후천적'인 인식을 강조하는 경험론은 본유의 관념을 부정한다. 하지만 '후천적'인 것은 보편 타당성의 요구를 주장하기 어렵다.
<분석 판단과 종합 판단>
분석 판단(analytisches Urteil):술어의 개념이 주어 속에 이미 포함되어 있는 판단을 말한다. 이는 설명 판단이라고도 일컬어지며 이러한 판단은 어떤 경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주어의 개념을 다시 반복해서 설명해 주는데 불과하므로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 주지 못한다. 합리론자들은 대부분 그들의 진리를 분석 판단에 의존하여 유출하고 있다.
종합 판단(synthetisches Urteil):술어의 개념이 이미 주어 속에 포함된 것이 아니라 새로이 첨가된다. 새로운 개념이 첨가되는 종합 판단은 새로운 지식을 전달해 준다. 경험론자들은 바로 이 종합 판단을 참다운 인식의 근거로 산고 있다. 그러나 종합 판단에 의한 인식에는 보편 타당성이 결여되어 있다.
칸트는 이러한 양 방향을 결합시키려 하였다. 즉 경험에 의하지 않고도 확고한 지식의 획득이 가능한가의 문제이다. 이것은 칸트는 "선천적인 종합 판단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물음으로 집중시켜《순수이성비판》의 중심문제로 설정하였다. 다시 말해 새로운 지식을 가져다주는 종합 판단인 동시에 그것이 경험에 의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가능하다면 확고 부동한 보편적인 인식의 가능성이 증명되기 때문이다. 칸트는 이러한 '선천적 종합 판단'이 우선 수학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보이고 계속해서 자연 과학과 형이상학에서도 가능하다는 것을 밝혀갔다.
칸트의 인식론을 간단하게 설명해 보면, 인식은 2가지 요건으로 성립된다. 하나는 재료이고 다른 하나는 형식이다. 합리론에서처럼 외부에서 오는 대상 없이 인산의 순수한 형식 혹은 오성만으로 인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거부하고 칸트는 우선 우리의 감각에 외부에서 오는 자극이 질료로서 주어져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칸트는 영국의 경험론과 일치한다. 모든 인식은 주어진 재료와 더불어 시작된다. 그러나 재료 만으로서는 인식이 성립되지 못한다. 그것을 파악하고 결합하는 인간의 능력이 첨가되어야 한다. 감각에 의해서 느껴지는 외부의 자극은 지각(Empfindung)애 불과하다. 지각은 5관에서 느껴진다. 이러한 지각에 인간의 선천적인 형식이 작용해야 인식이 발생한다. 칸트는 인간의 선천적인 형식, 즉 지각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능력을 3가지로 구분하다. 감성(Sinnlichkeit), 오성(Verstand), 이성(Vernunft)이다. 감성은 지각을 파악한다. 감성에 의하여 지각은 직관(Anschauung)이 된다. 직관은 개별적인 표상(Vorstellung)이다. 감성이 지각을 파악하는 선천적인 형식이 공간과 시간이다. 공간은 외감 형식이고 시간은 내감 형식이다. 표상이란 공간과 시간의 형식 속에서 정리된 재료이다. 감성에 의하여 구성된 직관도 아직은 인식의 한 단계에 불과하다. 직관의 단계는 어렴풋이 안개 속에서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는 단계와 유사하다. 이 직관을 결합하여 개념이 이루어져야 한다. 감성이 다양한 재료를 제공해 준다면 오성은 이 재료의 통일적인 형식을 부여한다. 감성에는 형식과 질서가 없다면 오성에는 재료가 없다. 이 두 영역이 결합하지 않으면 인식은 발생하지 않는다. 오성은 감성이 제공한 직관이라는 재료를 결합하여 개념을 형성하는데 오성의 무기라고 할 수 있는 선천적 형식이 범주(Kategorie)이다. 인식은 감성과 협의의 오성의 작용으로 완성된다. 그러나 세상에는 인식 될 수 없는 이념이 존재한다. 이러한 이념을 다루는 인간의 능력이 이성이다. 그러므로 인식에 관계하는 오성과 달리 인간의 이성은 인식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대상과 관계한다. 이러한 이념의 예로서 영혼, 세계, 신을 들고 있다. 영혼의 불멸성, 세계의 무한성, 신의 존재등은 인간의 오성이 해답할 수 없다. 즉 이들은 인식의 한계를 벗어나 있다. 그러나 인식 될 수 없을지라도 인간의 사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들은 인간 앞에 대상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제로 주어지며, 이성을 인식할 수 없는 어떤 것을 계속 추구하는 운명을 걸머지고 있다.
이렇게 칸트의 인식론에 대하여 간략하게 요약해 보았다. 이러한 칸트의 인식론과 더불어 부언해야 할 2가지의 문제가 있다. 하나는 '코페르니쿠스적 방향 전환(Kopernikanische Wendung)'이다. 코페르니쿠스가 종래의 지구 중심적인 우주관에서 태양 중심적인 우주관으로 방향을 180°전환시킨 것처럼 칸트도 인식론에서 대상 중심적인 객관적 인식론으로부터 주관의 구성적인 능력을 강조하는 주관적 인식으로 뒤바꾼 사실을 비유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칸트의 '물 자체(Ding an sich)'개념이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의 인식 과정에서 재료로서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재료란 다만 대상의 현상(Erscheinung)에 불과하고 대상의 본질이 아니다. 현상의 배후에 숨어 현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미지의 존재를 칸트는 '물자체'라 일컫는다.
4. 도덕론
《실천이성비판(Critique of Practical Reason)》에서 다루어지는 칸트의 도덕론을 설명하기 전에 주요 개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한다.
<자율성과 타율성>
자율성(Autonomic):자신 속에 있는 이성 자체의 법칙에 의해 인간의 행동 의지가 규정될 때 '자율적'이다.
타율성(Heteronomie):인간의 행동 의지가 외부의 어떤 것에 의하여 규정될 때 '타율적'이다. 보상이나 강요에 의해 행해지는 행동을 타율적이다.
<준칙과 법칙>
준칙(Maxime):각 개인의 행동을 유도하는 규범을 말한다. 즉, 주관적인 행동 규칙이다.
법칙(Gesetz):개인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행동 원리로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규범이다. 강제적인 성격을 띈 법률에 반하여 요청적인 성격을 띈 도덕 법칙을 칸트는 '명령'이라 부른다.
<가언 명령과 정언 명령>
가언 명령(hypothetischer Imperativ):일정한 조건이 전제되는 실천이성의 법칙이다.
정언 명령(katagorischer Imperativ):어떤 전제 없이 무조건 보편성과 타당성을 지닌 도덕법칙이다.
이러한 구분 속에서 칸트가 지향하는 것은 자율적이고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보편성과 객관성을 지니며, 어떤 전제조건이 없는 도덕 법칙은 발견하는 일이다. 칸트는 이것을 '정언 명령'이라 부르며 최고의 도덕 원리라 하였다. 그 내용이 무한하기에 도덕을 내용에 따라 규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칸트는 내용이 배제된 순수한 형식으로 도덕 법칙을 규정하려 한 것이다. 칸트는 이 법칙을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인 입법의 원리로서 타당하도록 행동하라' 혹은 '너의 인격과 다른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항상 동시에 목적으로 사용하고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도록 행동하라'라는 말로 표현한다. 이러한 법칙을 어떤 내용을 갖는 도덕 행위에서도 모두 적용될 수 있다.
칸트의 도덕론은 인간이 모든 행위에서 자유롭게 결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아무리 칸트가 말하는 도덕률을 의식하고 있을지라도 그렇게 행동할 수 없는 처지에 인간이 처한다면 도덕률을 쓸모없는 것이다. 칸트에 의하면 인간은 현상계와 예지계라는 두 세계에 속한다. 인과 법칙이 지배되는 현상계에 속할 때 인간은 물론 인식 영역에 제한되어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현상계를 넘어서 그것의 근거가 되는 물자체의 세계 즉 예지계에 속할 때 인간을 실천 이성을 사용할 수 있는 자유의 가능성을 갖는다. 자유로운 인간을 충동이나 인과율에 의해서가 아니라, 의무나 도덕률에 따라서 결정할 수 있다. 칸트는 의무를 행복, 충동 등 다른 모든 것의 우위에 있다고 한다. 도덕은 행복과 같은 구체적인 목적에 연관될 수 없는 인간의 숭고한 의무이다. 일체의 감정적 요소를 배제하고 의무의 개념만을 강조하는 칸트의 도덕론은 차가운 형식주의 혹은 공허한 엄숙주의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서양 철학사, 스털링 P. 램프레히트 지음, 을유문화사
위대한 철학자들의 사상, 윌리엄·마블 사하키안 지음, 이종철 역, 문예출판사
철학의 세계, 강성률 지음, 한울출판사
칸트의 도덕철학, H.J. 페이튼 지음, 김성호 옮김, 서광사
칸트철학의 인간학적 비밀, 문성학 지음, 울산대학교 출판부
학원세계대백과사전 28권, 학원출판공사
서양 근세 철학, 강대석 지음, 서광사
http://wedding.eelee.net/zboard/zboard.php?id=hufs&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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