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년마다 오락 프로그램에는 '대세' 라는 것이 있다. 토크쇼가 대세일 때도 있었고, 공개 코미디가 대세일 때도 있었는데 최근의 대세는 단연 리얼 버라이어티쇼다. MBC <무한도전> 의 대성공과 함께 주목받기 시작하며 방송가를 강타한 '리얼 버라이어티' 는 시트콤과 버라이어티의 중간 지점에서 대중을 끌어 당김으로써 예능 프로그램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한도전> 의 인기와 함께 주목 받고 있는 것이 바로 <해피선데이> 의 <1박 2일> 이다. <무한도전> 과 비슷한 컨셉임에도 불구하고 색다른 재미로 시청자를 사로잡고 있는 <1박 2일> 은 <무한도전> 의 뒤를 잇는 '리얼 버라이어티' 의 새로운 강자라고 평가할 만하다.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리얼 버라이어티 쇼는 어디까지 진화해 왔는가. 그 쇼의 현주소를 <무한도전> 과 <1박2일> 로 진단해보자.
<무한도전> vs <1박2일> = 캐릭터 쇼 vs 상황극
사실상 '리얼 버라이어티' 라는 새로운 개념을 탄생시킨 <무한도전> 은 최근의 대세에 꼿꼿이 서 있는 하나의 중심축이다. 실제로 최근의 오락 프로그램들은 리얼을 강조하면서 <무한도전> 화(化) 되어 가고 있고, <무한도전> 의 성공사례는 곧 그들의 교과서적 표본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무한도전> 의 아류 프로그램들이 결코 <무한도전> 을 따라잡을 수 없는 이유에는 바로 '리얼' 의 개념이 <무한도전> 과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무한도전> 은 리얼함을 강조하는 동시에 그 리얼함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리얼 버라이어티' 의 장르적 체계를 마련했다. <무한도전> 이 보여준 수 많은 리얼함은 '리얼' 그 자체가 아니라 상황적 재미를 극대화 하는 꽁트의 일부분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 꽁트는 멤버 개개인에게 고유한 역할과 캐릭터를 부여함으로써 <무한도전> 을 캐릭터 쇼로 발전시켰다. 어떤 재미 없는 상황에서도 <무한도전> 이 시청자에게 웃음을 선사할 수 있는 이유 역시 바로 '꽁트' 에서 파생된 캐릭터들의 선명함에 있다.
만약 캐릭터가 제대로 잡혀 있지 않다면 매번 다른 주제를 시도하는 <무한도전> 의 정체성은 심각하게 흔들렸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주제 속에서도 <무한도전> 의 캐릭터들은 동일선상의 영역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켜내고 있다. 그것이 무인도가 됐든, 스키장이 됐든 유재석은 여전히 1인자이고 박명수는 여전히 '호통 명수' 다.
이러한 캐릭터 쇼는 절대적으로 '리얼' 함과는 배치 될 수 밖에 없지만 그들은 그러한 캐릭터 자체를 하나의 '리얼' 의 개념으로 묶어 버리고 캐릭터 쇼 자체를 '리얼 버라이어티' 의 한 영역으로 흡수해 버림으로써 리얼을 부정하고도 리얼할 수 있음을 스스로 증명해 보였다. 즉, 김태호 pd의 말처럼 <무한도전> 은 100% 진실도, 100% 거짓도 아닌 '리얼 버라이어티' 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면 <1박 2일> 은 어떨까. <무한도전> 이 캐릭터 하나하나에 힘을 쏟으면서 상황을 이끌어 나간다면 <1박 2일>은 상황 자체에 초점을 맞춘다. <1박 2일> 에서 6명의 멤버들은 각자 확연한 캐릭터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상황에 따라서 유동적으로 변화할 뿐이고, 상황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다. 예컨대 <1박 2일> 이 중시하는 것은 김종민의 어리버리 캐릭터가 아니라 그가 베개싸움으로 7전 7패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캐릭터가 약화 된 대신 <1박 2일> 의 '리얼' 함은 오히려 <무한도전> 보다 더욱 강화됐다. 모든 것을 운에 맡기는 복불복 게임이라든지, <깨워줘서 고마워> 를 연상시키는 기상 시간은 픽션이 제거 된 리얼의 영역에 모든 것을 맡기고 있다. 여기에는 약간의 설정도 끼어들 틈이 없으며, 그들은 그 리얼한 상황 속에서 웃음을 만들어 낸다. <무한도전> 이 리얼과 픽션의 중간 지점에서 유려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면 <1박 2일> 은 '리얼' 과 '픽션' 의 영역을 정확하게 구분하고 상황에 따라 적절히 변화를 주고 있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1박 2일> 은 무슨 수를 쓰더라도 상황이 주는 재미를 극대화 할 필요가 있다. <1박 2일> 이 '여행' 이라는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장소를 바꿔가며 촬영을 하는 이유도 유동적인 주제를 버텨 줄 수 있는 캐릭터가 없는 대신 상황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근본적 여건은 충분히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무한도전> 이 정의한 리얼 버라이어티의 개념인 '캐릭터 쇼' 가 <1박 2일> 에 이르러 '상황극' 으로 재정립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할 것이다.
<무한도전> vs <1박 2일> = 유재석 vs 강호동
이처럼 <무한도전> 과 <1박 2일> 은 '리얼 버라이어티' 라는 장르를 색다르게 변주함으로써 전혀 다른 '리얼 버라이어티 쇼' 로 발전할 수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그 방향이 달라졌던 이유는 바로 메인 MC 유재석과 강호동의 차이점 때문이기도 하다. 사실상 한국 예능 프로그램을 들었다 놨다 하는 강력한 파워를 지닌 이 두 명의 MC는 '리얼 버라이어티 쇼' 라는 장르가 탄생 되기까지 지대한 역할을 한 '대주주' 들이다.
유재석이 <공포의 쿵쿵따><외인구단><감개무량> 을 거쳐 <무한도전> 을 내 놓은 것이나, 강호동이 <공포의 쿵쿵따><천생연분><연애편지> 를 거쳐 <1박 2일> 을 내 놓은 것은 큰 차이가 없다. 그들이 걸어 온 대부분의 길은 '리얼' 과 '버라이어티' 가 교묘히 혼재 된 리얼 버라이어티의 개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재석과 강호동은 '리얼 버라이어티' 를 각자 다르게 재해석 함으로써 획일성에 매몰되지는 않았다.
<무한도전> 의 '캐릭터 쇼' 에서 볼 수 있듯이 유재석은 캐릭터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그는 <공포의 쿵쿵따> 에서 매번 당하기만 하는 재석이와 과격하고 저돌적인 호동이의 캐릭터가 어울려 질 때 어떠한 파괴력이 생겨나는지를 충분히 경험했고 <외인구단><감개무량><무한도전> 을 거치면서도 캐릭터 자체의 앙상블이나 폭발성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는 했었다.
이는 <무한도전> 김태호 PD의 인터뷰 속에서도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초기에는 왜 현장보다 방송이 재미가 없을까라는 걸로 고민했다. 결론은 캐릭터였는데,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기분으로 작년 겨울엔 스튜디오 녹화에 집중하며 캐릭터를 잡았다. 스튜디오란 곳도 공간적으로 집중되는 곳이어서 놓치기 쉬운 사소한 대사나 반응들이 살아났다.
게임이나 앙케이트는 캐릭터 구축을 위한 방법이면서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려는 전략이었다. 우리는 회의도 유재석씨와 함께 한다. 그게 멤버들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는 것 같다. 올해까지도, 우리는 조금만 지나면 된다라는 확신이 있었는데 미련하다는 애기를 많이 들었다. 월드컵이 지나면 확실해질 거라 예상하고 기다렸다."
그러나 강호동은 유재석과 달리 <공포의 쿵쿵따> 속에서 오히려 상황이 주는 웃음에 집중했다. 딱지치기라든지, 수박 빨리 먹기게임의 희화화를 통해 상황 자체의 카타르시스를 즐겼던 그는 <천생연분> 이나 <연애편지> 같은 프로그램 속에서도 캐릭터보다는 '굴욕의 0표' 라든지 '벌칙 게임' 등의 상황을 통해 웃음을 선사했다. 그런 그의 특성 상 <1박 2일> 이 상황극으로 변화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신동엽-유재석-강호동, 그들의 3인 3색 진행스타일> 이라는 글 속에서 한 번 거론한 바 있듯이 '플레잉 코치' 유재석은 캐릭터를 조율하고 맞춰나가는데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는 반면 '플레이어' 강호동이 상황을 만들고 그 상황을 리드하는데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있다. 결국 유재석과 강호동의 서로 다른 '색깔' 이야말로 <무한도전> 과 <1박 2일> 의 '색깔' 을 규정하는 결정적 요소였던 셈이다.
<무한도전> 과 <1박 2일> 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
<무한도전> 과 <1박 2일> 은 '리얼 버라이어티 쇼' 라는 큰 개념 속에서 하나라고 볼 수 있지만 각자의 색깔을 지닌 가치 있는 예능 프로그램이다. <무한도전> 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개념을 정의하고 그것을 정착시키는데 지대한 공을 세웠다면 <1박 2일> 은 그러한 토대 위에서 리얼 버라이어티의 개념을 확대 재생산하면서 <무한도전> 에 매몰되지 않는 현명함을 발휘하고 있다.
최근 리얼 버라이어티 쇼가 우후죽순처럼 쏟아져 나오고 사라지면서 '리얼 버라이어티' 의 개념이 모호해지고 있는 가운데 <무한도전> 과 <1박 2일> 이 나름의 굳은 심지와 색깔을 고수하면서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은 시청자들 뿐 아니라 '리얼 버라이어티 쇼' 라는 장르 자체에 엄청난 행운이다. 대세를 끌고 나가는 힘이 있으면, 그 대세를 뒷받침한 뒷심 역시 필요한데 <무한도전> 과 <1박 2일> 이 그 역할을 아주 충실히 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완성의 단계에 이른 <무한도전> 에 비한다면 <1박 2일> 은 이제 자리를 잡고 완성의 단계로 나아가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기적 차이점을 제외한다면 두 프로그램의 존재는 한국 예능계의 대세, '리얼 버라이어티 쇼' 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다. 부디 두 프로그램이 대중적 인기에 편향하지 않기를, 끊임없이 '리얼' 과 '버라이어티' 를 추구하는 진정한 '리얼 버라이어티 쇼' 로 거듭날 수 있기를 진심으로 기대한다.
다 재미있구용 !! 무도가 좀 더 조음 ㅋ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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