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세계/미학

[스크랩] 제2장 칸트의 취미 판단 분석

ddolappa 2008. 7. 23. 06:30
제2장 칸트의 취미 판단 분석

제1절 취미판단은 미감적이다.

1. 논증 가능한 명제
"취미판단은 미감적이다." 칸트는 이 주장이 판단들의 한 부류(즉 취미판단)가 지닌 뚜렷한 특징들 중의 하나를 박혀 준다고 생각한다.

2. 《순수이성비판》에서 본 "감성적"이라는 말
《순수이성비판》의 제1판을 집필하던 당시만 해도 칸트는 취미의 기저를 이루는 선험적인 규칙들이란 존재할 수 없고, 따라서 우리의 취미판단들은 초월론적으로 도출될 수 없고, 단지 경험적으로 (심리학적으로 또한 인간학적으로) 도출될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제1비판에서 칸트는 일관성 있게 그의 "감성적"이라는 단어를 "감각적"이라는 의미로 한정하여 구사하였다.

3. "미감적 판단력 비판"에서의 "미감적"이라는 말
칸트는 취미 비판의 가능성에 관한 그의 견해를 변경하였다 칸트는 표상에도 판단에고 모두 미감적이라는 말을 적용한다. 표상의 두 가지 양식, 감각과 감정은 "미감적"이라고 지칭된다. 이 양자는 우리가 추측하는 대로 개념에 대립되며 또한 (순수) 직관에도 대립된다.
취미판단은 미감적이다. 왜냐하면 표상(예술적 또는 자연적 대상물)을 주관과 그 주관의 쾌-불쾌의 감정에 연관시키기 때문이다. 판단은 표상이 판단을 통해서 주관(주관의 감정)에 관련되는 경우에, 또한 오로지 그러한 경우에만 미감적이다.

4. 미감적 판단의 파라독스
"이것은 아름답다"라는 말이 특정한 사물을 대상의 어떤 개념이나 보편에 관련시키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칸트에 의하면 쾌 또는 불쾌의 감정들은 보편이나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이것은 아름답다"라는 말은 결코 판단이라고 불리어서는 안 된다.
"이것은 아름답다"라는 말을 칸트가 미감적 판단이라고 명명해야 한다는 것은 따라서 분명히 파라독스이다. 칸트가 미감적 판단들에는 두 가지 주요한 종류가 있다고 주장하는데, 그 두 가지 종류란, 우리가 그것에 대해서 보면 타당성을 주장하는 미감적 판단들과 우리가 단지 그 안에서 어떤 것을 쾌적하다든지 불쾌하다든지 주장하는 미감적 판단 그 안에서 어떤 것을 쾌적하다든지 불쾌하다든지 주장하는 미감적 판단들을 말한다. 전자의 부류는 미의 판단(즉 본래의 취미 판단)과 숭고의 판단으로 구성된다. 후자의 부류를 칸트는 때때로 "감각 판단" 또는 "질료적인 미감적 판단"이라고 부른다. 그것들은 오로지 감각에서의 쾌에만 관계된다.

5. 칸트의 자기 주장을 위한 뒷받침
"취미 판단들은 미감적이다"라는 주장을 위한 칸트의 뒷받침은 이중적이며, 또한 이 뒷받침 속에는 미감적 판단과 인식적 판단을 일반적으로 구별하는 수단이 포함되어 있다. 칸트는 첫째로 논리적 관점에 호소하고, 둘째로는 현상학적 관찰에 호소한다.
취미 판단의 미감적이라는 것, 즉 그것은 대상의 지각적 또는 감각적 파악(칸트에 있어서는 대상의 표상)에서의 주관의 상태에 관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취미의 이류 배반이라는 명제를 형성한다. 이로써 무관심적인 것으로서의 (따라서 보편 타당성을 주장하는) 취미 판단들의 분석과 함께, 칸트가 취미 판단들의 선험적 연역을 불가피하게 만드는 것으로 해석한 하나의 대당 관계(對當關係, opposition)가 생겨난다. 취미판단은 미감적이라는 주장은 《판단력 비판》의 계속되는 논증에서 핵심적인 중요성을 지닌다.



제2절 취미판단은 무관심적이다.

취미판단은 기본적으로 하나의 위장된 기호 보고이다. 어떤 것을 아름답다라고 하는 판단은 그것은 사각형이라든지, 그것은 고양이과의 동물이라든지, 그것은 책이라든지 하는 판다, 즉 그 안에서 특정한 인식(표상, 이 경우에는 직관)이 개념 또는 보편과 관련되는 판단과는 다르다. 오히려 취미판단은 특정한 인식과 판단하는 주체 쪽의 쾌 감정 사이에 있는 관계를 가리킨다.
판단이 관심적 쾌(무관심적 쾌에 반대되는 것으로서)에 기초한다면, 그것은 취미판단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 그는 그러한 판단은 비록 그것이 순수한 취미판단이 아니라 할지라도 그 형식에 힘입어 취미판단이 된다고 말한다.

1. 무관심성
미학에서 무관심성이라는 개념은 칸트로부터 유래한 것은 아니다. 필연성의 관점에서 볼 때 만일 우리가 취미 판단들이 보편 타당성을 주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칸트의 용어를 사용할 경우 그것은 바로 이러한 ("편파적이지 않은" 또는 "편견없는"이라는) 의미에서 "무관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치에 맞는다.

2. 관심과 쾌
칸트는 무관심성을 관심의 부재라는 말로써 특징짓고, "관심"을 "대상의 현존의 표상과 결합되어 있는 만족이라고 정의한다.
관심은 욕구 또는 의지를 포함하며, 칸트에 따른다면, 따라서 요구와 필요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요구 또는 필요를 바탕으로 하고 개념들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는 쾌들은 개인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에, 한 예술 작품에서 만족을 발견한 그 어떤 두 사람도 그들이 하나의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거나 공유할 수 있다고 추정할 아무런 근거도 갖지 못하게 될 역시 아무런 객관적인 근거를 가질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예술 작품을 아름답다고 보는 판단은 만인에게 주장될 수 있기 위해서는 요구나 필요에 의해서 규정되지 않고 자유로워야 한다. 따라서 무관심적이어야 한다.

3. 칸트의 자기주장을 위한 뒷받침

칸트는 이처럼 쾌의 여러 가지 기초들(근거들, 이유들)을 미의 경험에서의 쾌의 감정을 다른 모든 경험에서의 쾌의 감정과 구별한다. "미의 분석"은 취미판단들을 내리기 위한 근거의 체감적 설명으로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특별하게 구분한다면, 그 조사는 미에서 느껴진 쾌를 위한 근거를 규정하고자 하는 시도라고 하겠다. 쾌의 여러 다른 기초들을 구별하기 위한 칸트의 첫 번째 기법은 "관심"의 개념이다. 관심은 그 자체로 쾌와 연관해서 정의된다. 그것은 특정한 기초 또는 근거를 가지고 있는 쾌, 즉 "대상의 현존의 표상"에서 취해지는 쾌이다. 여기에서 칸트의 가장 일반적인 주장은 미에서의 쾌가 우리편에서의 어떠한 관심에 의해서도 규정되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욕구 또는 의지에 연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3절 분석의 의미들

칸트 미학 이론의 주춧돌을 형성하는 것은 "취미 판단은 미감적인 것이다."와 "취미 판단은 무관심적인 것이다."라는 두 개의 명제이다.

1. 미, 쾌적, 그리고 선
쾌는 무관심적 쾌가 아니라 관심, 필요 또는 결핍을 충족시켜 줌으로써 만족을 주는 쾌이다. 어떤 사물이 쾌적하다고 하는 판단은 반성적 판단의 산물이 아니다.
선에서의 만족은 감각에 대한 쾌에서의 만족과 마찬가지로 항상 대상에 대한 관심과 결부되어 있다. 미에서의 쾌는 선에서의 쾌와 동일시 될 수 없으며, 취미 판단과 선의 판단은 전혀 다른 종류의 판단이다.

2. 미, 자극, 그리고 감동
순수한 취미 판단은 자극과 감동에 의존하지 않으며, 미의 경험은 감각적인 자극들이나 감동적인 특질들의 호소와 분명히 구별된다고 주장한다. "취미가 만족을 위해서 자극들과 감동들의 혼입을 요구한다면 그 취미는 언제나 야만적이며, 더구나 그런 자극과 감동들을 자신의 찬동 기준으로 삼는다면 더욱 그렇다" 미에서의 만족의 무관심성은, 아니 좀더 분명하게 말해서 그 무관심성을 우리가 의식하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취미판단들의 보편타당성을 주장하게 만든다.

3. 미와 완전성의 개념
칸트는 취미판단은 미감적이기 때문에, 개념적 판단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취미판단은 완전성의 판단과 분명히 구별된다.

4. 자유미와 의존미
칸트는 절대적으로 어떤 것을 아름답다고 하는 판단과, 어떤 것을 어떤 종류의 사물 중 아름다운 것이라고 하는 판단을 구별한다. 그는 이 줄이 기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판단들이라고, 즉 무엇이 절대적으로 아름답다는 판단은 그것이 하나의 아름다운 무엇이라고 하는 판단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이는 그 사물의 완전성의 개념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의존적인" 또는 "부속적인" 것)



출처 : 경원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글쓴이 : 주인늑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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