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조만간 읽을 계획이 없는데도 책을 사두는 버릇이 있다. 출판 자체가 '사건'이거나 '곧 절판'될 것이 예상되는 책을 이런 식으로 사는데, 『숭고에 대하여』도 그런 책이었다. 이렇듯 당장 읽을 계획이 없던 이 책을 들춰보게 된 건 지난 1월 28일 이 책의 공동 필자 중 하나인 필립 라쿠-라바르트(1940~2007)의 부음을 들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은 그에게 보내는 때늦은 조사(弔詞)이기도 하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2대학 철학과 교수"가 공식 직함이었던 라쿠-라바르트는 흔히 자크 데리다의 제자로 소개된다. 1980년 데리다의 제안으로 절친한 동갑내기 친구 장-뤽 낭시와 함께 정치철학연구소를 세웠고, 1983년 데리다가 창립발기인 중 하나였던 국제철학학교의 연구원이 됐으며, 1987년 데리다가 라쿠-라바르트의 박사논문 심사위원 중 하나였다는 등의 개인사적 사실로 보면 맞는 말이다.
그러나 라쿠-라바르트가 데리다의 제자였다면 스승에게 충실했기에 불충한 제자였다고 말하는 편이 훨씬 더 정확할 것이다. 그는 데리다의 핵심 개념인 '차연'(différance)의 논리에 충실하게 스승의 말을 끊임없이 거스르고(differ) 유예시키면서(defer) 자신의 독창적 사유를 펼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지난 2월 2일 낭시는 라쿠-라바르트의 영결식 추도사를 이렇게 마무리했다. "오늘, 무한한 차연이 끝났습니다." 얄궂긴 하지만, 지난 2004년 10월 9일 데리다가 사망했을 때 호들갑떨던 미국 언론(그리고 외신이라면 전적으로 미국언론에 기대는 한국 언론)이 라쿠-라바르트의 사망소식은 단 한 줄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 점("라쿠-라바르트는 데리다가 아니다")을 징후적으로 보여주는 건 아닐까?
안타까운 사실은 라쿠-라바르트의 독창적 사유를 음미하기에는 국내에 소개된 그의 작업이 터무니없이 적다는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의 작업은 「지금 우리에게 낭만주의란 무엇인가?」(『세계의 문학』, 106호, 2002), 그리고 곧 살펴볼 「숭고한 진실」 단 두 개밖에 소개되지 않았다. 한편 그에 관한 글은 세 편이 있다. 「데리다 사단과 온고지신의 해체철학」(『세계 지식인 지도』, 산처럼, 2002), 「미메시스와 미메톨로지」(『뷔흐너와 현대문학』, 18권, 2002), 「모델을 소멸시키는 미메시스」(<교수신문>, 2006년 2월 23일자) 등이 그것이다. 어찌 보면 읽을거리가 별로 없으니 더 많은 관련 자료들이 쏟아지기 전에 라쿠-라바르트를 읽기 시작하기에는 지금이 적당한 시기인지도 모르겠다.
「숭고한 진실」이 라쿠-라바르트의 독창적 사유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글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러나 "숭고란 무엇인가?"라는 모티프를 통해 롱기누스, 버크, 칸트, 헤겔, 니체, 프로이트, 하이데거, 벤야민, 리오타르 등의 '숭고론'을 어지럽게 횡단해 가는 라쿠-라바르트의 여정을 좇다보면 의외의 발견을 하게 된다. 흔히 예술(혹은 미학)의 범주로 여겨지는 숭고가 정치적 범주로 변모하는 발견을.
흔히 말하는 숭고란 우리가 겪은 경험의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것, 요컨대 감히 거역하기 어렵거나 우리를 압도하는 어떤 힘을 가진 무엇이 우리에게 야기하는 감정에 가깝다. 그랜드캐니언이나 허리케인 같은 자연의 압도적인 크기나 힘 앞에서 감동할 때 우리는 숭고를 느낀 것이다. 그러므로 그 정의상 숭고는 '재현'(représentation)될 수 없다. 다만 그 자체로 '제시'(présentation)될 뿐. 말 그대로 숭고는 우리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느닷없이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라쿠-라바르트의 표현을 빌면, 숭고는 "스스로의 법칙을 자신이 쥐고 있다".
근대미학이 숭고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이유, 혹은 숭고가 근대미학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숭고는 예술의 진리 역시 개념적 인식의 진리, 즉 재현되는 대상과 재현된 바의 일치로 생각하던 근대미학을 붕괴시킬지 모를 개념이었던 것이다. 라쿠-라바르트는 근대미학의 이런 궁지를 타개함으로써 현대미학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 하이데거라고 본다. 하이데거는 「예술작품의 기원」에서 예술의 진리란 재현된 바가 재현되는 대상의 외관과 일치됐을 때가 아니라, 재현되는 대상의 본질(존재자의 존재)이 예술작품 속에 정립(탈은폐)됐을 때 비로소 얻어진다고 말했다.
이처럼 예술작품 속에서 탈은폐된 존재자의 존재를 보게 될 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던 존재자를 낯설게 보게 된다. 라쿠-라바르트에 따르면 바로 그때의 "그와 같은 황홀함, 그와 같은 매혹"이 하이데거가 말하는 숭고이다. 이렇듯 하이데거는 재현되는 대상과 재현된 바의 일치라는 근대미학의 전제를 해체함으로써, 숭고를 외부 대상(요컨대 '대자연')에서 느껴지는 그 무엇이 아니라 예술작품 '안'에서 스스로를 드러내는 그 무엇으로 변모시킨다. 따라서 숭고는 더 이상 미학을 위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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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스트라스부르 2대학 철학과 교수"가 공식 직함이었던 라쿠-라바르트는 흔히 자크 데리다의 제자로 소개된다. |
여기에서 라쿠-라바르트는 하이데거가 존재자의 존재를 '민족으로서의 존재'(un être-peuple)와 동일시할 때의 위험을 지적한다. 하이데거의 주장대로 존재자의 존재를 정립하지 못하는 예술을 더 이상 예술이라고 부를 수 없다면, 예술은 "민족으로서의 존재 가능성을 구성하는 요소나 시조"가 될 때에야 비로소 예술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게 되는 셈이다. 이와 동시에 하이데거가 말하는 숭고의 체험 역시 '민족으로서의 존재'의 도래(요컨대 고대 게르만 신화 속의 위대한 영웅 지그프리트의 도래)를 고대하는 열광, 탄식, 환호성으로 표변할 위험을 늘 안게 된다(라쿠-라바르트는 자신의 1988년 저서 『정치적인 것의 허구』를 통해 이 위험을 본격적으로 다룬 바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단지 하이데거와 나치 이데올로기의 이런 공통점 때문에 숭고 개념이 정치적 범주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라쿠-라바르트는 「숭고한 진실」의 말미에서 하이데거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숭고의 정치성을 포착해낸다. 라쿠-라바르트는 하이데거처럼 숭고를 예술작품 안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라쿠-라바르트는 숭고론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롱기누스의 『숭고에 관하여』를 비평서가 아니라 '철학적인 저작'으로 읽음으로써 숭고의 정치성을 포착해낸다.
라쿠-라바르트가 롱기누스에게서 주목하는 것은 그의 미메시스론이다. 롱기누스의 미메시스론에 따르면 숭고는 '재현'될 수 없을지언정 '모방'(mimesis)될 수는 있다. 왜냐하면 격정과 고양, 한마디로 숭고에 관한 한 자연은 자신의 법칙을 따르지만, "자연이 우연에 스스로를 방기하거나 아무런 체계 없이 작동하는 법은 없다"는 것이 롱기누스의 주장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숭고 체험을 다른 종류의 체험으로 환원하는 방식을 찾는 것이 아니라 이 자연의 작동체계(푸시스)를 포착하고 다룰 수 있는 테크네(미메시스)를 습득하는 것, 그래서 숭고의 과잉을 조절하는 것이다.
이때 라쿠-라바르트가 말하는 미메시스는 "통상적인 의미의 재생산이나 복제의 의미가 아니며, 베끼기 또는 흉내내기란 의미는 더더욱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푸시스가 있는 모습 그대로 나타나도록 출현시키고 드러내는 기술이다. 요컨대 하이데거가 존재자의 존재를 탈은폐하는 것에서 예술의 진리를 찾았다면, 라쿠-라바르트는 푸시스를 탈은폐하는 것에서 예술의 진리를 찾는 셈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존재자의 존재가 탈은폐될 때 느끼는 감정을 숭고라고 재해석한 하이데거와 달리, 라쿠-라바르트는 우리로 하여금 푸시스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정관(靜觀)케 하기 위한 계기로 숭고를 재해석한다.
라쿠-라바르트가 발견한 숭고의 정치성은 바로 여기에 존재한다. 숭고는 그것이 없었다면 영영 감춰지고 묻힌 채로 남게 됐을 그 어떤 것을 현존하도록 만들기 때문에, 가령 기성의 모든 질서는 늘 완전무결하다고 여기는 현대의 신화를 침범해 교란시키기 때문에 '정치적'인 것이다.
비유컨대 이때의 숭고는 프랑스의 초현실주의자 앙드레 브르통이 "아름다운 것은 발작적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리라"라고 말했을 때의 그 정치성, 독일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예술은 현실을 반영하는 거울이 아니라 현실을 깨뜨리는 망치가 되어야 한다"고 말했을 때의 그 정치성을 획득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정말 라쿠-라바르트의 논의를 이런 식으로 읽을 수 있을까? 이것은 과도한 해석이 아닐까? 어쨌거나 그는 너무 일찍 세상을 등졌고, 우리는 이제야 그를 읽기 시작했다. 그의 주저, 특히 『철학의 주체』(1979)와 『근대인의 모방』(1985)이 국내에 소개되면 우리는 더 많은 말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Adieu, Monsieur Lacoue-Labarthe!
이재원은 중앙대 대학원 영문과(비평)를 졸업했으며 현재 도서출판 그린비 편집장으로 있다.
『사진에 관하여』, 『속도와 정치』, 『타인의 고통』, 『불복종의 이유』, 『은유로서의 질병』 등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