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의『논고』에서의 '대상' 개념"
※ 비트겐슈타인의『논고』를 읽으면서 제일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 중의
하나는 (『논고』에 나타난) '대상' 개념이었다. 본고에서는 아래의
논문들을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대상' 개념에 대한 하나의 해석을 이끌어
내려고 한다.
「비트겐슈타인의 이해를 위한 소묘」, 김여수
「비트겐슈타인과 본질철학의 종언」, 김여수
「비트겐슈타인의 대상개념」, 남경희
「비트겐슈타인의 의미론」, 김학근
「비트겐슈타인의『논고』에서 있어서의 도시와 밀림」, 박영식
「비트겐슈타인의『논고』의 주요논제들과 검증성」, 박영식
들어가며
비트겐슈타인의 『논고』에서의 대상은 (예를 들어) 당장 내 눈 앞에 보이는??책상??과 그 위에 놓여 있는??책들??같은 것이 아니다. 그에게 <대상>이란 우리의 지각을 통해 실제로 파악되는 개개의 사물이 아니다. 그에게 대상 자체는 지각되지 않는다. 그럼 지각되는 것과 실재로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어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있다??라는 사실 자체이지 그 사실 속의 <책상>과 <책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대상>이란 도대체 어떤 것인가? 이 물음에 대한 하나의 답이 본고의 결론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서, 왜『논고』에서 대상 개념이 문제가 되는지를, 비트겐슈타인의 존재론과 의미론을 통해, 먼저 살펴보기로 하자.
1.『논고』에서의 존재론과 의미론
비트겐슈타인은『논고』에서 세계와 언어 사이의 관계 해명을 하나의 중심과제로 삼고 있다. 그는 세계와 언어의 관계를 이른바 언어그림이론(혹은 언어모사이론)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이 모사론은 세계와 언어에 대한 그의 존재론에 근거를 두고 있다[1]. 자세히 보자.
1)『논고』의 존재론에 의하면, 세계는 서로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독립된 요소로써 구성되는데 비트겐슈타인은 이러한 독립된 요소를 ??사태(Sachverheit)??라 부르고 있으며 세계는 곧 ??존재하는 사태??즉 사실의 총체이다[2]. 따라서 사실(사태복합)은 궁극적으로 이렇게 철저히 독립된 사태로 분석될 수 있다. 반면 하나의 사태는 대상의 연계형태인 바, 이러한 대상의 연계형태를 비트겐슈타인은 사실의 구조라고 한다[3].
2) 우리 언어는 사태를 모사하는 요소명제로 구성되며, 요소명제는 대상과 연결되는 이름들로써 구성된다.
3) 일상언어는 '모든 것','어떤 것','혹은','그리고','아니다' 등의 논리항수, 즉 불완전표현을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논리항수는 대상적인 세계와는 아무런 연관성이 없고 따라서 무엇을 모사하지도 않는다[4]. 이들은 단지 우리 언어의 상징적 표현체계에 속하는 하나의 기호에 불과하다.
4) 사태복합을 모사하는 우리 언어의 의미 있는 명제는, 이러한 논리항수로써 표현되는 특정의 논리적 조작에 의하여 발생된 요소명제들의 진리함수인 복합명제이다. 즉, 언어와 세계는 동형적이고 직시적(ostentive)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대상 - 이름
사태 - 요소명제
사태복합(사실) - 복합명제(명제)
5) 언어와 세계의 관계는 언어모사론에 의하여 설명된다. 언어는 세계의 모사이다. 한 명제는 한 사실의 그림이며 명제의 이러한 특성은 명제 자체가 모사된 사실과 공통된 논리적 구조를 갖는 또 하나의 사실이라는 데 기인한다. 개체들이 어느 하나의 사태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은 이를 모사하는 그림의 요소들이 이와 동일한 상황을 이루고 있는 다른 하나의 사실에 의하여 표현되는 것이다.[5]
이상의 논의에서 보듯이 대상은 세계를 이루는 가장 궁극적인 단순체이고, 또 이것과 이름이 맺는 관계가 기초가 되어 사실과 명제, 언어와 세계가 그림과 같은 모사관계를 맺고 있음을 알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존재론과 의미론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대상>은 과연 어떤 성질의 개념일까? 이제 본 논의로 들어가 보자.
2. 『논고』의 대상 개념에 관한 몇 가지 해석들
먼저, 대상의 성질에 대해서는 세가지 입장이 있다. ① 대상은 형식적 성질을 지니지 않고 질료적 성질도 지니지 않는 단순한 개체이다. ② 대상은 형식적 성질만 지니는 개체이다. ③ 대상은 형식적 성질과 질료적 성질을 둘 다 지니는 어떤 것이다. 이중에서 나는 대상이 형식적 성질만을 지니는 개체라는 둘째 입장에 동조하는데, 그러나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서
먼저 형식적 성질과 질료적 성질을 규정할 필요가 있다. 『논고』에서 보듯이, 우리는??형식적 성질??을 ??어떤 대상이 하나의 사실이 되기 위해 다른 대상들과 결합하는 가능성??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다른 말로 하면 그것은 사실의 구성요소로 될 수 있는 대상의 잠재성을 말한다.
2.0141 대상이 사실에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이 대상의 형식이다.
2.011 대상들이 사실의 가능한 구성요소로 되는 것은 대상들에게 있어서는 본질적이다.
형식적 성질을 이렇게 정의할 때, 대상에서 형식적 성질을 배제할 수 없게 된다. 사실로 될 가능성이 대상의 본질이어서, 형식적 성질을 대상에서 배제하는 일은 결국엔 대상에서 그것의 본질을 부정하는 일이 되기 때문이다. 한편, 우리는??질료적 성질??을 ??어떤 대상이 다른 대상과 결부될 때, 생겨나는 것??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우리는 이를 다음에서 찾을 수 있다.
2.0231 질료적 성질이 생겨나는 것은 오직 대상들의 결합에 의해서이다.
이렇게 볼 때 질료적 성질이란 대상에 속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에 속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를 따르자면) 어떤 대상이 다른 대상들과 결부될 때 그것은 이미 대상이 아니고 사실이기 때문이다[6]. 대상을 형식적 성질만을 지니는 단순한 개체로 보게 되는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앞서 우리는 대상이 질료적 성질을 지니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해 『논고』의 여러 명제들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로, 대상이 질료적 성질을 갖는다는 주장은 대상의 성질을 규정한 다음과 같은 명제들에 상반되게 된다.
2.02 대상은 단순하다.
2.021 대상은 복합적인 것으로 될 수 없다.
왜냐하면 질료적 성질을 지닌 것은 단순한 것일 없기 때문이다. 둘째로,??이름은 단순한 기호이다. 나는 이름을 단독문자('x','y','z')로 표시한다??(『논고』4.24)라는 명제에서 이름(name)은 개체변항(individual variables)이지 성질변항(property variables)이 아님이 분명히 되고 있다. 왜냐하면 대상이 성질을 지니는 것이면 그것은 'x','y','z'로 기호화되지 않고,??P(x)??나??Q(x,y)??에서의 'P'나 'Q'처럼 함수적으로 기호화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7]. 셋째로, 앞서 『논고』2.0231에서 본 바와 같이, 질료적 성질은 대상들의 결합들에 의해서만 생겨나는 것이기 때문에 질료적 성질은 사실에 속하는 것이지 대상에 속하는 것일 수는 없다. 이러한 상황을 그리핀은 다음과 같이 적절히 나타내고 있다.??대상들은 성질을 지니는 것이 아니고, 성질을 만드는 것이다.[8]??이상의 논의된 사실에서 비트겐슈타인의 대상개념이 질료적 성질을 지니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고 본다[9]. 그러나 『논고』에서, <대상>의 존재 근거에 대해 비트겐슈타인이 든 명제만을 그 논거로 삼는다면 이는 논리적 오류에 빠지기 쉽다. 왜냐하면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대상>에 관한 충분한 논증을 『논고』에서 거의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김여수의 비판을 들어보자;
『논고』에서 우리는 두 가지 논거를 발견할 수 있다. 첫째는 2.0211과 2.0212에서 볼 수 있는 논거이다.
사실에 대한 그림 즉, 우리 언어에 의미 있는 명제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단순한 대상의 존재를 전제로 한다는 것이다.『논고』에 의하면 모든 유의미적인 명제는 요소명제(혹은 요소명제로 구성되는 진리함수)이다. 그리고 요소명제는 사태의 그림으로서 이는 모사된 대상과 직접적이고도 일의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한 대상 없이는 이러한 그림을 생각할 수 없다. 단순한 대상의 존재는 이를 증명하는 논거에 이미 전제되어 있다. 그러므로 대상이 존재에 대한 첫번째 증명은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단순한 대상의 존재에 대한 두번째 증명도 첫번째와 유사한 사고 과정을 밟고 있다. 이는 4.221에 포함되어 있는데 모든 명제의 분석에는 최종점이 있어야 하며, 세계의 무한한 복잡성은 모두 의미론과 상충된다는 생각이다. 즉, 모든 명제의 분석에 있어서 더 분석될 수 없는 단순적 요소가 없다면 그 분석은 종점 없이 무한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에, 단순한 대상은 존재하여야 한다는 논거이다. 이것도 첫번째의 논거와 마찬가지로 선결문제 요구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상의 논의에서 보듯이, 대상은 질료적 속성을 지니지 않고 오로지 형식적 속성만을 지니는, 따라서 직접 그 자체는 관찰되지도 않는 존재이며, 또한 그 대상의 존재는 증명된 것이 아니라 (지시론의 전개를 위해) 요청된 ??형이상학적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상> 자체는 우리에게 직접 지각되는 일종의 감각-자료(sense-data)적 인상이 아니라10), 실제로 경험되는 사실의 한 구성요소에 불과한 것이다. 대상은 그 자체로는 어떠한 질료적 속성도 갖지 않으며, 그것은 논리적으로 가능한 사태 속에서만 파악 될 뿐이다. 존재하고 지각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사실>이다.
여기서 한번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논고에서의 <대상>이 질료적 속성을 갖지 않는 형이상학적 존재라면, 전통의 형이상학에서 다루어 왔던 존재(실체)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가하는 것이다. 남경희는 그의 상기 논문에서 전통의 형이상학에서 다룬 형이상학적 원소(플라톤의 이데아, 데모크리토스의 원자, 버클리의 관념 등)는 그 자신의 고유성을 지니며 또 자립적으로 활동하는 것이라 보았다. 그러나 단순하고 고유한 성질을 지닌 한 원소가 어떻게 다른 원소들과 결합할 수 있는가?즉, 일자적이면 단일한 것이 어떻게 타자화하여, 또는 타자와 관계하여 복합체를 구성할 수 있는가? 그는 이 원소와의 결합 가능성의 문제가 고대 희랍의 사상가로부터 가까이에는 브래들리까지 괴롭혀온 존재론적 물음이라고 보고, 이 문제를 비트겐슈타인이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하고 있다고 말한다. 비트겐슈타인은 (『논고』에서) <대상>을 그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배제한 무속성의 존재로 만들었고, 또 그 원자적 존재를 본질적으로 자립적인 존재가 아닌, 사태의 일부로서만 존재하는 의존적 존재로 간주함으로써 그 문제의 해결방안을 마련하였다는 것이다11). 또한 이러한 <대상>의 해석은 전통적인 형이상학에 다루어 왔던??사물 존재론(things-ontology)??과는 다른??사실존재론(facts-ontology)??의 방향을 열어 놓기도 한다.
맺으며
이상의 논의를 하나의 예를 들어 정리해보자. 지금 내 앞에 하나의 책상이 있고 그 책상 위에 책 몇 권이 놓여 있다고 하자. 상식적으로 봤을 때, 우리는 하나의 사물로서 <책상>과 <책들>을 지각한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의 책상 위에 책 몇 권이 놓여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의 논의를 따르자면 우리가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책상이라는 <대상>과 책 몇 권이라는 <대상>이 접촉한 채 위아래로 위치해 있는 한 관계의 <사실> 때문이다. 즉, 각각의 사물로서의 어떤 질료적 속성을 지니는 존재로서가 아니라 하나의 가능한 사태를 이룰 수 있는 형식적 존재로서만 <책상>과 <책들>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지각할 수 있는 것과, 또 우리가 “무엇이 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개개의 질료적 속성을 가지는 사물이 아니라 (형식적 속성만을 지니는 대상들의 결합인) “사실”인 것이다.
본고를 통해 비트겐슈타인의 대상 개념은 그 자신에 의해 논증되지는 않았으나, 그의 의미론과 존재론에 있어서 요청되는, 형식적 속성만을 갖는“형이상학적 존재”라는 것을 알았으며, 또한 그것은 전통의 형이상학적 단순체(원자)와는 다른 논리적 단순체(원자)로서 ??사실 존재론??이라는 새로운 존재론의 방향도 모색하게 했음을 알 수 있었다.
[註]
1) 김학근,「비트겐슈타인의 의미론」,『비트겐슈타인의 이해』, 분석철학연구회(편), 서광사, p.88;??비트겐슈타인은 언어와 세계의 관련방식을 양자의 구성요소들 간의 대응관계(그림의 관계)와 구조의 동일성의 가능성(그림의 형식)을 가지고 설명한다.??
2)『논고』1.1 & 2.
3) 김학근, 같은 글, 같은 쪽;『논고』에서 세계는 원자론적 구조를 갖는다. 우선 세계의 실체로서 항존적이며 불변하는 단순한 대상이 있고, 이러한 대상들은 논리적 공간에서 일정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사태를 형성한다. 이때 대상들은 상호독립적이지만 또한 사태에 의존해서만 나타난다. 그리고 존립하는 사태가 사실이며 이것들의 총체가 세계이다.
4)『논고』4.0312.
5) 김여수,「비트겐슈타인과 본질철학의 종언」pp.186~190; 김여수는 논리항수(all,and,or,not 등)와 관련하여, 상기의 논문에서 언어그림이론의 난점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고 있다. 즉, 언어와 세계사이의 모사관계는 요소명제와 사태에 국한된 것이라는 것. 왜냐하면, 복합명제는 세계의 어느 것도 모사하지 않는 논리항수 등에 의해 요소명제들이 결합된 것인데 바로 이 논리항수 때문에, 명제는 실제의 사실과 명확히 1:1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6) 김영식,「비트겐슈타인의『논고』의 주요논제들과 검증성」pp.214~215
7) G.Pitcher, The Philosophy of Wittgenstein p.162; 박영식,「비트겐슈타인의『논고』에서 있어서의 도시와 밀림」에서 재인용, p.167
8) J.Griffin, Wittgenstein's Logical Atomism p.71; 박영식의 앞 논문, p.167
9) 또한 박영식의 그의 상기 논문에서, <대상>은 이러한 형식적 성질 외에 다음과 같은 성질을 덧붙이고 있다. 대상은 단순한 것이요, 세계의 실체이며, 지속적이고 불변적이며 관찰될 수 없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주장의 논거를 다음의 여러 명제에서 찾는다.??대상은 분석이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더 이상 나누어질 수 없는 것이다??(『논고』4.221;3.26;3.261).?? 대상은 불변적이고 지속적인 것이다??.(『논고』2.0271)
10)??언어와 세계와의 동형성을 근거로 논리적 분석을 해나가면, 세계의 최종적 단순체로서의 <대상>과 그것의 연계로 구성되는 원자론적 세계는 당연히 도출된다. 독자적으로 논리적 원자론을 발전시킨 러셀은 그의 경험론적 유산에 충실하여 (세계의) 최종적 단순체로서의 논리적 원자를 감각자료로 해석했다??; 김여수,「비트겐슈타인의 이해를 위한 소묘」. 여기서 비트겐슈타인과 러셀의 대상에 관한 개념의 차이를 쉽게 엿볼 수 있다.
11) 남경희,「비트겐슈타인의 대상개념」pp.36~45.
[참고문헌]
1. 김여수,「비트겐슈타인의 이해를 위한 소묘」, 『비트겐슈타인의 이해』, 분석철학연구회 편, 서광사, 1984
2. ______,「비트겐슈타인과 본질철학의 종언」, 같은 책
3. 김학근,「비트겐슈타인의 의미론」, 같은 책
4. 남경희,「비트겐슈타인의 대상개념」, 같은 책
5. 박영식,「비트겐슈타인의『논고』에서 있어서의 도시와 밀림」, 같은 책
6. ______,「비트겐슈타인의『논고』에서의 논리적 형식과 신비적인 것에 대한 고찰」,『매지논총』제4집, 매지학술연구소.
7. ______,「비트겐슈타인의『논고』의 주요 논제들과 검증성」,『인문과학』제57집, 연세대 인문과학연구소.
8. L.Wittgenstein/이영철, [논리-철학 논고], 천지, 1991
9. M.K.Munitz, [Contemporary Analytic Philosophy], Macmillan,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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