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세계/과학철학

[스크랩] (6) 에디슨은 시스템 구축가였다 - 송성수

ddolappa 2008. 8. 20. 02:54

조직·법규·자원을 포함한 ‘사회기술시스템’
발명·개발·혁신·경쟁·공고화 단계로 진화
서로 겹치거나 거꾸로 진행되기도 한다
성공한 기술에 주목 특정인 지나치게 영웅시

 

 

 

한겨레
» 기술의 역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은 대부분 단편적인 기술을 넘어 기술시스템을 구성한 사람들이다. 백열등뿐 아니라 발전기, 배전기, 계량기, 축음기 등을 발명하고 가전업체 GE를 창립한 에디슨이 대표적이다. 사진은 지난 2월13일 에디슨 탄생 160주년을 맞아 서울 롯데백화점에서 열린 기념 특별행사전 모습. <한겨레> 자료사진
 
 
기술 속 사상/⑥ 기술시스템이론-토머스 휴스

 

 

시스템 접근은 많은 학문 분야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것은 구성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전체가 부분의 합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시스템 접근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몇몇 구성요소를 중심으로 자연현상이나 사회현상을 설명할 경우에는 항상 부분적인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다. 세상은 특정한 구성요소로 환원될 수 없는 복잡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변화와 관련된 대표적인 시스템 접근으로는 ‘기술시스템’(technological system) 이론을 들 수 있다. 그것은 유명한 기술사학자인 토머스 휴즈(Thomas P. Hughes)가 제창한 이래 과학기술사와 과학기술사회학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는 전력시스템에 관한 사례연구를 수행한 후 기술시스템의 개념을 일반화하면서 기술과 사회의 변화를 분석하는 데 적용해 왔다.

 

 

전력시스템 사례 연구로 시작

 

 

기술시스템이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기술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니다. 휴즈가 개념화한 기술시스템은 물리적 인공물뿐만 아니라 조직, 과학기반, 법적 장치, 자연자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기술시스템에는 ‘기술적인 것’(the technical)과 ‘사회적인 것’(the social)이 공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기술시스템은 ‘사회기술시스템’(sociotechnical system)으로 불리기도 한다.



기술시스템을 구성하는 각 요소는 다른 요소들과 상호작용하면서 시스템 전체의 작동에 기여하게 된다. 만약 어떤 구성요소의 특성이 변화한다면 시스템 내부의 다른 요소들도 바뀌어야 한다. 예를 들어, 전력시스템에서 저항이 변하면 그에 따라 발전, 송전, 배전에 필요한 구성요소들도 바뀌게 된다. 사회적인 요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어떤 투자은행이 제조업체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할 경우에 그 은행은 제조업체의 의사결정이나 기술개발에 깊숙이 관여하게 되는 것이다.

 

기술시스템에 포함되지 않은 요소들은 ‘주변환경’(surroundings)에 해당한다. 기술시스템과 주변환경은 정태적으로 분리되어 있지 않다. 기술시스템이 진화하면서 주변환경의 일부를 구성요소로 포섭하기도 하며 반대로 기술시스템의 구성요소가 주변환경으로 해체되기도 한다. 어떤 요소가 특정한 맥락에서 기술시스템을 구성한다고 해서 그것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기술시스템은 일종의 열린 시스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휴즈에 따르면, 이러한 기술시스템은 몇몇 단계를 걸쳐 진화하게 된다. 그것은 발명(invention), 개발(development), 혁신(innovation), 이전(transfer), 성장(growth), 경쟁(competition), 공고화(consolidation)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기술시스템이 진화하는 과정에서 각 단계가 반드시 순서대로 등장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각 단계가 서로 겹칠 수도 있고 특정한 단계가 생략될 수도 있으며 몇몇 단계는 거꾸로 진행될 수도 있다.

 

발명에는 급진적인 발명과 보수적인 발명이 있는데, 전자는 새로운 시스템의 시작을 가능하게 하며 후자는 기존의 시스템을 개선하거나 확장하는 데 기여한다. 개발단계는 실험환경을 더욱 복잡하게 하여 발명품이 실제 세계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혁신단계에서는 개발된 기술을 바탕으로 실제적인 생산과 판매가 이루어지며 이를 통해 복잡한 기술시스템이 만들어진다. 발명, 개발, 혁신의 단계를 거치면서 특정한 기술시스템이 탄생하는 셈이다.

 

기술시스템이 이전될 때에는 상이한 시공간의 특성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 그러한 적응의 과정에서는 각 지역의 정치적 가치 체계, 지리적 조건, 규제 법령, 역사적 경험 등이 개입되어 ‘기술스타일’(technological style)이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전력시스템의 경우에 런던과 베를린은 상당 기간 다른 스타일을 보여 왔다. 런던이 소규모 발전소를 많이 두었다면 베를린에는 몇 개의 대규모 발전소가 있었다.

 

 

시스템끼리 경쟁한 ‘전류전쟁’

 

 

» ‘사회기술시스템’ 이론을 주창한 토머스 휴스.
기술시스템은 불균등하게 성장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휴즈는 ‘역돌출부’(reverse salients)라는 개념을 통해 이를 설명하고 있다. 역돌출부는 군사작전에서 비롯된 용어로서 기술시스템의 성장이 지체되는 영역을 지칭한다. 기술시스템의 지속적인 성장은 역돌출부를 ‘결정적 문제’(critical problems)로 환원하고 물적·인적 자원을 집중적으로 동원하여 풀이함으로써 가능해진다. 그것은 전쟁 중에 장군이 군사력을 역돌출부에 집중적으로 배치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기술시스템은 때때로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심각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그러한 경우에는 새로운 기술시스템이 출현하면서 기존의 기술시스템과 경쟁을 벌인다. 19세기 말에 전력산업의 주도권을 놓고 직류 시스템과 교류 시스템이 벌였던 ‘전류전쟁’(current war)은 그 대표적인 예다. 이러한 시스템 사이의 경쟁은 많은 경우에 승리자와 패배자가 확연히 구분되지 않는다. 기술의 표준화와 기업간 합병을 매개로 두 시스템이 연결되면서 일종의 ‘포괄적 시스템’(universal system)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기술시스템은 내·외부적으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점차적으로 공고화된다. 공고화의 단계에 진입한 기술시스템은 ‘모멘텀’(momentum)을 가지며 변경하기 어렵게 된다. 모멘텀은 해당 기술시스템에 이해관계를 가진 조직과 사람들이 변화에 저항함으로써 생겨난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시스템이 주변환경의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닫힌 시스템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외부적 충격이 발생하거나 여러 가지 사건이 동시에 결합될 경우에는 기술시스템의 모멘텀이 굴절되거나 파괴될 수 있다.

 

기술시스템 이론은 기술의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고 있다. 기술의 역사에서 거론되는 유명한 인물들은 대부분 단편적인 기술을 넘어 기술시스템을 구성한 사람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에디슨(Thomas Edison)은 백열등만을 발명한 것이 아니라 발전기, 배전기, 계량기 등과 같이 전력시스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술적 요소들을 마련하였다. 이와 동시에 그는 전등의 연구개발, 전력의 공급, 발전기의 생산 등을 담당하는 기업을 잇달아 설립하여 전기에 관한 모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였다.

 

이러한 해석은 전기에 국한되지 않으며, 인쇄술과 자동차를 포함한 다른 사례에도 적용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구텐베르크(Johannes Gutenberg)나 포드(Henry Ford)도 단순한 발명가가 아니라 ‘시스템 구축가’(system builder)였던 것이다. 그러나 기술시스템 이론은 주로 성공한 기술에 주목하면서 특정한 인물을 지나치게 영웅시하는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기술시스템 이론이 군사적 유비를 많이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나 대기업의 성공을 합리화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기술시스템 이론은 기술변화에 관한 대안적 해석에 해당한다. 즉, 기술이 사회변화를 결정한다는 기술결정론과 사회적 이해관계가 기술을 형성한다는 사회결정론을 모두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기술시스템 내에 기술적인 것과 사회적인 것이 녹아 있으며 기술과 사회는 동시에 진화하는 것이다.

 

 

기술과 사회는 동시에 진화

 

 

물론 기술시스템이 진화하는 단계에 따라 기술과 사회가 가진 영향력의 상대적 비중이 달라지는 것으로 해석할 수는 있다. 예를 들어, 초기 단계의 기술시스템에는 사회적 요소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지가 많은 반면, 성숙한 기술시스템의 경우에는 외부환경의 개입이 축소되면서 자신의 발전 경로를 강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 송성수/과학기술정책연구원·과학기술학
이와 관련하여 성숙한 기술시스템은 기술결정론에서 자주 거론되는 ‘자율성’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휴즈는 “기술시스템은 공고화된 이후에도 자율성을 가지지 않는다. 대신에 모멘텀을 가지게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 성숙한 기술시스템을 변경하기는 어렵지만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기술이 인간과 무관한 독자적인 생명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휴즈의 신념과 직결되어 있다. 그가 2004년에 발간한 저작이 <기술이 만든 세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세계>(Human-Built World)인 까닭도 여기에 있다.


출처 : Freiheit in mir
글쓴이 : 김문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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