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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규제가 적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정부개입이 많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규제와 정부개입이 많은 유럽모델이 우리에게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미국모델보다는 적합하다.”
▲ 장하준 케임브리지대학 교수
지난 2003년 신고전학파 경제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상과 2005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예프상을 최연소 수상하면서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가 규제 완화와 정부개입 축소를 핵심으로 하는 ‘MB노믹스’에 따끔한 충고를 가했다.
장 교수는 21일 대한상공회의소 초청 간담회에서 <우리는 선진국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라는 주제의 강연에서 이같이 지적한 뒤 “선진국이 되는 길은 여러 가지 모델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최고로 생각하는 미국 모델은 사실 그렇게 뛰어난 모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흔히 미국이 가장 잘 사는 나라이며 선진국 중에서 성장률도 제일 높은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잘 사는 나라’의 의미를 소득뿐 아니라 삶의 질까지 고려하는 것으로 규정하면 미국은 별로 잘 사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미국은 구매력 기준으로 1인당 소득이 룩셈부르크를 제외하고 1위이지만 노동시간당 소득은 8위라고 그는 밝혔다. 또 미국은 평균수명 세계 28위, 유아사망률 세계32위, 인구 10만 명당 수감자 685명(유럽은 87명)의 높은 범죄율, 유럽국가 대비 10~30% 긴 노동시간 등 삶의 질에서는 낮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장 교수는 반면 “유럽은 규제가 심하고 정부가 지나치게 개입해 경제가 잘 안된다. 복지병 때문에 경제가 잘 안되고 노조가 지나치게 강해 경제가 잘 안된다”는 편견을 제시한 뒤 이에 대한 반론을 펴나갔다. “규제만 풀어준다고 투자가 활성화될 것처럼 보는 시각은 문제가 있다. 경제의 활력이 떨어진 이유 중 규제는 부차적인 문제이며 금융시장의 변화, 기업과 은행의 행태가 가장 큰 문제이다”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장 교수는 우선 “무조건 규제가 적은 것이 좋은 것은 아니고 규제할 것은 규제해야 한다”면서 “규제가 기업에 부담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돈이 잘 벌리면 규제가 많아도 사업을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1990년대까지의 우리나라나 최근의 중국, 스웨덴, 핀란드 등의 사례를 제시하며 “과거 우리나라는 공장 하나 세우는데 200여 개 기관에서 300여 개의 인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계속 공장이 세워졌고 8~9%의 성장을 지속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정부가 친기업정책을 편다고 하는데 ‘친기업’이라는 것도 정의하기 힘들다”고 설명하고 “가령 은행의 대출규제를 푼다면 시장의 성질상 중소기업에게 돈이 잘 가지 않는데 이는 은행에게는 친기업적이지만 중소기업에게는 반기업적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규제라는 것이 한 부분만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규제 자체보다는 경제 전체의 활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또 “정부개입이 많다고 꼭 나쁜 것은 아니다”라며, “영국,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개발 초기에는 보호무역, 보조금 등 정부개입을 통해 발전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또 “프랑스, 핀란드 등 유럽 나라들이 1980년대까지 미국보다 강력한 산업정책을 쓴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 이 나라들의 경제성장률은 미국보다 훨씬 높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부개입이 적다는 미국도 분야에 따라서는 유럽에 비해 더 강력히 개입한다고 지적했다. “정부개입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의 경우 국가의 총 연구개발 투자에서 정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40% 이상인 반면 유럽은 30% 정도”라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처럼 엄청난 연구개발비 지원을 통해 어느 나라보다 교묘하게 산업정책을 하고 있다”며 “미국 말을 곧이곧대로 듣고, 산업정책을 하지 않는 것이 국제기준에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고 비판했다.
장 교수는 또 제대로 된 복지제도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유럽은 ‘복지병’ 때문에 경제가 잘 되지 않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복지 지출이 가장 높은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이 고성장하고 있다”며 “복지국가는 자동차의 브레이크 역할을 해 경제가 속도를 낼 수 있게 해 준다"고 주장했다. 브레이크가 있기 때문에 시속 120㎞씩 달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좋은 인재들이 의대나 법대로 몰리는 것은 고용에 대한 불안 때문”이라며 “우리도 제대로 된 브레이크를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결국 “우리가 최고로 간주하는 미국 모델이 사실상 그렇게 뛰어난 모델이 아니다”라며, “게다가 우리의 조건은 미국식 모델을 도입하기에 여러 가지 무리가 있다”고 밝혔다. 우리나라는 좁은 국토와 높은 인구밀도로 인해 ‘주거분리’가 어려워 부자들끼리 숨어살 수 없으며 사회의 동질성과 그에 따른 높은 평등의식으로 지나친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했다.
이에 따라 장 교수는 “오히려 유럽 모델이 우리에게 더 맞는 부분이 많다”며 “다만 어떤 모델에서 어떤 것을 따오더라도 우선 우리 사회가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가에 대한 어느 정도의 사회적 합의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자료출처: 각종언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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