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피 (Mauvais Sang)
- 레오까락스, 1986
공중에서 갑자기 정지해버린 낙하산.
칼라풀한 벽을 따라 미친 듯 달리는 알렉스.
주저앉지 못하고 끝없이 도망치는 젊음.
절망.
그러고보니, "젊음"이란 단어와 "절망"이란 단어는 소리내어 읽어볼수록 닮았다.
젊음. 절망. 젊음. 절망. 젊음. 절망. 절음. 절망. 절음. 절망.
처음 "죽음의 한 연구"를 읽었을 때처럼
결코 알아들을 수 없는 모스 부호들이 내 신경 속으로 타전되었었다.
톡, 톡, 톡... 때론 툭, 툭, 툭....
톡.
톡.
톡.
툭.
툭.
누구세요?
밝음이 아닌 어둠을 좇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녀가 물었다.
나는 그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비웃고 말았다.
그녀는 아무런 대꾸도 못하고 그냥 뒤돌아서 잠시 머뭇거리다 그대로 떠났다.
나에게 희망을 이야기해달라는 것은 거짓말을 해달라는 것일테니...
어쩌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처음부터 네가 아니였는지 모르겠어.
나쁜 새끼. 나쁜 피.
복화술로 마지막 이야기를 하는 알렉스.
시선은 내가 아닌 다른 곳.
그 때, 스쳐지나가는 여자.
옆 모습.
아니 뒷모습.
사각형.
선.
점.
점으로 소멸하는 어떤 여자.
눈을 감고 그 여자를 붙잡는다.
괜찮은 것이겠지.
기억나지 않는다. 솔직히.... 이미지만 남아있다.
선배에게 찾아가 이미지만으로 글을 쓰는 것은 가능하겠냐고 물었다.
선배는 주섬주섬 함성호의 "56억 7천만년의 고독"을 찾아서 내민다.
석가모니가 입멸하고 56억 7천만년이 지난 후에 미륵이 온다고,
언제 56억 7천만년을 기다리냐고, 미쳤다고, 내가 바보냐고, 그래서 개종하였다는 이야기.
함성호 그는 각주만으로 시를 쓰고 싶다 했다. 이미지보다는 각주가 더 어려운 작업이겠지.
그런데 56억 7천만년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은 있을까?
모든 길이 황금이 되고, 모든 벽이 유리가 되는 그런 날을 자신의 망막에 아로새기는 그런 기다림이 구원일까? 사랑일까?
바보겠지.. 멍충이란 말이야. 머저리야.
진실이란 것을 찾아가기 위해서 솔직해져야한다는 것은 엉터리 소리야.
착하면 사랑할 수 없는 것처럼. 무언가를 원하고 무언가를 지킨다는 것은 착해서는 할 수 없는 짓이야.
활주로를 따라 두 팔을 벌리고 달리는 미셀. 나의 줄리엣 비노쉬.
달리다, 흔들리고, 흔들리다 흐릿해지고, 그대로 비상해버릴 것만 같은,
그대로 사라질 것만 같은 작은 몸. 짓.
알렉스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눈을 감고
한 점으로 소멸해가는 그녀를 붙잡는다.
웃는 것인지 우는 것인지...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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