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에 실린 글 하나. 장정일이 쓴 글 <올림픽과 '스포츠 관음증'>. 스포츠 관음증이라는 이 말, 어디서 들어본 것 같다. 길 가는 사람을 보고 저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하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말도 괜히 그런 느낌이 드는 때가 있나 보다. 해서 장정일의 글을 그래도 옮겨보자.
올림픽과 ‘스포츠 관음증’ | |
<SCRIPT src="/section-homepage/news/06/news_font.js" type=text/javascript></SCRIPT>
필자는 지난주 화요일, 한 지면에 피터 페리클레스 트리포나스의 <움베르토 에코와 축구>(이제이북스, 2003)에 대한 독후감을 썼다. 그 글을 쓰면서 베이징 올림픽이 무르익고 있는 이때에 이런 독후감을 쓰는 건 “부담”스러우며, “이 글은 본전을 찾기 힘들다”고 서두를 뗐다. 원고를 송고하고 비겁함과 무력감에 시달렸다. ‘올림픽 광풍’을 혐오하고자 나는 에코라는 권위에 매달렸다. 그리고 글쟁이가 크게 손해 보는 글을 쓰면 쓸수록, 사회가 조금, 아주 조금 이득을 본다는 생각도 해 보면 안 되나? 워낙 이름 석 자에 호구가 걸려 있는 터라 나는 그걸 못한다. 기호학자이며 소설가인 움베르토 에코는 우리가 눈여겨보지 않은 사이에 유럽의 축구문화를 조롱하는 여러 편의 에세이를 썼던 모양이다. 이 책은 단번에 외우기가 힘든 긴 이름을 가진 영국의 문화비평가가 그 글들을 모아 에코의 반(反)스포츠론을 완벽히 다듬어낸 일종의 ‘오마주 북’이다. 인간은 ‘놀이’하는 존재다. 하여 에코는 스포츠 자체를 부인하진 않는 대신 이렇게 묻는다. 만약 당신 주위에 섹스는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하는 섹스를 구경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번씩 암스테르담(사창가)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정상이라 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그런 사람을 뭐라 부를지 잘 안다. 마찬가지로 자기 신체를 사용한 ‘놀이(운동)’는 전혀 하지 않으면서, 스포츠 관람에만 넋을 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역시 관음증 환자다. 에코의 말로, 경기장에서 벌어지는 상대편에 대한 야유와 욕설은 놀이를 잃어버린 관객들이 생생한 체험을 보상받으려는 욕구에서 비롯하며, 피를 보고야 마는 훌리건의 난동은 경기 시간 동안 자기 신체를 선수들에게 빼앗겼던 청년들의 슬픈 마스터베이션이다. 비약하면, 세계가 놀란 한국인의 응원문화 또한 우리 젊은이들이 그만큼 자기 향락이 무엇인지 모르며, 실제 스포츠로부터 유리되어 있다는 증거다. 스포츠가 개인의 건강과 육체를 향상시키려는 것이라면, 관음화된 현대의 스포츠는 그 정의에 맞지 않는다. 역설적이게도 육체가 제거된 관음화된 스포츠는 구경꾼을 잡담가로 타락시킨다. 그들은 장관들이 하는 일을 판단하는 대신 축구 감독에 대해 논의하며, 의회 기록을 검토하는 대신 선수의 기록을 복기한다. 또 새로운 정책이나 법령의 잘잘못을 따지는 대신 어제 벌어진 승부를 분석하는 데 시간을 허비한다. 그러면서 마치 중요한 민주적 토론에 참여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장정일은 움베르토 에코를 들먹였지만 나는 장정일이나 들먹여야겠다. 올림픽이 끝났다. 어김없이 스포츠스타가 탄생됐고 방송이나 언론매체들은 스타들 모시기에 바쁘다. 도착적 스포츠 예찬과 스타 빨기에 더 열중인 사람들은 방송인들이고 득을 보기로 치자면 정치인들도 빠지지 않는다. 올림픽열기로 촛불을 제압하고 덤으로 지지율까지 오른 2MB야말로 가장 큰 수혜자다. 이러니 스포츠경기를 국력과 연관짓고 공적인 화제인 양 기만하기를 그만둘 수 있겠는가.
|
'문화이론 > 문화의 논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매트릭스(Matrix)로 철학하기(Matrix & Philosophy) (0) | 2008.09.06 |
---|---|
[스크랩] 움베르토 에코의 기호학 이론 비판 (0) | 2008.09.06 |
[스크랩] [움베르토 에코와의 대화] 문명간 교배시대 열쇠는 `톨레랑스` (0) | 2008.09.06 |
[스크랩] 한반도 대운하, 문화재를 수장시킬 셈인가 (0) | 2008.03.04 |
[스크랩] 황금알을 낳는 유머, 펀펀(Fun Fun)한 성공전략 (0) | 2008.03.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