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에는 낭만주의 미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현대미술이 어떻게 태동되었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 시간은 다음의 그림에서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에두아르 마네, <풀밭위의 점심> 1863]
정장을 차려입은 두 남자와 벌거벗은 한 여인이 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도 다소 외설적인 면이 있습니다. 만약에 이것이 사진이나 동영상이었다면 더욱 그렇게 느껴졌겠죠. 이 그림은 오늘날처럼 매체가 발달하지 않았던 19세기 중반의 사람들에게 상당한 도덕적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그림 속 인물들은 사교계의 유명인사들로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죠. 나체의 여인은 마네가 즐겨 그렸던 모델이었고, 두 신사중 하나는 마네의 동생입니다. 마네가 누드를 그렸기 때문에 도덕적인 비난을 받았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서구 회화사에서 누드화는 전통적인 쟝르의 하나입니다. 문제는 마네가 님프나 여신을 그린 것이 아니라 실존 인물을 그리고 있다는 것이었죠. 과거 화가들이 그렸던 비너스의 누드는 미의 상징이었지만 실존인물 빅토렌느 머랑을 그린 마네의 이 그림은 도덕적인 비난의 대상이었습니다.
마네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이그림을 그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장면은 실제 있었던 일을 묘사한 것이 아닙니다. 마네는 이 작품을 통해서 예술가의 자유를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술가는 미적인 효과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다시 그림을 봅시다. 여인의 따뜻한 크림색 피부는 남자들의 차가운 흑회색 코트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마네가 여인을 나체로 그린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러한 회화적 대비 효과를 위해 그는 이런 구상을 한 것이죠. 말하자면, 마네는 회화의 세계에는 일상적 현실 세계와는 다른 법칙이 존재한다고 본 것입니다. 마네에게 있어서 회화는 그 자신의 자율적인 법칙을 가진 고유한 세계가 되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바로 이 점이 세인들의 비난을 불러 일으켰던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 보았듯이 전통적으로 회화는 사람들에게 교훈이나 배울 점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되어 왔습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이 그림른 아무런 배울만한 것이 없는 불경스러운 그림으로 비춰졌던 것입니다.
이 그림에서 또 눈여겨 볼 점은 묘사된 인물들이 과거의 작품들에서처럼 입체적이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시간에 보았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떠올려 봅시다. 고전주의 회화에서는 인물의 실체감을 살리기 위해 명암의 미세한 단계를 아주 꼼꼼하게 처리합니다. 그 덕분에 그림 속의 인물은 마치 대리석 조각같은 느낌을 주죠. 그에 반해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훨씬 평면적으로 보입니다. 왜 그런걸까요?
마네는 실제로 집밖으로 나가 야외의 풍경을 관찰할 경우 빛을 받는 부분은 훨씬 더 밝게 보이고 어두운 부분은 더욱 짙게 보인다는 점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리고 고전주의 그림에서와 같은 명암의 섬세한 단계는 실제로 관찰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카데미에서 배운대로 명암법과 채색법을 구사하는 대신, 자신이 관찰한 바대로 그리기로 한거죠. 그 결과 밝은 부분과 어두운 부분의 대비가 강조되었고, 남녀 인물들은 다소 평면적으로 그려졌습니다. 그림을 봅시다. 여인의 몸과 신사들의 검은 의상은 거의 평평해 보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실체감이 없어 보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야외의 밝은 빛 속에서는 둥근 형체들이 평평하게 보인다는 시각적 현실을 고려해 볼 때, 과거의 어떤 작품보다도 현실감있는 묘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네의 새로운 미술과 그 정신은 인상주의자들에 의해 계승됩니다. 그들은 마네의 뜻을 좇아 화구통을 들고 화실을 박차고 나온 화가들로, 자신의 눈을 통해 직접 본 것이 아니라면 그릴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중 대표적인 사람이 끌로드 모네입니다. 그는 강의 풍경을 그리기 위해 조그마한 배에다 화실을 차렸습니다. 자연을 묘사한 그림은 그 현장에서 완성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이러한 모네의 생각은 필연적으로 기법상 새로운 방법을 낳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연에서 실제로 관찰된 현상들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합니다. 예컨대 구름이 해를 가리며 지나가거나 바람이 물 위에 반사된 그림자를 부숴뜨림에 따라 사물의 색채와 형체가 달라 보이게 되지요. 게다가 태양광선의 방향이 하루종일 바뀌기 때문에 언제 그것을 보았는가에 따라 달라 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네는 순간적으로 관찰된 대상을 포착하기 위하여 재빨리 붓을 휘둘러 그림을 완성하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는 과거의 화가들처럼 꼼꼼하게 마무리할 여유가 없었고, 화면에 거친 붓자국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그는 세부보다는 전체적인 효과에 주의를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의 그림을 봅시다.
[끌로드 모네, <생 라자르 역> 1877]
당시 사람들 눈에 모네의 그림은 마무리가 덜 된 미완성작, 혹은 되는대로 아무렇게나 그린 그림으로 보였습니다. 이 그림은 마네의 그림보다도 더 평면적이며, 그림속의 사물들은 실체감이 없어 보입니다. 원근법도, 입체감을 부여하는 전통적인 테크닉은 무시되고 단지 형체를 암시하는 색채만 있을 뿐이죠. 이런 이유로 모네 또한 동시대인들의 조롱과 비난을 면치 못했습니다.
모네는 평생에 걸쳐 수많은 연작을 하였습니다. 예컨대 <짚더미>, <루앙성당>, <수련> 등이 있습니다. <생 라자르 역>은 그의 첫번째 연작입니다. 이 연작에서 그는 기차역에서 볼 수 있는 증기의 표현에 매혹되어 있었습니다. 기차가 뿜어내는 연무는 순간적으로 존재하다가 이내 대기중으로 흩어져 버리고 맙니다. 모네는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장소로서의 역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그는 몽실 몽실 피어 오르는 증기사이로 흩어지는 빛의 효과와 그러한 혼란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기관차와 객차의 모습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대기중에 순간적으로 존재하는 양상들에 대한 모네의 관심은 그의 후기작들에서도 지속되고 있는바, 그 미묘한 분위기의 묘사, 강렬한 빛과 반사광선의 사실적이고도 시적인 묘사, 그리고 순수한 색채의 하모니 등은 그의 양식적 특성이 되고 있습니다.
[오귀스뜨 르느와르, <물랭 드 라 걀레뜨> 1876]
우리가 잘 아는 르느와르의 대표작입니다. 모네가 주로 풍경을 그렸던 것과는 달리, 르느와르는 인상주의의 원칙을 일상 생활의 장면을 묘사하는 데에 적용하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흥겨운 야외 무도회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파티의 분위기에 흠뻑 취해 있는 젊은 남녀들은 모두 즐겁고 명랑해 보입니다. 이러한 축제의 정취를 르느와르는 인상주의 특유의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의 주요 표현 대상은 화려한 의상의 인물들이 아닙니다. 르느와르의 주요 관심사는 인물들과 그들이 차지하고 있는 공간을 비추고 있는 햇빛의 효과에 있습니다. 앞쪽에 앉아 있는 여인의 얼굴을 봅시다. 그녀의 눈과 이마는 그늘 속에 있는 반면, 입과 턱 위에는 햇빛이 아롱거리고 있습니다. 화면 중앙에 보이는 두 인물은 그래도 선명하게 그려진 편입니다. 뒤로 갈수록 형체들은 점점 햇빛과 공기 속으로 용해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네가 그랬던 것처럼 르느와르도 대담하고 자유로운 붓놀림으로 대상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세부는 대개 생략된 스케치풍의 그림입니다. 그래서 르느와르도 모네가 받았던 것과 같은 비난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세한 것까지 자세히 그렸다면 이와 같은 생동감이 느껴졌을까요? 르느와르는 야외의 무도회에서 관찰되고 느껴질 수 있는 분위기를 이렇게 화사한 화면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겁니다. 그는 전통적인 화가들처럼 섬세한 수법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자신의 시각 경험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해 과거의 어떤 거장 못지 않은 신중한 방법으로 화필을 사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드가 드가, <압생트> 1876]
또 다른 인상주의자, 에드가 드가(Edgar Degas)의 작품을 봅시다. 드가는 인상주의자들 중에서도 유달리 소묘의 중요성을 강조했던 화가로, "소묘는 형태가 아니라 형태를 보는 방식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드가는 아카데믹한 윤곽선의 개념에 반감을 갖고, 살아있는 형태를 사실적이고도 조화롭게 강조하는 특징적인 스타일을 창안하였습니다. 인상주의자들 중에서도 드가는 이렇듯 시각적 세계를 구성하는 대상들에 보다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우리는 드가의 인물 스케치들을 통해 각 대상의 분리와 상호관계에 대한 그의 깊은 관심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드가는 종종 고전주의적 인상주의자로 불리우는데, 그는 스스로 "현대적 삶을 그리는 고전주의 화가"가 되기를 원했던 화가였습니다.
목욕하는 여인, 빨래하는 여인, 발레하는 무용수들과 같은 현대의 일상적 정경들을 주로 소재로 삼았다는 점에서 마네와 기타 인상주의자들과 비슷했지만, 드가는 옥외의 밝은 빛 아래서 그림을 그리는 일은 드물었고, 주로 실내의 정경을 그렸습니다. <압생트>는 당시 서민들이 즐겨 마시던 독한 술이었습니다. 아직 대낮인 것 같은데도 몽롱한 표정을 하고 있는 여인의 얼굴이 보이는군요. 옆의 남자는 그녀의 남편처럼 보이는데요, 그는 여인을 외면하는 자세를 하고 있군요. 카페에서 볼 수 있는 일상적인 정경을 우연적인 시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제라 할 수 있는 두 사람을 드가는 오른쪽 상단에 치우치게 위치시켜 중앙집중적 구도를 회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화면의 많은 부분이 빈공간으로 남아 있는 것을 볼수 있는데요, 이러한 공간은 여인의 공허한(?) 심정을 표상하는 듯 하지 않습니까? 여하튼 드가는 빈 공간을 남겨두고 있는 그림을 여러점 제작했고, 그럼으로써 우연히 지나가면서 바라본 듯 그 장면을 자연스럽게 묘사하였습니다. 드가의 이런 그림들은 우연히 찍은 스냅 사진의 한 장면처럼 보입니다. 실제로 그의 그림의 자연스러우면서도 신선한 구도는 당시 발명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진술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네이후 인상주의자들은 일종의 사실주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내 '눈'으로 실제로 관찰한 것들만 그린다는... 그러다 보니 그들의 그림의 주제는 신화나 역사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들의 일상 속에서 접할 수 있는 정경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마치 카메라가 렌즈에 비춰진 이미지를 기록하듯이 자신의 망막에 맺힌 이미지를 기록하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상주의자들이 실제로 그린 것은 사물 그 자체라기보다는 사물을 비추는 빛이었습니다. 빛을 통해 화가의 눈에 들어오는 시각적 인상, 그것이 인상주의자들의 주요 표현 대상이었죠. 인상주의가 과거의 그림과는 달리 화사하고 생동감넘치는 색채의 향연으로 나타나는 데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 그럼 이시간은 여기서 마치고요, 다음 시간에는 인상주의 이후 현대미술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살펴보도록 합시다.
* The pictures above appear in Mark Harden's artchive and Jim's fine art colle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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