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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서평 : 현대사진의 쟁점 Hot Issues of Contemporary Photography

ddolappa 2008. 12. 5. 23:44

- 진동선 지음 -
현대사진의 쟁점
Hot Issues of Contemporary Photography

 

오늘날 우리는 재현 예술에 있어 가장 중요한 매체로 사진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이 예술의 한 장르로서 합법적인 인정을 받은 때는 불과 30여 년 전부터이다. 특히 70년대 말 모더니즘 붕괴의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매체는 의심할 바 없이 사진이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역사적 관점에서 이러한 붕괴는 60년대 말부터 진행된 사진의 이분법에 의해 이미 예견되었는데 당시 사진은 점진적으로 한편으로는 흔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매체의 독창성과 순수성을 우선으로 하는 소위 “순수” 사진들의 영역으로, 또 한편으로는 사진 그 자체의 순수 영역 밖에서 언제나 표현 도구로서 활용된 조형 사진들의 영역으로 나누어졌다.( 참고, Dominique Baqu, La photographie plasticienne, Regard, Paris, 1998.)

이러한 이분법은 사진이 모더니즘 붕괴 이전부터 모더니즘에 대한 의문을 가졌다는 것을 함축하면서 결과적으로 사진의 조형적 활용은 엄격한 형식 중심의 모더니즘으로부터 결정적인 이탈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배경에는 오랫동안 우리들 이성이 축적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변적 교조의 모순과 한계를 놓고 있는데 사진은 이때 이러한 개념 전복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매체로 나타났다. 이는 또한 80년대 포스트모더니즘을 특징짓는 장르의 파괴와 혼용 그리고 이종 교배와 도용에 있어 가장 공통적인 표현 매체는 바로 사진이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표현 매체로서 사진의 활용 목적은 매체가 가지는 조형적이고 물질적인 이미지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사진만이 가지는 개념적 특성에 있었다. 결국 오늘날 재현 예술에 도입되는 사진은 형식이나 양식과 같은 물질적 도구로서 활용되는 것이 아니라 기록과 상황 그리고 어떤 조짐을 보이는 존재론적인 상황 그리고 어떤 조짐을 보이는 존재론적인 징후로서 활용되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사진이 가지는 개념적이고 비물질적인 특성에 대한 예술적 활용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언제나 사진을 형식과 양식의 결과물로서 이해하고 메시지의 이슈와 명분을 중요시하는 모더니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사변적 형상 이탈 즉 포스트모더니즘 경향은 단지 하나의 예술적 양식이나 유행으로 간주될 뿐이다. 이럴 경우 사진은 사진사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는 하나의 새로운 예술적 양식일 뿐이며 그때 사진의 독창성은 작품의 의미인 동시에 오랫동안 모더니즘의 아방가르드들이 추구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향한 진보적인 시간성 속에서 이해된다. 그래서 흔히 우리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최근 유행하는 하나의 예술적 양식이나 형식으로 간주하여 언제나 작품의 독창성을 말하는 논리적 의미와 그 제작 과정에서의 방법적이고 조형적인 특징만을 분석하는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새로운 양식의 이름이 아니라 양식과 형식 그리고 의미(코드) 자체를 부인하는 사변적 경향일 뿐이다.

엄밀히 말해 불과 20여 년의 짧은 역사를 가지는 한국 현대사진의 지형은 위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중요한 사변적 공론이 채 형성되기도 전에 이미 만들어졌다. 그래서 단적으로 말하기 어렵지만 한국 현대사진의 출발은 서양의 오랜 모더니즘 전통을 답습하면서 단순히 포스트모더니즘을 하나의 예술적 형식으로 접맥하던 80년대 초부터라고 볼 수 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 80년대 당시 한국 사진에 몇 몇 해외 유학파들에 의해 수용된 포스트모더니즘은 흔히 모더니즘의 새로운 한 양식으로 전통적 사진의 조형적 접맥으로만 이해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결국 90년대 한국 현대사진은 지속적인 사변적 토양을 가지지 못하고 혼미한 안개 속에서 방황하게 되었다.

한국 현대사진의 형성과 발전 과정 속에서 거의 산 증인으로 살아 온 한국의 대표 사진 비평가이자 유명 전시 기획자인 진동선의 “현대 사진의 쟁점”은 바로 이러한 이론적 문제를 제시하면서 지나온 한국 사진의 이슈와 쟁점들을 다시 놓고 있다. 물론 진술된 많은 내용들이 이러한 쟁점들을 면밀히 분석하는 데 있어 결코 완전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볼 때 실질적인 전시 기획 경험과 특히 현장에서 체험한 저자의 이론적 지식들은 오늘날 한국 현대사진의 배경을 이루는 서양 사진의 조류와 양상들을 한눈에 설명하기에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책의 전반부를 이루는 “국외편”에서 저자는 표절과 도용 모방 혼용 등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사진의 많은 양상들에 대한 이론적 진술과 의문을 내놓고 있다. 전반부를 아우르는 전체적인 내용은 역사적인 관점에서 오늘날 현대사진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이슈와 쟁점들은 무엇인가 그리고 이러한 쟁점들은 시대의 사변적 가치와 기술적 변화에 따라 어떻게 진화되어 왔고 또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논의하고 있다. 특히 90년대 예술의 다원주의에서 디지털 전자 문화의 기술적인 변화와 제3세계 사진의 새로운 위상을 오늘날 이론적 관점에서 그리고 역사적 관점에서 어떻게 볼 것이며 또한 이러한 변화에서 한국 현대사진의 새로운 흐름은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가치를 더욱 높이는 것은 후반부의 “국내편”이다. 여기서 작가가 우리에게 던지는 것은 사진에 대한 단순히 이론적 논쟁을 넘어 한국 현대사진의 보다 현실적인 쟁점들이다. 저자는 직접적인 자신의 경험에서 두 가지 서로 상반되는 문제를 놓고 있는데 하나의 긍정적인 측면에서 한국 사진의 국제화에 관한 몇 몇 조건과 방향을 설정하고 있다. 비록 한국의 현대사진은 불과 몇 십년의 짧은 역사 속에서 분명한 색깔을 가지지 못하는 아주 빈약한 하층 구조를 가지고 있지만, 비교적 급속히 발전한 한국 현대 사진의 국제적 위상과 최근 활성화 된 사진 비평 그리고 폭넓은 사진 시장의 잠재력을 어떻게 우리가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한 우리 모두의 문제를 놓고 있다. 또 하나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에서 오늘날 사진 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들을 살펴보고 있다. 이에 관해 진정한 사진 교육의 방향은 어떤 형태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알아보고 동시에 현재 우리의 사진 교육이 가지는 제도적인 모순과 대안을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특히 “한국 사진, 희망은 어디로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국 현대사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위해서 전체적인 사진 문화의 의식 개혁과 창작의 주체인 현재 30대 이하의 젊은 사진가들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서양인의 시각에서 기술된 단순한 사진 이론서가 아니라 저자의 다년간 경험과 체험을 토대로 엮어진 책으로 특히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지난 10여 년 동안 국제적인 현대사진과 한국의 현대사진에 대한 흐름과 경향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일종의 이론적 길잡이로 간주된다. 아직 몇 안되는 전문 사진 이론가의 빈약한 층과 다양하지 못한 사진 이론의 편중과 빈곤 특히, 사진 이론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의 부재에서 진동선의 “현대 사진의 쟁점”은 의심할 바 없이 사진 이론의 메마른 땅을 적셔주는 단비임과 동시에 우리 모두가 귀담아 들어야 하는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책의 후반부에서 보여주는 한국사진의 문제점에 대한 냉정하고 분명한 저자의 지적과 긍정적인 관점에서 본 미래의 한국 사진에 대한 저자의 탁월한 예견은 이책의 가치를 한 층 더 올려 주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아마도 이 책은 최근 우리의 관심을 끄는 가장 의미 있는 사진 관련 책들 중 하나일 것이다.

출처 : 빛 그림 작가 별마루
글쓴이 : 별마루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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