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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인터뷰] `자본론` 연구 권위자 김수행 서울대 교수

ddolappa 2009. 2. 2. 22:42

 

"신자유주의 종말 올 것... 새로운 길로 가야"

[인터뷰] '자본론' 연구 권위자 김수행 서울대 교수

 

김종철(jcstar21) 기자  


"맑스가 생각한, 기본적으로 생각한 것이 뭐야. '노동만이 가치를 창조한다'는 것이야. 노동가치설이지. 노동이라는 것이 노동자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육체적 힘을 지출하는 것. 노동력을 지출하는 것이 노동이라는 것이야."

김수행(63.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의 허스키한 목소리는 거침이 없었다. 2단으로 돼있는 녹색 칠판은 김 교수가 쓴 자본론의 여러 공식으로 채워져 갔다.

지난 25일 금요일 오전 서울대 사회관 뒤편에 새롭게 지어진 83동 강의동 건물 305호. 아침 10시부터 150여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시작한 백발(白髮) 교수의 마르크스 경제학 수업은 오후 1시가 다 돼서 끝이 났다. 3시간짜리 수업시간을 거의 꽉 채운 셈이다.

3학년이라는 이아무개씨는 "졸업하기 전에 한번은 꼭 들어야할 과목이라 생각해 듣게 됐다"면서 "(강의)속도가 빠른 편이지만, 누구나 (강의를) 들으면 따라갈 만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백발 교수의 3시간짜리 수업

사회과학관 6층. 3평 남짓의 김 교수 연구실에서 기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벽에 내걸린 사진들이었다. 망치와 낫을 들고 외치는 노동자 모습이 담긴 사진부터 모택동의 중국혁명 당시를 형상화한 동상 사진 등…. 지난 90년 모스크바 등 동구권의 붕괴를 발로 직접 확인하고 찍은 사진들이었다.

시선을 잠깐 돌리면 높다란 책장을 빽빽이 채운 책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 가운데 누렇게 표지가 바랜 <마르크스-엥겔스 전집> <레닌 전집> 등 자본주의에 맞서 공산주의를 잉태한 역사적인 책들이다. 90여권에 달하는 원전과 함께 각종 사회과학 도서, 아직 발표되지 않은 연구논문 등은 이곳이 국내 마르크스학의 태두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생계형 신용불량자 대책에 대해 물었다. 지난 2월 김 교수를 만났을 때 그는 신불자 대책의 중요성을 한참이나 강조했었다. 김 교수는 "저소득층의 신불자에 대해선 어느 한도까지는 불량을 없애줘야 한다"면서 "일부에서는 자꾸 도덕적해이를 이야기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경제적 양극화 심화에 따른 사회적 불안과 경기 전반의 침체는 결국 경기 선순환을 위해서라도 좋지 않다는 것이다. 또 저소득층의 신불자 문제는 개인의 문제보다 사회구조적인 문제 차원에서 봐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대책도 100%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과거보다는 진일보한 면이 있다고 했다.

"자꾸 값 떨어지는 달러만 쌓아 놓으면 어떻게 해"

올 경기전망이 어떻게 될 것 같냐는 질문에 김 교수는 "잘 모르겠는데…"라고 웃음으로 답한뒤, "우리가 엄청나게 오랫동안 불경기에 휘둘려 살아왔었으니까… 기업에서 사람들이 많이 쫓겨났고, 더 이상 나빠질 수도 없으니 (경기)반등이 있을 수도 있겠지"라고 말했다.

그는 경제전망에 조심스러웠다. 한국경제가 이미 세계시장에 크게 동화돼 있는 점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인 달러화 약세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을 지적했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달러화가 약해진다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들도 달러를 안 가지고, 유로화 등 다른 화폐를 가진다는 것이예요. 이것이 지속되면 미국 자본시장은 망해요. 우리나라도 외환을 거의 달러로 갖고 있는데, 자꾸 값 떨어지는 것을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해."

김 교수는 말을 이어갔다. "(다른 나라에선) 달러화로 표시된 증권도 안가지려고 해. 그러면 미 증권시장은 곤란을 겪게 되고, 만약 미국경제가 불황으로 들어가면 우리는 대단히 어려워져. 내가 항상 말하지만, 한국 경제도 너무 수출시장에 의존하지 말고, 국내 시장을 살리고 우리 내부 수요를 이끄는 기업들을 키워야지."

"국제경쟁력은 허구... 신자유주의는 성공할 수 없어"

자연스럽게 '고용없는 성장'으로 이야기가 옮겨졌다. 과거에는 수출이 늘면서 이윤도 증가하고 투자와 고용도 함께 늘었다. 이는 내수소비 활성화로 이어지면서 경제가 성장하는 선순환 구조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 수년동안 이같은 구조는 깨졌다.

김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국제경쟁력, 국가경쟁력이라는 것은 허구예요. 우리 기업들도 맨날 외치는 것이, 해외에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세금을 낮춰야한다', '노조가 너무 세다', '노동 유연성이 있어야한다'고 하는데… 이것은 과거 영국 마가렛 대처 시절에도 나왔던 이야기들이에요."

경상도 사투리가 여전히 배어있는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당시에 (영국) 기업들은 해외에서 영국 제품들이 경쟁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고 하면서, 그 이유를 국가에 세금을 너무 많이 내서, 노동자들 임금도 높아서 그렇다고 했거든. 그래서 사회보장비용도 끊고, 임금을 낮춰야 한다고 그랬다고."

결국 정부 도움으로 영국 기업들이 가격을 싸게 해서 내다 팔았지만 기업들의 이익 증가는 오래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회보장 비용의 축소와 임금 하락으로 영국 국내 시장만 위축됐고, 내수 침체와 불황이 지속됐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노동자가 더 참여하는 참여 자본주의로"

김 교수는 영미식 신자유주의 프로그램을 더이상 답습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이미 복지국가를 경험했던 서구 자본주의 국가와 이같은 경험이 전무한 한국 자본주의와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미국과 유럽 등에서 신자유주의로 가니까 해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도 그렇게 가는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했던 거야. 하지만 우리는 서구 국가처럼 복지국가가 형성된 적이 없었어. 박정희 시대의 개발주의로 있다가 그냥 신자유주의로 넘어왔다고. 중간이 없어진 것인데, 그것은 매우 큰 문제야."

그는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성공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새로운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 마지막은 다시 복지국가로 갈 수밖에 없다"며 "자본주의를 유지하려면 그 방법(복지국가)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이나 노동자가 더 참여하는 참여적인 자본주의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최근 노동계 내부에서 논란의 주체가 되기도 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참여를 놓고, 같은 대학 김세균 교수 등과 함께 이를 비판하는 성명에 이름을 올렸기 때문이다. 일부 보수언론은 좌파 교수들이 노동계의 사회적 교섭 참여에 반대하고 있다는 점을 적극 부각시키기도 했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 참여에 반대한 이유

그는 "노동조합도 자기 혼자만 살 수 없으니 기업가나 정부와 타협이 필요하며 일정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부분도 있다"면서 "하지만 너무 정부나 기업쪽에서 원하는 방향으로 (민주노총이) 끌려가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고, (노사정에) 복귀하거나 탈퇴하더라도 명분을 가지고 해야하는데…"라며 아쉬워 했다.

그동안 노사정의 사회적 교섭과 합의에 대해서는 그도 중요하다고 말해왔다. 현 한국 자본주의 아래에서 어느 때보다 노동과 자본, 정부간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자본(기업가)쪽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김 교수는 최근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가 어떻게 전개돼 왔는지를 책으로 정리해 내놓았다. 민주노동당의 국회 진출 등 그 어느 때보다 마르크스가 한국 자본주의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김수행 교수.

마르크스 경제학이라는 과학을 토대로 사회경제 현실을 분석하고, 전망하는 작업에 그는 항상 제일 앞에 서 왔다. 비정규직 문제를 비롯해 양극화, 재벌 등 급변하는 한국 자본주의 현실속에 김 교수의 정치경제학 해법이 어떻게 구현될지 주목된다.

"마르크스가 나를 먹여 살린 거지"  
<자본론> 인세로 집값 냈던 김수행 교수는 어떤 사람?  

"그때 당시 집 분양가를 다 (인세로) 냈으니까….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억이 뭐야, 훨씬 넘지. 마르크스가 날 먹여 살린 거지.(웃음)"

인터뷰 중간에 얄궂은 질문을 했다. "자본론 책이 많이 팔렸다고 하는데, 인세(印稅)를 얼마나 받으셨나?" 김수행 교수는 마치 기다렸는 듯이 "많이 벌었지"라며 곧바로 답했다. 그가 현재 살고 있는 산본 아파트 분양대금을 <자본론>(비봉출판사) 인세로 다 냈다고 했다. 93년 아파트 분양대금이 7200만원이었다고 했다.

89년 비봉출판사를 통해 낸 오렌지색 하드커버의 <자본론>은 당시 대학가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마르크스 <자본론(Das Kapital)> 전체가 완전히 번역돼 나온 것은 한국 사회과학사에서도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정도였다.

김 교수가 자본론에 푹 빠지게 된 것은 지난 72년 외환은행 런던지점 근무시절이다. 국내에서는 금서(禁書)로 알려진 자본론이 서점에 너부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75년 귀국하고 곧바로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런던대 경제학과에서 본격적인 공부를 하기로 한 것이다.

7년만에 석박사를 마치고 국내에 돌아와 한신대에 첫 둥지를 튼 것이 82년. 현 <중앙일보> 논설위원인 정운영과 박영호 등 유럽에서 좌파경제학을 연구한 사람들과 경제학부를 만들었다. 하지만 신학부 중심의 행태에 강하게 반발해온 그는 정운영 교수와 함께 학장 불신임안을 통과시켰지만, 87년 학교로부터 해임당하고 만다.

그러나 87년 민주화 항쟁은 서울대의 천편일률적인 경제 수업에 학생들이 반기를 드는 토대를 제공했다. 대학원생들 중심으로 농성까지 벌이면서 '정치경제학'을 강의할 수 있는 교수채용을 요구, 김 교수가 다시 채용공고를 통해 강단에 서게됐던 것이다.

그는 아직도 서울대 경제학부가 열려있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치경제학을 강의하는 전임 교수가 1명밖에 없다는 현실 자체가 아쉽다는 이야기도 이어졌다.

지난해 <자본론> 3권까지 한자를 한글로 바꾸는 작업을 마친 김 교수는 현대 자본주의에 맞서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은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담론이라고 강조한다.  

 

 

출처 : 목련꽃이 질때
글쓴이 : 어린왕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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