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 / 윤동주
살구나무 그늘로 얼굴을 가리고,
병원 뒤뜰에 누워,
젊은 여자가
흰옷 아래로 하얀 다리를 드러내 놓고
일광욕을 한다.
한나절이 기울도록 가슴을 앓는다는
이 여자를 찾아오는 이,
나비 한 마리도 없다.
슬프지도 않은 살구나무 가지에는
바람조차 없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화단(花壇)에서 금잔화(金盞花) 한 포기를
따 가슴에 꽂고 병실 안으로 사라진다.
나는 그 여자의 건강이 ㅡ 아니 내 건강도
속히 회복되기를 바라며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문학의 세계 > 한국 문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오태환의 <경계의 시읽기>리뷰 / 장석주 (0) | 2008.12.05 |
---|---|
[스크랩] 아수라의 세상을 건너는 노래의 개별성 / 김남호 (0) | 2008.12.05 |
[스크랩]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김남호 (0) | 2008.12.05 |
[스크랩] 날이미지시와 무의미시 그리고 예술 / 오규원 대담 (0) | 2008.12.05 |
[스크랩] 관념의 시와 몸의 시 / 김남호 (0) | 2008.12.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