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세계/한국 문학

[스크랩]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김남호

ddolappa 2008. 12. 5. 23:29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김 남 호



대저 감옥이 무엇인가. 죄수가 갇혀있는 공간이 아닌가. 죄수란 누구인가. 당대의 이데올로기를 수용하지 못한 체제의 부적응자가 아닌가. 어느 시대나 불온한 섬으로서의 감옥이라는 공간은 삶의 의미를 명과 암으로 극명하게 나누어 버리는 탓에 삶의 응달이었고, 그 시대의 중심부에서 밀려난 타자(他者)들의 거처였다. 이런 감옥에 들어가고 싶다는 터무니없는 유혹을 느낀 적이 두어 번 있었다. 하나는 80년대 그 난기류 속에서 대학시절을 보내며 시대에 같이 저항하던 '동지'들이 그곳으로 끌려갔을 때, 그리고 불운(?)하게도 담장 밖에 남겨졌을 때 양심을 찔러오는 그들에 대한 부채감으로 감옥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신영복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처음 읽었을 때였다.


신영복이 누군가. 1968년 통일혁명당(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 간을 영어(囹圄)의 몸으로 있다가 1988년 8·15 특별사면으로 풀려났던 우리 시대의 가장 어두웠던 그림자가 아닌가. 죄를 만드는 것은 법이지만 죄수를 만드는 것은 법만이 아니다. 죄가 있기에 죄수가 되지만 때로는 죄가 없는 죄수도 있다. 그게 바로 '개털'과 '범털'의 차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감옥 안에서 한 '범털'이 몸으로 쓴 서사시이자 서정시이며, 감옥 밖의 인간들을 교화(敎化)시켜 환하게 길을 열어 보이는 아픈 경전이다.


이런 까닭에 글의 형식은 가족들 간의 소통을 전제로 한 서간문이지만 내용은 혈육에 대한 그리움을 넘어 높은 울타리 속에 갇힌 육신이 투명한 영혼의 눈으로 이 세상을 조망한 역설적 통찰이기도 하다. 가령,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고 하는 이 유명한 치세의 장구(章句)에서 그 진의가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시간의 순차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각각의 상호연관성과 전체적 통일성에 있음을 보아내는 그의 통찰은 얼마나 매서운가. 제가(齊家) 바깥의 수신(修身)은 소승(小乘)의 목탁이며 이기(利己)의 소라껍데기이고, 치국(治國)에 앞선 제가란 부옥(富屋)의 맹견(猛犬)을 연상시킬 뿐이라고, 그리하여 평천하를 도외시한 치국은 일제의 침략과 횡포가 그 본보기라고 갈파한다.


또한 그는 몇 평의 감방 안에서 시대를 읽고 세상을 본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 때문에 단지 '37도의 체온'을 가졌다는 이유로 옆사람을 증오하는 여름 징역살이의 풍경을 통해 없는 자들의 불행과 절망을 읽는다. 체온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미움을 받는다는 사실, 더욱이 그 미움의 원인이 자기의 고의적인 소행에서 연유된 것이 아니라 존재 그 자체 때문이라는 사실, 그래서 그 불행은 더욱 절망적이라는 사실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물론 그 풍경은 감방의 풍경이자 곧 세상의 풍경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그 여름의 징역이 키운 증오는 한시적으로만 유효한 것임을 잊지 않고 일깨워준다. 가을 바람 한 줄기에 그 증오는 흔적 없이 스러지고, 그 증오의 상처가 머물렀던 자리는 증오의 원인이었던 바로 그 체온으로 인해 다시 원시적 우정이 회복된다는 사실을 감동적으로 환기시킨다.


고차방정식의 해법처럼 복잡하게 얽힌 세상살이의 소용돌이에 시달리다 보면 문득문득 이 책을 찾게 된다. 가장 단순한 논리로 세상을 읽고 건너는 환한 깨달음이 있고, 사랑을 간직한 이웃들의 따뜻한 가슴을 느낄 수 있다면 그 감옥이 어찌 부럽지 않으랴. 이 가을에는 그의 감옥이 더욱 그리울 것이다.□



-『경남일보』(2002년10월 26일자) <내 마음을 일깨운 한 권의 책>



출처 : 뫼비우스의 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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