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2> 무한도전이 꿈꾸는 이산, 이산이 꿈꾸는 무한도전
이상한 나라의 무한도전
이번에는 사극이다. 지난 한 주는 무한도전 팀이 사극 드라마 이산에 카메오로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MBC 홈페이지를 통해 실시된 "이산 속 무한도전을 찾아라"와 같은 숨은그림 찾기 이벤트 때문에 게시판은 온통 무한도전 이야기로 채워졌고, 각종 언론 매체에서도 무한도전의 이산 출연을 두고 수많은 말들이 오고 갔다. 인기 예능 오락 프로그램이 정극에 단체로 출연하는 전후후무한 일이 벌어졌으니 뜨거운 관심이 쏟아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대체적인 여론은 무한도전의 사극 출연이 극의 몰입을 방해했다는 견해와 신선한 재미를 주었다는 견해로 팽팽하게 대립하고 있다. <"색다른 재미" VS "산만하다">(길혜성 기자), <시청률 얻었고, 진지함 잃었다>(탁진현 기자), <색다른 재미 VS 웬 코믹 시트콤?>(조은미 기자)와 같은 기사 제목들은 이러한 상황을 전달하고 있다. 보다 비판적인 견해도 존재하는데, 이현우 기자는 <무한도전판 이산 과연 재밌기만 했나? 얻은 만큼 잃었다!>라는 기사에서 무한도전 팀의 이산 출연이 시청율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재미만 추구하다보니 결국 사극다운 진지함을 놓치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김관명 기자는 <허경영 신드롬, '무한도전'과 닮았다>라는 다소 어처구니 없는 기사에서 무한도전이 비정상적인 인기에 힘입어 "정통사극 '이산'에까지 그들이 출연하는 웃지못할 사태(?)"가 벌어졌다고 개탄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웃기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희극인들의 사극 출연이 정말 사극의 진지함을 떨어뜨리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다면 이산에 고정출연하며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지상렬의 존재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또한 개그맨 못지 않게 웃기는 재주가 있는 배우 임현식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왜 여론은 비토 다케시와 기타노 다케시가 동일인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있는 것일까? 이산에 출연한 유재석이 안녕하셨쎄요 하고 인사를 한 것도 아니고, 박명수가 호통을 친 것도 아니고, 정준하가 동네 바보형처럼 행동한 것도 아니고, 정형돈이 진상짓을 부린 것도 아니고, 노홍철이 저질댄스를 춘 것도 아니고, 하하가 스파르타 하고 외친 것도 아닌데, 그들이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극의 흐름을 깼다는 시각에는 코미디언들에 대한 일종의 편견과 선입견이 작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유재석, 정준하, 하하 등은 이미 시트콤, 영화, 뮤지컬, 드라마 등에서 꾸준하게 정극 연기를 해왔고 그 방면에서도 상당한 재능을 인정받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럼에도 이산에 출연한 그들의 모습이 낯설게 느껴졌던 까닭은 아마도 그들이 무한도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출연했기 때문일 것이다.
무한도전의 이산 도전기는 대중문화의 중요한 하위범주들인 드라마와 예능 오락프로 간의 경계나누기에 대해 의문을 던지고, 이질적인 장르들 간의 만남을 통해 예능 프로그램의 외연을 확장시키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고 있는 기사를 쉽게 발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시청율이라는 물신에 사로잡힌 기자들의 눈에는 오직 계량가능한 수치만 보일 뿐이지 눈에 띄지 않는 가치들과 의미에 대해서는 신경조차 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무한도전의 이산 출연은 그들에게 무한도전이 대선 특집 프로그램인 "선택 2007", 지피지기 송년특집, 2007 MBC 가요대제전에 출연한 것과 큰 차이점이 없이 단지 무한도전의 인기를 빌미로 시청율을 높이려는 술책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길혜성 기자의 <'무한도전'은 MBC의 '영원한 봉'(?)>이라는 기사는 이러한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 MBC가 인기의 최정상에 있는 무한도전 팀을 사골 끓이듯 무한히 우려먹고 있다는 길혜성 기자의 지적은 어느 정도 타당하다. 그러나 그가 한가지 놓치고 있는 사실은 무한도전과 이산의 만남이 지니고 있는 실험적 가치이다. 다른 프로그램들이 무한도전 팀원들의 기존 캐릭터와 이미지를 재생산해내는 데 그치고 있다면, 이산은 이들의 이미지를 낯설게 일그러뜨리고 변형시키고 있다. 시청자들이 이산 곳곳에 숨어 있는 무한도전 멤버들을 찾으며 재미를 느꼈던 까닭은 자신들이 좋아하는 스타들을 낯선 프로그램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그들의 익숙한 이미지가 파괴되는 데서 발산하는 신선한 충격 때문이다.
내가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가, 나비가 인간인 나를 꿈꾼 것인가?
무한도전은 일정한 포맷이나 형식을 가지고 있지 않고 형식이 없다는 점을 독특한 형식으로 내세우는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매회 특집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새로운 에피소드가 방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무한도전의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간의 관계는 서로 아무런 상관없이 동떨어져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볼 경우 무한도전의 에피소드들은 상당히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시간을 잠시 거슬러 2007년 3월에 3주에 걸쳐 방영되었던 <드라마 특집>편을 살펴보도록 하자.
<환상의 커플>로 한창 주가를 높이고 있던 홍정은, 홍미란 자매가 대본을 쓰고, 영화배우 김수로가 감독을, 톱스타 이효리가 여주인공을 맡아서 화제가 되었던 이 에피소드는 무한도전 팀이 드라마 정극에 도전하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3월에 있을 <드라마 특집>을 위해 이미 1월에 있었던 <신년특집> 편에서부터 준비가 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드라마 편을 찍을 당시 메거진t의 차우진과의 인터뷰에서 김태호 PD는 실로 놀라운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말하고 있다.
"원래 1월에 얘기가 나왔다. 그동안 노래도 하고 모델도 했으니 이번엔 연기도 해볼까, 했는데 처음엔 잠깐 얘기가 나온 걸 내가 홍정은, 홍미란 작가에게 전화를 해버려서 커졌다(웃음). 지난번에 점을 본 이유가 드라마 때문이었다. 그때의 관계도로 드라마의 인간관계가 짜여졌다. 미신 조장으로 경고도 먹었지만 성과는 있었지. 유재석의 여자를 정준하가 뺏는 이야기가 드라마가 되었으니까. 유재석은 옛날에 초등학생으로 출연했었고 박명수는 아침드라마에서 간호조무사를 하다가 잘린 경험이 있다. 정준하는 겁탈 전문 배우로, 정형돈은 미친 사람 역을 한 적이 있다. 다들 주변인물로 연기를 했는데 이번엔 주연이 된 거다. 주연을 빼고 단역들, 엑스트라들은 모두 진짜 연기자들이고 모델들이다. 그게 재미있더라."(인용자 강조)
그러니까 김태호 PD는 아무렇게나 에피소드를 선택하고 나열하는게 아니라 무한도전 전체가 밀도를 가질 수 있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의 이러한 꼼꼼한 계획성이 특히 빛을 발한 건 <댄스스포츠 특집>때였다. 준비기간만 2달이 넘는 에피소드를 준비하며 무한도전은 그 기간 내에 <하인즈 워드 특집>, <지구특공대 특집>, <대체에너지 특집>, <2008 달력 만들기 특집>,
무한도전 전체의 설계자로서 김태호 PD가 보여주는 이러한 치밀함을 놓고 볼 때, 매회가 방영될 때마다 소재 고갈이니 초심으로 돌아가라느니 하는 지적과 비판은 무의미해 보인다. 조금 더 웃기거나 조금 덜 웃길 수는 있을지언정 한 회 한 회가 치열한 고민과 준비의 소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 이산 도전기는 다른 예능 프로그램에 무한도전 팀이 출연했던 것과는 달리 단순히 시청율을 높이려는 깜짝 출연이 아니라 치밀한 계산과 계획된 의도가 숨겨져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단서는 앞의 인터뷰에서 다시 발견해낼 수 있다.
"우리 메이킹을 보면 정말로 다 엉망이다. 감독(김수로)도 엉망이고, 노홍철은 계속 떠들고, 박명수는 자기 캐릭터도 이해 못하고, 몇 시간 동안 한 컷도 못 찍었는데 테이프는 다 쓰고. 그런데 나중에 정말로 드라마 하나가 나오면 감동이지 않을까. 그 과정이 전부 드라마이기도 하고. 근사하고 멋진 게 아니라 얘네들이 뭔가 하나 해냈다는 느낌을 주고 싶은 거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오락 프로그램이 바뀔 수도 있겠지."(인용자 강조)
드라마 특집은 20%가 넘던 무한도전의 시청율이 다시 10%대로 떨어지고 가장 재미없는 에피소드로까지 평가받았다. 그러나 예능 프로그램의 진지한 정극 드라마 찍기는 드라마라는 픽션의 세계와 그것을 찍는 과정이라는 논픽션의 세계를 모두 끌어안으면서 오락물의 정체성과 가능성을 탐사하는 획기적인 실험이었다. 김태호 PD는 무모해 보이는 이러한 자기 반성적 실험을 통해 오락 프로그램의 형태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무한도전의 드라마 이산 도전기는 바로 이러한 실험 정신의 연장선 상에 서 있다.
<드라마 특집>이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무한도전이라는 오락 프로그램 내에서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면, 이산과 무한도전의 만남은 <드라마 특집>의 기본 구도를 반복하면서 드라마와 예능이라는 상이한 장르들 간의 경계 탐사로 확장되고 있다. 드라마 이산이 픽션의 세계라면, 그것의 메이킹 과정을 다루고 있는 무한도전은 논픽션의 세계이다. 그러나 무한도전 자체도 실재하는 세계가 아니라 오락 장르의 법칙에 따라 연출된 허구의 세계이다. 그 허구의 세계 속에서 무한도전 멤버들이 도전하는 이산의 세계는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진지한 도전 대상이 되는 실제의 세계이다. 그렇다면 이산이 무한도전을 꿈꾸는 것인가 아니면 무한도전이 이산을 꿈꾸는 것인가? 김태호 PD는 장자의 호접몽 고사를 탈장르화된 미디어 환경을 성찰할 수 있는 이야기로 재해석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무한도전이 <뉴하트>가 아닌 <이산>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현대극은 <드라마 특집>에서 이미 경험해 보았기 때문이다. 만일 <뉴하트>에 무한도전이 출연했다면 소재고갈이란 비난을 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리고 이산에는 이병훈 PD라는 사극계의 거장이 버티고 있지 않는가. 그 정도의 인물이라면 멤버들의 기존 이미지를 재생산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각자에게서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해내줄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나는 이산을 시청하며 가마꾼으로 분장한 박명수의 표정을 보며 반갑기도 하면서 흠칫 놀라운 느낌이 들었다. 그처럼 무표정하고 진지한 박명수의 얼굴을 본 적이 있었던가? 비교적 장시간 등장했던 유재석 또한 마찬가지이다. 주모의 엉덩이를 치며 능글맞은 연기를 펼쳐보이는 유재석의 웃음소리와 표정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의 모습과 닮은 듯 닮지 않았다. 정준하, 정형돈, 하하, 노홍철도 마찬가지이다. 특히 이병훈 PD가 멤버들 중 가장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고 극찬한 정형돈은 어색한 뚱보로서가 아니라 청나라 상인을 진지하게 연기하고 있는 연기자였을 뿐이었다. 다시 말해 무한도전 멤버들은 연예 오락 프로에서 만들어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사극 속 인물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단지 그들의 모습이 다른 보조출연자들에 비해 잘 알려져 있는 탓에 보다 부각되어 비춰지고 있을 뿐 이산에 출연한 무한도전 멤버들을 쇼 오락 프로그램에서 보아왔던 모습들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기는 힘들다.
그런 점에서 배국남 기자는 흥미로운 분석을 시도했다. <극의 흐름과 성격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무한도전’에서 구축한 캐릭터를 이용하거나 반대로 활용해 재미를 줬다. 늘 거성으로 군림한 박명수는 존재감이 전혀 없는 가마꾼으로 그리고 착한 이미지의 유재석을 주모를 꼬시는 주막 손님으로 등장시키는 것은 성격을 반대로 활용한 것이고 정준하의 경우 ‘무한도전’캐릭터를 활용한 경우다.>( ‘무한도전’, ‘이산’ 출연, 독 아닌 약!) 그러나 무한도전 <이산 특집>을 시청한 시청자라면 무한도전 멤버들의 기존 캐릭터를 활용했다는 그의 분석이 완전히 틀렸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뛰어난 감독이란 배우들의 기존 이미지를 반복하는 게 아니라 그들에게서 "닮은 듯 닮지 않은" 미묘한 차이를 포착할 수 있는 눈을 가진자이다. 그런 점에서 이병훈 PD는 조금은 낯설고 조금은 색다른 멤버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내는데 성공했다.
이현우 기자는 카메오의 역할과 기능을 근거로 무한도전이 사극 자체의 집중도를 떨어뜨렸다고 지적한다.
<‘무한도전’을 모른다면 14일 ‘이산’ 방영분이 크게 문제될 까닭이 없다. 하지만 게시판에서 보여지듯 ‘무한도전’의 시청자들에게 ‘이산’ 35회는 ‘무한도전 숨은 그림 찾기’ 그 이상이 아니었다. 유재석, 박명수, 하하, 노홍철, 정형돈, 정준하의 엑스트라(보조출연자) 도전기에 박장대소 하는 사이 ‘이산’의 내러티브가 심각하게 흔들릴 정도라고 평가할 수는 없을지 모르겠다. 이병훈PD의 연출이 결코 선을 넘는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분명 극 자체의 집중도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가장 심각한 예를 들어 청나라에 간 대수가 저잣거리에서 청나라 상인으로 분한 정형돈과 마주치는 장면은 정형돈의 등장으로 시청자들이 박장대소하고 있는 사이 대수의 애절함을 반감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은 자신의 모든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히치콕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않다. 뒷모습만 비추기도 하고, 때로는 신문 속에 사진 한장으로 등장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 환경의 차이로 히치콕의 얼굴이 당시 영화팬들에게 썩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음을 주지할 때 히치콕의 그러한 행동은 히치콕 영화 팬들에게 극의 내러티브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숨은 그림 찾기의 즐거움을 줄 수 있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히치콕의 경우와 전혀 다르다.>(무한도전판 이산 과연 재밌기만 했나? 얻은 만큼 잃었다!)(인용자 강조)
그러나 기자의 분석은 몇 가지 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카메오 개념을 근거로 무한도전의 이산 출연을 비판하기 위해 그가 예로 들고 있고 있는 히치콕의 영화는 너무나 고전적인 전범이다. 기자 스스로 "미디어 환경의 차이"을 인정하고 있듯 당시 히치콕 감독은 대중들에게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무한도전 멤버들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낡아버린 고전적 개념 정의를 변화된 미디어 환경에 그대로 적용하려는 시도는 적절치 못할 뿐만 아니라 시대착오적이다. 차라리 그가 톰 크루즈, 기네스 팰트로, 브리트니 스피어스, 스티븐 스필버그 등 초호화 카메오 군단이 등장하는 <오스틴 파워 골드멤버>(M.제이 로치,2002)나 유승완, 유승범, 정재영, 이금희 등이 출연하는 <복수는 나의 것>(박찬욱, 2002) 또는 이준익 감독이 직접 연기를 선보였던 <라디오 스타>(이준익, 2006) 등을 예로 들었다면 보다 현실성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기자가 정형돈이 등장한 순간 시청자들이 박장대소했을거라 추측했지만, 2-3 초 가량 등장하고 배경으로 물러난 그의 모습 때문에 극에 몰입할 수 없었다면 그건 주의력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정형돈이 등장한 장면을 보다 정확히 분석해 보면, 대수가 청나라 예부사에서 송연이 쫓겨난 사실을 인지하는 실내 장면에서 송연이 여각에 돈 대신 지불한 송연의 물건을 발견하며 슬픔에 잠겨드는 실외 장면으로 전환되는 시점에 등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대수가 사실을 인지하고 놀라게 되었다가 송연이 어디론가 떠났다는 사실을 알고 슬픔에 잠기게 되는 감정의 전환점으로서 정형돈이 등장한 장면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극의 내러티브를 손상시키지 않으면서 매우 자연스럽게 카메오를 활용하고 있는 경우로 볼 수 있다.
결국 기자는 온갖 현학적인 수사를 동원해서 비판을 시도하고 있지만, 그 저의에는 코미디언은 사극과 같은 정극 연기를 할 수 없다는 편견과 선입견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그의 가장 결정적인 패착은 정형돈의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점에 있다. 무한도전 내에서 웃기는 것은 빼고 모든 것을 잘 하고, 입을 열 때마다 큰 웃음이 빵빵 터진다고 말을 해야 웃음을 줄 수 있는 어색한 뚱보 정형돈이 설마 사극에서 등장하자 마자 큰 웃음을 주었겠는가!
기사에 대한 분석에서 알 수 있듯이 희극 연기자와 정극 연기자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입견은 매우 뿌리가 깊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무한도전의 출연진들처럼 독한 캐릭터에다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을 경우 더욱 심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경우 로빈 윌리엄스처럼 코미디언 출신의 배우들이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것과는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우리의 경우 코미디언 임하룡이 영화계로 진출하기 위해 얼마나 오랜 인고의 세월을 보냈는가 다시 한번 생각해라. 바로 이러한 질문이 무한도전의 사극 진출이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근본적 물음이다.
더 나아가 무한도전 멤버들의 숨은 그림 찾기 놀이는 시청자들에게 또 다른 종류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무한도전의 유재석과 이산의 유재석이 동일한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무한도전에서 유반장을 연기하는 유재석과 이산에서 주모에게 수작을 거는 연기를 하는 유재석은 동일한 인물이면서 또한 동일한 인물이 아니다. 이는 A는 A이면서 A가 아니다라는 역설의 논리이자 자아의 정체성과 관련된 고도의 추상적 질문을 함축하고 있다. 바로 이 지점에서 김태호 PD가 인도로 떠나며 시청자들에게 남겼던 두 가지 메세지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는 이산 속 무한도전 멤버들을 찾아보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무한도전 다음 편의 주제가 역대 가장 심오한(?) 주제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문제를 다룬다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산 보조출연 특집> 편은 전편인 <드라마 특집>의 주제를 계승, 반복하면서 다음에 올 에피소드인 <인도 특집>을 예비하고 있다.
멍청한 팬은 안티보다 무섭다.
풍자를 풍자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풍자되고 있는 대상에 대한 지식과 풍자되고 있는 대상으로부터 비판적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태도를 필요로 한다. 이 두 가지 조건 중 어느 하나라도 결여되어 있을 경우 풍자는 더 이상 풍자로 받아들여지지 않게 된다. 가령 지식이 결핍되어 있을 경우 풍자를 이해하지 못하게 되고, 풍자되고 있는 대상에 너무나 밀착되어 있을 경우 풍자라는 사실을 인식하기는 하지만 심한 모욕감과 불쾌한 감정이 생기는 것을 어찌할 수 없게 된다. 가장 최악의 경우는 이 두가지 모두를 지니고 있지 못한 경우인데, 그럴 경우 풍자극을 보는 사람은 미쳐 날뛰게 된다.
<자유를 향한 투쟁 이렇게라도 말하고 싶다>라는 자막을 보았다면, 최소한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토록 절박한 호소를 하도록 만들었는가 생각해봤어야 했다. 박명수 반장의 폭정을 지켜보며 앞으로 2주를 더 어떻게 참고 견디어야 할까 하는 기분이 들었다면, 그러한 일이 지금 실제로 일어나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5년이란 기나긴 시간을 그러한 기분으로 보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야만 했다. 그나마 박반장의 약속된 임기인 3주 후면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게 될테고(신임 대통령 취임식이 2월 25일로 예정되어 있다), 더 이상 이러한 풍자극도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도래할지 모른다. 자, 그 때가 되면 다시 원래대로 유반장이 무한도전의 MC를 보게 될테니 만족스러운가?
"반장 인수위원장 정석권 실장 내정", "과거는 없다 확실한 끌어안기", "언론 탄압", "간신들", "국무총리의 용비어천가", "철거반장, 폭력정치, 권력남용", "실용주의 개그", 유반장의 새신 밟기 퍼포먼스 등 무한도전 이산 편의 자막은 정치적 은유들로 넘쳐났다. 그러한 은유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채기 위해서는, 인수위의 독선과 오만함을 알아야 하고, 그곳에서 친일파 청산과 같은 과거사 관련 14개 위원회 모두를 폐지키로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언론사 간부들의 성향조사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MB의 측근인 정병국 문광위원이 인터넷 포털과 인터넷 언론조차 신문에 준하는 규제를 받게 하겠다고 발언한 사실을 알아야 하고, 대선과정에서 진실을 규명하고자 한 MBC에 대해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던 한나라당과 MB 캠프가 "대선승리의 전리품"으로 MBC의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이는 공영방송 MBC를 권력과 자본에 충실하게 봉사하는 싸구려 S모 상업방송처럼 만들어버리려 한다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국민주 민영화"를 실행할 경우 박근혜가 실질적 지배권을 행사하고 있는 장수장학회가 30%의 주주로 남아 있는 지분을 차지함으로써 MBC의 최대주주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고, MBC 본부 위원장이 조합원들에게 보내는 절절한 편지를 알아야 한다.
유재석이 아무 이유 없이 괜히 박반장으로부터 번번히 입막음을 당하는게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손가락은 달을 가리키는데, 자꾸만 손가락 끝에 난 작은 사마귀 탓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정작 분노의 대상이자 지탄받아 마땅한 대상은 따로 있는데 애먼 박반장만 미움을 받게 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지게 된다. 어쩌면 지금 MBC 무한도전 게시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현실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거나 앞으로 우리가 겪게 될 미래를 보여주고 있는게 아닐까. 라인업이라는 오락 프로그램 하나 때문에 한동안 찌라시 언론들이 벌였던 만행에 치를 떨어보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견디며 살아가야할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 TEO PD는 앞으로 무사하려나? 이미 그의 정치성향은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사람이라면 다 알아버렸는데 말이다. MBC가 민영화되더라도 무한도전을 시청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라인업 PD가 만든 무한도전을 시청하게 되지 않을까? 그렇게 된다면 무한도전에 대한 나의 사랑 역시 미련없이 접을 것이다. 그가 없는 무한도전은 더 이상 무한도전이 아닐테니까.
by ddolappa
뱀다리) 무한도전에 대해 공감할 수 없는 내용을 전달하는 기사들에 화가 나서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쓰기 시작한 지난 리뷰에 대해 많은 분들이 격려를 보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다. 기자들처럼 제대로 된 글쓰기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이 쓴 글에 그처럼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아주신 것은 그 만큼 시청자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기사들이 부족하다는 반증이 아닌가 한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거대해진 우리나라의 대중오락산업과 전 세계에서 까다롭기로 소문난 시청자들의 눈 높이에 걸맞는 담론이 부족하다는 사실은 기존의 언론들이 한번 쯤 반성해봐야 할 부분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흥미있었던 반응은 무한도전 팀이 동해 가스전에 찾아간 것은 단순히 재미있는 소재를 택한 것 뿐이지 "정치적 알레고리의 무대"로 바라본 나의 해석은 꿈보다 해몽이 좋은게 아닌가 하는 지적이었다. 사실 맞는 말이긴 하다. 그러나 오락 프로이니 재미를 주려고 갔겠지 하는 태도와 방송에서 자세히 다룰 것도 아니면서 왜 가스전에 갔을까 하고 묻는 태도는 확연한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와 같은 태도의 차이가 지난 주와 같은 헛소동을 낳았고, 정치 풍자극으로서 무한도전이 지닌 새로운 가치와 재미를 자칫 놓칠 수도 있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삶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사니까 그냥 사는 거지라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과 왜 사는 것일까 질문하며 사는 사람의 삶에 대한 태도와 삶의 질은 다를 거라 생각한다. 전자에게 삶이란 무의미하고 고단한 것일 뿐이라면, 후자에게 삶은 비록 힘들지라도 도전해볼 만한 모험으로 가득 찬 세계로 비춰질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러한 후자의 태도가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일들에 대한 도전을 통하여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이 시청자들에게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아닐까 한다. 삶이란 비록 고되지만 열심히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결국 꿈을 의미없는 개꿈으로 만드는가 아니면 앞으로 나타날 일을 미리 보여주는 예시몽으로 만드는가는 전적으로 해석에 달려 있다고 본다. 이미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1900)에서 하찮은 꿈은 없으며 꿈이 우리의 삶에 의미를 갖고 나타나게 되는 것은 해석에 달려 있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그렇다. 꿈보다는 해석이 중요하다. 동일한 TV 프로를 시청하고도 각양각색의 해석들이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각 개인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세상을 얼마든지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고, 해석의 가지수 만큼 세상은 보다 풍부한 의미를 갖고 우리 앞에 펼쳐질 수 있게 된다. 결국 삶의 문제는 To be or Not to be, 즉 존재와 비-존재, 의미와 무의미, 삶과 죽음 간의 선택의 문제이다. 무한도전의 애청자라면 어떠한 태도를 선택하는게 맞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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