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은 동네북이 아니다!
- 한 주교의 무한도전 비판
무한도전은 그 동안 수많은 인터넷 언론의 공격을 받더니 이제는 한 종교인까지 나서서 비판하는 수준에까지 다다랐다. 그것도 나훈아 사건을 통해 찌라시 언론의 문제점을 거론하는 다소 생뚱맞은 자리에서 말이다. 한 예능 오락 프로를 좋아하는 일이 이처럼 힘들고 서글플 정도로 힘든 경우는 참으로 처음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비판이라는 것이 정당하고 타당하다면 최소한 억울하다는 심정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우선 조규만 보좌주교가 무한도전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정확한 맥락을 살펴보도록 하자.
"낚시질에도 다 미끼가 필요하죠, 도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사람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잡는 어부가 되죠.
우리 매스미디어가 (사회에) 굉장히 큰 영향을 주는데 많은 사람을 좋은 쪽으로 낚을 수도 있지만 때때로 사람을 잡는 경우도 많죠. 전 분명히 그런 것 같아요. 그 영향력이 크면 클수록 좋을 수도 있지만 나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언론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매도해 잘못되게 만들었는지 알죠. 최근에 나훈아가 바지 허리띠를 풀렀대요, 언론이 하도 괴소문을 하는데 동조해가지고 진실을 보여주기 위해 허리띠를 풀렀대요.
저는 (MBC)'무한도전'을 볼 때 마다 우리나라를 저질화시키고 , 왜냐면 내가, 그것을 시작할 초창기에 어떤 (TV)프로그램에 보니까 한쪽에서는 초등학교에 들어간 영재들이 투자와 투기에 대해서 구별하고 자신들이 돈이 천만원이 있을 때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 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 옆에 다른 TV에서는 30대 먹은 남자애들이 한 박자도 쉬고 두 박자 쉬고 놀이하는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었어요. 그게 벌써 인기가 돼가지고 수도 없이 방영하고 그게 지금 우리나라 실정이예요."
(<조규만 보좌주교, '무한도전' 맹비판 "우리나라 저질화시켜", 마이데일리 고홍주 기자>에서 인용)
26일 서울지역 가톨릭 언론인들 모임인 '서울매스컴 위원회 창립대회' 축사에서 조규만 보조주교는 언론의 무책임한 보도태도를 지적하는 자리에서 무한도전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맥락을 살펴보았을 때 전혀 뜬금없는 맥락에서 무한도전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고 말도 횡설수설에 가깝다고 보인다.
찌라시 언론이 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한 보도로 악성 루머를 키우고 국내 연예계의 대부인 나훈아 씨가 바지까지 벗게 된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 것과 무한도전이 저질스러운게 무슨 연관이 있는가? 무한도전이 찌라시 언론처럼 누구를 모함하고 바지까지 벗게 했는가? 오히려 무한도전은 그러한 무책임한 언론의 또 다른 피해자가 아니었나? 대표적으로 나경은 씨 사건을 보도록 하자. 72시간이나 유재석 씨의 집 앞에서 숨어서 기다리다가 나경은 씨가 탄 외제차만 보고 사실 확인 없이 유재석 씨가 사준 것이라는 기사를 내서 구설수에 오른게 불과 며칠 전 일이다.
그리고 조규만 주교가 비판하고 있는 무한도전의 내용은 기사에서 추측해보았을 때 시즌 2 시절 아하 게임을 하던 때로 보인다. 벌써 2년도 더 지난 방송을 기억하시는 기억력은 놀라우나 그 뒤로 무한도전이 크게 성장해서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때는 단 한번도 시청하지 않으신 채 안 좋았던 기억에만 의존해서 비판을 하시는건 정말 어이가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주교의 관점에서는 사울이 바울로 개종하기 이전에 했던 언행들 때문에 비판을 받는 것 역시 정당한 일인 것인가? 바울로 개명한 후에 그가 기독교에 끼친 큰 영향력은 무시한 채 말이다.
더우기 그 발언이 카톨릭 언론인들의 모임 자리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면, 조규만 보고주교의 발언은 자신이 비판하는 찌라시 언론만큼이나 무책임하고 무성의하다고 보인다. 무한도전에 대해 비판하고 싶으셨다면 최소한 최근의 무한도전을 시청했어야 했고, 언론들이 어떤 식으로 무한도전을 대해왔는지 알았어야 했고, 실언에 가까운 이 발언이 다시 찌라시 언론들에 의해 무한히 확대, 재생산되어 무한도전을 옥죄는 수단으로 사용될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았어야 한다고 보인다. 미디어의 현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지도 모른 채 편견에 사로잡혀 내뱉는 말로 현실을 개혁할 수 있을 거란 착각과 망상은 오히려 공포스럽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주일 씨가 나와서 수지Q를 외치며 능청스런 춤을 따라했을 때도, 심형래 씨가 땡칠이와 함께 바보 흉내를 내는 모습을 보며 박장대소를 했을 때도, 무한도전이 모두 서른이 넘은 나이에도 국민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처절한 몸개그를 펼칠 때도, 어른들은 항상 저질스럽다며 우리를 텔레비전으로부터 떼어놓으려 하셨지만, 내가 이제 그 분들만큼의 나이를 먹은 지금도 무엇이 그렇게 저질스럽고 나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자신들도 유행어나 코미디언들의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흉내내며 성장해왔으면서, 나이 좀 먹었다고 그러한 사실을 부정하는 위선적인 태도를 취하는게 과연 아이들을 교육하는데 얼마나 유익한 것인지 정말 모르겠다. 게다가 보좌주교가 말하고 있는 것처럼 초등학생들이 일찍부터 자본주의적 경제 질서를 배우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것보다 무엇이 더 그렇게 유익한 것인지는 더더욱 모르겠다.
보좌주교가 한 오락 프로그램이 그렇게 저질스러우셨다면, 코미디보다 더 코미디같은 정치인들의 저질스러움과 폭력성은 어떻게 참고 견디셨는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그곳에서 거짓말과 배신이 일상이고, 수시로 이전투구와 같은 난투극이 펼쳐지는 폭력의 세계이고, 여성을 성희롱하고도 교묘한 변명과 궤변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세계인데, 그들이 그렇게 활개를 칠 때 조규만 보조주교님 당신은 대체 어디에 계셨습니까?
대중문화를 비판하기 위해선 그것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해도 없이 비판의 칼날을 먼저 빼드는 건 선무당이 사람 잡는 격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워낙 높은 곳에 계시다 보니 아랫 동네 사람들 노는 꼴이 볼성사나워 보이시겠지만, 낮은 데로 임하시면 그들 모두 사랑스러운 주님의 자식들임을 깨닫게 되실 거라 생각한다. 부디 그리스도를 내리치던 로마 병정의 채찍을 드는 대신 막달라 마리아를 내려다 보던 자애와 사랑 가득한 눈길로 대중문화를 바라봐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리고 싶다.
그리고 조교만 보조주교님의 가장 큰 오해들 중 하나는 언론의 보도태도와 코미디 오락 프로그램에 대한 차이점을 망각하신데서 기인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는 글 하나를 인용하며 글을 끝맺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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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팽 풍자사건
프랑스 정치의 경우 좌파에서 우파까지 여러 스펙트럼에 따라 연속적으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의 색깔을 가진 정치집단인 정당과 정치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정당의 정책이나 노선은 물론 특정 정치인의 성향이나 가치관, 행동상황 등에 관하여도 쉽게 알 수가 있다. 그만큼 정치인들이 스스로의 정치 철학을 가지고 행동한다는 의미도 된다. 아무튼 대중이 정치인을 대하거나 비판·풍자하기가 우리보다는 쉽다고 할 수 있다. 프랑스에 있어 정치인에 대한 코미디 소재로서의 비판과 풍자가 어느 정도까지 허용되는지 알아 볼 수 있는 파기원의 여러 판결이 있다.
그에 대한 판결 자료를 제공한 인물이 프랑스의 극우정당이라고 불리는 국민전선(Front national) 당의 당수 르팽(J. M. Le Pen)이라는 인물이다. 르팽은 대통령 선거마다 출마한 인물이기도 하다(국민전선은 몇 해 전까지 지방선거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였고 국민의 지지율도 상당히 높은 편이었으나 최근에 지도부가 양분되는 등으로 점차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그가 여전히 상당한 정도의 인기를 누릴 때인 1990년 가을에 이라크의 수도 바그다드에 여행을 다녀왔다. 당시는 이라크가 미국을 상대로 걸프전을 치르고 있는 중이었는데, 르팽 일행은 당시 이라크 대통령인 후세인으로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고, 전통적이고 매혹적인 이라크 무희들의 배꼽춤(la danse du ventre)을 관람하고 돌아왔다. 이에 대하여 코미디언인 귀 베도(Guy Bedos)가 르팽 일행의 여행 중의 행동을 비꼬는 풍자와 익살을 연출하면서 혹시 후세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는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은근히 내비치는 표현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국민전선과 르팽이 그 코미디언을 형사 고소하여 문제화되었다.
기자와 같은 주의의무는 없다
파기원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판결하였다. 즉 “국민전선과 그 당수인 르팽이 외국으로부터 그것도 전쟁 중인 상태에서 적국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사실은 대역죄나 국토방위의 침탈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중대한 범죄행위에 해당한다. 따라서 확인되지 아니한 사실을 함부로 말하는 것은 아무리 그 형식이 풍자나 유머의 영역에 속한다고 하더라도 명예훼손을 구성하는 범죄행위에 해당한다.”고 일반론을 전제한 다음, “선진 민주사회에 있어 특히 정치적인 문제와 관하여는 폭넓은 비판과 풍자, 해학과 유머의 자유가 허용된다.”고 판시하였다. 그에 덧붙여 역사에 비추어 보면 모든 시대에 걸쳐 코미디언이 정치적인 인물에 대하여 악의적인 적대감을 가지지 아니하고 그들의 생각을 비판하고 풍자함으로써 발전적이고 건강한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여 왔음을 인정하고, 코미디언이 정치인을 대상으로 정치적 풍자나 해학을 함에 있어 기자와 같은 정도의 신중성이나 객관성을 가지고 사실을 확인할 의무가 있다고 요구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즉 예술가에게 정확한 사실보도와 진실의 존중에 있어 기자와 같은 정도의 엄격한 주의의무가 없다고 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 사건에서 귀 베도의 위 정치적 풍자와 익살이 다소 신중성을 결한 잘못을 있으나, 대중을 즐겁게 하여 주는 그의 직업적 성격과 그 코미디 프로그램의 성격에 비추어 유머리스트로서의 재능을 정상적으로 행사한 범위 내의 예술적인 표현행위로 보여지고, 표현의 자유의 합리적인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고 하여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하였다.
우리의 경우와 프랑스의 경우가 각기 정치적 현실이나 정치수준, 국민의식의 정도는 물론 코미디의 수준과 코미디언의 의식, 그에 대한 대중의 생각 등이 다르다고 할 수 있어 위 판결의 태도를 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다고 보나 (물론 르팽 당수의 끊임없는 돌출 행동과 극우적인 발언 등이 작용한 탓도 있을 수 있으나 이는 일반인의 비판적이거나 부정적인 의식이나 판단에 머무를 뿐 판결에서 그에 대한 언급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 기초에 깔려 있는 정치적 풍자에 관한 기본적인 허용의 정신을 본받을 수 있을 것이다.
(김재협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 법률 속 언론, 언론 속 법률 27 / 코미디의 정치 풍자 어디까지 가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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