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미술의 시작 화가 폴 세잔
현대 미술의 시작을 알려준 폴 세잔은 화가로서 성공이 상당히 늦은 편이었다. 비평가들이나 친구 동료 화가들로부터 일찍 인정받지 못했으나 자신의 신념을 굳히지 않고 침묵 속에서 묵묵히 작업을 하면서 뒤늦게 인정받게 된다. 세잔의 작품은 풍경, 정물, 인물이 작품의 주요 테마다.
세잔의 표현기법을 발전시켜준 것은 정물화였다. 특히 세잔에게 사과는 무척 중요한 소재였다. 역사상 유명한 사과는 아담과 이브의 사과, 뉴턴의 사과 그리고 세잔의 사과다. 사과 하나에 현대 미술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세잔이 사과를 처음에 그린 것은 신화를 소재로 한 작품을 제작하면서부터다. 그 이후로부터 세잔에게 사과는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사과와 오렌지> 이 작품의 구상은 세잔이 1893년에 했다. 그 이후 완성된 이 작품은 사과와 오렌지 그리고 화려한 식탁보가 어울려져 혼란스럽게 보이는 것이 특징이나 세잔은 사과와 오렌지, 식탁보, 접시나 술 단지 등 어느 것 하나만 시선을 두고 그리지 않았다. 그는 이 작품에서 원경과 근경, 밝음과 어둠,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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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오렌지>--1895〜1900년, 캔버스에 유채, 74*94, 파리 오르세 미술관 소장
세잔은 이 작품에서 식탁을 내려다보는 시점을 선택해서 그림을 그렸는데 그것은 식탁의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또한 이 작품은 여러 개의 선이 직각으로 교차하여 입체감을 주고 있다.
세잔은 말년에 프랑스 엑상프로방스 지방에 은둔하면서 자연 속에 파묻혀 살았다. 그의 말년 작품 대부분은 위대한 자연을 표현하는 데 주력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생트빅투아르 산> 이 작품은 엑상프로방스에 있는 생트빅투아르 산을 주제로 한 18점도 넘는 작품 중에 하나다.
세잔은 말년에 생트 빅투아르 산을 지치지도 않고 되풀이해서 그렸다. 그는 계절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변하는 산의 모습에 빠져 들었는데 세잔이 은둔하고 있는 아틀리에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어 독특한 각도에서 산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산의 구조를 사랑하고 탐구해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세전이 표현한 생트 빅투아르 산은 언덕, 땅, 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산은 아니다. 그가 표현한 산은 풍경과 구분되어 하나의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
이 작품에서 생트 빅투아르 산은 화면 왼쪽에 있는데 세잔이 주변의 풍경에서 산으로 점차 관심이 옮겨질 때 이 작품을 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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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빅투아르 산> 1885~7년, 캔버스에 유채, 65*81,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 소장
이 작품에서 산은 정상에서 오른쪽으로 완만한 구릉을 뻗치고 있고 그 아래에는 육교가 걸쳐 있다. 정면에 있는 소나무가 화면 좌우를 가르고 있고 소나무의 나뭇가지는 장식적인 효과를 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 그의 절제된 기법은 화면의 질서와 조화를 보여주고 있고 오렌지색과 녹색의 대조는 매우 강렬한 인상을 주고 있다.
폴 세잔<1839~1906>은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반대했으나 화가로서 빠른 성공을 기대한 아버지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아버지의 희망과는 상관없이 세잔의 그림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공식 등용문인 살롱전에 낙선을 하면할수록 화가의 길로 가야한다는 신념이 굳어졌다. 세잔의 나이 오십에 아버지가 화가로서의 그의 인생을 걱정해 막대한 유산을 남겨줌으로서 그는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었다. 경제적으로 완전히 자유로워진 세잔은 아내와 아들은 파리에 남겨둔 채 조용하게 작업하기 위해 고향 엑상프로방스에서 은둔생활을 하기 시작한다.
엑상프로방스에 머물면서 세잔은 같은 주제와 같은 구성의 연작을 점점 더 자주 그렸다. 이때부터 그의 그림은 프로방스의 색채를 띠기 시작한다. 밝고 풍부한 색채와 엄격한 화면의 구성의 조화를 위해 그는 모든 노력을 기우렸다.
1895년 화상 볼라르에 의해 기획된 최초의 개인전을 계기로 세잔은 파리 미술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을 받았다.
등록일 : 2007-10-16
출처 : 소르본느 서재
글쓴이 : 유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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