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11> 자신을 버려 웃음을 이루다(殺身成喜)
조인성, 당신 그런 캐릭터였어?
지난 주에 이어 무한도전에 모습을 드러낸 조인성은 멤버들에게 한층 동화된 면모를 보여주었다.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들과 벌인 팔씨름 대결에서 질 뻔하면 재빨리 손을 빼내거나 패배 이후 '밥만 먹고 왔어도 이길 수 있었는데, 아침에 너무 빨리 왔어요'라며 억울한 듯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다. 또한 어느새 박명수의 거성급 술수를 터득해서 두 손으로도 공격하는 의외의 모습은 제 7의 멤버로 꼽히더라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처음 등장했을 때 그가 내뿜었던 포스가 많이 사라진 대신 자연인 조인성의 '쌩얼'이 소탈한 매력을 발산했던 방송분이었던 것 같다.
그는 대결 상대인 양재훈 선수에게 봐 달라고 모종의 제의를 했다가 양재훈 선수가 그 사실을 폭로하자 '아니 저를 봐 달라고요. 얼굴을 봐 달라고.'라며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기도 했고, 박명수가 말하는 순간 재빨리 끼어들어 방송 분량을 빼앗는 순발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당황한 박명수가 '내 분량이야, 내 분량. 인성아, 형 분량 나와야지!'하고 다급하게 외쳤지만 '제가 먼저 살고요'라고 말하는 조인성의 무한이기주의는 "무한도전의 모든 관계자가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얼마전 조인성은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대표작으로 <논스톱>을 선택해서 다소 의아한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무한도전에 출연한 그의 모습을 보니 그 의문이 해소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그가 파국적 결말로 치닫는 비극적 사랑의 주인공으로 열연을 펼쳤던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도 천진난만하고 장난꾸러기 같은 모습들이 언뜻 내비쳐서 뭇 여성들의 마음을 꽤나 설레이게 했던 것 같다. 이 날 함께 출연했던 김현철이나 박휘순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조인성을 보면 신은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얼굴이 잘 생겼으면 웃기지나 못하던가, 키가 크면 몸치라서 운동이라도 못하던가 할 일이지 말이야!
무한도전의 담당 PD인 김태호 PD마저 그런 조인성의 매력에 푹 빠진 듯 형평성을 상실한 자막으로 비굴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선수들과 함께 한 유연성 훈련에서 유재석이 다칠 것 같다며 망설이자 조인성이 '그냥 제가 나갈게요'라고 말하며 선뜻 나서게 된다. 이 때 TEO PD는 궁서체로 쓴 '인성님 옥체 보전하옵소서'란 자막을 내보낸다. 또 정준하가 상체 근육 운동을 시도할 때, 그의 큰 얼굴을 감안하여 조인성이 생크림 산을 쌓고 바나나로 데코레이션을 마무리하자 '예능계 사자 새끼를 불러들인 바보형'이란 자막이 등장한다. 김태호 PD가 이렇게 따뜻한 모습을 멤버들에게 보인 적이 있었던가? 진정한 매력남은 '악마의 아들'마저 춤추게 하는 것 같다.
태능 출신 예능인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무한도전의 촬영장 분위기에 녹아든 것은 조인성만이 아니었다.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들도 한층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국가대표급 유머 감각을 마음껏 발산했다. 조인성과의 팔씨름 대결에서 '10년째 유망주'인 정대이 선수가 과장된 몸짓으로 겁주기에 성공하자 그 다음 대결 상대로 지목된 55Kg급 양재훈 선수가 상대적으로 작은 체구임에도 몸을 부풀려 겁을 주는 장면은 이 선수들이 웃음의 법칙 중 하나인 '반복의 원리'를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또한 유재석이 조인성씨는 지기 직전에 손을 빼냈기 때문에 한 번도 완벽하게 진 적이 없다고 말하자 곧바로 조인성과 팔씨름 대결을 했던 고승진 선수가 그의 손목을 완전히 제압해서 굴욕을 안겨주었던 장면 역시 녹록치 않은 유머 감각이 빛을 발한 장면 중 하나다.
이승철 선수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지난 주에 이어 또 하나의 굴욕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지난 주 정형돈의 무시무시한 "족발슬램"에 맥을 못 추고 쓰러졌던 이승철 선수는 이번 주에도 정형돈과 대결을 벌여야했다. 그러나 90Kg에 육박하는 정형돈에게 60Kg급인 이승철 선수는 다시 한번 속절없이 당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서 또 하나의 굴욕적인 장면을 예감케 했다. 정형돈과의 팔씨름에서 질 것 같자 재빨리 손을 빼내는 이승철 선수가 못마땅했는지 또 다른 'MC유'인 유영태 레슬링 국가대표 총감독은 '지면 오늘 저녁에 야간 운동하면 되니까'라며 은근히 엄포를 놓았다. 감독님의 말에 갑자기 전의가 불타오른 이승철 선수는 사뭇 비장한 표정으로 경기에 임했지만 다리까지 비비 꼬으며 안간힘을 쓰다가 결국에는 체중을 실은 점프를 통해 아슬아슬하게 정형돈에게 승리를 거두게 된다. 정형돈의 "족발보다 무서웠던 감독님 말씀"이란 자막은 이 상황을 적절하게 요약해준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조병관 선수도 굴욕적인 장면을 피하지는 못했다. 유연성 훈련을 선보인 후 제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그는 괜찮냐는 유재석의 물음에 어지러움을 느끼는 듯 정신없는 모습으로 '어?'하고 대답을 하게 된다. 눈치 빠른 유재석이 이 모습을 놓치지 않고 마무리만 PD가 잘 다듬으면 멋지게 나올 것 같다고 말하자 '악마의 아들' TEO PD는 리플레이를 통해 이 장면을 확인시켜준다. 여기에서도 TEO PD는 'ㅋㅋ.... 그래서 한 반복편집'이란 자막으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데, 이번 방송분에는 PD의 존재를 알리는 궁서체 자막이 유난히 많이 등장하는 편이다.
유재석이 조병관 선수와의 유연성 훈련에서 다소 민망한 부위에 머리를 파묻는 '대참사'를 일으키자 멤버들은 '더티 재석'이라며 졸지에 치한이 된 유재석을 '불같은 따귀'로 응징하게 된다. 이 때 노홍철이 유재석을 향해 '내 항문보다 더 더럽다'며 '더 맞아! 더 맞아!'하고 소리치며 따귀를 때리는 시늉을 하자 '맞아 본 놈이 잘 때린다더니'하는 궁서체 자막이 등장한다. 또 박휘순이 '혼자 먼저 겪은 서울구경 특집2'를 찍으며 수원에서 4시간이나 걸려 어렵게 촬영장에 도착했지만 습관성 탈골로 인해 시작도 못해 보고 전력외로 분류되자 '4시간 걸려 왔는데 할 게 없다니....'란 자막으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리고 박명수가 김현철의 꿈이 무한도전에 고정 출연하는 것이라고 말하자 '우리 서로의 꿈이 다르네요.'라며 TEO PD는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기도 했다. 이처럼 빈번하게 TEO PD가 등장하는 까닭은 하하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분골쇄신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해석해도 좋을 듯싶다.
수술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
무한도전의 재치있는 자막은 익히 정평이 나 있지만 때로는 문학 작품의 한 구절을 연상시키는 탁월한 감각을 보여주기도 한다. 서로 이질적인 두 사물들을 은유적 연상작용을 통해 결합시키고 있는 자막의 언어는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게' 아니라 '읽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는 경우가 있다.
가령 스트레칭하는 박명수의 모습을 보고 유재석이 전갈 자세라고 하자 재빠르게 자막은 '스콜피언 박'으로 표현하고 있다. 팔씨름 도중 폴짝 뛰어오르는 유재석의 등에 메뚜기의 날개를 CG로 처리하고 '비행'이란 자막을 넣은 장면은 언어와 이미지 영상의 결합을 통해 유재석을 메뚜기로 치환하고 있다. 그리고 이기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위해 바등거리는 다리를 '흥겨움에 스텝 밟는' 모습으로 표현하거나 실제로 춤을 추고 있다는 듯이 '원 투 차차- 쓰리 포 차차-'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처럼 무한도전의 자막은 서로 동떨어진 대상들을 연결시켜 익숙한 사물들을 낯설게 만드는 데서 시청자들에게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있다. 시청자들은 익숙한 장면이 낯설게 표현됨으로써 일반적인 예상에서 벗어나는 '우연'과 '충격'을 경험하게 되는데, 이러한 경험들이 잠시나마 일상으로부터의 일탈과 해방감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에 무한도전을 시청하는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있다.
20C 초에 등장한 초현실주의의 선구자이기도 한 프랑스의 시인 로트레아몽*)은 "수술대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이란 시구절을 통해서 우리가 언어를 통해 마음 속 깊숙히 잠재해 있는 무의식으로 나아가는 출구를 열어주었다. 그리고 르네 마그리트가 회화를 통해서 이러한 기법을 활용하고 있다면, 찰리 채플린은 영화를 통해서 우리를 낯설지만 즐거운 세계로 안내하고 있다.
가령 찰리 채플린은 <황금광시대 Gold Rush>(1925)에서 굶주림에 지친 나머지 자신의 구두를 삶아서 스테이크처럼 먹고, 구두끈을 스파게티처럼 말아먹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굶주린 찰리의 시선을 통해 사람들의 다리와 발이 포크와 빵이 되어 춤을 추는 명장면은 그가 초현실주의의 상속자임을 유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적 유산은 현대의 산업사회에서도 면밀히 계승되고 있는데, 그것은 바로 광고의 영역이다. 아이러니한 점은 초현실주의자들이 이러한 기법을 통해 인간 해방을 꿈꾸었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광고는 대중들의 시선을 붙잡고 그들을 물신적 욕망의 노예가 되도록 하기 위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크림이 입 주위에 묻은 박명수를 만화영화의 주제곡을 배경으로 '파파 스머프'로 표현한 장면이나 천정을 보며 뒤집혀 있는 정형돈의 모습을 '두툼하게 알 밴 형돈 복어'로 표현한 장면 역시 재치있는 연상작용의 예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위 두 장면이 모두 노홍철의 지적에 의해 연출된 장면이라는 점은 그가 남다른 상상력을 소유한 '돌+아이'임을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노홍철 못지 않은 패션감각의 소유자이자 기발한 자막의 개발자이기도 한 TEO PD 역시 '돌+아이'?
알뜰살뜰한 재활용 개그
무한도전의 절약정신이야 익히 잘 알려진 바이지만 웃음에서까지 재활용 개그를 선보일 정도로 근검절약 정신이 투철하다는 사실을 이번 방송을 시청하며 깨달았다. 멤버들이 '자장면 쟁탈전'을 벌이기 위해 선택했던 '발목에 묶인 리본을 사수하라!' 게임은 이미 <효도르 특집>에서 보았던 것이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의 영화 <10,000BC>(2008)을 패러디한 자막인 '도구 쓰는 법을 까먹은 BC 10000'이란 자막이나 '어째 점점 낮아지는 지능'은 지난 주 방영분에 등장했던 자막들의 변형이다. 박명수를 지칭하는 'So Coooool'이란 자막 역시 <기계체조 특집>에서 등장한 이후 <특전사 특집>에서도 등장하고, 이번 회에서도 등장한다.
내가 표현은 '재활용 개그'로 하고 있지만 사실 이러한 반복은 캐릭터를 각인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러한 반복을 통해 무한도전의 에피소드들 간에 어떤 연관성이 발생하게 되고 역사라는 것이 만들어지게 된다. 그런데 이런 방식으로 생겨난 무한도전의 역사성으로 인해 과거의 에피소드를 잘 알고 있어야만 웃음에 동참할 자격이 주어지게 된다.
가령 유재석이 태클을 당해 넘어지면서 '쿵' 소리를 내자 '혹시 이게 <짱짱한 쿵잔치>'라는 자막이 등장한다. '짱짱한 쿵잔치'는 <인도 특집> 2편에서 유재석과 박명수가 인도의 재래시장에서 발견한 한국산 가방에 적힌 문구라는 사실을 기억하고 있어야만 위 자막은 웃음을 준다. 그리고 지난 '반장 재선거'에서 유재석이 '쿵잔치당' 소속으로 표기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웃을 수 있다. 국가 대표 레슬링 선수 전원이 유재석에게 태클 공격을 한 뒤 마지막으로 고승진 선수가 등장하자 사용된 '쿵잔치의 대미'란 자막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 위치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들을 일일이 기억하고 있는 열혈 시청자가 아닌 이상 일반 시청자들이 이 자막들을 보고 웃을 수 있게 되기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한다. 혹시 기자들이 무한도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런 점 때문이 아닐까?
반복되는 개그의 방식은 또한 멤버들 각자의 개그 스타일을 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유재석은 레슬링 선수의 태클 공격을 당한 후 몹시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 때 먼저 아픔을 맛보았던 박명수가 다가가 신난 표정으로 아프냐고 묻자 유재석은 '아뇨, 괜찮은대요'라고 대답하며 '놀라운 회복력'과 '컨디션 최고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유재석이 보여주는 반전 때문에 실망하는 박명수의 모습은 웃음을 유발한다.
그런데 이처럼 유재석은 유재석이 고통받기를 원하는 박명수의 기대를 어긋나게 만듦으로써 웃음을 유발하고 있는데, 가령 차태현이 게스트로 출연했던 <알래스카 특집>편이 그렇다. 그는 '소금 팥빙수 먹기' 대결에서 소금 빙수를 한 입이나 먹고도 꾹 참는 모습을 보여주어서 멤버들로부터 놀라움과 의구심을 이끌어냈다. 그 다음 그를 따라한 다른 멤버들이 소금을 먹고 구토를 유발하자 내심 고소해하는 그의 표정이 큰 재미를 주었다. 일종의 '인내 개그' 혹은 '반전 개그'라고 부를 수 있는 이 스타일은 그러나 남들을 골탕먹이기 위해 자신 역시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에 박명수는 <해피투게더>에서 보여준 '포효 개그'와 <특전사 특집>에서 선 보인 '역정 개그'를 다시 보여주고 있다. '포효 개그'는 입을 쩍벌리고 큰 소리를 외치면서 상대에게 위압감과 혐오감을 유발하는 개그를 말하는데, 그 때 일그러진 박명수의 표정이 웃음의 포인트다. 그리고 '역정 개그'는 자신이 나이도 많고 힘도 없는 사람임을 내세워 상대에게 역정을 부리는 컨셉트이다.
박명수는 특전사 편에서 기마전을 할 때 특전대원으로부터 머리채를 붙잡히게 된다. 이 때 박명수는 진짜로 마음이 상했는지 급 짜증을 내며 '내가 알약을 몇 알이나 먹는지 아냐'며 하소연하며 '머리를 뽑으면 어떡하냐'고 역정을 낸다. 그런 박명수의 모습이 안스러웠는지 교관 역시 난감한 표정을 짓고 서 있고, 하하가 위로랍시고 '워낙 잘 뽑히긴 해요, 형'하고 말하는 장면은 나름 슬픈 상황인데 웃음이 입에서 새어나오게 만든다. 유재석이 박명수를 토닥거리며 '분명히 날 거예요'라고 말하는 장면에 등장한 '이것이 희망고문'이란 자막은 그 날 박명수가 뒹굴었던 눈밭 만큼이나 그의 마음을 휑하게 만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면 이런 두 사람이 만났을 때 과연 어떤 사건이 벌어지게 될까?
대표선수 전원의 무차별적인 태클 공격을 받은 유재석이 겨우 몸을 추스려 일어나자 심상치 않은 눈빛을 하고 있던 박명수는 주위 동료들에게 비켜나라며 손짓을 하고 유재석에게 태클 공격을 가한다. 그러나 유재석의 발길질에 박명수의 낭심이 걷어차이는 참사가 발생하고 만다. 순식간에 발생한 그 사건을 악마같은 TEO PD는 반복 리플레이와 클로즈업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재차 확인시켜주고 '명중'이란 자막까지 써 넣는다. '절규하는 낼 모래 새신랑'이란 자막은 곧 노총각 탈출을 목전에 둔 박명수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게 하면서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는 없게 만든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박명수의 개그에는 페이소스가 스며들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들수 있는 사람은 타인의 고뇌를 덜어준다"
-채플린
이 날의 <레슬링 특집> 2편이 '살신성인'이란 부제가 붙은 까닭은 첫 오프닝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그 이유가 설명된다. 오프닝 장면에서 무한도전의 멤버들이 국가대표 레슬링 선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 위로 '치욕 그리고 고통 .... 선수들의 선전을 위해서라면 마구 다뤄져도 좋다'라는 자막과 나레이션이 흐른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멤버들이 우리나라 대표선수들이 경쟁해야 할 세계 각국의 선수들로 분장을 해서 제한시간 1분과 점수는 무제한이라는 조건 하에 선수들의 기를 살려주기 위한 경기를 펼치게 된다. 선수들의 선전을 기원하며 자신들의 몸을 희생하는 자세야말로 '살신성인' 아닌가. 그러고 보면 코미디언이란 직업은 자신의 고통과 슬픔마저 웃음 속에 감추어두어야 할 만큼 서글픈 직업인지도 모르겠다.
조인성과 함께 게스트로 초대된 김현철과 박휘순 역시 무명 개그맨의 서글픔을 충분히 전달해주었다. 무한도전에 한 번 출연하는 것만으로도 검색어 순위에 오를 정도로 사람들의 큰 주목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신인들에게는 자신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수원에서 대중버스를 타고 4시간이나 걸려서 촬영장에 도착했건만 습관성 탈골로 인해 뻘쭘하게 서 있기만 해야했던 박휘순의 모습은 서 있는 모습만으로도 가슴이 아렸다.
박명수와 친구이기도 한 김현철은 좀 더 극적이다. 또 다른 동갑내기인 정석권 실장의 소행으로 비닐봉지에 먹다남은 음료수 2병을 들고 촬영장을 찾아온 김현철의 모습을 주변 스태프의 열띤 환대 속에 등장한 조인성과 비교해보도록 하자. 그럼에도 김현철은 박휘순이 뜻하지 않게 촬영에 임할 수 없게 되자 흰색 점퍼를 훌러덩 벗고 냉큼 달려들며 '나는 뼈가 안 빠져!', '진짜 나는 (뼈가) 빠지고 싶다', '나는 잡아빼도 안 빠져!'라고 외치며 적극성을 보여준다. 겨드랑이 털이 왜 없냐는 노홍철의 지적에 김현철이 당황하고 있을 때, 박명수는 뜬금없이 김현철에게 '털 없잖아! 텔미, 텔미! 보여줘 이거!'하며 호통을 친다. 순식간에 벌어진 이 아수라장 같은 분위기 속에서 배알도 없이 김현철은 춤을 추게 된다.
조인성이 떠난 후 벌어진 이러한 작은 소동은 촬영마저 중단시킨 채 일어난 일이지만 내게는 매우 중요한 장면처럼 보였다. 호통을 치며 닦달하지만 그 안에는 아직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한 친구 김현철을 위하는 박명수의 따뜻한 마음이 들어 있고, 13년 간 연예계를 떠돌며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있지만 개그에 대한 열정만으로 온갖 굴욕을 참으며 웃음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김현철의 순박한 마음씨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출연자들이 서 있는 촬영장 안과 김현철이 서 있는 바깥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그런 점에서 인기 연예인과 비인기 연예인을 구분짓는 경계선이기도 하다. 김현철이 그 선을 넘으려 할 때마다 주위 스태프나 출연진이 말리고, 김현철 역시 쉽게 그 선을 넘지 못한다. 운 좋게 촬영장 안에 진입한 박휘순 역시 김현철보다 더 나을 것이 없는 신세이다. 습관성 탈골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육체를 지닌 박휘순은 촬영 내내 묵묵히 구경만 해야 했는데, 김현철이 촬영장 바깥에서 소외를 경험한다면, 박휘순은 촬영장 내부에서 소외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한도전 멤버들 같은 스타급 연예인들 곁에서 겪게 되는 소외감은 김현철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 위해서 쇼를 펼치는 무한도전이 언뜻 내보인 이 이상하게 서글픈 광경은 갑자기 나를 무겁게 만든다. 시청자들에게 즐거움을 주기 위해 그리고 국가대표 선수들의 기를 불어넣기 위해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육체를 사물처럼 내던져야 하는 무한도전 멤버들의 운명이나 촬영장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바깥으로 나가지도 못하는 김현철과 박휘순의 운명이 기묘하게 오버랩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뇌를 덜어주기 위해 그들이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순간 나는 웃음 뒤에 감추어진 그들의 고뇌를 엿보고 말았다. 웃음을 주기 위해 지금도 뼈를 깎는 고행의 길을 걷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코미디언들에게 박수갈채를 보내고 싶다.
*) 로트레아몽(Lautremont)(1846-1870) 본명 이지도르-루시앙 뒤카스(Isidore-Licien Ducasse) 우르과이 태생의 프랑스 시인으로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불린다. 작품으로 <말도로르의 노래>와 <시: 미래의 서적에의 머리말> 등이 있다.
by ddolap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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