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9> 우리는 지금 바라나시로 간다

ddolappa 2008. 3. 9.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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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로 쓰는 무한도전 리뷰 <9> 우리는 지금 바라나시로 간다.

 

 


성장 로드 무비 무한도전

 

 


드디어 3주에 걸쳐 방영되었던 무한도전 인도 특집이 끝났다. 내가 '드디어'라는 부사로 리뷰를 시작하는 까닭은 인도 특집에서 미진한 아쉬움과 역시 무한도전이라는 안도감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거창한 주제를 내걸고 떠난 인도 여행에서 과연 무한도전이 잃은 것은 무엇이고, 얻은 것은 무엇인가? 김태호 PD가 이번 에피소드는 그 동안 방영되었던 무한도전의 중간결산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듯이 이번 리뷰는 그 중간결산에 대한 평가가 될 것이다.

 

 


우선 인도 특집 3부작을 도표로 정리해보도록 하자.

 


인도 특집

1부

2부

3부

주    제

설레임과 낯설음

새로운 경험과 갈등

우리에 대한 깨달음

소    재

인도의 낯설음

인도의 다양한 풍물

갠지즈강의 성스러움

제    재

인도의 낯선 풍경과 문화

인도의 다양한 문화에 대한 체험

갠지즈 강에서

경건함 체험

성찰대상

나와 너

우리

장소의 이동

한국 - 델리시내 -

카레음식점 - 숙소

로디가든-재래시장-길거리 이발소-기차역

무갈라사라이역 - 바라나시 - 갠지즈강

인도풍물

오토릭샤, 카레, 숙소

요가, 명상, 재래시장, 의상, 헤나, 기차여행

갠지즈강, 꽃불 띄우기,

코브라쇼

연상 에피소드

퀴즈의 달인(하하의 등장), 뉴질랜드 특집 etc.

친해지길 바래 특집, 동해 가스전 특집, 2006 연말 시상식 뒤풀이, 서울구경 특집, 뉴질랜드 특집, 노홍철 파머 벌칙 etc.

 

중요기법

다큐멘타리 기법(나레이션, 6mm카메라)

영화기법(Flash Back)

로드무비, CF기법,

은유적 연상 기법

자막을 통한 챕터의 구분


 


위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인도 특집은 주제적 측면에서 '나'라는 문제에서 출발해서 '나와 너'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한 다음 '우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으로 요약될 수 있다. 3부에서 유재석의 목소리로 전달된 "나를 알자고 온 인도여행 나는 우리를 알아버렸다"는 문장은 인도 특집의 핵심을 간결하게 요약해주고 있다. 그러니까 일종의 로드 무비 형식으로 촬영된 무한도전의 인도 여행은 '나'는 '너'가 존재함으로써 '나'일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심오한 진리를 깨달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복잡한 이야기 구조와 사소한 실수들

 

 


하지만 문제는 주제를 전달하는 이야기 구조가 매끄럽지 못하고 너무 복잡하다는 데 있다. 무한도전 인도 편은 하하가 무한도전에 멤버로 받아들여졌을 때의 낯설음과 그 안에서 겪게 되는 갈등과 혼란 그리고 마침내 시련을 이겨내고 그들과 한 가족이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와 지금까지 무한도전이 지나온 역사에 대한 이야기가 중첩되고 있다. 그런데 이런 두 겹의 이야기는 다큐멘타리라는 기술적 수단과 은유의 수사학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있는데, 일반 시청자들이 이러한 구조를 깨닫고 즐기기에는 너무나 복잡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무한도전의 과거 에피소드들을 연상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된 다양한 장면들을 인도의 이국적인 풍물들 속에 녹아내려는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그러나 그 의도가 시청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기 위해서는 조금 더 설득력 있는 이야기 구조가 선택되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가령 정형돈과 하하의 갈등을 암시하기 위해 설정된 정준하와 노홍철의 갈등은 지나치게 작위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속 좁고 소심한 사람이라는 정준하의 캐릭터에 의존해서 설정된 갈등 구조는 그러나 큰 설득력이 없었기 때문에 시청자들을 이야기 구조에 몰입시키기 보다는 정준하를 더욱 비호감인 사람으로 만들 뿐이었다.

 

 

 

영화 <비포 선라이즈>에서처럼 등장인물들이 여행지를 이동함에 따라 시시각각 변화하는 감정들을 섬세하게 영상으로 포착함으로써 극에 몰입도를 높일 수 있는 이야기 구조를 무한도전에 바란다는 것은 너무나 커다란 기대인지 모른다. 그러나 시청자들이 이해를 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긴장관계가 설정이 되어야 최소한 출연자를 '두번 죽이는' 실수를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술적 측면에서도 혼동을 유발하는 균열과 충돌이 발견된다. 가령 2부에서 하하의 나레이션은 다큐멘타리에서 흔히 사용되는 3인칭 시점과 하하 개인의 1인칭 시점이 혼란스럽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갑작스럽게 등장한 유재석의 나레이션은 하하의 나레이션과 기능 면에서 중첩되고 있기 때문에 2명의 목소리를 사용한 의도와 효과에 의문이 생긴다. 차라리 1인칭 시점의 목소리는 하하에게 전담을 시키고, 무한도전 전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3인칭 시점은 유재석에게 맡겨서 혼란을 방지하고 통일성을 유지하는게 낫지 않았나 싶다.

 

 


편집의 측면에서 볼 때 인도 특집은 4박 5일이라는 긴 촬영기간에도 불구하고 2부작 정도의 분량으로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물론 인도 현지의 사정 때문에 촬영이 원래의 계획 대로 진행될 수 없었다는 점, 인도 특집 자체가 차분하고 명상적인 태도로 무한도전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정리하자는 의도에서 기획된 특집이라는 점 그리고 노홍철의 갑작스러운 피습 사건으로 촬영 일자에 차질이 생겨 부득이 하게 1회분 가량의 분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는 점 등을 그 원인으로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저간의 사정을 충분히 이해하더라도 인도 특집 1부는 흥미있는 사소한 이야기거리가 부족했고 군더더기 장면들이 지나치게 많이 삽입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사실 무한도전 류의 버라이어티 쇼가 주는 재미는 목적을 달성했을 때의 쾌감보다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것이라고 할 때, 중심에서 벗어난 곁가지 이야기들은 핵심적인 사건의 의미를 보다 풍부하게 해주고 오락 본연의 기능을 담당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뉴질랜드 특집'이나 '무인도 특집' 또는 '가스전 특집'과 달리 '인도 특집'에서는 풍부한 곁가지 야야기들이 많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내가 인도 특집이 다른 특집들과 유사하다고 느꼈던 점은 '슬로우 스타터'로서 무한도전이 지닌 고유한 리듬감 때문이다. 무한도전의 시리즈물은 매번 초반에 큰 웃음이 적다는 비난 아닌 비난을 받는 편인데, 그 원인에 대해서는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행의 처음부터 끝까지 '복불복' 게임만 하라는 것은 절대 아니니 오해가 없길 바란다.

 

 


왜 리얼리티쇼가 유행하게 되었나

 

 


그럼에도 내가 무한도전에 찬사를 보낼 수밖에 없는 까닭은 무한도전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버라이어티 쇼에서 '나는 누구인가'라는 철학적 주제를 선택할 수 있는 용기나 다큐멘타리 기법이나 영화적 기법의 활용과 같은 과감한 형식실험을 벌써 3년이 넘은 쇼 오락 프로그램이 할 수 있다는 것은 대한민국 예능계의 풍토에서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한 때는 빅재미를 선사했던 <X-맨>이나 <야심만만> 혹은 <상상플러스>가 어떻게 죽었고 죽어가고 있는지 생각해 보도록 하자. 고정된 포맷을 지닌 오락 프로그램들은 대개 일정한 인기를 얻고 나면 그 형태를 고수하다가 차츰 식상해지게 되고 변화를 모색하더라도 큰 틀 자체를 부수는 과감한 모험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고정된 형식 자체가 없는 무한도전은 매번 새로운 소재 발굴을 해야만 한다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시청율에 안주하지 않고 과감한 주제와 형식을 도입해서 지금도 신선함을 유지하고 있다. 끊임없는 자기부정을 통한 혁신이야말로 무한도전의 원동력이다. 그리고 이러한 저력은 인도 특집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가령 이번 에피소드에서 특히 눈에 띄는 다큐멘타리 형식의 사용은 '리얼리티쇼'의 가장 기본적인 기법에 속한다. '빅 브러더', '현장고발 치터스', '제리 스프링거쇼', '프로젝트 런 웨이', '백만장자와 결혼하기' 등의 리얼리티쇼는 대개 다큐멘타리 형식이나 몰래 카메라 형식을 차용하고 있다. 영화에서도 다큐멘타리 형식은 '모큐멘타리(Mockumentary)'나 '페이크 다큐(fake dokumentary)'의 형태로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가령 롭 라이너의 <스파이널탭>, 팀 로빈스의 <밥 로버츠>, 피터 잭슨의 <포가튼 실버>, 마이클 무어의 <로저와 나>, 다니엘 미릭과 에두아르도 산체스의 <블레어 위치>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이미 우리나라에서도 발견되는데, LG전자와 낸시랭이 함께 기획했던 홍보광고인 <낸시랭 실종사건>이나 엠넷의 <오프더레코드 효리>, S본부의 <체인지>, M본부의 <스타웨딩 버라이어티 우리 결혼했어요> 등이 그 예들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이처럼 리얼리티쇼 형식이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필요로 하는 일이지만 대략적인 이유를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걸프전쟁(1991)과 미국 9.11 테러 사건(2001) 이후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이미지가 실재를 압도하는 경험을 전세계인들이 현실에서 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이미지 개념과 세계를 지각하는 방식이 변화하게 되었다는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텔레비전이나 영화 미디어는 실재보다 더 실재적인 영상과 이미지를 만들어내게 되었고, 그러한 이미지들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현실은 모방된 이미지들에 흡수되거나 오히려 그것들을 모방하는 단계에 이르게 됨으로써 실재와 가상 사이의 구분 자체가 모호하게 변화하게 되었다. 그런데 실재와 가상의 경계가 불분명해질 수록 사람들은 날 것 그대로의 '리얼'에 대한 욕구에 사로잡히게 된다.

 

 

 

또 다른 원인으로 리얼리티쇼가 미국처럼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발달한 국가에서 탄생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가정으로 전송되는 영상 너머에 있는 쇼비지니스의 세계에 대해 이미 충분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어떠한 화려한 쇼도 더 이상 긴장감과 재미를 줄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사람들의 이목과 관심을 집중시킬 만한 새로운 형태의 오락물이 필요하게 되었는데, 이 때 등장한 것이 바로 '리얼리티쇼'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리얼리티쇼'가 유행하고 있는 이유는 '한류'로 표현되는 우리의 연예 오락 산업의 성장을 그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까지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리얼리티쇼'가 없다는 점이다. 케이블 텔레비전에서 방영되고 있는 대부분의 리얼리티쇼는 선정적인 주제와 영상으로 시청자들의 말초적인 감각을 자극할 뿐 리얼리티쇼 형식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재한다. 그리고 케이블 TV가 리얼리티쇼를 선호하는 또 다른 이유는 이름이 덜 알려진 배우들을 고용해서 마치 실재인 듯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반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에는 기술적인 문제도 중요한 이유로 작용하고 있는데, 케이블 TV가 리얼리티쇼라는 이름을 내걸고 대부분 재연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는 까닭은 기존 쇼 오락 프로그램과는 다른 카메라 워크나 조명 기술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당장 공중파에서 방송되고 있는 리얼리티쇼만 하더라도 대개는 몰래 카메라 형식을 취하고 있지 않은가. 다시 말해 우리나라에는 아직까지 제대로 된 리얼리티쇼를 제작할 만한 기술적 여건이나 인력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무한도전은 계속 전진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무한도전의 이상한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강명석이 이미 지적한 대로 무한도전은 '버라이어티쇼'와 '리얼리티쇼'의 중간 단계이고 그래서 내세우고 있는 장르도 '리얼 버라이어티쇼'이다. 그런데 김태호 PD는 인터뷰를 할 때마다 무한도전의 <드라마 특집>이나 <인도 특집> 등이 제작진에게 좋은 경험이 되었을 거란 말을 빼놓지 않는다. 그리고 3년 넘게 무한도전이 진행되면서 제작 인력의 큰 변화없이 꾸준히 제작진이 유지가 되어 왔다는 사실은 그가 그들에게 경험을 축적할 기회를 주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시 말해 쇼 오락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이 정통 드라마도 찍어보고, 패션 쇼 장면도 촬영해보고, 다큐멘타리 형태로 영상을 만들어보는 경험을 해보도록 함으로써 김태호 PD는 무한도전의 미래를 차근차근 준비해놓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지금과는 또 다른 형태의 쇼 오락이 아닐까? 그가 최근에 한 인터뷰에서 1년 정도의 휴식기간을 갖고 미국의 <프로젝트 런 웨이>에 인턴으로 참여해서 경험을 쌓고 싶다는 희망을 언급했던 이유 역시 그가 그려놓고 있는 커다른 밑그림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무서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기자들이나 시청자들이 하나의 에피소드를 놓고 재미있다 혹은 재미없다고 아옹다옹거릴 때 그는 10수 이상을 앞서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인도 특집을 하하 개인에 대한 헌정으로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는 무한도전의 과거를 반성해 보고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려는 무한도전의 진지한 고민과 모색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의 징후는 이번 에피소드에서 발견되는 주제나 형식실험 등에서 충분히 감지해볼 수 있다. 이번 에피소드를 실패한 에피소드로 평가하는 사람이 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실패 속에서 새로운 변화에 대한 무한도전의 열망과 희망의 가능성을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 고된 인도 여행 끝에 무한도전이 발견한 진리이자 시청자들에게 약속하고 있는 다짐이 아닐까.

 

 


산 자들은 그 물길에 몸을 씻는 것만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고,

죽은 자들은 화장을 해서 그 재를 강물에 뿌리는 것만으로

영겁을 걸쳐 내려오는 업(karma)의 사슬을 끊고 해탈할 수 있다는,

시간을 거슬러 도도하게 흐르는 갠지즈 강물 위로 

무한도전 멤버들 각자의 소망을 담은 꽃배는

지금도 쉼없이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

무한도전!

 

 


by ddolappa

 

 

 

 

 

천경자 / 인도 갠지즈 강에서 / 1979 / 24x33 / 종이에 채색

 

 

 

 

천경자 / 인도 바라나시 / 1979 / 27x24 / 종이에 채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