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고 있다. 이런 선전에는 이따금 정치적으로 평판이 좋은 사람이 안성맞춤이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나고 제3제국이 멸망한 후 가다머는 라이프치히 대학교의 재건을 위해 전력투구했다. 1946년 이 대학의 총장직을 맡아 달라는 제의가 들어왔을 때 그는 이를 수락했고,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직무를 수행했다. 그 후 그는 1947년에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 대학으로부터 초빙을 받아 이 대학에서 약 2년간 봉직했다. 그러나 이 기간은 가다머 자신이 ‘간막극’이라고 말했듯이 그에게 별 다른 변화를 주지 못했다. 망명에서 돌아온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대표자 및 그 제자들과의 만남도 가다머의 철학에는 별 영향을 주지 못했다. 1949년에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으로부터 교수 초빙을 받았다. 야스퍼스(Karl Jaspers)의 후임자리가 그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때부터 그는 하이델베르크에 정착해서 정년까지 강단에 섰다.
1953년 가다머는 《철학적 전망》을 다시 부활시켰을 뿐 아니라 - 이 잡지는 그 후 곧 독일에서 가장 정평 있는 철학잡지 중 하나가 되었다 -, 자신이 30년 전부터 강의해 온 ‘예술과 역사’에 대한 강의록을 한 권의 책으로 만들어 내는 작업도 시작했다. 그러나 그 후 10년이 넘어서야 이 작업은 《진리와 방법(Wahrheit und Methode)》(1960)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 글 속에는 미학 및 해석학의 역사, 역사철학 그리고 언어철학에 대한 수십 년간의 연구가 용해되어 있다. 그러니까 이 연구로부터 ‘철학적 해석학’의 기본서가 완성된 것이다.
《진리와 방법》이 독자들에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이미 가다머는 적절한 출간시기를 놓쳤다는 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서독 철학계에 계몽주의의 새로운 물결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았으며, 가다머에 의하면 이 새로운 물결에 자신의 계획이 생소해 보일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그는 ‘서양의 위대한 형이상학 전통’을 불러내고 있기 때문이었다. 원래 가다머는 이 책자를 ‘철학적 해석학의 기본특징’이란 제목으로 출간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으나, 책의 발행인이 ‘해석학’이란 용어가 너무 생소하다는 이유로 우려를 표명했기 때문에 처음 염두에 두었던 제목을 부제로 돌렸다. 그래서 가다머의 대저작은 ‘진리와 방법’으로 밀려나게 된 것이다.
그 밖에도 가다머는 자신의 학문영역의 통합과 학제적 통합 작업을 시작했다. 이를테면 1965년에 그는 독일 철학회의 회장 자격으로 ‘언어의 문제’라는 테마를 가지고 회의를 주관했다. 1968년에 정년퇴직 한 후 가다머는 4년 동안 하이델베르크 학술원 원장직을 맡았으며, 이 대학 철학과는 10년 이상 그에게 연구실을 마련해 주었다. 이렇게 하이델베르크에서 강의를 계속하는 한편, 그는 오랫동안 외국에 드나들었다. 특히 그는 북미의 여러 대학에서 강의를 많이 했는데, 북미에서의 이러한 강의는 그에게 ‘제2의 청춘’을 가져다 주었다. 그곳에서의 체류는 미국에서 서자취급을 받던 유럽 대륙철학에 대한 관심을 일깨워 주는 데 크게 기여했다.
1985년 이후부터 10권으로 이루어진 가다머 《선집》이 간행되었는데, 튀빙겐의 한 철학자는 이 《선집》을 1980년대의 가장 중요한 철학 출판물 중 하나라고 말했다(이 판(版)은 1995년에야 그 출판이 완료되었다). 가다머의 저술작업에는 푸코나 데리다 등의 작업에 깃들인 어둠을 찾아볼 수 없다. 가다머뿐 아니라 데리다 또한 하이데거의 철학으로부터 나오는 질문에 대답했다고 할 수 있으나, 데리다와 달리 가다머는 투명한 언어로 글을 썼다. 이 언어는 스타일리스트적 태도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그렇다고 그의 간결한 문체를 단순한 글로 혼동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의 간결함은 사유의 겸손에서 우러나는 것이다. 그의 사유는 천년 세월을 이어온 전통에 대해 대답하고 있으며, 이 전통은 그 질문이 받아들여질 때에만 계승될 수 있다.
가다머의 철학적 해석학은 기술(과학)문명의 범람으로 익사 직전의 위기에 처한 정신과학, 즉 인문학이 우리의 현실에서 왜 중요하며, 왜 필요하고, 인문학이 왜 복권되어야 하는지를 웅변해 준다. 인간의 삶은 인간이, 그리고 인간과 사물(자연)이 서로 지배관계가 아닌 공존관계를 이룰 때 진정한 행복을 구가할 수 있다. 그러나 기술문명은 지배욕구를 은폐하고 있다. 다시 말해 기술문명은 어떤 것을 대상화해 점령하는 방식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다. 이를테면 기술문명은 자연뿐 아니라 인간을 - 대상화해 - 정복함으로써 그 본질을 구현하고 있다. 이러한 지배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드는 것이 정신과학, 즉 - 가다머의 표현을 빌리면 - ‘철학적 해석학’이다. 철학적 해석학은 대상화를 거부하고 지배욕구를 포기한다.
전통은 인문학의 출발점, 진리의 원천
가다머는 무엇보다 ‘전통’을 중요시한다. 가다머에게는 전통이 곧 정신과학, 즉 인문학의 출발점이요, ‘진리의 생기(生起)’를 가능하게 해주는 원천이다. 그가 의미하는 전통이란 철학분야에서는 주로 소크라테스·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로 대변되는 고대철학과 칸트 및 헤겔로 대변되는 근대철학이다. 그 밖에 그는 신화와 예술작품(로마의 인물조각과 추상화 등의 미술작품, 괴테·게오르그·첼란 등의 문학작품 그리고 바흐 등의 음악작품)도 이 전통의 범주에 포함시킨다. 그는 이러한 전통 속에서 “확장 일로를 걷는 과학의 지배요구에 대한 저항의 잠재력을 본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전통의 이해’를 전통에 무조건적으로 권위를 부여하는 행위로 파악하거나, 전통의 습득 내지 무조건적인 전통의 이해로 파악해서는 안 될 것이다. 가다머에 따르면 전통의 이해는 한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즉 어떤 사람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그 사람과 서로 대화하고 때로 질문도 나누듯이, 우리와 전통의 관계도 바로 이러한 대화형식을 띠고 있다. 우리가 한 인간의 이해를 통해 자기 자신의 지평을 넓히듯이, 전통의 이해를 통해서도 ‘하나의 새로운 빛’을 보게 된다. 가다머는 전통의 한 부분인 예술작품과 만날 경우 특히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고 말한다. “예술작품은 친숙함을 가지고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데, 알 수 없는 일은 이 친숙함은 동시에 충격과 익숙한 것의 붕괴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해석학을 출발점으로 삼는 가다머의 해석학은 바로 이 전통(과거)과 현재의 매개를 제일 과제로 삼는다. 여기서 매개란 곧 ‘대화’를 의미하며, 이 대화는 ‘이해’를 통해 구현된다. 그러나 가다머의 이해는 결코 어떤 대상을 제것으로 만들기 위한 도구적 성격을 지니지 않는다. 이해에는 자기 비판이 선행되며 “이해하는 사람은 결코 우월한 지위를 고집하지 않고, 자신의 불확실한 진리가 검증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한마디로 그는 이해를 ‘인간 삶의 기본 특징’으로 파악한다.
가다머는 “모든 이해는 필연적으로 ‘역사적’으로 자리매김되어 있다”고 말한다. 다시 말해 이해는 이해하는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역사적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뜻이다. 그가 대상화를 거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는 항상 역사의 한가운데 있으며, “매순간마다 과거로부터 우리에게로 오는 것, 즉 전수되는 것과 더불어 우리를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 속에서 존재한다.” 이렇듯 이해에서 자신의 고유한 ‘역사성’을 함께 성찰하는 의식을 가다머는 ‘영향사적 의식’이라고 부른다.
가다머가 전통을 중요시하고, 계몽주의 이래로 박탈당했던 ‘선입견’의 권리회복을 역설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에 의하면 이해는 선입견을 근거로 해서 작용한다. 이를테면 우리는 항상 선입견과 더불어 텍스트에 접근한다. 여기서 선입견이란 이해하는 사람, 즉 해석자 - 가다머에 의하면 이해와 해석은 병발적으로 이루어진다 - 에게 축적된 모든 정신적 자산 일체를 뜻하며, 이러한 선입견이 ‘선이해’, 즉 ‘현재의 견해’로 작용하면서 이해를 촉진시킨다. 이 정신적 자산, 즉 ‘기대의 지평을 형성하는 전래된 견해들’이 없는 한 그 어떤 이해과정도 작동할 수 없게 된다. 가다머는 계몽주의자들이 ‘고유한 반성적 노력의 결과’로 인정하는 ‘판단’을 개인적이라고 평가절하하는 반면, 선입견에는 ‘비개인적’ 또는 ‘선개인적’이라는 속성을 부여함으로써 선입견의 긍정적인 측면을 부각시킨다.
가다머는 ‘개인적’ 또는 ‘주관적’ 인식을 경계하는 한편, 공동체적 계기를 중시한다. 그가 공동체적 계기를 중시하는 이유는 그것이 역사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공동체적 계기를 전통 속에서, 예술작품의 ‘세계’ 속에서 또는 ‘생활세계’ 속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은 역사적 변화와 더불어 그 존재를 증대시켜 왔으며, 개인(또는 이른바 자아)을 그 속에 포함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개인으로부터 분리되어 대상화할 수 없다. 그 때문에 가다머는 주체와 객체라는 이분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생기와의 만남을 통해 진리를 인식하게 된다. 가다머가 ‘미적 구별’을 앞세우는 칸트의 미학을 거부하고 ‘표현과 표현된 것, 매개와 작품, 문학작품과 소재 등을 분리시키지 않는’‘미적 무구별’을 받아들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미적 구별은 이와 같이 작품을 그 세계, 즉 발생연관으로부터 분리시킴으로써 작품이 만들어진 목적이라든가 그것이 지닌 기능, 즉 역사성을 무시해 버리기 때문이다. 사유가 역사성을 초월할 경우, 그것은 ‘본질주의’ 내지 ‘실체형이상학’의 도그마에 빠지며, 진리로부터 멀어지고 만다.
가다머에 의하면 (인문과학의) 진리는 사물을 대상화하는 (자연과학적) ‘방법’으로는 파악될 수 없다. 진리는 계획적이고 통제성을 띤 방법과는 대립적인 관계를 이루기 때문이다. 진리는 “현재의 것과 역사적인 것의 존재가 표현되고 이해”되는, 즉 ‘삶의 실행’과 연관된 생기다. 다시 말해 진리는 이 양 존재가 만나는 사건이다. 생기로서의 이러한 진리는 사유의 발전과정 속에서 드러나기 때문에 ‘사유의 변화와 무관한 그 어떤 존재’도 허용하지 않는다. 가다머가 그의 해석학에서 언급하는 ‘이해의 역사성’도 바로 이 사유의 변화와 같은 맥락에서 파악될 수 있을 것이다. 즉 가다머의 이해는 슐라이어마허나 딜타이의 그것과는 달리 역사적 지평과 현재의 ‘지평의 융합’을 통해 이루어지는 진리생기의 한 중요한 계기다.
예술은 전통과 현재가 만나 융합하는 사건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예술에 관한 긴 논술과 더불어 진리문제에 관한 논의를 시작한다. 이 글에서 예술논의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철학적 미학을 해석학으로 이전하는 것이다. 가다머는 예술작품을 방법적으로 해명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고, (종래의) 미학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미학은 자연과학적 진리개념 및 대상개념에 방향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었다. 가다머는 해석학적 예술이론이 어떻게 미학을 대치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예술작품이 자연과학과의 경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기 위해 일련의 논문을 썼는데, 그 대표적인 것을 열거해 보면 《미적 의식의 문제점》(1958), 《창작과 해석》(1961), 《예술과 모방》(1967), 《문학과 미메시스》(1972), 《미의 현실성, 유희, 상징 그리고 축제로서의 예술》(1974), 《철학과 문학》(1981) 등이 있다.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서양의 실체형이상학과 결별을 선언하는 예술작품의 존재론에 관해 논술했다. 가다머는 예술작품을 역사적 변화를 넘어서 역사 위에 군림하는 불변의 본질로 파악하는 대신에 그것을 ‘생기’, 즉 그 속에서 전통과 현재가 서로 만나 융합하는 하나의 사건으로 본다. 이 사건 속에서 작품은 ‘표현’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고, 동시에 수용자도 작품과 그 만남을 통해 변화한다.
가다머에 의하면 예술작품은 수용자와의 대화를 통해 수용자에게 세계와 그 자신에 대한 진리를 해명해 준다. 예술작품은 매번 동일한 것을 요구하는 철학적 담론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 작업을 수행한다. 예술작품은 수용자에게 말을 걸어 오며, 수용자의 대구와 반문을 기다린다. 또한 예술작품은 그 아름다움을 통해 수용자를 매혹시킨다. 따라서 예술작품의 개념규정에서는 예술작품의 본질뿐만 아니라, 미의 본질에 관해서도 묻는다. 가다머는 미의 본질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아름다움이란 그것이 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 결코 적당치 않은 것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가다머는 ‘미적 구별’을 앞세우는 칸트와 달리 미에 ‘존재론적’ 기능이 전적으로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존재론적 기능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격을 메우는 데 있다. 현실은 종종 오성의 수단으로는 들여다볼 수 없는 혼돈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 세계에 나타나는 아름다움은 이상적인 것을 보여 줄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아름다움은 세계의 무질서와 이로 인해 겪는 우리의 고통 한가운데서 질서를 보장해 준다. 예술의 미는 어떤 방식으로 질서를 보장하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가다머는 고대의 예술에 관한 성찰 이래로 예술에 관한 사유를 특징짓는 데 기여한 미메시스 이론에 의존한다. 《진리와 방법》에서 가다머는 모사상(模寫像)과 원형에 관해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즉 상(像)은 플라톤적 의미의 존재의 감소가 아니라 하이데거적 의미의 존재의 증대라는 것이다. 이런 원리에 의거해서 예술의 상을 통해 모사된 것(원형)의 본질이 드러난다. 이에 대한 전형적인 예가 종교화다. 종교화는 본질과 다른 외형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된 것(원형)과 존재적 측면에서 의사소통하고, 모든 관찰자를 위해 그것을 현존(現存)으로 불러낸다. 한마디로 예술경험은 모사상과 원형을 미적으로 구분하지 않는다. 예술의 모방을 통해 우리가 사물의 본질을 인식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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