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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화두2]정보화혁명이 가져온 `축복`과 `재앙`의 두 얼굴

ddolappa 2008. 5. 16. 04:08

정보화 혁명이 가져온 ‘축복’과 ‘재앙’의 두 얼굴


2. 위협받는 민주주의

민주주의 赤신호, 사회내부에서 ‘깜박’
NGO의 지나친 영향력, 역효과 우려도

인터넷 포퓰리즘·‘民主性의 결핍’ 가능성
민주주의 위협, 암세포처럼 전체로 퍼져

강원택·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입력 : 2004.08.25 18:29 11' / 수정 : 2004.08.26 05:44 42'
- 각국 민주화 지표

- 세계의 지식사회, 이것이 화두다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민주주의의 제3의 물결이 동구, 남미 그리고 아시아 지역을 휩쓸고 간 이후 이제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 민주주의는 당연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민주주의의 건강 상태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과거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군의 쿠데타나 독재자의 장기집권 시도와 같은 국가 기구로부터 온 것이었다면 오늘날 나타나는 민주주의의 적신호는 사회 내부, 그리고 세계화라는 국가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오고 있다.

민주주의의 건강 적신호는 무엇보다 민주적 제도를 통한 참여가 줄고 있다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선진국들에서는 투표율이 크게 하락하고 있다. 원래 투표율이 낮았던 미국은 말할 것도 없고 꾸준히 높은 참여율을 보였던 영국, 독일, 일본 등 여러 나라에서 투표율이 낮아지고 있다.


80년대 초 90 퍼센트에 육박했던 독일의 투표율은 90년대 중반이 되면 70 퍼센트 중반대로 떨어졌다. 민주주의의 유지를 위한 시민의 당연한 의무이자 덕목으로 간주되어 온 투표 참여가 줄면서 각국은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벨기에, 스위스 등 일부 국가에서는 이미 선거에 인터넷 투표가 실험적으로 실시되었고 영국에서는 동네 슈퍼마켓에까지 투표함을 가져다 놓는 절박한 시도가 행해졌다.

투표율의 저하와 함께 그동안 시민사회와 국가를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해 온 정당의 역할도 약화되었다. 오래 전부터 대중정당 조직이 뿌리내린 유럽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당원 수는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으며 정당 일체감도 크게 약화되었다. 일반 시민의 정당 참여가 줄면서 정당은 시민사회를 떠나 국가나 대기업에 기대려는 모습을 보이게 되었고 그 결과 소액 당비보다 뭉칫돈과 국고보조금에 대한 의존이 커졌다. 캐츠와 메어(Katz and Mair)가 말한 폐쇄적 정당체계인 카르텔 정당의 출현은 서구 정당에서 나타난 이러한 변화를 지적한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탱해 온 제도적 기구를 통한 참여가 줄어든 대신 비제도적 참여는 증가하였다. NGO의 성장은 사회적 이해관계의 다원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기존 민주 제도에서 정당과 같은 정치적 요구의 투입 창구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NGO가 성장한 시기는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불만이 급증하고 개혁에 대한 요구가 거셌던 1970년대였던 것처럼, 세계 곳곳에서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커지면서 NGO의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 그러나 선거라는 경쟁의 장을 통해 정치적 책임과 공과를 심판받아야 하는 정당에 비해 그런 제도적 심판과 평가의 기제를 갖지 못한 NGO의 지나친 영향력 확대는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해 반드시 바람직한 일만은 아니다.

최근에 나타난 또 다른 비제도적 참여의 형태는 인터넷을 통한 정치 참여이다. 정보화 혁명은 민주주의와 관련하여 축복과 재앙의 두 가지 가능성을 동시에 주고 있다. 정보화 혁명은 정치 참여의 비용을 낮추고 접근성을 높임으로써 직접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고 평가받는다. 그러나 인터넷의 영향력이 커지면서 세대간, 혹은 계층간 인터넷의 접근성이나 활용도의 차이로 인해 생겨나는 정보 격차(digital divide)의 문제라든지, 정보화의 발전으로 인해 사생활 침해의 가능성이 커진 것은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일이다.

또 다른 심각한 문제는 인터넷 공간에서 행해지는 정치적 의사소통이 합리성과 이성에 기초한 책임 있는 대화와 토론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설익은 감정의 분출, 배설에 그치는 경향이 강하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이 효과적인 정치참여의 수단이면서도 동시에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의 공간으로 이용될 수 있고 그 결과 새로운 형태의 포퓰리즘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어떤 경우라도 제도적 견제와 균형의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정치 참여와 의사표현의 폭발은 민주주의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세계화’의 압력 속에서 더욱 커지고 있다. 초강대국의 이해가 중심이 된 세계화는 한 국가 내의 민주적 의사결정 능력을 크게 축소시켰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초국가기구들의 결정을 주권 국가가 내부적 의사결정 과정과 무관하게 사실상 그대로 수용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기 때문이다. 예컨대 WTO 체제 하에서 국내 시장 개방을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상황이더라도 어느 국가든 이를 일방적으로 거부하기란 어렵게 되었다. 이처럼 유럽연합 회원국들이 EU라는 초국가기구의 결정을 무조건 수용해야 하는 상황은 ‘민주성의 결핍(democratic deficit)’으로 불리게 됐다.

세계화의 흐름을 거부할 수 없는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만은 때때로 반체제, 반인종적 극우정당에 대한 지지로 폭발하기도 한다. 유럽 각국에서 극우 정당에 대한 지지가 상승하고 다른 인종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고조되는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그만큼 외부적 요인에 의해 이들 국가 내부의 민주주의가 취약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반체제 극우정당 후보인 르펜은 사회당 내각의 수상이었던 조스팽 후보를 누르고 2차 결선투표에 진출해 큰 충격을 주었다. 1999년에는 하이더가 이끄는 오스트리아의 극우정당인 자유당은 집권연립에 참여하기도 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이처럼 사회 내부로부터 그리고 국가 외부로부터 다가오고 있다. 그 위협은 이전 권위주의 시대와는 달리 물리적 강압의 형태도 아니고 눈에 잘 띄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마치 서서히 몸 전체로 퍼져가는 암세포처럼 그만큼 그 위협은 더욱 치명적일 수 있다.

▲ 강원택 교수

강원택 교수는

61년 부산생으로 서울대 지리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런던정경대학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고 2001년부터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한국의 선거정치’ 외 다수가 있다.

※다음 화두는 ‘21세기형 좌파의 코드’입니다.

출처 : text reading
글쓴이 : 여민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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