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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조선화두4]유전공학, 딜레마와 해법

ddolappa 2008. 5. 16. 04:09
[주간연재]4. 유전공학, 딜레마와 해법
‘판도라의 상자’ 배아복제… 어떻게 얼마나 열것인가
배아는 인간이냐 아니냐 존재론적 논쟁 많지만 복제행위 자체는
인간존엄 해치지 않아 美 툴리등 다수학자들은 선의의 목적 복제 찬성…

입력 : 2004.09.08 17:30 12' / 수정 : 2004.09.08 17:31 46'
- 세계의 지식사회, 이것이 화두다
과학기술 발달에 따른 기술의 윤리성 논쟁은 늘 있어왔다. 상투적인 찬반논란이 그것이다. 그러나 인간복제로 대변되는 유전공학의 파괴력은 윤리성 논쟁이라기보다는 인간성 논란이라는 점에서 윤리학자보다는 철학자가 깊이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그 때문인지 세계 유수의 철학자들이 이에 관해 입장을 밝히고 있고 다양한 형태로 논쟁이 전개되고 있다.

유전공학은 ‘판도라의 상자’다. 배아복제는 기능이 손상된 장기(臟器)에 정상 세포를 이식하여 기능을 복원하는 기술개발을 위해 필수적이다. 그러나 배아연구는 배아 파괴를 수반한다. 또 유전자 조작과 인간 복제로 진행될 수 있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철학적 논의에서는 생명존엄성 문제로부터 범죄를 위한 오·남용 가능성, 사회적·우생학적 문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쟁점들이 제기되었다.

▲ 인간복제 가능성을 보여주는 그래픽(위)과 1998년 인간복제 실험중단을 요구하는 시민단체 시위사진(아래)과의 합성.

배아연구의 인간적(즉 철학적) 정당성에 관해 제기되는 주제들은 대체로 배아나 개체 복제 행위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가 하는 인간 정체성에 관한 것과 복제기술의 오·남용으로 발생할 수 있는 사회·윤리적인 문제와 우생학적 문제들에 대한 검토로 분류된다. 이러한 검토는 의무론적 관점과 결과론적 관점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 뉴질랜드의 한 환경단체가 만든 인간복제 반대 포스터. 유전공학 비판론자들은 이같은 '동물형 인간'의 출현도 가능하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먼저 의무론적 관점이다. 존엄성이나 인간 정체성의 관점에서의 문제제기는 배아의 지위, 즉 배아가 단순한 세포덩어리인지 아니면 인간인지 또는 잠재적 인간으로 볼 것인지에 관한 이해를 전제한다. 배아의 지위에 관한 이해 여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해 특정한 존재론적 관념이나 종교적 신념을 전제한 판단들은 불교를 예외로 하면 대체로 배아연구가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그러나 존재론적 관념에 근거한 생각들은 개인들의 도덕적 감성을 촉진하는 데 있어 상징적인 의미는 가지지만, 보편적인 설득력을 얻는 데는 한계가 있다. 또 인격체론적 관점에서 인간생명의 존엄성을 주장하며, 배아 연구를 문제시하는 경우도 설득력을 얻는 데는 성공적이지 못하다. 이를테면 칸트의 인격체적 생명관에 근거하여 인격체인 인간의 생명은 존엄하며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견해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배아 연구가 존엄성을 해친다는 결론이 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배아는 자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완전한 인격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 개체 복제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인데, 그 이유는 모든 복제가 인간을 수단화한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복제가 수단으로 이루어지는지 여부는 복제하는 사람의 의도가 무엇이냐 하는 것에 따라 결정될 것인데, 만약 복제를 원하는 사람이 선의의 목적으로, 그리고 복제로 태어날 사람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의지를 가진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배아든 개체든 복제행위 자체가 존엄성을 해친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존엄성이나 정체성의 관점에서의 접근은 이런 한계를 가지는 반면, 다른 많은 학자들은 생명윤리적 논의는 비윤리적 오·남용이나 우생학적 문제 등 결과적으로 초래될 수 있는 문제를 중심으로 논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실 존엄성이나 인간의 도덕적 의무를 들어 제기되는 비판은 지난 수백 년 동안의 역사가 증명하듯이 기존의 신념과 관습에 모순되는 새로운 이론이나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제기되었던 것들과 대동소이하다. 시험관아기가 시도되었을 때, 지식인들 사이에 인간 존엄성을 해친다는 우려가 들끓었지만, 오늘날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툴리(M Tooley)를 비롯한 미국의 다수 학자들은 공리주의적이며 결과론적인 관점에서 보다 더 큰 선을 위한 일이라면 생명존엄성이 포기될 수도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윤리적 판단의 기준을 고통의 감지능력과 행복의 증대 여부로 보는 미국 프린스턴대 생명윤리학자 싱어(P Singer) 교수는 신경이 미분화 상태에 있는 배아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므로 아직 인간이 아니며, 그 때문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다면, 배아 연구는 허용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싱어식의 논의가 논리적으로 정당하다 하더라도 연구 결과는 생명의 도구화, 상품화 등으로 이어질 수 있으며, 다양한 불확실성을 내포하기 때문에, 사소한 방심이 결과적으로 엄청난 파국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고 윤리적 관념에만 매몰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의료 현장 종사자는 복제 연구를 허용하는 것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리고 인간 존엄성을 지키는 일이라고 항변한다는 것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문제의 복합성에 비추어 생명윤리 문제는 단순히 윤리학적으로만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학계·경제계·법조계 등 사회 각계의 전문가와 시민사회 구성원들이 기술영향평가제도 같은 제도적 장치와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통해 결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현대 과학문명의 핫이슈인 인간 존엄성은 천부적인 특성으로서의 의미보다는 우리가 바람직한 목표설정과 책임있는 행동을 통해 만들어내야 하는 실천적인 과제의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김국태교수
■김국태 교수는

김국태 교수는 중앙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독일 콘스탄츠대에서 과학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호서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 ‘형이상학과 존재론’ 등이 있고 ‘칸트의 존엄성 개념에서 본 인간복제의 윤리성 문제’ 등 유전자기술과 인간복제로 인한 철학적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출처 : text reading
글쓴이 : 여민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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